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어제 밤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또 실패했다. 될놈될 망할 거. 왜 나만 안 등불ㅠㅠ]
- AI의 신한테 간택 받지 못한 자여
- 님 업적점수가 쪼달렸기 때문 아님둥둥 어화둥둥?
- 그래도 꽤 높다고 생각했는데ㅠ
‘소녀들과함께’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어제 최별이랑 예은이랑 같이 떠들었다. 기분좋았어]
- 최별이랑 김예은이 떠들고 아저씨는 몰래 관음했겠죠
- 갈! 분명 그들의 소녀 감성이 내게도 전해졌다!
- 위험해! 이 아저씨 위험하다! 도망쳐 최별!
- 최별이 더 위험해
- 아 ㅇㅋ
‘등불 벌크업’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덩치 좀 커졌네. 이제 쉘터랑만 접촉하면 되는 건가?]
- 쉘터 접촉하고, 대구 넘어와야 하는디
- 대구 지금 넘어와서 도움이나 될라나 ㅋㅋ
- 애초에 방사능에 속수무책이라 올빼미가 클리어하는 거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님?
- 그럼 등불은 뭐함
- 때를 기다림
- 오··· 뭔가 있어 보이는 게 설득력이 있어!
- 대구 패스하고 바로 다음 지역으로 쏴도 되는 거니까ㅋ 일단 제대로 정비부터 하는 게 좋지
“이 슈트들은 다··· 아버지 이게 뭔가요?”
“정부에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대구 말고도 몇 군데 더 있겠지. 민간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정차현 단장은 병기고에 따라 들어오려는 경계병들을 돌려보냈다.
“밖에서 경계하고 있어.”
“···예.”
“아쉬워하지 말고. 나중에 실컷 구경시켜 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아니, 하는 거 봐서.”
시무룩해져서 나간 경계병들을 지켜보던 정차현이 김정우 박사의 근처로 왔다.
“그런데··· 병기고 안에 있는 장비들을 파악하고 계신 겁니까?”
“올빼미가 구해온 병기고 관련 자료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거기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과연······ 뭐 어쨌든, 슈트 숫자만 봐도 어마어마하군요.”
“쉘터 거주민들 전부가 입고도 남을 겁니다.”
성진이 슈트에 다가갔다.
종말 이후의 세계관에서 흔히 보던 슈트가 아니었다.
‘검은색···.’
슈트는 검은색이었다.
한눈에 봐도 기존의 슈트에 여러 가지 기능이 추가된 게 분명하다. 못 보던 부속품들이 잔뜩 있었다.
성진이 슈트에 손을 살포시 올려놓을 때, 옆에서 김정우가 말을 걸었다.
“어디 보자··· 앵커, 근력 강화, 고속 기동, 사용자 피해 완충 기능··· 많기도 하군.”
김정우는 성진이 가져왔던 병기고 매뉴얼을 읽고 있었다. 종이가 팔락거리며 넘어갔다.
“어차피 슈트는 안 입지 않나?”
“예.”
“그럼 저쪽으로 가보지.”
김정우가 성진을 한쪽 벽으로 이끌었다.
거치된 총기가 수도 없이 많았고 같은 모델의 총기도 따로 정렬되어 있었다.
“지금 쓰는 총기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골라보겠나?”
-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좋아···
- 장난감 가게에 부모님이 날 던져 넣은 것 같아···
- (대충 총기 마렵다는 내용)
성진은 평소에 사용하던 구형 모델의 샷건을 잠시 바라보다가 내려놓았다.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성격은 아니라, 정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검은색 일체의 총기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내친김에 허리춤의 권총도 뽑아 내려놓았다.
성진은 최근 전투방식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샷건은 탄약을 따로 챙겨야 하는 불편함을 조금만 감수하면 배터리와 펄스를 절약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이 가진 펄스 탄환 능력은 한발 한발 파괴력이 강한 총일수록 그 효율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총기를 둘러보던 성진은 적당한 물건을 찾아냈다.
같은 펌프 액션 샷건이긴 했지만, 그립감이 이전보다 더 깔끔하고 가벼운 총기.
특히나 마음에 드는 점은, 언더 배럴로 소형 유탄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쓸모가 많아 보였으니 주 무장은 이것으로 하기로 했다.
‘권총은···.’
사용하고 있는 권총의 명중률은 훌륭하지만, 살상력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매번 펄스를 실어야 타격을 주는 게 가능하니 유연성이라는 장점이 의미가 없어졌다.
‘이걸로 하자.’
총구가 위아래로 된 상하쌍대 소드오프 샷건.
크기도 개량된 건지 권총보다 조금 큰 정도.
성진이 총기를 바라보고 있자, 김정우가 매뉴얼을 뒤적거리며 얘기했다.
“다 골랐나? 마음에는 들고?”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잠시 이쪽으로 와주게.”
성진은 김정우의 안내를 받아 어딘가로 향했다. 다른 곳을 둘러보던 정차현과 김석찬도 다가왔다.
“이게 뭐죠, 아버지?”
“대전차포··· 라고 부르기엔 전차를 상대하는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매뉴얼에 뭐라고 나와 있나요?”
“실험적인 무기. 살상력은 막대하지만 에너지 대비 효율이 떨어짐, 실질적으로 정상 운용이 어렵다고 나와 있다.”
“······고철 아닌가요?”
김정우가 매뉴얼을 뒤적거리며 다른 설명들을 찾아냈다.
“잘만 쓰면 5층 건물도 한 방에 무너트릴 정도라는군. 어떻게 생각하나?”
김정우의 질문에 성진이 생각에 잠겼다.
김정우가 한 질문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성진이 김정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까 전 연구실에서 보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김정우는 맑은 눈을 하고 성진에게 답을 요구했다.
“요르문간드에게··· 통할까?”
“글쎄요···.”
성진이 김정우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쉘터로 돌아오며 확인한 요르문간드는 어떤 힘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김정우의 안경 너머의 눈은 전혀 좌절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해봐야지. 쉽지 않다는 말은 불가능하단 말과는 다르니까.”
“맞습니다.”
김정우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석찬과 정차현은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데, 이름도 참 요란하게 지었군.”
“이름이 뭡니까?”
정차현이 김정우가 한 말에 관심을 가졌다.
“궁니르(Gungnir)라고 적혀있군. 뭐 청룡 백호 이런 이름보다 훨씬 낫긴 하네.”
****
김정우는 그날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자경단의 단장 정차현과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자경단원들을 설득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저희야 뭐··· 하던 일 똑같이 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나서면 되는 거니까.”
“자경단에 있는 사람 중에서 박사님 생각에 부정적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병기고의 신형 슈트는 거주민들이 전부 입고도 남을 만한 수량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거주민들이 슈트를 입고 싸울 리가 없지.’
지하에 숨어 요르문간드가 지나갈 때 벌벌 떨긴 하지만, 쉘터는 지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수많은 거주민의 식량도 플랜트 시설 덕분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몬스터들이 이곳을 알지 못했으니까.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게, 사람을 약하게 만들었다.
슈트를 입을 용기를, 맞서 싸울 의지를 꺾어버렸다.
성진이 신아름을 만나러 자리를 비웠을 때도, 돌아와 쉘터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김정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어떻게··· 저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대구 게이트 붕괴 사태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벙커에 피난한 사람들이 쉘터로 이주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픔이 없는 사람들도 겁을 먹고 나서려 하지 않는데, 누군가를 잃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김정우의 생각에 호응할 리가 만무했다.
“부탁드립니다. 당장이 아니라도 됩니다. 서로 힘을 모아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힘을 모아? 박사님, 꿈도 야무지시네요.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제발 우리 좀 내버려 두세요! 죽으려면 혼자 죽으시라고요!”
성진은 욕만 잔뜩 얻어먹고 휘적거리며 나오는 김정우 박사를 보고 있었다.
슥슥···
들고나온 다이어리에 뭔가를 적어넣는 모습.
성진은 박사에게 다가갔다.
“뭘 적으시는 겁니까?”
“아, 올빼미. 별거는 아니고···. 볼 텐가?”
“괜찮으시다면.”
“여기.”
성진은 김정우에게서 다이어리를 넘겨받았다.
다이어리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이건.”
“섹터별로 매일 찾아가서 부탁하고 있지. 매일 그 반응을 적어넣고 있어. 오늘은 제법 긍정적인 반응이야.”
긍정적인 반응?
문전박대나 다름없게 대해 졌는데 왜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하는 걸까.
방금 박사가 들어갔다 나온 섹터를 확인했다.
거주 C-2 섹터
‘부정적이지만, 희망이 있음.’이라고 적혀있다. 성진은 자신이 제대로 본 게 아닌가 하여 그 앞쪽도, 다시 그 앞쪽도 확인해 보았다.
거주 C-2 섹터
‘말도 못 붙여보고 쫓겨남, 하지만 희망이 있음.’
‘말을 꺼내자마자 욕을 함. 내일 진정된 상태에서 얘기를 나눠봐야 알 듯.’
탁-!
성진이 다이어리를 덮었다.
“무척 긍정적이십니다.”
“···그렇지?”
박사가 피식 웃었다.
성진은 그가 웃는 걸 처음 보았다.
“그렇게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다음날 다시 못 올 것 같더라고.”
“······.”
“신기하지 않나? 마치 최면 같아. ‘희망이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다’. 다 허울뿐인 말일지라도 나도 모르게 거기에 걸게 돼.”
“박사님···.”
“사람이 재밌는 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기 때문이야.”
“마음을 선택한다는 말입니까?”
성진은 김정우가 하는 말을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좋은 마음을 가져야지, 우울한 생각은 그만하자, 기운 차리자.”
“······.”
“지구상에 이런 생물이 또 있을까? 아닐걸, 다른 모든 생물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걸 감정으로 변환할 뿐이야. 오직 인간만이 상황을 거부하고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어.”
김정우가 성진을 바라봤다.
“비슷하지 않나? 종말을 거부하는 인간들과 말이야.”
“······.”
“음? 표정이 왜 그런가? 혹시 근거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근거가 있습니까?”
“있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김석찬이 말하기를 김정우가 캠브리지 대학 연구를 인용하면 십중팔구 근거 없는 말이라고 했다.
성진은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 근거는 충분하지?”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성진이 김정우와 이야기하며 걸었다.
거주 구역의 C 섹터 가장 구석진 곳에 도착했다.
“아, 여기는 좀 과격한 편이니까 물러나 있게.”
“과격하다고요?”
“보면 알 거야. 후···.”
짝-!
김정우가 안경을 접어 연구복에 집어넣고, 양 볼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가 들어서려 하자, 누군가 달려들었다.
촤아악-!
김정우의 얼굴로 물 한 바가지가 날아들었다.
“박사님!”
성진이 개입하려 하자 김정우가 손을 올려 괜찮다고 표시했다. 물이 투명하지 않은 게 사용한 물을 끼얹은 것 같다.
물을 뿌린 사람은 중년 여성이었다.
“어딜! 내 아들도 남편 곁으로 데려가려고 해! 다신 찾아올 생각하지 말라니까!”
김정우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다시 뒤로 넘기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봐 주십시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김정우가 고개를 들고 히죽 웃었다.
김정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
‘박사님’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그동안 욕해서 죄송했습니다. 사실 저도 선동당한 거 아시죠?]
- 배신? 어림도 없지! ㅋㅋ 이 자식이 먼저 말했어요!
- 잼사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빛사님이라고 부르겠읍니다 ㅠ
- 종일 저렇게 물벼락 맞고 돌아다니는 거네 ㄷㄷ
- 거주민 심정도 이해가 가긴 함. 안전한데 뭐하러 그렇게 까지 하냐는 거지
- 십만양병설 들은 반응이긴 하더라 ㅋㅋ
‘와 싱크로율;’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지금 박사랑 올빼미 심정이 딱 김첨지 아니냐?]
- 신형 슈트를 사 왔는데 왜 입지를 못하누 ㅠㅠ
-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 김첨지, 국밥 빌런들의 시조 격이지
- 일반인들도 슈트 입으면 전투 가능한데! 입어주라!
- 악성 재고가 되어버렸구연~
쉘터의 자경단은 외부 경비를 도맡아 했다.
쉘터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외부로 향하는 통로는 많았다. 북쪽으로는 은행 건물과 이어졌고 서쪽과 동쪽에는 다섯 군데가 넘게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그 때문에 평소에는 자경단원들이 돌아가며 통로를 경계했다.
“박사님이 정신 차린 건 다행이긴 하더라.”
“그래, 석찬이가 기뻐하는 거 보니까 나도 좋던데. 우리 가족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족들 다 서울 산 댔나?”
“어, 연락 끊고 산지 좀 되긴 했는데. 그래도 석찬이 보니까 보고 싶긴 해.”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너는 효자냐?”
“나야 효자지. 앞에 불속성 붙은 효자야.”
“너나 나나 불타는 효자인 건 똑같네.”
경계병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시시껄렁한 얘기가 대화의 주제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쉘터의 미래에 관한 얘기도 오갔다.
“솔직히 근데, 사람들이 나서겠냐? 우리도 외부 나가라고 하면 벌벌 떨면서 못 하겠다고 하는데.”
“힘들겠지. 지금이야 쉘터가 안정적이니까 차근차근 준비하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긴 한데, 반대로 생각하면 쉘터가 안정적이니까 구태여 그럴 필요 있냐는 사람들이 다수잖아.”
“하여튼 쫄보 새끼들.”
“그럼 지금 외부 순찰 나갔다 올래?”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쉘터가 안정적인데.”
“미친놈.”
낄낄거리던 두 사람의 바이저로 전달 사항이 내려왔다.
- ······해.
“네? 뭐가 보인다고요?”
경계병들이 맡은 지상의 우체국과 이어지는 서쪽의 통로. 그곳의 근처에 뭔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전달이 왔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라는데?"
“아, 무서운데.”
“몬스터가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을 텐데. 여태까지 그런 적 한 번도 없잖아?”
“아, 몰라. 누가 갈래?”
“당연히 너지.”
“염병.”
한 사람이 쉘터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지상까지 나가지만 않으면 문제없을 것이다.
“문 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 조금 더 가봐야 알지. 쫄았냐?
“어불성설! 귀신 잡는 해병대 전우회가 우리 아버지시다.”
- 연락 끊었다며. 그리고 아버지랑 너랑 뭔 상관인데?
“유전적으로 조금 섞여 있다 이거지. 하여튼 좀 더 가본다.”
밖으로 나온 경계병이 어둑어둑한 통로를 걸었다.
지직··· 지지직···
“아, 이거 때문에 제대로 확인이 안 된 거구나?”
가뜩이나 어두운 통로에 전등마저 맛이 가기 시작했으니, 뭐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여기 전등 보수 좀 해야겠다. 그리고 ···씨발.”
“끼이이이이익!”
경계병의 뒤쪽에서 뭔가가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