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30화 (30/222)

# 30

30화

- 확실히 비행 몬스터라 상대하기 까다롭긴 하지

- 비행도 비행인데 쟤 만약에 연제구 넘어가면 어쩔 건데?

- 아; 그럼 등불이고 나발이고 다 터지겠네

- ㅇㅇ 시선을 끌든 처치하든 필요한 일인 듯. 연제구에 대공 무기 없잖아 ㅋㅋ

- 정보) 올빼미도 대공 무기 없다.

‘뒷사람 배려’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뒷사람 배려해서 그리핀까지 처치해주시다니, 당신은 도덕책···]

-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 쪼로록··· 탈··· 탈··· 탈···

- 뭐야, 뭐 턴 거야?

성진은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는 하늘을 등지고 걸었다. 그가 무기고에서 가져온 짐이 가볍지 않았고

전투를 이어가며 들고 다니기엔 부담스러웠다.

철컥-

성진은 아까 전 사용했던 소총보다 1.5배가량 큰 소총을 꺼내 들었다. 이 총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탄환 자체에 에너지 밀집도가 차이가 났으므로 대형 몬스터에겐 옳은 선택이었다.

대신에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건 탄환이 하는 역할이었으므로 따로 철갑탄(徹甲彈)을 챙기고 다녀야 해서 범용성은 떨어지는 소총이었다.

견착을 해보고 가늠자 대신 장착한 홀로그램 조준기에 눈을 가져다 대 보았다. 충분했다.

‘이정도면 쓸만해.’

소음기는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 이 총을 사용하는 건 오직 그리핀을 상대하는 순간부터일 테니까.

성진은 얼마 남지 않은 비교적 온전한 건물을 수색했다. 사냥에 앞서 변수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몬스터가 있었다. 성진은 장검을 뽑아 몬스터를 마주칠 때마다 단칼에 베었다.

“키에에엑!”

촥-!

성진은 건물에 몬스터가 있을 때마다 그 건물의 옥상으로 처치한 몬스터를 끌어올렸다. 그리핀이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있는지 성진이 건물의 옥상에 모습을 드러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성진은 아까 전의 전투가 그리핀에게도 타격을 준 것으로 결론짓고 하던 준비를 계속했다.

- 몬스터 잡는 건 그렇다 치고 왜 자꾸 가지고 올라오지?

- 싸 갈라고

- 이모~ 포장이요~

성진이 몬스터를 처치하는 시각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처치한 몬스터를 옥상까지 끌고 올라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청자들이 무의미한 노동에 긴장을 살며시 내려놓을 때, 성진이 이번엔 다른 작업에 착수했다.

푸슈우웃···

성진이 난데없이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또 어딘가로 이동하려고 하는 건지 지켜보다가 자신들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 길?

- 옥상끼리 연결한다고?

- 왜? why?

성진은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을 거미줄로 만들고 있었다. 그 길은 조금 떨어진 옥상과 옥상을 연결지었으며 마치 훌륭하게 지어진 거미집처럼 복잡한 형태로 완성되어갔다. 여기까진 몬스터를 옥상에 올리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진은 손목 어림의 방직기관이 뻐근해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충전되면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마침내 블록이 끝나는 곳의 옥상까지 설치를 완료했고, 건물 밑에 거미줄로 해먹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이때에는 몸에서 생성되는 특수한 유분을 발라 거미줄을 끈적이지 않게 하고 고무줄처럼 탄력 있게 만들었다.

- 설마···

- 큰 그림은 오지는데 이게 성공할까?

- 너무 크게 그려서 캔버스 찢어졌는데;

성진의 계획한 그림을 3인칭으로 확인한 시청자들은 그 그림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하는 데에는 부정적이었다.

지금, 성진은 마지막으로 작업을 마친 장소가 아닌 처음의 옥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성진은 이제 그리핀이 건물을 무너트리게 하는 걸 최대한 피할 생각이다. 그나마 남은 도시의 흔적을 지켜주고자 함이 아니라 건물을 부수면서 접근하는 그리핀은 정작 타격을 받은 듯한 기색이 없었고, 그에 대항하는 성진은 그 과정이 상당히 불편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 전투는 옥상에서만 치를 생각이었다. 그리핀에게는 공중전이겠지만 성진에게는 지상과 다를 바 없었다.

우득··· 우드득···

성진은 장시간 작업에 찌뿌둥해진 몸을 풀었다. 그로서는 예정된 전투 전에 하는 의식 같은 거다. 그 후, 장구류를 확인했다.

먼저 가슴팍에 사선으로 연결된 배터리 수납띠가 단단히 조여있는지 확인했고 한 손으로 재빠르게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고 그냥 전투 중에 배터리가 뻑뻑해서 안 빠지는 낭패를 막기 위함이다. 이어서 소총의 모듈을 점검했고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기이잉-

칙- 칙-

딸칵- 딸칵-

배터리는 아직 연결하지 않았기에 맥빠지는 소리만 들려왔지만, 성진의 귀는 자그마한 이상이라도 잡아낼 수 있었다.

‘문제 없네.’

준비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진은 허리춤의 원통형 물체를 빼내 들었다. 허리춤에는 빼내 든 물체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는데 지금 들고 있는 건 장시간 타오르는 조명탄이었고 허리춤에 남아 있는 건 연막탄이었다.

연막탄의 경우는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바로 그 안에 든 분진을 쏟아낸다는 점이 특이했다. 무기고를 나서자마자 하나를 터트려 실험해보았으니 확실했다.

성진은 조명탄을 꽉 그러쥐었고.

터트렸다.

기이잉-

퍼어어어어엉!

아릿한 향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공중에 붉은 불꽃이 형성되었다. 성진은 그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부산 시내가 그 조명탄으로 환해지는 걸 시청자들과 감상했다.

옥상에 기대어 이제는 한밤중이 된 시내를 보는데, 보기 흉하게 터져나간 건물들과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 차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생활했다는 게 이제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감상은 감상이었고, 성진은 다시 감정을 다잡아 메마르게 만들었다.

소총을 견착하고 홀로그램 조준기로 근방의 하늘을 조준했다.

그리핀이 왔다.

“흐읍··· 흐읍···.”

호흡은 차분하게 들이마시다, 고점에서 멈췄다.

지금!

격발.

기이이이이이이잉-

투투퉁! 투투투투퉁!

철갑탄의 육중한 격발음이 터져 나왔고 벼락이 되어 그리핀에 명중했다.

후웅··· 후웅···

강철의 날개는 철갑탄의 기세에 조금 밀려났지만, 살짝 그을린 흔적과 약간의 경직 시간을 제외하면 별 타격이 없어 보였다.

“구룩···.”

친근한 울음소리와 함께 옥상의 모서리가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성진은 거미줄에 둘러싸여 안을 확인할 수 없는 물체를 집어 던졌다.

“구룩···! 구르륵···.”

그리핀이 한 발짝 물러났다. 어스름 녘의 대응과는 천지 차이였다. 낮에 집어 먹은 수류탄이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모양.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네.’

그만, 이런 생각은 전투 중에 할 필요가 없었다. 성진은 미리 만들어 놓은 거미줄을 밟고 맞은편 옥상으로 건너갔다.

“구룩···? 구루욱···.”

그리핀이 거미줄을 쪼았다. 부리가 특수한 소재인 듯 거미줄이 들러붙지 않았다.

찌익-

거미줄이 찢어져 안에 담긴 고블린이 나타났다. 그리핀은 그것을 확인하고 거미줄을 대충 벗겨 고블린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그리곤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후웅···

“구룩···.”

투퉁! 투투퉁!

콰아앙-!

철갑탄으로 저지해 보았지만, 그리핀을 잠시 멈추는 게 고작일 뿐 곧 성진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핀의 앞발이 건물을 완전히 무너트리자 미리 연결해둔 거미줄이 출렁거렸다. 성진은 어렵사리 균형을 잡으며 다음 옥상으로 이동했고 바닥을 굴렀다.

철컥-

소총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미리 준비된 먹이를 집어 던졌다.

“구루욱···!”

부리로 콕 집자 안에서 몬스터의 육향이 퍼져 나왔을 거다. 그리핀은 처음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성진은 먹이를 삼키는 그리핀에게 저항했다. 마치 ‘그것을 먹게 둘 순 없지!’라고 말하는 듯한 사격에 그리핀은 기분이 나빠졌다.

이번에는 그리핀이 허공을 선회해 성진이 예상하지 못한 각도에서 공격을 해왔다.

“큿···.”

촤아악-!

티타늄 재질로 이뤄진 코트의 밑단이 장난처럼 찢겨 나갔다. 그리핀의 발톱과 부리, 어떤 것도 흉기였으며 혹여나 앞발에 얻어맞게 될 땐 몸이 사방팔방으로 터져나가리라.

그래도 다행히 공격의 반동으로 거리를 벌린 성진은 재차 먹이를 집어 던지고 도망쳤다. 한 번쯤은 먹이를 무시하고 성진을 쫓아도 되겠지만 그리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포 레벨부터 새겨진 본능이던가, 혹은 강자의 여유일 것이다. 마치 ‘네까짓 놈은 언제고 집어삼킬 수 있다’ 같은.

성진은 그리핀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도록 철갑탄을 쉴새 없이 퍼부었다.

투투퉁-! 투투투퉁!

“구룩··· 구루욱···.”

콰아아아아앙!

이제 멀쩡한 건물이 블록 내에 몇 개 없었다. 모두 그리핀과 성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무너져가는 건물과 옥상에서의 전투는 멸망해가는 세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열이 넘는 고블린을 잡아먹은 그리핀은 던져오는 물체를 경계하지 않기 시작했다. 다만, 부리로 곧장 찔러보는 행위 자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건지 성진이 고블린을 던질 때마다 공중에서 그대로 쪼아 안에 든 먹이를 확인하고 그대로 삼켰다. 이제는 거미줄을 걷어내는 행위도 생략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성진의 전투 감각이 전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감지했다. 때문에, 날 선 감각은 성진에게 긴장을 놓지 않도록 경고했다.

그리핀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이제는 건물에 내려서지도 않고 건물의 옥상에 그대로 거체를 내리꽂아 성진을 압사시키려고 했다.

투퉁- 투투······

틱! 틱!

소총의 배터리가 다했다. 철갑탄도 다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 소총은 사용할 수 없었다. 성진은 필요가 없어진 소총을 그리핀에게 집어 던지려다 아차 했다. 기껏 누그러트린 경계심인데 그리핀이 지금 자신의 행위로 다시 경계를 시작한다면 곤란했다.

휙-!

성진은 그리핀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소총을 떨어트리고 허리춤의 연막탄을 빼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투척했다. 방향은 성진이 도달해야 하는 마지막 옥상이었다. 연막탄을 핑글핑글 회전하며 날아갔고, 성진은 권총을 빼내 들어 연막탄을 조준하고 탄을 발사했다.

기잉-

탕!

펑!

원래라면 천천히 연막이 흩어져야 하겠지만, 미리 확인했던 대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곧장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연기가 나오는 것이 연막탄이다.

성진은 그곳으로 몸을 날렸고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구룩··· 구룩-!”

슬슬 배가 찼는지, 아니면 이제는 성진을 먹어치우려는지 그리핀이 신경질이 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리핀은 여전히 포식자의 위치에 있었다. 성진의 공격에 따끔하기는 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고 오히려 배를 넉넉히 채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핀은 날개를 펄럭여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날려버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뛰어들었다. 어차피 저 작은 생물은 자신을 해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리핀이 연기가 자욱한 옥상으로 진입하고 성진을 찾으려 했지만,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밑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핀은 그 거대한 날개를 펄럭여 몸을 떠올렸고, 이제 건물 밑으로 내려가 성진을 먹어치우려 했다.

성진이 노린 건 이 순간이었다.

연막을 터트린 건 단순히 눈속임이었고, 옥상에 진입하자마자 곧장 달려서 건물 밑으로 추락했다. 미리 설치해둔 거미줄이 그의 몸을 지탱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어도 그의 스텟이라면 크게 다치진 않았을 수도.

성진은 공중에 해먹 모양으로 설치해둔 거미줄을 잡고 바닥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너무 팽팽히 설치한 건지, 성진이 의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거미줄을 온전히 끌어당기기엔 힘이 부족했다.

그는 축적한 힘을 폭발적인 힘을 발동해 일거에 터트렸고, 거미줄은 마침내 한껏 바닥으로 쳐졌다.

으직··· 으지직···

성진의 근섬유가 비명을 질러댔다. 너무 늦기 전에 그리핀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폭발적인 힘의 지속시간이 끝나거나, 양쪽 건물에 매달린 거미줄 때문에 외벽이 뜯겨 나가기 전에.

마침내, 연기를 뚫고 그리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신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힘을 가진 그리핀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려 했다. 하지만, 성진의 손이 거미줄을 놓은 것이 먼저였다.

쒜에에에엑-!

지금까지 중 가장 높은 건물, 그런데도 지상에서부터 날아오는 물건은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피할까? 피해야 하나? 분명 피했을 것이다. 성진과 그리핀이 처음 조우한 낮이었다면.

하지만 한밤중에 전투를 벌이는 지금, 성진이 계속해서 집어던진 물체는 안전했고, 별문제 없었다. 그리핀은 그것을 생각한 게 아니다. 그저 익숙해졌다. 성진의 노림수에 젖어 들었고, 이제는 각인된 그 행동방식은 날아오는 동그랗고 조금 큰 물체를 부리로 쪼게 했다.

푹-!

부리가 거미줄을 파고들었고 성진은 서둘러 몸을 날렸다. 미리 다른 건물에 연결해둔 거미줄을 붙잡았다. 지금은 이 줄이 성진의 생명선이었다. 다행히 아직 폭발적인 힘의 지속시간이 남아 있었다.

기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전차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밤하늘은 지독한 에너지의 폭발에 물들었다. 성진이 거미줄 새총으로 쏘아낸 물체는 무기고의 폭탄 전부를 방수포로 싸매고 그것을 다시 거미줄로 칭칭 감은 것이다. 그게, 지금 터졌다.

“크으윽······.”

후둑······ 후두둑···

성진의 팔이 끊어질 듯 나풀거렸다. 에너지의 폭풍으로 인해 엄청난 인력이 발생했고, 그 발원지로 모든 것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성진의 다리가 공중으로 떠올랐지만, 그 팔은 악착같이 거미줄을 놓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모든 걸 잡아먹을 것처럼 울부짖던 에너지의 굉음은, 잠시 후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바닥에 쓰러진 성진의 주변에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가죽이 새까맣게 변한 그리핀이었다. 놀랍게도 그 에너지의 폭풍에서도 살아남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명력이었다.

성진은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무래도 어깨가 탈골된 것 같았다.

우득···

반대쪽 손으로 어깨의 뼈를 맞춰준 성진은 그리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핀의 검은 동공은 이제 자신의 가죽과 같은 색이었다. 그리핀은 그 커다란 눈동자에 의문을 담았다.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된 건지, 이런 나약한 생물에게 당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건지.

그리핀은 물기마저 증발해버린 눈으로 그것을 물었다.

“구르윽···.”

스릉-

성진의 장검이 뽑혔다.

휙-!

따아앙-!

에너지에 타버린 가죽이었지만 여전히 장검이 박혀 들지 않았다. 그리핀은 몸을 회복한다면 이런 작은 생물쯤은 기필코 먹어 치워주리라 다짐했다.

그때, 성진의 기세가 일변했다.

후우우우웅···

파직··· 파지직···

작은 파문으로 시작된 펄스의 흐름은 이윽고 성진의 머리칼을 쭈뼛 서 나풀거리게 했고 그의 눈동자를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그리핀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평생을 포식자로 군림했지만, 지금은 사시나무 떨듯 떨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생물은 자신이 처음으로 만난 포식자였으니까. 작은 생물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 미련한 자신은 그것을 이제야 눈치챘고.

성진의 장검이 서서히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마침내 완전히 사이오닉을 머금은 그 검은 위에서 아래로, 무심히 떨어져 내렸다.

푸악-!

양정역을 피로 물들인 신조(神鳥)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새의 눈은 이제는 의문이 아닌,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휙-!

철컥-!

늘 같은 기수식으로 피를 털고 납검한 성진.

그는 언제나 포식자였다.

그의 상태창에 한 줄기 메시지가 올라왔다.

[완벽한 사냥을 하기에 몸이 부적합함을 느낍니다.]

[더 훌륭한 사냥을 위해 몸이 적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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