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67화 (67/222)

# 67

67화

대구 사람들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인프라를 갖추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이주할 순 없었지만, 사람들은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들떠 보였다.

“앞으로 어쩌실 계획입니까?”

“글쎄··· 자네는?”

“저는···.”

“떠날 거잖나? 맞지?”

성진이 곧장 대답하지 않자 김정우가 말했다.

“대답하기 어려워하지 않아도 돼. 나도 바보는 아니야. 부산에서 멀쩡히 걸어서 대구까지 온 사람. 아무리 부산이 종말을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산책 삼아 걸어올 만한 행로는 아니지?”

“······.”

“거기다 종말을 상대하는 그 힘.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야. 올빼미, 자네는 떠도는 게 아니지? 종말을 끝내기 위해 움직이는 거잖나.”

“맞습니다.”

김정우가 미소 짓고는 뭔가를 꺼내서 흔들었다.

성진이 대구로 넘어올 때 사용했던 GPS였다.

“이거, 쓸만하더군. 계속 써도 될 것 같아. 좀 손을 봤어, 허락도 없이 만져서 미안해.”

“···감사합니다.”

김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진에게 GPS를 건네줬다.

GPS엔 빨간 점으로 도시가 표시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종말 거부 장치가 존재하는 도시야. 물론 GPS는 그냥 대충 찍은 거고 실제 위치는 도시에 진입하게 되면 알게 되겠지.”

“혹시 더 알고 계신 정보가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 나도 준비하고 종말을 맞이한 게 아니니까. 서울에 가까운 도시는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진이 고개를 숙였다.

김정우가 그 모습을 보고 빙긋 웃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지?”

“예.”

“우리도 서울로 올라갈 거야.”

“······.”

“물론 준비가 되어야겠지. 그리고 거주민 대부분은 반대할 거고.”

김정우의 눈은 확신을 가진 사람의 눈이었다.

“그래도 설득해야지. 지상으로 올라가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함께 해내자고. 그렇게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서울 정도야 금방이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물벼락은 이제 질색인데··· 앞으로도 계속 맞아야 할 것 같아.”

“응원하겠습니다.”

“나야말로 자네를 응원하지. 대구가 언젠가 자네에게 보답할 수 있으면 좋겠어.”

김정우와 성진은 몇 가지 주제로 대화를 더 나누었는데, 앞으로 이동할 곳에 대해서 김정우가 조언했다.

“아, 그리고 이건 알고 있지? 대전이 휴머노이드 시범 도시였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 대전에 도착해서 사람 닮은 뭔가가 떠들어 댄다고 놀라지 말라고.”

“그것들이 남아있을까요?”

“모르지. 종말이 찾아오면서 모두 부서졌을지, 아니면 그것들도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을지···.”

성진이 김정우와 대화를 마치고 나왔을 때 새로운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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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 북쪽으로]

「당신은 부산과 대구의 종말 거부 장치를 작동했습니다. 종말 거부 장치에 목적이나 비밀이 있는지, 또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당신에게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종말 거부 장치가 종말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다음 목적지는 대전입니다. 대전에 도착해서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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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거예요?”

“예.”

김석찬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경단원들도 함께였다.

자경단원들이 한 명씩 성진에게 다가와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성진은 모두의 인사를 받아주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계속 움직인다고 가정해도 5일 이상 걸리는 거리다. 물론, 그렇다고 성진의 배낭에 담기는 물건이 바뀌진 않는다. 언제나처럼 배낭에는 배터리와 식량뿐.

철컥-

성진이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나서기 전까지 김석찬과 정차현 등이 따라붙어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저··· 올빼미 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부산의 종말 거부 장치를 작동시킨 건 올빼미 님인가요?”

“그렇습니다.”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직접 해내신 일이었군요.”

“부산이나 대구 모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낸 일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석찬이는 눈치가 없는 편이구나

- 척 봐도 ‘나 무지 셈’이라고 쓰여 있지 않나?

- 그래도 이제야 인정받는군

- 떠나기 30초 전에 말이지. 정말이지 너무 보람차!

- 30초 동안 우쭐하면 됐지!

성진이 그들을 돌려보내고 출구 밖으로 나섰다. 아직 지하 쉘터 인근은 방사능 지대였다.

성진은 대구를 사선으로 가로질러 올라갔다.

대전까지 가장 수월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역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분’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개똥노잼 행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등불로 ㅌㅌ]

- 왜? 나는 이 때가 젤 좋던데;

- ㅇㅇ 솔직히 약간 탐험하는 느낌 들잖아

- 응 일주일 내내 탐험~

- 좀 길긴 하지?

대구에서 고속도로에 올라 걸었다. 요르문간드의 영역이 단지 대구가 전부였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전으로 향한 지 이틀이 지나도 방사능에 오염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물론, 성진에게 접근하는 간 큰 몬스터는 없었다.

채팅창은 조용했다.

대부분 등불 방송에 가 있다가 성진에게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우르르 넘어오는 형식이었다.

‘생존 신고’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사, 살아있습니까 여러분? 저는 살아 있습니다···]

- 아뇨, 죽었습니다

- 살긴 살았는데 심심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 ㅅㅂ··· 차라리 행군하는 게 낫지 행군하는 거 구경하는 건 진짜···

- 그럼 다시 군대에···

- 생각해 보니 구경하는 것도 나름 운치 있네영

‘심심하다심심해’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올빼미 위압 때문에 몬스터도 안 오고···]

- 이럴 때 위압 좀 꺼줬으면 좋겠어

- 그럼 5일 걸릴 거 7일 걸림

- 아 그렇겠네. 그냥 위압 켜고 가자

- 차량 쓰면 안 되나?

- 쉘터 거는 쉘터가 써야 하고 도로에 주차된 거는 못 써먹음 핸들이 녹아서 ㅋㅋ

‘혼란을틈탄선착순’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선착순 한 명 도미노 피자!]

- 나!! 나나나나나나!

- 나요 나아나나나나

- 축하합니다. 맨 윗분 당첨되셨습니다.

- ㄴㅇㅅ 갠쪽 보내면 됨?

- 당신은 이제부터 도미노 피자입니다.

- 시1발 이게 아닌데

- ㅋㅋㅋㅋ 와르르 무너지면 되겠네

- 피자처럼 울부짖었땈ㅋㅋㅋ

‘난일부러선착순안함’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족발 다이어트 하는 중이라 핏자 먹으면 안 됑]

- 족발 다이어트는 또 뭐야

- 바보 녀석, 족발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 다이어트는 양심이라는 자식이 제멋대로 갖다 붙인 거야

채팅창은 성진의 지구력과 인내심에 감탄했다.

게임에 접속해서 온종일 걷기만 하는 데 불평 한마디 없었으니까.

불평은 시청자들이 대신했다.

- 겜을 ㅈ같이 만들어 놔서 이동에만 시간을 다 쓰네;

- 원래 몬스터 잡으면서 가는 거라 이런 행군 분위기가 아닌데;

- 몬스터님이 제발 덤벼주셨으면 좋겠어요···

- 얘들아 나와··· 총알도 살살 맞으면 덜 아파

아무리 성진이라도 4일째가 넘어가고 나서부터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김천을 지나 영동을 넘었고 현재는 옥천에 와 있었다. 성진이 환경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이때부터였다.

‘여기까지였나?’

요르문간드의 영역은 여기까지 였던 것 같다.

고속도로가 끝나있었다.

식물의 뿌리 같은 것이 고속도로까지 침범해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환경이 변했다는 것을 감지하자, 시스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습기가 몸을 침범하려 합니다.]

[대기 중에 독기가 퍼져있습니다.]

[신체기능에 이상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외부 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적응합니다.]

즉사 수준의 환경은 아니었다.

독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가진 맹독 저항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적응의 경지가 상승해 고통은 없었다.

[진피층이 일정량 이상의 습기를 여과합니다.]

[호흡 과정에서 독기를 상시 배출합니다.]

순식간에 적응이 일어났다.

성진의 시야에 당장 위험해 보이는 건 없었다.

하지만, 대전으로 진입하기 전부터 도시의 모습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인상을 받았다.

도시는 온통 어두컴컴한 초록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숲이 도시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였고, 건물들은 나무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녹색 성장이 이거였누

- 다이나믹하게 괴롭히는 거 실화냐;

- 그래도 산림욕하는 기분 아닐까?

- 보는 맛은 있겠다

시청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공기는 상쾌하지 않고 무거웠다.

그 때문인지 호흡하는 것도 찝찝하게 느껴졌다.

마치 찐득찐득한 진흙탕에 들어온 기분.

이것 말고도 불길한 징조는 여럿 보였다.

‘식생이···.’

도시가 거대한 열대우림이 되었다.

식물들은 상식 수준의 크기가 아니었고 나무들은 빌딩보다 더 높이 뻗어있었다.

잎도 울창하게 자라 그 밑에는 캄캄한 암흑일 것이다.

‘살아남았을까?’

사람들을 어디서부터 찾아 나가야 할지 벌써 막막했다. 성진은 그래도 서서히 걸음을 옮겨 마침내 대전의 초입에 진입했다.

바닥의 아스팔트는 시커먼 식물들이 뚫고 나와 있었고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다.

벌레와 짐승의 소리.

일반적인 소음이 아니었다.

자동차 경적음보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벌레는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식물이 이렇게 거대하게 자랐으니, 환경은 이곳에 머무는 몬스터들에게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훅··· 후드득···

비가 오기 시작했다.

- 비? 비라고?

- 엄복동?

- ㄴㄴ 지금 비 오잖아여;

- 헐 진짜다

- 와 잠깐 근데··· 비 맞냐?

쏴아아아아아아···

비가 쏟아졌다.

폭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비였다.

‘매캐한 냄새···.’

뭔가를 녹이는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산성비 같았다. 성진은 펄스를 가볍게 휘감아 영향받지 않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슈트 없이 이 폭우에 직면한다면 녹아내리는 건 그들의 살점이었을 것이다.

근처의 5층짜리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층당 면적이 꽤 넓었다.

비가 언제까지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비를 피해야 할 것 같다.

쏴아아아아아···

건물의 안이라고 마냥 안전하진 않았다.

귀를 찢는 벌레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공간은 벽을 뚫고 들어온 넝쿨이 곳곳에 보였다. 하나같이 거대한 크기였다.

‘자연에 문명이 무너진 건가?’

대전의 모습은 기이했다.

마치 현대인이 오래된 유적지를 돌아보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밖이 이런 상황인데 쉘터나 벙커가 안전할까?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은 수색을···.'

그때, 성진의 감각이 곤두섰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적인가?’

“호, 혹시 사람이신가요?”

“사람?”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성진은 이런 외곽에서 바로 사람을 마주칠지 몰랐다.

- 웬일인지 오늘은 운수가 좋다

- 클리셰 걸지 마라 ㅋㅋㅋ

“건물에 계속 숨어있었는데, 인기척이 들려서요. 다가갈 테니 혹시 무장하셨다면 쏘지 말아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이곳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인이 어둠을 헤치며 걸어왔다.

“혼자서 너무··· 무서웠··· 어요···.”

- 아니, 이 전개는?

- 1인칭! 이건 1인칭으로 맛봐야 한다!

- 아버지! 여기서 어머니를 붙잡지 못하면 세계선이 붕괴해요!

그때,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성진이 순식간에 샷건을 빼 들었다.

기이이이잉-

여인이 소리쳤다.

“죽어!”

철컥-

퍼어어엉!

샷건이 격발되고 에너지 탄에 적중당한 여인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여인은 방금, 손에 든 권총으로 성진을 쏘려 했다.

콰아아앙-!

성진은 물음표가 가득한 채팅창을 무시하고 여인이 쓰러진 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이익··· 지지이익···

“어떻게··· 왜···.”

“······.”

여인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봤을 땐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에너지 탄에 적중당한 부위에는 피와 살점 대신 부서진 기계 파편들이 가득했다.

여인의 눈에 깃든 붉은 빛이 사그라들었다.

성진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여인의 얼굴은 한 쪽이 떨어져나가 있었다.

‘녹아내린 건 아니고··· 총?’

얼굴의 부서진 흔적은 방금 자신이 쏘아낸 에너지 탄에 적중당한 흔적과 흡사했다.

여인은 김정우가 미리 얘기했던 휴머노이드인 것 같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를 공격할 정도로 적대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사람?’

휴머노이드에게 총을 쏜 상대가 누구일까?

사람? 그도 아니라면 같은 휴머노이드?

뒤에서 또다시 인기척이 들렸다.

성진이 경계하려 하자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멈추십시오, 사람. 나는 당신을 적대하지 않는다.”

“···휴머노이드?”

“나는 무장했다. 하지만, 당신을 공격할 의사는 없습니다.”

방금 쓰러진 젊은 여성과는 다른 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고등 학생쯤 된 목소리였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상대는 군데군데 삭아버린 교복을 입고 있었다.

- 여고생?

- 여고생 로봇?

- 완전체잖아?

외관상으로는 완벽하게 여고생으로 보이는 상대가 물었다.

“···이 휴머노이드를 쏜 게 당신?”

“···접니다.”

“잘했다. 안티(Anti)를 처리한 것은 매우 훌륭한 행위입니다.”

- 안티?

- 내가 아는 그 안티?

“안티?”

“대전의 종말 이후, 인간을 적대하는 휴머노이드입니다.”

“당신은 아닙니까?”

“나는 안티가 아닙니다.”

“그럼 당신은 뭐죠?”

상대가 대답했다.

“나는 학습형 가족 휴머노이드, 모델 감마-6. 가족이 내게 지어준 이름은 정유리입니다. 대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갑자기?

- 갑자기 여고생에게 환영받아 버렸다

- 가이드인가;

정유리가 성진에게 말했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부탁하는 것은 실례, 하지만 필요한 행위입니다.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여고생 정유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를··· 정정."

정유리가 단어를 바꿔 질문했다.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쏴아아아아아아······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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