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선로가 깔린 구덩이에서 올라온 건 랫맨이었다. 근육질의 사람 몸에 쥐 머리를 한 몬스터.
“끼이이이이···.”
성진은 이미 울음소리를 들을 때부터 랫맨이라는 걸 어느 정도 직감하기는 했다. 랫맨은 어둡고 깊은 장소를 좋아한다. 지하에 들어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
붉은 눈빛이 사이하게 번들거렸다.
그런데, 성진이 맞이한 랫맨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형태였다.
‘날개?’
박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작은 날개, 그리고 일반 랫맨보다 덩치가 2, 3배는 컸다.
‘랫맨이 아닌가?’
날개와 덩치를 제외하면 랫맨이 확실했다.
시청자들도 이를 지적했다.
‘헐 머야 랫맨 왤케 컸어’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못 본 사이에 많이도 컸구나;]
- 등에 날개 커엽누 ㅋㅋ
- 덩치는 뭔데 저렇게 커; 헬스했나?
- 핼갤러 랫맨 ㄷㄷ
‘오빠 나 좀 봐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랫맨: 오늘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 음··· 벌크업을 조졌네? 3대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 먹었구나?
- 어머, 오빠도 참~ 얼른 걷자. 근손실 오겠어~
- 저건 랫맨인가 배트맨인가···
“끼이이이이!”
랫맨들이 사방에서 덤벼들려 했다. 성진은 이곳에서 싸운다면 고전할 것이라는 걸 눈치채고 계단을 올라 위로 향했다.
뒤쫓아 오는 랫맨들은 그 작은 날개로는 날지 못하니 네 발로 내달려 성진을 공격하려 했다.
기이이잉-
철컥-!
퍼어엉!
퍼어엉!
“끼······.”
앞서 달려오던 랫맨 둘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머리가 날아갔음에도 꿈틀거렸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질겁했다.
철컥-!
다행히 랫맨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부가 쫓아온 것은 아닌 걸까?
철컥-!
몇 번의 펌핑이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랫맨은 치명상을 입고 날아갔다.
‘통로로 몰고 나온 게 다행이야.’
좁고 긴 통로, 역사가 제법 큰 만큼 계단은 수도 없이 많았고 계단을 오르려면 랫맨들도 일렬로 늘어서서 와야 했기 때문에 성진의 사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서 마주친 게 다행이네.’
시가지에서 마주쳤다면 집단행동을 하는 몬스터들이라 불편한 전투를 했을 것이다.
철컥-!
성진이 마지막 랫맨을 처치했을 때,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탁-!
배터리를 교체하고 있는 와중, 섬뜩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분명, 성진을 따라붙던 랫맨은 아니었다. 성진은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바닥으로 몸을 굴렀다.
철컥-!
퍼어엉!
팍-!
아니, 랫맨이 맞았다.
“끼이이이이이······.”
앞서 쫓아온 렛맨들도 허리를 쭉 펴면 신장이 2m는 될 법했는데, 이 랫맨은 그것조차도 우습게 볼 정도로 거대했다.
족히 3m는 되어 보였으니까.
‘총탄을··· 막아?’
“끼이이!”
성진이 있던 장소에 거대한 랫맨이 육박했다.
콰아앙-!
“큿······.”
빠르고, 난폭하다.
이 랫맨이 전의 랫맨과 다른 점은 덩치뿐만이 아니었다.
날개, 아까 전 몬스터들과 달리 엄청나게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날개를 쫙 펴면 그 상반신을 모조리 가릴 정도였다.
심지어, 성진의 총탄을 막아선 건 그 거대한 날개였으니. 아무래도 아까 전 무리의 우두머리 같았다.
‘검을 뽑을까?’
성진이 펄스를 휘감은 검을 사용하면 저 두꺼운 날개와 가죽을 베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성진은 검을 뽑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 있었다.
‘마침 적당한 상대야.’
성진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기이이잉-
철컥-!
화르륵···
퍼어어어엉!
“끼이이이이!”
랫맨이 날아오르려던 자세를 취했다가 성진의 샷건에서 오싹함을 느꼈는지 날개를 둥글게 감싸 총탄에 대비했다.
이전에도 이렇게 총탄을 막아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으며.
하지만.
콰아앙-!
랫맨은 총탄에 얻어맞고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화르륵···
성진의 샷건 총구에서는 불길이 일렁였다.
‘최대치가 아닌데도 이정도라니···.’
새로 얻은 펄스 탄환을 시험해보고자 에너지의 응집에 블레이즈 펄스를 혼용해보았다. 처음에는 힘 조절이 어려워 격발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다시 해보라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진은 방금, 에너지의 응집에 실을 수 있는 펄스 중 반도 싣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대한 날개를 한 랫맨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랫맨의 날개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끼··· 끼이이이···.”
랫맨이 성진의 어처구니없는 공격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일어나 성진에게 대항하려 움직이는 랫맨. 하지만, 성진의 총구는 이미 랫맨을 겨누고 있었다.
‘최대치로.’
기이이이이이이잉-
화르륵···
퍼어어어어어엉!
랫맨이 총탄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다시 날개로 몸을 감쌌다. 하지만,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성진이 반절도 싣지 않은 펄스에 볼썽사납게 날아갔었는데, 지금은 총탄에 최대치의 펄스가 실렸으니까.
역시나.
총탄과 랫맨이 접촉했다.
그런데도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랫맨의 비명, 혹은 총탄에 랫맨의 가죽이 저항하는 소리.
랫맨의 상체는 블레이즈의 파동에 그저 휩쓸렸다.
상반신이 통째로 소멸하며 새까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윗부분을 잃은 하반신이 개찰구 너머로 튕겨 나가며 꿈틀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콰아앙!
콰아아앙!
······!
총탄이 랫맨을 뚫고도 기둥에 적중했고, 기둥을 갉아 먹었다. 그도 모자라 기둥을 뚫고 들어가 역사 끝 벽에 적중해 남아있는 에너지를 토해냈다.
콰아아아아···
엄청난 힘이다.
하지만, 그만큼 펄스를 많이 잡아먹기도 했다.
최대치로 펄스를 주입하면 아마 몇 발 정도밖에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어지간한 반동에는 꿈쩍없는 성진의 팔이 아직도 덜덜 떨려왔다.
이만한 에너지를 쏘아냈으니 샷건도 이제 제 기능을 못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혹시나 해서 총신에도 펄스를 둘렀던 게 다행히 총신의 파열을 막은 것 같다.
성진이 보여준 파괴력에 경악했던 시청자들은 이내 환호했다.
‘땅크가 왔어요!’님이 3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땅크가 왔다고요! 내가 봤어요!]
- 내 전차를 끌고 와서 니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갔어!
- 나 전차대대 나왔는데 방금 ㄹㅇ 전차포 사격 느낌 나는데 ㅋㅋ
- 와 씨; 귀청 떨어질 뻔했다. 심장 멎는 줄;
‘어르신, 카드 찍고 타셔야죠’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개찰구 맘대로 건너가시면 어떡해요!]
- 랫맨: 나 64세인데 봐주면 안 될까?
- 그럼 반만 넘어가세요
- 짜잔~ 그래서 다리만 넘어갔읍니다
성진이 파괴된 개찰구를 넘어가 랫맨의 사체에 다다랐다. 꿈틀거리는 걸 멈춘 걸 보니 확실히 죽기는 한 모양.
성진은 랫맨의 사체 주변에 빛무리가 형성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 적응의 징조다.
휘오오오···
빛무리는 가볍게 휘몰아쳐 성진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두근···
성진의 몸이 적응을 시작했다.
[완벽한 사냥을 하기에 몸이 부적합함을 느낍니다.]
[더 훌륭한 사냥을 위해 몸이 적응합니다.]
[섭취한 랫맨의 유전자를 사용합니다.]
[야간 시력이 크게 발달합니다.]
[어둠에 눈이 보다 빨리 익숙해집니다.]
[질병에 약간의 내성이 생깁니다.]
‘뭐야!’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왜 안 초음파? 박쥐 초음파 아님요?]
- 과일박쥐는 초음파 안 쓰긴 하는데; 어쩐지 대가리 모양이 과일박쥐스럽긴 했어
- 뭔데 그렇게 디테일 해ㅋㅋㅋ 아오! 초음파인 줄 알고 내 감성이 막 두근거렸는데
- 없는 것보단 낫겠지. 싱겁게 처치한 거 치곤 뭐라도 준 게 어디야
- 싱겁게? 저게 싱거우면 평소에 국을 얼마나 짜게 드시길래;
- 거 준내게 태클 거네
성진은 시청자들과는 달리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강한 몬스터는 아니었으니, 능력을 얻은 것만 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랫맨이 왜···.’
변형이 일어난 모습.
박쥐도 쥐도 아닌 모습에, 덩치는 훨씬 거대해졌다.
이 지역의 몬스터들이 다 이런 걸까?
아니면 북쪽으로 다가갈수록 더 그런 걸까?
성진은 역사를 빠져 나와 밀양 시내로 진입했다.
‘시내 쪽으로 올라갈까?’
하지만, 지도를 확인한 결과 시내 쪽으로 올라가는 것도 곧 산지에 막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행로는 점점 불편해질 것이고 제한 시간 내에 도착할지 알 수 없어진다.
일단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볼 생각이다.
걷는 내내 소형 몬스터들의 기척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하지만, 성진은 능력을 얻은 초기와는 다르게 위압을 약간이지만 통제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소형 몬스터들이 쉽사리 덤벼들지 않았다.
굶주림에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니라면.
바로 지금처럼.
쨍그랑-!
시가지의 카페에서 몬스터 한 마리가 유리창을 깨고 튀어나왔다.
오소리의 모습을 한 스캐빈저 같았다.
여기저기 파편이 박힌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과 더불어 어딘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안쓰럽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성진은 걷던 그대로 몬스터의 머리를 걷어찼다.
“끽······.”
푸악-!
북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몬스터가 멀리 날아갔다.
시가지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했거나 영역에서 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성진은 관심을 거두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렇게 고속도로에 올랐다.
그로부터 한나절, 성진이 정한 행로는 생각보다 안전했다.
아니, 애초부터 차량을 이용하지 않았으니 소음이 적었고 밀양에서 대구까지는 채 70km가 넘지 않았으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고속도로에 몬스터가 없었다.
‘왜 몬스터들이 이렇게 적은 거지?’
분명,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고속도로의 도로 폭과 길이에 비교해서는 그 수가 한참이나 부족했다.
성진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걸었다.이곳은 빙하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산과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성진은 이곳이 황무지 같다고 느꼈다.
곳곳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땅에 생기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나아가던 성진이 걸음을 멈춰섰다.
‘고속도로가 끊겼어.’
뭔가가 지나간 자국.
거인이 도끼로 내려찍으면 이런 자국이 생기지 않을까? 고속도로가 정확히 반으로 뚝 끊겨 있었다.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어쩔 수 없이 성진은 다시 인근 마을로 진입했다.
이쪽 길은 다행히 끊어지지 않았다.
휴게소와 터널을 지나쳐 걸었다. 중간에 쉴만한 건물이 나오면 들어가 쉬었다.
‘국토순례단이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방송 보는데 대구 왤케 머냐 ㅠㅠ]
- 걸어서 대구까진데 뭐ㅋㅋ 동네 마실도 아니고
- 근데 다 와 가는데? 이 정도면 대구 거의 도착함
- ㄹㅇ? 보는 나보다 올빼미가 더 지쳤을 듯;
- 이만하면 도착할 때 됐지.
GPS를 확인해 보니 깜빡이는 신호가 지척이다.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다.
아직 제한 시간은 여유가 좀 있었다. 성진이 부단히 걸었기 때문이다.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턴 대구다. 이곳에서부터 환경이 급변하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머여’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곰보겜이냐? 도시가 왤케 흉흉해;]
- 아무도 안 사는 곳 같은 느낌적인 느낌
- 아직 변두리라 그럴 수도 있지 좀 가봐야 알 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쩍쩍 갈라진 땅.
공기도 이상하리만치 따갑게 느껴졌고.
부산 쉘터에 신호를 보내온 지상 벙커는 급격하게 환경이 변하는 경계선에 놓여있었다. 성진은 지금 그 벙커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황량한 느낌의 지상 벙커로 들어섰다.
출입을 통제하는 경계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있어.’
푸취이이이···
문이 열리며 안팎의 공기가 순환됐다.
“윽······.”
썩은 냄새가 가득했다.
시체가 나뒹구는 장소.
부패한 내장이 한곳에 보관된 장소 등.
전부 가보았다.
때문에, 성진은 어지간한 냄새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정도가 심했다.
그나마 이런 장소에 익숙한 성진이 아니었다면 바로 토사물을 쏟아냈을 거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일반적인 냄새가 아니다.
에너지가 차단되어 벙커는 깜깜한 어둠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어두운 공간이 성진의 시야를 제한하진 못했지만, 이번에 랫맨을 사냥하고 적응한 능력은 성진이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능력 아니냐고 불만을 얘기했던 시청자들도 1인칭 시점의 시야가 훨씬 선명하게 나오니 나름 만족한 듯싶었다.
찌걱···
쩌어억···
군화에 끈적한 게 달라붙는다.
바닥에 쏟은 탄산처럼 굳어 없어졌지만, 걸음을 뗄 때마다 전해져 오는 찝찝한 느낌.
성진은 이게 뭔지 순식간에 알아챘다.
‘피와 고름···.’
주변을 둘러본 성진은 이곳의 바닥을 피와 고름이 가득 메우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시청자들이 황급히 1인칭 시야에서 벗어났다. 성진은 그 와중에도 생각했다.
‘피는 흔해···, 그런데 고름이라고?’
고름이 바닥을 메우긴 쉽지 않다. 이곳에 전염병이라도 돈 건가?
성진이 걷는 소리를 안 내려고 해도 군화 밑창에 달라붙은 이물이 소리를 냈다. 작은 소리여도 이렇게 아무 소리가 없는 공간에서는 천둥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아무도 안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생존자가 없는 것 같았다.
벙커의 구조는 특이했다.
통제실이 1층에 있는 것부터가 부산과는 달랐으니까.
푸취이···
전력이 차단됐지만, 정문에서부터 문이 정상 작동하는 걸 보니 문은 개별적인 에너지로 작동하는 것 같다.
통제실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실내는 참혹했다.
이곳에도 피와 고름이 말라붙어있었다.
성진은 신호기 앞에서 무언가 녹아내린 흔적을 발견했다.
‘슈트?’
슈트는 외부 자극을 대부분 차단해준다.
그런 슈트가 녹아내릴 정도라면 대체···
치이이익······
신호기도 일정 부분 녹아 부산 쉘터에서 신호기를 본 기억이 있는 성진이 아니었다면 이 물체가 신호기인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찌이익···
신호기를 가볍게 들어 올려보았다.
‘열··· 인가?’
확실하지 않다.
열로 녹아내렸다면 왜 벙커는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까?
성진은 의문이 남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을 확인했다.
‘위험해.’
성진은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시나리오가 끝나지 않았다.
GPS가 정상 작동하고 있고, 지금 그 위치에 와 있는데도.
성진의 감이 이곳 지하에 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속삭였다.
‘그렇다면···.’
화르륵···
성진이 몸에 블레이즈 펄스를 휘감았다.
타오르는 불길은 불쾌한 공기를 밀어내고 성진을 보호했다.
이제야 따끔거리는 공기도 더 이상 성진을 건들지 못했고, 위험하다는 감각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펄스를 두르고 있는 성진은 수르트의 불길에서도 어느정도 무사했다. 펄스는 온갖 부정한 것으로부터 성진을 보호할 수 있었다.
성진은 지하로 걸어 내려갔다.
지하에는 차량이 즐비해 있었다.
지하는 대형 차량이 별다른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그 차량이 동시에 몇 대나 빠져나가도 될 만큼 커다란 문이 존재했다.
‘어디로 이어지는 거지?’
지상으로 이어지는 문일 수도 있고, 지하의 터널 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문일 수도 있다.
성진이 주변을 지나면서 단서를 찾았다.
차량이 전부 퍼져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완전히 녹아내리진 않았다는 점.
한데, 아직도 시나리오는 그대로였다.
‘왜 시나리오가 진행되지 않지?’
애꿎은 시간만 가던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 구구구···
큰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문 너머에서 달려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위험해!’
성진은 서둘러 문에서 멀리 떨어졌다.
달려오던 존재는 그대로 문에 부딪혔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우직-!
문이 움푹 파이더니 찌그러졌다.
맞물려 있던 문에 틈새가 생겨났다.
성진의 블레이즈 펄스가 맹렬하게 타오른 건 그때였다. 그의 몸을 무언가가 갉아 먹으려 하는 것에 반발하여 불길이 거세졌다.
화르륵···
[치사량의 방사능에 노출됩니다.]
[신체기능에 이상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환경에 의한 즉사를 회피합니다.]
[외부 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펄스가 최대치로 발현됩니다.]
성진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곳 주민들을 몰살시킨 건 이 지독한 기운인 것 같다.
저 우그러진 문의 틈새로 흘러나온 기운에 펄스로 대항하지 않았다면, 성진의 능력이 적응이 아니었다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뻔했다.
[몸이 환경에 급속도로 적응합니다.]
다행히 펄스를 끌어올려 잠시만 버티면 신체가 곧 적응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성진은 안심하지 않았다.
방사능에 적응한다고 해도, 곧장 저 문 틈새로 성진을 노려보고 있는 생물을 상대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틈새의 눈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으로 성진을 보고 있었다.
문 틈새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넘어왔다.
“케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