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66화
[제목: 우매한 녀석들아, 나님께서 소식을 가져왔다]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가 소식을 물어왔다.
오늘 음탕 방송에 송하린 나온다.
송하린 나오면 방송 졷망하거나 졷흥하거나 둘 중 하나다.
봐라, ㅂㅅ들아
- 전서구가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구려!
- 전서구의 얼굴이 너무 구려!
- 이땐 몰랐다. 송하린 때문에 일어난 ‘그 사건’ 때문에 음탕이 미로를 떠날 줄은···
- 미리 시나리오 짜지 마 ㅋㅋ
[제목: 아 개망했다 디토님들 조언점 ㅠㅠㅠㅠㅠㅠ]
썸녀 생일이라 생일 축하한다고 깨톡보내다 오타남
생ㅇ리 축하해라고 보냄.
썸녀가 답이 없어, 어카냐?
- 외국에서는 축하도 하고 그래. 물론 넌 진또배기 한국 사람이지.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아랫목을 내어주마
- 네 녀석은 유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개 쓰레기다. 얼른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날아가 마왕을 쓰러트려라
- 그런 의미로 생일 선물은 ㅇ벗어를 추천한다. 지지부진한 관계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을 수 있지
- 너희들의 위로에 사탄님께서 기립박수 중이다
[제목: 와 올빼미 여친 지린다; 인간의 외모가 아니야;]
여러분의 관심사와 흥미를 빅 데이터로 분석하여 가장 높은 조회수를 이끌어낼 만한 제목을 도출했습니다.
- (파닥파닥)
- 진짜 인간의 외모가 아니였누;
- 저 로봇새끼 진짜 ㅋㅋㅋ 또 당했네
- 스카이넷 등장하면 리얼루 나부터 죽겠다 ㅋㅋㅋ
- 나를 포함한 전국 질투마들이 올빼미 여친을 질투하기 위해 모였다. 반갑다 동지들
- 진짜 여친 있겠지? 있으면 예쁘겠지? 부럽다!
****
일주일 중 단 하루.
성진이 방송을 하지 않는 이 날, 음탕의 방송이 시작됐다.
‘송하린···.’
화제성이 높은 여성이다. 캐릭터도 확실하고.
어설픈 무협지 말투에 잠을 자느라 매번 늦는 여성.
그런데 또 실력만큼은 등불 안에서도 최고를 다툰다.
등불 방송을 보면서도 그 갭이 가져오는 호감이 신선했다.
‘근데 그게 캐릭터가 아니었어?’
송하린에게 연락이 왔다.
방송 시간에 1시간쯤 늦을 것 같다고.
어처구니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질문했다.
“······왜요?”
대답이 가관이었다.
- 어제 본녀가 늦게 잠들었기에······
“뭐 하느라 늦게 잤는데요?”
- 매드무비 보느라······
“······.”
- 대구 편···
마치 대구 편은 인정해달라는 말투였다.
어디냐고 물어보니 머리도 안 말리고 택시를 탔다고 했다. 그래도 1시간은 걸릴 것이다.
음탕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초빙한 게스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송하린이 올 때까지 빈 시간을 다른 컨텐츠로 메꿔야 했다.
“여러분 안녕···.”
- 음탕 왜케 기운 없어?
- 무슨 일이야? 말해봐. 우리한테 다 털어놔.
- 그게 뭐든 이해해줄게!
음탕은 살짝 감동했다.
“사정이 생겨서 실력자의 말말말 좀 늦게 할 것 같아요. 아마 1시간 정도? 그동안 저 게임할게요.”
‘도망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음탕은 우리 동네 할머니도 인정한 게임 버러지다!]
- 칵! 이건 못 먹어!
- 동네 사람들 피하세요!
- 구독 해제하러 갑니다
- 시청자 수 빠지는 속도 봐랔ㅋㅋㅋ
종말 이후를 플레이하기엔 너무 헤비하기에 간단한 VR 게임을 했다. 물론 엄청나게 못했다.
‘포켓몬도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삐빅-! 음탕, 물 속성 포켓몬. 게임을 하면 곧장 바지를 내리고 물똥을 싸버리는 습성이 있다]
- 물똥 ㅇㅈㄹ ㅋㅋㅋ
- 좀 되직하게 싸던가 보는 사람 너무 힘들어···
- 왕이나: 센데··· 이길 수 있을까?
‘음탕과 함께’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고개 드세요, 음탕 씨! 당신 아직 죄인 아닙니다]
- 어딜 보십니까? 그건 제 본체입니다(죽음)
- 문도~~ 아무것도 모른다~
- 내 몸에서 나가 왕이나!
- 게임 못하는 스트리머의 양대 산맥 왕진아와 음대관
- 음탕 씨 고개 숙이세요. 당신 이제 죄인입니다
한 시간이 넘게 음탕은 고군분투했다.
시청자 수는 가열차게 줄어들었고 게임 업계에서 잠정은퇴를 바란다는 말까지 나올 때쯤, 게스트들이 다 왔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휴우··· 여러분, 즐거웠죠?”
- 네, 즐거웠습니다(코가 길어짐)
- 네. 저도 즐거웠어요!(재만 남음)
- 에. 즈거워어여(이가 다 부서짐)
‘음탕게임보는사람특’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깁스했을 때 괜히 문질러서 썩은 내 맡아 봄]
- 방구의 구릿한 냄새가 괜히 흥겨울 때가 있어
- 원래 혐오스러운 건 아름다운 것과 한 끗 차이라잖아
음탕이 땀을 닦고 오니 시청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송하린이 온다는 소문 때문인 것 같다.
디스토피아에 송하린이 온다는 소문을 퍼트린 건 음탕 자신이었다.
‘이게 다 노력하는 방송인 아니겠어?’
“들어오세요.”
“아, 저··· 그 송하린이···.”
“예? 왜 그러세요?”
송하린과 같이 온 사람은 차일국이었다.
워낙 톡톡 튀는 캐릭터의 송하린이기에 그녀의 폭주를 막을 사람이 필요해서 특별히 부탁했다.
차일국도 송하린이 방송에서 사고를 칠까 염려되어 함께하겠다고 했다.
“얘가 상태가 좀···.”
“괜찮아요. 요즘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 없어요. 들어오세요.”
“네. 그럼···.”
송하린과 차일국이 방송 장비가 세팅되어 있는 방음 공간에 들어섰다.
- ?? 송하린 얼굴 뭐냐?
- 뛰뛰빻빻ㅋㅋㅋㅋㅋㅋ
- 밤에 라면 다섯 개 처먹었나
- 얼굴 만두 뭔데
송하린이 퉁퉁 부은 눈과 얼굴로 나타났다.
“······라, 라면 드셨어요?”
“어제 매드무비 때문에···.”
“······그럴 수 있죠. 영상이 슬펐나 봐요.”
“좀이 아니라 많이··· 본녀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 대구 편을 보고 우는 사람이 있어?(오열 중)
- 난 아무렇지도 않던데(입에 주먹 넣음)
- 솔직히 올빼미 영상은 인정해주자
다행히 송하린이 운 것에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라 음탕은 별문제 삼지 않았다.
‘영상이 울 정도로 슬픈가?’
음탕은 아직 영상을 보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생생한 반응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 오늘의 게스트! 등불의 먼치킨 하린 언니와 일국 오빠에요!”
- 초면인데 글케 불러도 되나?
- 먼 상관임; 저러고 끝나고 갈 때 뒤에서 맞담배 필 텐데
- 음탕: 푸후우··· 고생했수다. 내 넉넉히 넣었지비
- 말투는 왜 그 따위야ㅋㅋ
송하린과 차일국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음탕이 영상을 재생하려는데 송하린이 한 손으로 음탕의 손을 막았다.
“예?”
“본녀가 생각하기에 이 영상은 적절치 못하다. 부디 ‘내똥아프리카코끼리똥’공자의 영상으로 틀어주기를 바란다.”
“내 똥 아프리카··· 뭐요?”
- ㅋㅋㅋ 닉네임 좀 추하긴 한데 영상 편집 네임드임
- 작명소 할아버지 뒷목 잡고 쓰러질 만한 닉네임이다
- 줄여서 내똥아코똥
- 전혀 줄어들지 않았잖아?
- 똥은 심지어 두 번이나 들어갔어
- 대구 편 영상 지리더라, 짧은데 강렬하게 만들었음
음탕이 영상 사이트에 송하린이 말한 닉네임을 적어 나갔다.
“내··· 똥··· 아프리카···.”
- 그만해ㅠㅠ
자괴감이 들었지만, 영상을 찾았다.
“이거 맞죠?”
송하린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작게 끄덕였다.
뭔가를 인정한다는 제스처같아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여러분도 못 보신 분들은 저랑 같이 봐요!”
영상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올빼미가 대구에 도착하고 지하에서 바실리스크를 맞닥뜨리는 장면.
전투 후에 석찬과의 조우.
정신이 이상해진 김정우와의 만남.
지하에 숨어사는 사람들.
영상의 초반부는 암울한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 저때 진짜 못 보겠더라
- 응 열심히 본 거 알아
- 들켜버렸네?
- 눈살 찌푸려지긴 했음;
하지만 영상이 중반부로 넘어가고 정호원의 녹음 장면이 편집 없이 그대로 나왔다.
- ㅠㅠㅠㅠ
- (말잇못···.)
- 음탕 눈 빨개짐ㅋㅋㅋ
- 이걸 억지로 참는다고?
김정우의 병기고 개방부터 시작해서 그의 노력, 올빼미의 분전에도 힘들어지는 쉘터의 상황.
영상이 나올 때마다 음탕은 저도 모르게 상황을 응원하게 되었다.
마침내, 영상은 요르문간드가 나타나고 올빼미가 홀로 대적하는 장면까지 진행되었다.
- 와 씨; 진짜 개 지려;;
- 나도 한때는 저런 모습을 꿈꿨었다
- 하지만 현실은 소총 들고도 고블린한테 쫄아 버렸고
- 지나가던 오크에 치여서 캐릭터는 삭제되었고
상황은 극적으로 치달았다.
요르문간드가 탈피에 들어가고 올빼미가 물러났을 때, 지하에서 개미 떼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음탕은 이 장면에서 뭔가 울컥했다.
“아···.”
불타는 남자가 나왔다.
한명은 달렸고, 한명은 마주섰다.
- 자, 여러분 여기서 우셔야 합니다
- 진심 불타는 정차현 달려오는 거 3인칭으로 보는데 개 소름;
- 저 파이어볼맨들은 밀수들과 닮아있다.
- 뭐가?
- 밀수들도 인생을 태우며 달리고 있잖아! 바로 지금!
- 네 녀석, 꽤나 좋은 비유를 했잖아?
궁니르가 쏘아지고, 뱀이 쓰러졌다.
영상은 요르문간드가 불에 타는 장면, 종말 거부 장치가 작동하고 김정우가 오열하는 장면, 그리고 연구소장실에서 창가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Fin.
영상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간만에 덕질하게 만들어준 올빼미님에게 바칩니다. 영상으로 발생한 수익금은 제가 올빼미님에게 후원하면서 생색낼 예정입니다.
by. 내똥아프리카코끼리똥
- 10점··· 10점이오···
- 닉네임 진짜ㅋㅋ
- 뭔가 근데 똥 크기 자랑하는 거 같아서 불편하네
- 왠지 이런 것도 지기 싫어, 나대지마 내 승부욕
음탕은 영상에 몰입해서 조금 울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좋은 영상이다.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편집을 잘했다.
“두 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어흑··· 흐흑···.”
송하린은 오열중이었다.
만두 같던 얼굴이 왕만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저··· 하린 언니?”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 본녀도 저곳에서 활약하고 싶···.”
차일국이 한숨을 쉬고 송하린을 달랬다.
개판으로 진행 되는 방송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송하린의 특이한 모습에 환호했다.
- 과몰입 ON
- 오늘 방송 개꿀잼이넼ㅋㅋ
- 송하린 얼굴 오메기 떡 됐어 ㅋㅋ
음탕은 감정을 추스른 송하린과 차일국에게 물었다.
“몇 가지 준비한 질문이 있는데요, 우선 첫 번째 질문! 전투에서 짚어주실 만한 부분이 있나요?”
송하린이 대답했다.
“기본적인 부분이야 본 사람들도 다 알 것이고··· 솔직히 평가하는 게 우습긴 하지. 자잘한 부분들은 다른 방송에서도 얘기가 나왔을 테니 본녀는 저 펄스 컨트롤을 얘기해 보겠다.”
“펄스 컨트롤이요?”
”아직도 펄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본녀의 이전 캐릭터도 겨우겨우 펄스를 깨우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펄스를 얻은 유저가 너무 적다. 그 때문에 펄스의 정보 부족을 통감한다.”
“아··· 그렇죠. 애초에 펄스를 두 종류나 보유한 유저는 올빼미님이 유일하니까요.”
- 나도 다음 생에는 펄스 얻고 싶다!
- 그러려면 혼자 한국섭 돌파해야 함
- 그럼 다음 생에도 밀수겠네!
차일국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 송하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펄스는 게임의 한 요소라기엔 지나치게 불친절한 장치다. 일단 그 감각이 직관적이지도 않고 뭐랄까··· 물로 조각을 하는 느낌인데, 아무튼 설명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모호한 개념이다. 보는 사람들은 올빼미가 펄스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니 만능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아니다.”
- 뜨끔!
- 펄스도 불친절해? 뭐가 이렇게 불친절한 게 많아?
“실제로 펄스를 깨우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미 서버에···.”
“시, 실명을 거론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가? 아무튼, 저 장면에서 블레이즈 더미를 만들어내는 건 완전히 하이테크닉이다. 심지어, 나중에는 펄스의 세기까지 세밀하게 조절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이 있나?”
- 올빼미는 신이다?
- 신은 사실 맹금류였다?
- 우리는 평생 못 한다?
송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는 천재다. 전투의 판을 짜는 것부터, 전투 능력, 상황 판단까지. 그럼 우리는 뭘 해야겠나?”
- 보고 감탄하기?
- 보고 배우는 것?
“구독을 눌러라! 월 3,900원의 힘을···.”
“얘 또 시작이네··· 다음 질문부턴 제가 받겠습니다.”
차일국이 폭주하는 송하린을 막고 다른 질문을 받았다.
“올빼미와 등불의 향후 진로는 어떻게 될까요?”
“올빼미 쪽은 저희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갈 거라는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서울로 가려는 거겠죠?”
“아직 정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워낙 불친절한 게임이라 정보도 직접 찾아내야 하거든요.”
“불친절한 게임 이긴 하죠. 그래서 저도 실력이 안 늘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 ㅖ
- 정보) 음탕은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 얼굴에 침을 뱉는 실력이다.
- 게임 탓이 아니야···
“아마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서울로 향할 것 같습니다. 등불은··· 대구 등불 해방이 우선이고, 그다음 진로는 시나리오 따라 다르겠죠.”
“올빼미와 접촉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음··· 확실히 대답할 순 없지만 규모가 커지면 선발대 개념으로 따로 인원을 꾸리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있었군요!”
- 올빼미 광팬들 우수수 지원 예정
- 수뇌부 다 빠져나감 그럼 ㅋㅋㅋ
음탕이 뭔가 생각났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해도 될까요?”
“질문?”
“요즘에 종말 플레이하시면서 이상 증세를 겪고 있다고 말하는 분이 한두 명씩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요. 데자뷰는 답변을 하지 않던데, 캡슐기기의 성능 차이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말이 맞을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송하린이 끼어들었다.
“본녀도 최근 좀 이상해졌다.”
“너는 원래 이상했잖아.”
- 팩트 밴;
- 완전 이상했지ㅋㅋ
- 갑자기 때리네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감각이 조금 예민해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요?”
“확실하진 않은데,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이런 데서 그런 말 하면 안돼. 고소당해.”
“갑자기 그런 기분이 사라졌다. 기분 탓이었다.”
“아··· 예.”
차일국이 마무리했다.
“기분 탓일 겁니다.”
****
철컥···
신아름이 문을 닫고 나왔다.
성진의 담당의와 면담을 마쳤다.
- ···사실 병원 측에서는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예? 지, 지켜본다고요?”
- 예. 이런 식으로 신체가 회복되는 사례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캡슐 치료가 성공적이었다고···.”
- 캡슐 치료에 저희가 개입하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환자의 멘탈이 긍정적으로 바뀐다거나, 감각이 조금 돌아오는 정도는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미지의 영역입니다.
신아름이 담당의의 말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그럼 지금 오빠의 상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감각이 순서라도 정해놓은 것처럼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손대고 싶어도 손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손을 댔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회복이 멈춰버리면 큰일이니까요. 그러니···
“지켜보라··· 는 말씀이신가요?”
- 예, 부디. 환자도 그걸 원하고 있습니다.
“하아···.”
신아름이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성진의 병실로 향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성진이 보인다.
매번 들어올 때마다 무섭다.
하루아침에 몸 상태가 나아지는 사람이다.
반대로 언제 다시 몸 상태가 나빠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게 기적이라면, 기적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계속··· 계속 성진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왔··· 어?”
“응···.”
성진의 침상은 머리맡이 높아져 있었다.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나갈까, 오빠? 우리 오빠 답답하겠다···.”
****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올랐다.
아직 어린아이보다 약한 힘이었지만 힘이 돌아오고 있었다.
허리를 스스로 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한 대에 수억 원 대의 휠체어를 대여하니 몸이 고정되었다. 신아름이 자신의 휠체어를 밀면서 병원에 꾸려진 정원을 거닐었다.
“나는 지금 내 생에 가장 비싼 물건을 만지는 건 아닐까? 그렇겠지, 오빠?”
성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은 표정을 짓는 게 어색하다.
이이잉-
전동 휠체어가 자그만 소음을 냈다.
“이건 혹시 꿈이 아닐까? 신아름 인생 최성진 부양하면서 처녀귀신 되는 거 아닐까 했는데.”
“···그럴 일 없을 거야.”
“씩씩한데? 역시 우리 오빠는 씩씩한 게 매력이야.”
그녀가 과장된 행동과 말을 내뱉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곧장 꺼내어 놓지 못하는 신아름. 그런 그녀의 버릇이다,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잡는 버릇.
성진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수다쟁이가 될 줄 알았는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남들이 보면 과묵하다고 할 만큼 말수가 적었다.
“···말해도 돼, 아름아.”
“······눈치는 빨라서.”
역시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신아름이 우뚝 멈춰섰다.
휠체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오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
“···말해줄 수 없는 거야?”
“···응.”
데자뷰와의 계약은 발설할 수 없다.
그들로서도 자신이 신아름에게 얘기했는지 알 도리가 없겠지만, 계약을 먼저 어겨서는 안 됐다.
“곤란하네··· 이 남자···.”
“미안.”
“돈도 계속 들어오고 있어. 오빠 나 몰래 나쁜 일 하는 거 아니지?”
“······.”
“하긴, 오빠가 그런 일 할 사람은 아니지. 무단횡단도 안 하는 사람인데.”
신아름이 휠체어의 앞으로 와 성진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정말 예뻤다.
그 눈동자 앞에 놓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녀를 좋아한다.
“엄마가 그랬는데, 비밀이 많은 남자랑 살면 손해 본대.”
신아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들추었다.
“오빠, 손 이렇게 내밀어 봐.”
성진이 어렵게 오른손을 들어 내밀었다.
신아름이 맞은 편에서 쪼그려 앉아 왼손바닥을 성진의 손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아아, 최성진 씨는 신아름을 사··· 여전히 좋아합니까?”
“······.”
“대답 안 할 거야? 이러면 곤란한데···.”
성진이 작은 신아름의 손을 바라보다가 마디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파고들게 했다.
깍지 낀 손을 한 채로 신아름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보인다.
“좋아해.”
“······.”
신아름이 잠시 대답하지 않다가, 한숨 쉬며 말을 꺼냈다.
“내 팔자야. 신아름 또 손해 보겠네···.”
신아름이 그녀의 이마를 성진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바람이 잠시 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