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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28화 (28/222)

# 28

28화

채팅창은 최별의 언행을 규탄하는 내용으로 한가득했다. 비록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스트리머의 인터넷 방송에서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지만, 종말 이후라는 게임이 현실에서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가졌는지를 생각한다면 시청자들이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됐다.

- 헐; 현금 거래?

- 물론 사례라고만 했지 현금이라고는 안 하긴 했는데;

- 최별씨 무슨무슨 죄로 고발하겠읍니다

- 근데 데자뷰가 계정 거래 못 잡지 않나?

- 정확히는 ‘안’ 잡지. 스칸다 때부터 계정 거래 잡혔다는 얘기 한 번도 못 들어 봤다

‘훅 들어오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방송에서 계정 사겠다니ㅋㅋ]

- 역시 중국섭 패왕ㄷㄷ

- 음탕이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저게 뭐야ㅋ

- 되팔렘들 신나서 12월 6일 기다리겠네

- (혓바닥 휘날리며 달려오는 되팔렘)

- 되팔렘 껴도 한국 종말 유저 전체랑 상대하는 건데 솔직히 큰 차이 없을 듯

- 그래도 팔아서 현금 벌면 개이득이긴 하네

- 근데 돈이 많나? 랭커들은 외제차 타고 다닌다고는 하던데

- 스폰 붙는 거랑 이거저거 해서 알게 모르게 쏠쏠히 벌어감

음탕은 눈알이 핑핑 돌고 현기증까지 닥쳐오는 것 같았다. 평소에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데 방금 최별의 발언에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휴, 심장 튀어나올 뻔했네’라고 말하고 다시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 언니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아, 설마···.’

최별은 게임을 일처럼 한다. 열심히 하는 건 대다수 게이머의 공통분모겠지만 최별은 그게 과하다. 괜히 중국에서 과격플레이로 악명이 높은 게 아니다. 최별의 랭커 크루를 적으로 돌리면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어쩔 때는 진짜 종말이 일인 것처럼 하니까···.’

최별의 의도를 읽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음탕은 본인도 모르고 있던 진행자의 능력을 발휘했다.

“하··· 하하! 그만큼 등불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뭐야, 나 왜 이렇게 능글맞지?’

진행자의 자질인 유들유들한 대처가 튀어나오자 음탕 스스로가 놀랐다. 하지만, 상대는 강적이었다.

“아니요. 저는 진심이에요. 등불에 합류한 IP를 가진 사람 중 넘길 마음이 있으신 분은 붉은 별에 연락을 주세요.”

붉은 별은 최별이 수장으로 있는 크루의 이름이다. 참 노티가 나고 혁명스러운 이름이었지만 다들 그 이름을 들으면 벌벌 떨었다.

음탕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하··· 은니··· 그믄 흐르니까··· 그믄해.”

최별은 무심히 음탕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싫다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승낙이라는 최별식 대화법을 떠올린 음탕은 안도했다. 다행히 더 일을 키울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 나중에 최별이 떠나고 방송에서 ‘그걸 믿어? 별이 언니가 농담한 거야’라던지 대충 둘러대면 다들 넘어가 주리라.

음탕은 멀어지는 정신을 다시 붙잡아 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최별님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먼저, 장안의 화제! 올빼미님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음탕은 채팅창의 내용을 슥- 훑었다. 시청자들이 질문하고 싶어 하는 내용 중 그녀의 질문지와 가장 흡사한 질문을 골랐다.

“올빼미님 정도면 이미 랭커라고 봐도 손색없을 정도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랭킹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요. 랭킹이란 건 스칸다에 익숙한 유저들이 단지 줄 세우기를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시청자들을 위해서 굳이 매긴다면요?”

최별이 어렵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랭커죠. 현재로서는 타 서버의 유저들과 접촉할 수단이 없고 레벨 개념이 없기에 객관적인 지표는 없지만 다들 수긍하실 정도의 업적과 피지컬, 그리고 성장 기대치 높은 능력을 가졌으니까요.”

음탕은 드디어 방송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최별이 자신의 방송을 망치러 온 자객은 아니었던 듯.

- 음탕이 한숨 쉬는 것 봐 ㅋㅋ

- 음탕아! 숨 쉬어!

- 아직도 올빼미 랭커 급은 아니라는 흑우들 없지?

최별은 몇 가지의 질문을 더 받았다. 랭커 중에서도 꽤 유명한 측에 속하는 최별이 해주는 이야기라 그런지 시청자들은 홀린 듯 빠져들었다.

“최별님의 붉은 별은 중국 내에서도 과격 노선을 걷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특별히 그런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특별히 과격하다기보다는 다른 집단이 어설픈 거예요. 종말을 끝내는 게 모든 유저의 목표인 건 아시죠?”

“예! 종말 이후의 유저들은 언젠가 종말을 끝내기 위해 접속하는 거니까요. 마치 스칸다 때처럼요!”

최별은 한 집단의 수장답게 자신들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했다.

“의견의 차이에요. 종말을 어떻게 끝내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론 정답은 없지만, 분명히 더 빨리 세상을 구원할 방법이 있다고 믿거든요.”

- 납-득

- 잘 모르겠지만 최별은 예쁜 게 확실해

- 그건 다 아는 거고 ㅋㅋ 외모에 납득해버림

- 난 최별은 표정 없으니 별로··· 옆에 있는 음탕이가 더 좋다

- 이상성욕이다! 넌 이상해!

- 그 정도야? 제길! 어쩐지 최별보다 음탕이 좋을 리가 없지! 난 쓰레기야!

음탕은 채팅창의 내용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방송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터라 내색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지금도 늘어만 가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물어보고 싶어 하는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네요. 서버가 다른 랭커들, 그리고 크루와의 사이는 어떤가요? 아, 또 길드끼리는요?”

“질문이 총 세 개인가요?”

“아, 말하고 보니 그렇네요.”

“타 서버의 랭커들은 교류가 없으니 잘 몰라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대다수 랭커들도 자신의 서버에서만 활동하니 같을 거예요”

- 어쩐지··· 랭커들 크리스마스에 게임 접속하는 거 보고 짐작했다

- 송하린은 크리스마스 그 주에 쉬었는데?

- 송하린 구독해제 하겠읍니다

“그리고 타 서버의 길드, 크루도 마찬가지예요. 개인끼리도 안 친한데 집단끼리 친할 이유가 없죠. 접촉할 기회가 있다면 모르지만···.”

“만일 접촉하게 된다면?”

“글쎄요? 아마 취하는 노선에 따라 갈릴 것 같네요. 과격파와 온건파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부류들이 있기도 하거든요.”

음탕이 뭔가를 떠올렸는지 최별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아! 이건 제 개인적인 질문인데, 종말 이후에서 길드보다 크루로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이유가 있나요?”

“간단한 이치에요. 종말 이후에서 길드가 가질 수 있는 이점이 많지가 않아요.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거든요. 식량, 길드원들의 수준, 집단의 슬로건. 사람이 많으면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내는 힘이 되지만 종말 이후는 그게 큰 의미가 없어요.”

“어떤···?”

“종말 이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연함, 그리고 집단의 평균적인 능력이에요. 장기 목표는 사실상 거의 이루기가 불가능하고 바로 앞의 단기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나가면서 성장하기 때문이에요. 스칸다와는 다른 점이죠.”

“마치 올빼미님과 같이?”

“예, 올빼미님도 연제구 벙커의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시는 걸 보면 아실 거예요. 바로 앞의 문제도 해결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더 넓은 지역으로 나갈수록 문제는 복잡해지죠. 그게 아니라면 단순하지만, 난이도가 상상 초월이라던가.”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라는 거군요?”

- 음탕이 각성했냐?

- 이젠 정리까지, 서당 개 다 컸누 ㅋㅋ

- (된장을 꺼내며) 이제 충분히 컸구나

최별이 놀란 표정으로 음탕을 바라보다가 음탕이 한 말을 곱씹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라··· 맞아요. 종말을 극복하는 실마리는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이 큰 물길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희망.”

- 띵-언

- 발버둥··· 메모···

음탕이 다시 채팅창을 쳐다보다가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랐다.

“그렇다면! 올빼미님도 크루에 포섭하려는 움직임도 꽤 있었을 것 같은데 이건 어떤가요?”

“타 서버의 크루들을 정확히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대다수가 움직였을 거예요.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죠. 저희도 실패했으니까.”

“붉은 별도 포섭에 나섰었나 보네요! 근데, 왜 실패했나요? 조건이 별로였나?”

“아뇨,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소용이 없었으니 그건 아닐 거예요. 캡슐 자체가 프라이빗 모드라 유선 전화는 불통, 쪽지는 모조리 무시당했고 심지어 방송 채팅도······ 하아···.”

- 그만! 그만 말해! 나까지 슬퍼지잖아!

- 최별: 올빼미··· 너란 남자···

음탕은 최별이 한숨 쉬자 당황했다. 방송 중 처음으로 나타난 감정표현이었기 때문에. 음탕은 서둘러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최별은 그때마다 훌륭한 답변을 내놓았다. 현실에서 그녀의 위치가 그런 자신감을 만들어낸 건지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고 숨김도 없었다. 시청자들은 이 둘의 캐미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 오늘 방송 극 혜자···

- 오감 만족! 음탕이 캡슐 진화···

음탕은 방송 시간이 꽤 지났다는 걸 눈치챘다. 최별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더는 그녀의 시간을 뺏을 수 없었다. 핵심 질문 한두 개만 하고 방송을 마칠 시간이다.

“슬슬 끝날 시간이 되어가는데 앞으로 붉은 별의 최별님은 어떤 활동을 하실 생각인가요?”

“당분간 중국 서버 활동은 없을 예정이에요.”

“예? 그, 그런···.”

“이번 한국 서버의 등불로 합류하는 게 최우선 목표에요. 그러기 위해선 아까 말했듯이 한국인 IP를 가지신 분 중 저한테 따로 연락을···.”

“언니! 그만해!”

음탕의 당황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최별의 발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 음탕도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 능숙하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질문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12월 6일, 등불의 합류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요?”

“결과까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아마 많은 것들이 바뀔 거에요.”

“어째서 그렇게 예상하시나요?”

“제가 아는 크루와 랭커들도 등불에 합류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 안 가릴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와; 예상하긴 했는데’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방송에서 오피셜로 말해도 되는 거야? ㅋㅋㅋ]

- 대- 최-별!

- 진심 계속 나와줘 ㅠㅠ

- 오늘 방송 개꿀잼이네 ㅋㅋ 뭔 대답에 선이 없어. 다 얘기해 ㅋㅋ

그 후로, 음탕은 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코너를 마무리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다소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새 컨텐츠는 대성공인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본 게임에 들어가 볼까요? 제 종말 플레이로···.”

‘조심하랬지 얘들아’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음탕이 너네 때문에 기강 잡잖아;]

- (주섬주섬) 마우스 피스가 어딨더라···

- 어흑 마이깟!

- 직쏘: 자, 게임을 시작하자. 넌 음탕을 소중히 하지 않았지.

- 마, 말하겠습니다! 부디 게임만은!

****

성진이 길었던 잠에서 깨어났다. 사람들은 등불에 대한 소식으로 열광했고 그건 다시 올빼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제 다가올 12월 6일은 한국의 종말 이후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 오빠··· 기적이래··· 기적이 일어났대!

성진의 머릿속은 신아름으로 다시금 가득 찼다. 그녀가 담당의와 면담하고 돌아와서는 성진의 손을 잡고 또 울었다. 기쁘든 슬프든 잘 우는 게 그녀다.

- 오빠가 하는 캡슐 재활훈련이 차도를 보이는 것 같대. 이대로만 가면 감각이 점점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 하··· 하하···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오빠? 막 오빠 너무 보고 싶어서 말도 안 되는 꿈 꾸나?

‘종말 이후를 플레이하면서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

성진은 확신했다. 적응의 경지가 상승해서인지 시나리오가 진행되었기 때문인지, 그저 캡슐에서의 활동이 자극을 만들어낸 건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성진의 몸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손가락 끝이 조금 움직일 뿐이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신아름이다. 만약 자신이 벌떡 일어나 그녀를 꽉 껴안아 준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성진은 꼭 그러리라 다짐했다.

- 오빠, 얼른 일어나서 같이 걷자. 못 했던 거 실컷 하자, 우리···.

신아름과 호숫가를 걷는 자신을 상상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저씨.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노부부.

전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하지 않을지. 자신은 그 미래를 꼭 보고 싶었다.

‘종말을 끝낸다.’

감흥 없던 그의 삶에 강렬한 목표가 생겨났다.

연제구 벙커에서 올빼미가 깨어났고, 그의 방송이 켜졌다. 순식간에 댐이 붕괴하듯 엄청난 수의 시청자가 유입되었다.

- 올 하!

- 대황상킹갓 올빼미니무ㅠㅠ 기다렸다고!

- 그도 삶이 있어···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지!

- 사 랑 해 요 올 빼 미! 우 윳 빛 깔 올 빼 미!

- 내가 여캠 말고 남캠에 몸이 달아오를 줄이야; 덕분에 12월 6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될 거 아는데’님이 5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솔직히 한국 유저 몇백만 되는 거 아는데··· 내가 안 될 거 아는데···]

- 아는데 데이트 약속을 취소했다

- 아는데 해외 여행을 미뤘다

- 아는데 외국섭에 있는 내 캐릭이 괜히 꼴 보기 싫어진다

성진은 일어나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별이 길면 아쉬움도 큰 법이다. 떠날 사람이 벙커에 뭉개고 있어 봐야 빈축만 사겠지. 큰 여행용 백팩에 식량을 챙기고 에너지 배터리를 넉넉히 넣었다. 소총은 괜히 짐만 되니 권총을 한 정 챙겼고, 다른 물품은 일절 챙기지 않았다.

성진은 긴 코트에 허리춤에 장검을 차고 등에는 백팩을 멨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성진은 가방을 챙겨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 펼쳐진 광경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연제구 지상 벙커의 모든 사람이. 대표로 보이는 정병철이 성진에게 물어왔다.

“가려는 건가?”

“떠나야 합니다.”

“그래···. 그래도 이 빌어먹을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아직 망하진 않았나 보네.”

“······.”

연우가 달려와서 성진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삼초온··· 흑··· 안 가면 안 돼?”

“연우야···. 삼촌 가야 해. 삼촌 기다리는 사람 있어.”

“흑··· 또 올 거야?”

“그래, 연우 씩씩하게 있으면 또 올게.”

“몇 밤 자면 올 거야?”

아이다운 생각이다. 몇 밤이라···

“해 쨍쨍 뜨는 날, 그때 만나자.”

“약속!”

“그래, 약속.”

서민혁이 아직도 눈물바다인 연우를 데려갔다. 성진은 곧,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성진은 영문을 몰랐으나 이유가 곧 밝혀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빼미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여기 있는 모두 다 죽었을 거예요···.”

“우리 남편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흑···.”

“평생에 걸쳐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 세상에 나올 저희 아이에게도 당신의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성진은 어설픈 미소를 짓고, 그들을 물리쳤다. 정병철이 떠나는 성진에게 따라와 붙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가?”

“부산역으로 갈 생각입니다.”

“통합 쉘터로 가겠군···. 쉽지 않을 텐데···.”

“해 봐야죠.”

“아, 이건 별거 아닐 수도 있긴 한데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야.”

“무슨···?”

“지상 벙커에 피투성이가 된 과학자 한 명이 온 적이 있었어.”

“과학자요?”

성진은 정병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그래,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부산역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죽기 전까지 그 말만 하다가 죽었어. 피를 너무 많이 흘렸거든.”

“부산역으로 가라···.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글쎄? 음··· 아! 용광로 어쩌고 하던데 반은 횡설수설이라 그냥 넘겼어.”

‘용광로?’

성진은 크게 도움 되는 정보는 아니라 여기고 걸음을 떼었다. 정병철이 물었다.

“남겨진 사람들이 걱정이야. 등불을 두려워하고 있어. 사실 나도 그래.”

“알 수 없는 걸 두려워하는 건 다들 같죠.”

“우리가 깨어날 그들을 믿어야 할까?”

성진은 대답을 고민했다. 자신이 믿으라고 하면 이들은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건 남은 사람들이 선택해야 합니다.”

정병철이 피식 웃었다. 성진의 말은 선택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니 떠날 자신의 말 따위를 믿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 그게 맞지. 나도 참···.”

“그럼.”

“그래··· 잘가.”

성진은 사람들의 아쉬움 섞인 눈초리를 뒤로하고 연제구 벙커를 나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진은 연제구의 많은 것을 바꿨다. 그것이면 족했다.

성진은 출발 전 챙겼던 지도를 떠올렸다. 연제구에서 서면역을 지나 남쪽으로 곧장 내려가면 부산역이다. 물론 그렇게 짧은 길은 아니었지만, 가려고 하면 못 갈 것도 없었다.

‘문제는 몬스터야.’

성진은 웨이브로 인해 잠시 공백이 생긴 연제구를 걸어 양정역 인근에 도착했다. 아마 이곳에도 벙커는 있을 것이다. 잠시 들렸다 가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마침 표지판이 보였다.

- 양정역 간이 쉘터

역마다 쉘터가 있는 설정인 건지, 양정역도 쉘터가 있었다. 성진은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다행히 별문제 없이 간이 쉘터에 도달했을 때, 성진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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