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화
‘어이’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부산 사는 사람 있음?]
- 나
- 올빼미 어디 감?
- 남포역 밑이면 다리 두 개 있음
- 다리?
‘저기 다리’님이 2,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내가 알기로 ㅈ만할 텐데]
- 얼마 전에 확장 시공하던데
- ㄹㅇ?
- ㅇㅇ 데자뷰가 일 잘했으면 적용돼 있을 듯
****
성진이 민상에게 물었던 것은 별 게 아니다.
수르트가 빠질 만큼 물이 가득한 공간이 있느냐고.
또, 지형지물이 있어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민상이 그 질문을 듣자마자 손으로 가리킨 곳이 성진이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다.
성진은 이동하면서도 빠르게 판단했다.
‘일단은 부산대교로.’
부산대교가 원래 이렇게 큰 건지 종말 이후에서만 커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르트가 다리 위를 걸을 만큼 충분히 컸다.
성진은 싸우면서 이곳이 부산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었다. 아마도 얼어 붙어버린 세상이 항구도시의 특징들을 가렸기 때문일지도.
‘경계하게 둬선 안 돼.’
아예 바다 위로 끌고 가는 것도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일전의 소방서의 물탱크를 뒤집어쓴 수르트가 고통스러워하며 극도의 경계심을 보인 것을 떠올렸다.
분명, 얼어붙은 바다 위로 수르트의 거체가 올라서면 수르트가 딛고 있는 공간이 녹기 시작할 것이다. 녹기 시작한 바다는 수르트의 몸에 적더라도 타격을 줄 것이고, 수르트가 통증에 경계심을 품고 성진을 추격하지 않는다면 모두 물거품이 된다.
‘찰나를 노려야 해.’
언제나 그랬다.
위험한 적을 상대할 때 성진이 자주 사용하는 전투법이다. 상대의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 후, 야금야금 전황을 유리하게 바꿔가다가 틈을 비집고 일격을 가하는 방법.
‘이것마저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그때 다른 방법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끄아아!”
쿠웅···
부산대교로 수르트의 발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다리의 폭은 수르트가 들어서는 데 무리 없을 정도로 넓었지만, 길이는 길지 않다. 앞으로 몇 발자국. 수르트가 다리의 중앙에 왔을 때가 승부처다.
성진은 그저 도망만 치는 게 아니었다.
그와 수르트의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수르트는 입에 펄스를 집중시켜 파동을 쏘아낸다.
파동이 다리에 적중하기라도 하면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푸슛-
장대한 아치교의 모습.
부산대교의 솟아오른 아치 형태 구조물에 거미줄을 사출해 수르트의 시선을 끌었다.
철컥-
퍼엉!
“끄어어.”
수르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한손을 무식하게 뻗어왔다.
주먹을 쥐거나 혹은 펄스를 강력하게 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성진을 쥐거나 성진의 몸에 닿기만 해도 어지간하면 녹아내릴 것처럼 보였으니까.
“큿···.”
그긍···
성진이 서 있던 아치가 흐물거리며 뭉개졌다. 다행히 일찍이 몸을 뺏지만, 반대편 아치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수르트의 펄스에 영향을 받았다.
치지익···
조금만 더 펄스에 노출되었으면 까맣게 구워졌을 것이다. 장기전에 대비해 사이오닉을 열기를 피할 정도로만 둘렀기 때문인가.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열병기 저항이 수르트의 펄스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이오닉을 이렇게 약하게 둘렀는데도 타격을 받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끄아아!”
쿠웅···
으직!
수르트가 한 걸음 내딛자 부산대교가 떨려왔다.
성진에게는 쾌재를 불러도 될 상황이지만, 수르트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수르트는 알고 있었으니까.
성진이 자신을 다리로 끌어들인 이유를.
아마도 자신을 바다에 어떻게든 떨어트리기 위해서라고.
거인은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열기에 바다가 녹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고, 그 결과로 자신의 발바닥이 물에 닿아 힘이 약해진 기억이 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당시의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조금 따가웠을 뿐이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 다시 세상을 불태웠으니까.
필멸자와 수르트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성진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싸울 수 있어도 수르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저 날 파리는 불탈 것이고 그 순간을 만끽한 후에 이동하면 될 일이다.
수르트가 다리에 올라선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상관없었으니까.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 조그만 생물은 자신을 상처입힐 수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품은 수르트의 맹공이 계속되었다.
수르트의 공격이 이어지기를 잠시, 공격에 아치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성진은 교량에 대해 자세히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수르트가 가까이 오고 있다.
앞으로 많아야 두 걸음.
크게 디디면 한 걸음이고 그게 아니면 두 걸음이다.
쿠웅···
한쪽 아치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다리가 기울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수르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해왔다.
푸슛!
성진은 일부러 반대편 아치 구조물에 올라가 시선을 끌었다. 수르트는 이제 화가 끝까지 났는지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성진을 잡으려 애썼다.
“끄아아아!”
수르트에게 덥썩- 잡힌 아치 구조물이 녹아내렸다.
구그긍······
다리가 흔들렸다.
애초부터 수르트의 크기가 워낙 거대했으니 무게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다리의 한가운데에서 구조물을 부숴가며 난동까지 부렸으니, 오히려 지금까지 다리가 버틴 게 용했다.
즉, 이 다리는 이제 무너진다.
꾸직··· 꾸지직···
성진은 얼어붙어 낮아진 수심을 미리 확인했다.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수르트가 낙하에 타격을 입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애초에 그것을 노린 게 아니었으니.
“끄아아아!”
수르트가 난간을 붙잡으려 팔을 뻗었지만, 다리의 잔해가 수르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꽈직······ 꽈직···
우두두두!
다리가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성진은 그나마 남아 있는 아치의 끝에 달라붙어 있었다.
콰아아아앙!
수르트가 양팔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무너지는 다리와 더불어, 얼어붙은 바다 위로 떨어져 내렸다. 포탄이라도 떨어진 소리가 들리며 불의 거인이 고함을 질렀다.
“끄아아!”
그 위로 다리의 잔해가 떨어져 내렸고,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얼어붙은 바다에 금이 갔다.
쩌적···
물론, 이정도는 수르트에게 유의미한 타격이 아니었다.
수르트는 곧 충격을 해소하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수르트가 두른 펄스에 바닷물이 녹으면서 타격을 입히고 있었기에 따갑기는 했지만.
치지익······
“끄으어!”
거인의 울음소리에는 미미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수르트가 분노를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 작은 생물을 반드시 불태우리라 다짐했다.
성진은 허리춤에 매단 가방에서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수르트의 파편, 그 부산물이다.
강민교의 말을 믿어도 되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는 성진에게 꽤 많은 진실을 얘기했다. 용광로에 관한 이야기, 수르트에 관한 얘기 등.
그가 거짓으로 임한 건 성진과의 관계와 거주민들과의 관계다. 그의 연구원이라는 입장과 강민교라는 사람 그 자체의 괴리인 건지. 수많은 진실 사이에 몇 가지 거짓만을 끼워 넣은 강민교.
그가 이 부산물에 대해 해준 얘기가 진실이기를 바랐다. 만일 거짓이라면, 수르트와의 전투는 다시 처음의 난감한 상황으로 돌아갈 테니까.
휙-
붉은색 보석이 떨어져 내린다.
수르트가 발버둥 치는 바다 위로.
성진의 샷건은 이미 장전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엔 작은 생각이 지나갔다.
‘맞출 수 있을까?’
혹시나 저 보석이 터지지 않는다면···
아니, 맞출 것이다.
늘 그렇듯이.
퍼어엉-!
격발된 에너지의 응집이 일직선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확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성진이 쏘아낸 탄은, 보석과 부딪혔다.
쩌적-
수르트가 질러대는 굉음과 다리의 잔해가 부서지고 얼음이 녹는 소음 사이로, 분명히 이들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고 수르트도 예상하지 못한 에너지의 폭풍이 시작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청자들은 성진이 던진 물체가 뭔지도 알았고, 또 그래서 더 안타까워했다. 성진이 무언가를 잊고 있다고 생각해서.
저 붉은 보석은 수르트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수르트는 에너지를 흡수하니까.
그 증거로, 막대한 에너지의 폭풍은 확산하지 않고 수르트의 주변에서만 기세를 드러냈다. 덕분에 성진이 버틸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더 먼 곳에서 대비해야 했으리라.
지독한 인력과 열에 성진은 온몸에 사이오닉을 끌어올려 대항했다.
“윽···.”
온몸의 힘줄이 다 돋아날 정도의 폭풍이 지나가고, 시청자들은 정확히 식별하기 힘든 상황을 확인하려 애썼다.
분명, 수르트가 열에너지를 그러모아 더 거대해지고, 강해졌을 걸 상상하면서.
확실히 수르트는 강해졌다. 열에너지를 흡수해 자신의 펄스를 더욱 막강하게 만들려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수르트는 얼어붙은 바다 위에 있었고, 열에너지의 폭풍은 바다를 녹였으며 수르트가 뿜어낸 펄스가 이를 거들었다.
촤아아-!
수르트는 더는 딱딱한 얼음 위에 올라서 있지 않았다. 불의 거인은 그 몸이 푹 잠길 만큼 녹아버린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직!
콰직!
녹지 않은 얼음을 짚어 올라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르트, 성진은 에너지 폭풍의 여파에 덜덜 떨려오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쩌적··· 쩌저적···
한순간 녹고 증발했던 바다는, 성진이 움직임과 동시에 다시 얼어붙었다. 그 안에 갇힌 수르트도 얼어붙었고.
성진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반드시 이번 공격으로 수르트를 해치워야 했다.
하지만, 수르트를 억압하던 바다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아!”
수르트가 양팔을 하늘로 솟구치며 발광을 했다.
성진의 검은 그대로 떨어져 내렸지만, 손목을 조금 베어내는 성과로 그쳤고 그 반동으로 튕겨 나갔다.
“윽···.”
아직이다. 수르트의 펄스가 꺼진 지금이라면···
그런데, 수르트는 성진이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
“끄아아! 끄아아아아!”
쩌저적!
부서지는 얼음을 양팔로 짚고 일어난 수르트가,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고?’
저 거대한 악마가 처음으로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를 선택했다.
쿵! 쿵! 쿵!
펄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수르트는 그저 새까만 거인이다. 새까만 거인은 북서쪽 시가지를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놓쳐선 안 돼!’
추격해야 한다. 하지만, 성진의 방적 기관은 한계에 달했고, 시가지에 부서진 건물들을 타고 이동해서 제시간에 추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최대 3분.’
넉넉하게 잡아, 아까의 전투 양상으로 판단했을 때 펄스가 꺼져있는 시간은 3분이 최대였다. 그 안에 수르트를 쫓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전투는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가리라.
수르트는 펄스를 다시금 뿜어낼 것이고, 성진은 그것을 깨부수지 못하는 상황으로.
그때, 성진의 귓가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아아아앙-!
지금 상황에선 가장 반가운 사람이다.
“형!”
“민상아!”
“타요! 쫓아야 하는 거죠?”
성진이 수르트의 도주를 예상하지 못했듯이, 수르트도 성진에게 남아 있는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성진은 부산대교 도입교에서 기다리는 민상의 주변 지형에 거미줄을 사출해 순식간에 다가갔다.
거미줄은 앞으로 많아야 한두 번 사출할 수 있었다.
전투 초반에 더 효율적으로 움직였다면···
코트를 벗길 잘했다. 바이크에선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이니까.
그아앙···
바이크가 엔진음을 토해냈다.
“형, 저 원동기 면허 없어요. 운전도 배달이나 해본 게 전부예요.”
“가.”
“죽을 수도 있어요. 저 사물에 능력 쓰는 거 미숙한 거 알죠?”
“가, 민상아!”
“그럼······ 이제 입 열면 안 돼요!”
그으으으으으아아앙···
민상의 바이크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민상은 이곳에서 오래 거주했다. 그래서 수르트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어디로 가야 거인을 만날 수 있는 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민상의 바이크가 서쪽으로 향했다.
끼이이이이이이···
가속 능력이 발동하고, 바이크에서 날 리 없는 소음이 들려왔다.
성진조차 바이크의 속도에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민상은 자갈치로를 통해 자갈치 시장을 돌파했고 속도를 잠시 줄여 커브를 준비했다.
커브가 끝나고, 민상이 다시 능력을 발동했다.
이번엔 본격적이었다.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다 못해 찌그러져 보일 정도의 속도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
억눌린 신음을 뱉어낼 수도 없는 지금, 성진은 민상의 꽉 쥔 손아귀를 쳐다보았다. 덜덜 떨리는 손, 저기서 조금만 어긋나도 바이크가 중심을 잃고 뒤틀려 날아갈 것이다.
실제로 지금 민상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코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고 눈알은 흰자위가 다 비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단코 멈추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부산의 운명은 어쩌면 그에게 달려있었다.
수르트의 파편에도 벌벌 떨며 도망쳤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그 수백 배도 넘는 존재감의 수르트를 추격하고 있다.
성진은 찰나의 순간에 뭔가를 깨달았다.
강민교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한없이 낮게 보고 억지로라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 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뜬구름처럼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형편없이 부서져 있을 수르트가 지나간 길이 아닌, 좌측의 대로를 통해 내달린 바이크.
마침내, 바이크는 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 도달한다.
끼이이이이이-!
끼긱- 끼기긱-
바이크가 속도를 줄이려 애썼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이내 균형을 잃고 튕겨 나갔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성진과 민상이 튕겨 나갔다.
성진은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은 자세로 공중으로 솟구쳤지만, 민상은 능력을 사용한 여파로 볼품없이 땅을 튕기며 나가떨어졌다.
팍-!
파악-!
성진은 안타깝게도 민상을 신경 쓸 수 없었다. 그가 떠오른 장소에, 수르트가 도착했으니까. 까만 거인은 아직 불꽃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아직, 아직은 희망이 있다.
푸슛-!
성진의 방적 기관이 최후의 실을 뿜어냈다.
따끔한 통증이 손목을 때렸다.
과열됐다는 징조.
수르트의 몸에 사출된 거미줄은 성진을 더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끄아아아!”
매달려 타고 올라오려는 성진을 수르트의 왼손바닥이 막아서려 했다.
사이오닉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성진은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을 한 채, 장검을 빼내 들었다.
스릉-
수르트는 거대했고, 막아서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신전의 기둥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불타지 않는 거인의 손가락이 그저 기둥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서걱-!
검지와 중지가 성진의 빛나는 검에 볼품없이 잘려나갔다. 그는 그 틈을 파고들어 왼팔을 내달렸다.
“끄아아!”
보랏빛 악마가 거인의 팔을 타고 다가왔다. 검은 거인은 성진을 떨어트려야 했다. 앞으로 조금만 버티면 다시 세상을 불사를 힘이 돌아오는데! 그런 생각에 다른 쪽 팔을 움직였다.
후우웅-!
거인의 오른팔이 성진을 짓뭉개려 다가왔다.
성진의 모든 시야가 가려지며 이제는 거인의 팔이 세상을 그늘지게 했다.
이때 성진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생각은 ‘피할 수 있을까?’ 혹은 ‘잠시 물러난 다음 공격해야 할까?’ 가 아니었다.
‘벨 수 있을까?’
성진의 몸 안에 흐르는 모든 힘이 폭발했다.
폭발하는 힘과 더불어 사이오닉이 남은 힘을 남김없이 뽑아내며 성진의 움직임을 도왔다.
푸하악-!
거인의 팔은 성진을 무너트리지 못하고, 도리어 기괴한 소리와 함께 잘려나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수르트의 목만 치면 되는 상황.
하지만, 시간이 되었다.
고오오오···
어느새, 수르트의 펄스가 돌아오고 있었다.
수르트는 오른팔에 성진의 시야가 제한된 그 찰나에, 돌아오기 시작한 펄스를 입에 모아 불길을 토해내려 했다.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이 시청자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충분히 잘 싸웠다.
아니, 혼자서 수르트를 상대로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성진뿐일 것이다.
다만, 상대가 너무 강했고 상황이 어려웠다.
그저 그뿐이다. 성진이 패배한 이유는.
모두가 포기한 그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성진의 손엔 어느새 끌러진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전투 내내 확실한 타이밍이 나오지 않아 사용하지 못한 소화용 분진 탄이 가득 담긴 상태로.
성진은 그 가방을 수르트의 아가리로 있는 힘을 다해 던져넣었다.
후웅-!
그리고, 가방이 수르트의 아가리에 들어간 순간, 엄청난 펄스의 파동이 발생했다.
콰아아아아앙-!
성진의 장검은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었다.
폭발하는 거인의 목 언저리에 보랏빛 선이 그어졌고, 불타오르는 무언가가 거인의 어깨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