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19화
어두컴컴한 연제구의 도로가 차량들의 불빛으로 밝혀졌다. 엔진의 소음이 최성진의 귓가로 들려왔다. 성진은 건물의 옥상에서 차량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농담처럼 다가오는 시대다. 어쩌면 성진에게는 이 광경이 그리울지도 몰랐다. 종말 이후를 플레이하면서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에서도 밖에 나간 지가 오래였으니.
- 도로는 역시 한국도로지
- 기분 이상해;; 막 찌릿찌릿···
- 오늘 뽕 치사량 확정
색적 레이더를 한 명은 지켜야 했다. 차량이 지하주차장에 진입 불가능해서 정문 앞에 대놓고 마트를 올라오는 군인들. 차량에 경계 인원을 남겨두고 온 그들은 성진 일행과 상층에서 만났다.
“어떻게 된 일이지?”
성진 일행을 마주한 한중령이 가장 먼저 한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이라···.’
박일병이 나서 중령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트에 도달하기 전에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으나 올빼미가 혼자 물리쳤고, 2층과 3층을 정리하면서 수십의 오크를 수색조 4명이 해치웠으며, 마지막으로 지하의 선봉장을 올빼미가 구축했다고.
‘이게 무슨···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한중령은 농담처럼 들려오는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 잘했네.’ 또는 ‘그런가?’ 등 어떤 말을 해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테니까. 저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마트에 적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 학식이 자기 실수한 거 쏙 빼놓고 보고하는 거 보소 ㅋㅋㅋ
- 그래도 올빼미 까 내리지 않는 게 어디임?
- ㅇㅈ 본인 실수 감추는 건 논외로 올빼미 광신도 한 명 생깄네 ㅋ
적당한 말을 골라 대화를 마무리 짓고 마트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2층과 3층에 널려 있는 오크들을 본 군인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 이걸 다 해치웠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네 명이서!”
“가능할 리가 없을 텐데···”
더 끔찍한 광경은 정말 박학식 일병의 말대로 지하에 오크 선봉장이 쓰러져 있던 광경이었다. 그 덩치도 덩치거니와 사체만으로도 이 몬스터가 생전에 얼마나 강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이걸 혼자서?’
모든 군인의 머리에 올빼미라는 이름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한중령의 머리엔 이들보다 더한 혼란이 찾아왔다.
‘올빼미··· 강할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헌터.
한중령은 그들의 힘을 알고 있다. 보고 듣고 만나며 자랐으니까. 종말 이전에는 자신도 언젠가 각성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꿈에 부풀어 살았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철없을 적 얘기이다.
‘그런데··· 이건.’
자신이 어렸을 적 꿈꿨던 영웅이다.
강한 무력과 위험에 한발 먼저 다가서는 용기. 어쩔 수 없다며 민중의 삶을 외면하는 자신과는 상반된 사내.
어쩐지 기분이 꺼림칙해져 한중령은 병력들에게 서둘러 지시했다.
“물자를 실어라! 지하 1층의 식료품부터 시작한다!”
지시를 내리는 한중령의 입매는 비틀려 있었다. 올빼미가 벙커에 온 후 처음으로 생긴 표정 변화다.
‘왜’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칭찬 안 해주는 건데! 빨리 칭찬해!]
- 한중령한테 칭찬받아서 뭐하게요ㅋㅋ
- 나는 저런 아저씨 취향이란 말이야···
- 위험한 녀석이다! 가까이 가지 마라!
- 아조씨랑 비밀친구 할래?
- 아저씨는 배 나왔잖아요!
- 칙쇼···! 들킨 건가?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으로 수송 차량을 가득 채운 것으로도 부족했다. 한차례 벙커에 들러 물자를 내려놓고 다시 마트를 찾았고 근방의 식자재 마트에도 들러 식료품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미쳤어···.”
“이게 하룻밤 새 우리가 한 일이라니···.”
정확히는 4인의 수색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중에서도 올빼미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벙커에서는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밤늦게 나선 군인들이 차량을 끌고 나간 것도 모자라 새벽이 지나서야 아침 해를 등에 걸고 나타났다. 벙커에서도 차량이 벙커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엄마! 군인 아저씨들 왜 저러는 거야?”
“엄마도 몰라···.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히잉···.”
수척해진 아이와 엄마의 얼굴은 그간의 고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아이의 엄마가 군인들에게 반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차량이 벙커로 진입했다.
한중령은 우선으로 방한용품들을 분류한 다음, 민간인들에게 지급했다. 옷들은 내복과 핫팩, 귀마개, 장갑 등 난방이 열악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물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나부터!”
“안돼! 우리 애가 밤마다 덜덜 떤다고!”
“그거야 당신 사정이고!”
“뭐라고?”
물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도 벌어질 뻔했지만, 물자가 워낙 많았고 그것을 몇 차례 설명하자 사람들은 차례를 지켜 배급받았다.
“이, 이게 다 뭔 일이래?”
“그러니까···. 간밤에 귀신이 들었나?”
“군인들이 나섰다잖아! 새벽 내내 잠 한숨 못 자고 옮겼다는데?”
“허이고··· 이제야?”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뭔 죄야? 다 그 장의원인지 뭔지랑 한중령인가 뭔가 그 사람 때문이지.”
“그래도 장하긴 하네. 이 고생한 게 다 우리 때문이라는 거 아니야?”
“그럼! 잘한 건 잘한 거지! 괜히 흰소리하지 말고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줄이 꽤 길어져서 혼란이 가중됐다. 군인들은 아동과 성인을 분류했고 다시 여성과 남성을 분류했다. 그러자 1줄이었던 줄이 4줄로 늘어났고 배급이 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아저씨······ 고마워요···.”
“뭘··· 따뜻해?”
“응! 대따시 따뜻해!”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귀마개와 장갑을 받은 것도 모자라 펑퍼짐한 외투까지, 여자아이는 7살이나 됐을까. 아이는 추위에 익숙해져 콧물이 얼어붙은 것도 모르고 히죽 웃었다.
군인들은 그 모습에 괜히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가에 물이 차올랐다.
“다음! 배급받지 못하신 분!”
명단까지 적어서 체계적으로 분류하자, 1차 배급이 끝났다. 한 차례 배급이 끝났음에도 방한용품과 옷가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배고픔과 추위.
단순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다. 하지만 추위가 덜해지자 사람들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런데, 아직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식량 배급을 실시하겠다! 가구별로 대표자가 나와서 받아가라!”
“식량 배급이라고? 아직 시간이 안 되었는데?”
“모인 김에 지금 하려고 하는 건가?”
웅성대는 사람들.
지금 하는 식량 배급은 보존이 어려워 곧 맛이 갈 수도 있는 식량들을 우선 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양이 꽤 되었고,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한 식품은 지금 불출하는 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이 쌓여있었다.
“음, 음식이야······ 감자가 아니잖아?”
“이게 얼마 만이야?”
“세상에··· 내가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게 될 줄이야.”
한중령에게 병사 한 명이 다가왔다.
“저··· 중령님. 오늘 가져온 물건 중에 주류도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한중령은 주류가 보관도 어렵고 식량난 해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마 수송 차량의 빈자리를 메꾸고자 병사들이 눈치껏 가져온 모양이었다.
‘하여간···.’
“가구별로 성인 수에 따라 배급해라.”
“예! 알겠습니다!”
꽝꽝 언 물건들은 배급하는 병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이 벙커 내에 존재하는 해동기에 넣고 녹여냈다. 전자레인지와는 다르게 순수하게 녹여주기만 하는 물건이었다. 게이트 연구로 파생된 물건이었다.
아무튼, 술까지 나눠준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 대신 함박웃음이 걸렸다.
“푸하하하! 그것 보라고! 군인들이 뭐? 제 잇속만 챙겨?”
“그런 얘기 하는 놈 있으면 내가 흠씬 두들겨주지!”
“고생했네! 고생했어!”
배급을 받아가는 민간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90도 인사를 해댔다. 군인들은 손사래를 치며 하나같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물건을 날랐을 뿐입니다. 진짜 고생하신 분은 저희가 아니라 저 올빼미라는 분입니다.”
“올빼미? 어제 벙커에 온 사람?”
“예, 이 일의 8할 이상은 그분께서 해내신 일입니다. 감사는 그분께 드려야지요.”
그제야 사람들은 저 한편에서 서민혁, 서연우 부녀와 재회하고 있는 성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을 덥석- 잡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가 하면,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자들까지. 성진은 그때마다 똑같이 얘기했다.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닙니다’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뭐 선봉장쯤이야 이쑤시개로도 해치우죠. 아, 오크요? 글쎄요? 그런 게 있었던가?]
- 킹거 아닙니다. 전 올빼미라구요?
- 산책 삼아 나갔다 왔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해서요
- 이게 별거 아니면 대체 별거인 일은 무엇인가
- 내가 한 일도 아닌데 괜히 우쭐하게 돼ㅋㅋ
- 님 제정신? 일단 나는 제정신 아님, 나도 그럼 ㅋㅋ
- 지금 내 어깨 양쪽 한라산 백두산임 개높아졌엌ㅋㅋ
연우도 배급을 받아서인지 모습이 꽤나 달라져 있었다. 두툼한 옷에 귀마개에 털모자, 벙어리 장갑에 어그부츠까지. 풀세트로 장착한 모습이 조그마한 다람쥐 같았다. 그 와중에도 서민혁의 보급품도 타온 것을 본 시청자들이 아우성쳤다.
‘이거 후원 이상함’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연우한테는 후원 어떻게 하죠? 왜 안 되지?]
- ㅋㅋㅋ 나도 아까 시도해봤는데 올빼미한테 보내짐
- 이런 것 좀 고쳐줘라. 미로샛기들아!
- 어휴··· 밀수들 연우 삼촌 되려고 발악하는 거 봐ㅋ
연우가 미트볼 통조림을 낑낑대며 따고 있어 성진이 물었다.
“연우야, 아저씨가 따줄까?”
“응! 아저씨가 따줘!”
성진은 어렵지 않게 통조림 뚜껑을 열었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잡아 뜯었는데도 깔끔하게 뜯어졌다.
“와아아······.”
“뭘 이런 걸로 놀래.”
“연우가 삼촌이라고 해도 돼?”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돼.”
“삼초온···.”
맨손으로 통조림 뚜껑을 따는 게 충격적인 장기였던 듯 연우가 성진을 부르는 호칭이 삼촌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통조림을 든 성진의 한쪽 다리에 풀썩 안기기까지.
‘오늘부터’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통조림 철사장 연마한다. 12성 대성까지 안 멈춘다]
- 나도 폐관수련 들어간다
- 삼촌 타이틀 퀘스트가 너무 어려워···
- 연우가 애는 애인가 봐···
연우가 통조림에 든 미트볼을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했다.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연우에게 성진이 물었다.
“연우야, 맛있어?”
“응! 대따 대따 맛있어!”
“삼촌도 한입 줄래?”
“히이잉···.”
연우는 고민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미트볼과 성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미트볼을 내밀었다.
“자···.”
“농담이야. 연우 많이 먹어. 삼촌 배불러.”
“정말? 정말 그래도 돼?”
“그래.”
‘27세 황선우’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귀여움에 당해 여기 잠들다]
- 조문 왔습니다
- X를 눌러 조의를 표하십시오
- (대충 숨을 못 쉬겠다는 내용)
- 심장이··· 크윽······
- 숨! 숨을 쉬세요!
- 미트볼 다 가져와!
- 속보) 전국에 심쿵사 사망자 속출. 오늘만 2000명
‘키야···’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올빼미다. 오늘도 국뽕이 차오르는구만]
- 양들의 목자는 갓직히 장의원 말고 올빼미 아니냐?
- 주모! 샤따 내려!
- 주모: 이 자식들 또 왔네
- 펄-럭! 앞으로 올빼미 길만 걷겠습니다
- 맹금단을 국회로!
****
짝-!
씩씩거리는 장의원.
한중령은 얻어맞은 뺨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딱히 아프진 않았다.
그만큼 나이 든 사람의 손찌검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일 처리를 이딴 식으로 해? 왜 내게 보고하지 않았어?”
“일단 사태를 해결한 후에 보고드리려 했습니다.”
“네가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았구나!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죄송합니다.”
한중령은 죄송합니다가 이제는 입에 배어버렸다. 장의원이 한중령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가 때렸던 그 뺨이다.
“성오야··· 우리 성오 섭섭한 거 있었니?”
“아닙니다.”
“지배자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돼.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잘못하면 아랫것들이 기어올라요. 알아들어?”
“명심하겠습니다.”
푸후우······
벙커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는 장의원. 다른 흡연자들이 없어서는 아니었고 담배가 귀했으며 그 귀한 담배를 장의원이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장의원이 담배 연기를 한중령에게 뿜었다. 한중령은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 대충 알아들었으면 가 봐.”
“저, 의원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 해봐.”
한중령은 올빼미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의 강함이나 영웅적인 면모. 또한, 민간인들이 그에게 의지할 우려도.
장의원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담배연기를 재차 뿜어냈다.
“성오야. 네가 그래서 멀었다는 거야.”
“네? 무슨···.”
“기껏해야 떠돌이인 자식이다. 잠깐이야 인망 좀 얻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쿠데타라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아닙니다.”
“그래, 모든 건 결과야. 결과로 이어져야지 의미가 있는 거야. 그렇지 못하면 올빼미가 한 일은 결국 내가 지시한 게 된다고.”
장의원은 사갈 같은 자다.
한중령은 여태껏 이런 자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왔다. 이제는 한중령도 장의원의 속을 잘 모르겠다.
너무 새까마니까 속이 보이지 않는다.
“뭐, 그래도 수를 써두는 게 좋겠지. 올빼미랑 자리 한 번 만들어.”
“알겠습니다. 조건은···.”
“조건? 여자나 지위 정도면 제깟 놈이 벌벌 기지 않고 배기겠어? 시답잖은 소리하기 싫으니 나가봐.”
“예.”
한중령의 입 밖으로 ‘그는 그런 걸 바랄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한중령은 이 정체 모를 불안감을 떨쳐내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