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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0화 (10/222)

# 10

10화

“크와아아아아아아!”

거미줄 밑으로 추락하면 죽는다. 골절상을 당해 죽건 오우거에게 잡아먹혀 죽건 떨어진 후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최성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안 떨어질 거니까. 그럼 된 거다.

‘이 위치··· 기억이 난다.’

거미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남자는 오우거를 내려다보는 게 낯설지가 않았다. 한 번 이랬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게이트 폭주로 오우거가 도심에 출몰했을 때였던가. 정확히는 근처에 임무를 나가 있던 대원들과 함께 초동조치로 투입되었을 때다. 하지만, 오우거의 제압은 프로 헌터들이 도맡아 했고 최성진과 대원들은 주변 경계에 힘썼다.

‘다시 또 비슷한 경험을 할 줄이야···.’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우거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의 근처 건물에서 제압과정을 지켜봤다. 최성진은 그 과정에서 오우거의 이상한 움직임을 눈치챘다. 단순히 방어 행동이라기엔 기묘했던 행동. 그 행동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헌터도 아닌 놈이 상위 몬스터의 뭘 아냐며 괄시만 받았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네.’

똑같은 시야, 똑같은 몬스터. 절체절명의 상황. 3박자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져서 전장이 형성되었다. 이제 최성진은 세계 최초로 솔로 레이드에 도전하게 된다.

‘이 방송 뭔가요?’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시청자 많길래 들어와 봤어요. 뭔가요?]

- 잘하셨습니다. 아마 당신이 오늘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일 겁니다.

- 1. 조용히 착석한다 2. 본다 3. 감탄한다

- 팝콘 팔아요~ 쥐포도 있어요~

- 아저씨! 여기 쥐포 하나 주세요!

- 네~ 가여~ 30000원입니다

- 존나 비싸누

- 경기 은제 시작하냐

- 모두 착―석

‘선수 입장합니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청코너~ 종린이 올빼미-! 그에 맞서는 상대! 홍코너~]

- 프로슿흐 오우거! 배부른 상태지!

- 나 1인칭 시점으로 보는데 잘하는 짓인가여?

- ㅁㅊ 그거 올빼미 곤죽되면 님도 트라우마 생길 덧

- 나는 그래도 1인칭으로 볼래. 스릴 있자너~

- 오줌 지릴까 봐 3인칭 돌립니다

‘와 재밌겠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내 방송 끄고 봐야지]

- 방금 끔? 님 강진우?

- ㅇㅇ 맞음

- 왜 끔; 나 지금 님 방송 보고 있는데

- 구라ㄴ 시청자 쫙 빠졌는데; 어차피 내 방송 안 볼 거잖아요. 특히 지금은

- 쳇··· 이래서 눈치 빠른 스트리머는 싫다니까···

- 죽을래? 너 어디 사냐? 지금 간다

거미줄이 사방으로 뻗쳐있어 최성진은 마치 공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최성진은 짧게 심호흡한 후에, 거미줄 밑으로 뛰어내렸다.

“크와아아악!”

오우거가 ‘너 마침 잘 걸렸다’라고 하는 듯이 우악스럽게 손을 뻗쳐왔다. 답지 않게 날랜 몸놀림이라 모두가 최성진의 고전을 예상했다. 아마 피떡이 되거나 붙잡혀 바로 입속으로 들어가리라 예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공중에선 몸을 빼기 어려워.’

당연한 진리를 독백한 최성진은 간단하게 상황을 타개했다. 애초에 최성진이 뛰어든 위치엔 얇은 거미줄이 걸려있었고 최성진은 마치 기계체조를 하듯이 철봉 매달리는 자세를 한번 취하고 빙글 돌아 점프했다. 오우거의 두꺼운 손이 아슬아슬하게 최성진을 스쳤다.

복싱도 펀치를 날린 후가 가장 취약한 법, 오우거도 그 진리를 피해갈 순 없다. 최성진이 공중에서 장검을 뽑아 들고 오우거의 쇄골을 찌르려는 찰나, 오우거가 반대편 손으로 쇄골 부위를 가렸다.

“크, 크워!”

최성진의 번뜩거리는 칼날이 애꿎은 오우거의 손등만 핥았다.

팍!

오우거의 질긴 피부는 최성진의 칼날에 별다른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파육음이 들려오지 않자 최성진은 곧장 거미줄을 사출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와··· 진짜 씹지린다; 이게 종린이 무빙이라고? 이 분 종린이 맞아요?

- ㅋㅋㅋㅋ 아니 즈기요. 이러면 스파이더맨은 미스캐스팅이잖아요. 주연 여깄는데;

- 왕의 남자 생각난다.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 나는 다시 태어나도 광대로 태어나련다! 추억 돋네

- 아재들요 집중이나 하이소. 이걸 아는 나도 아재지만;

- 줄타기 인간문화재 등재 요청합니다. 네? 안 된다구요? 절 · 대 · 등 · 재 · 해

아직은 시청자의 대부분이 올빼미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솔로 레이드라니, 기분이 너무 앞섰다고 여겼다. 최성진은 그들의 생각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재차 움직였다. 일단 움직이고 판단과 생각은 그다음이다.

후웅···

팡!

얄미운 날파리를 잡기 위해 뻗어진 오우거의 팔은 기괴한 굉음을 퍼트렸다. 저 막돼먹은 손아귀에 잡히면 곧장 저승행이다. 최성진이 날다시피 주먹을 피하고 또다시 생각했다.

‘오우거는 두꺼운 가죽과 전율적인 힘으로 설치는 몬스터다··· 근데 그런 오우거가 방어를 한다고?’

최성진이 과거 오우거를 내려다보았을 때도 꼭 저랬다. 다른 헌터들은 지상에서 싸웠지만, 레인저 한 명은 고지대를 점한 채로 싸웠다. 그 레인저가 쇄골 방향으로 화살을 쏘았고 오우거는 막았다. 그 틈에 다른 고랭크 헌터가 오우거의 심장에 검을 꽂는 데 성공해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최성진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오우거를 죽인 헌터보다 오우거의 방어 행동에 주목했다.

‘왜지, 왤까.’

장고할 필요 없다. 이제 알아볼 생각이니까.

어쩌면 두 NPC의 생사는 이 의문의 결과에 달렸을 수도 있다.

최성진의 몸이 또 거미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오우거의 주먹을 피했다.

부웅-!

이번엔 아예 거미줄을 연결해 오우거의 시야 뒤로 회전하듯 줄을 타고 날아갔다. 오우거가 빙그르 도는 사이 최성진이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푸슉!

촤아아악-!

최성진의 검이 그어진 궤적이 붉게 물들었다. 피는, 곧 얼어붙어 밑으로 떨어졌다.

‘빙고!’

“크아아아아아아!”

오우거가 몸을 뒤틀며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최성진은 이미 오우거의 몸에서 벗어난 상황, 저 어설픈 공격에 맞을 리가 없다.

휘리릭-

최성진이 공중에서 핑그르 회전하고는 다시 거미줄에 발을 걸쳤다. 이 승부··· 분명히 해볼 만했다.

- 얘들아! 숨 쉬어! 숨!

- ···약점 발견한 것 같은데? 방금 피 튄 거 맞지?

- 나도 잘못 본 줄 암; 일단 땀은 아님

- 얻어걸린 거 아닌가? 저걸 의도했다고?

- 아는 만큼 보인다. 아만보님아; 그럼 뭐하러 귀찮게 빙글 돌아갔다고 생각 하세여? 몸땡이 개커서 때릴 곳도 억시로 많구만

전투 극초반의 채팅창과는 달리 진행되는 상황에 채팅창은 한동안 숨죽이고 있었다. 그만큼 시청자의 대다수가 몰입하고 실없는 농담도 줄어들 무렵, 오우거의 피가 허공에 튄 것이다. 채팅창은 잠시 채팅이 끊어졌다가 다시 맹렬히 타올랐다.

- Hoxy······ 이거 설마?

- 의외로 약점이 있었구나, 무투파 몬스터라 걍 양철로봇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 쉬운데? 이제 저기만 파면되겠네. 여태 랭커들 괜히 쫄았누ㅋㅋ

- 입종말 들어가시구요~ 저게 쉬워 보임? 약점이 있다 쳐도 오우거 체고 못 봤음? 일반 유저들이 5층 근처의 목표를 어찌 노리쥬? 심지어 다 방한 슈트 입고 싸워야 하는데 ㅋㅋㅋ 랭커들도 못하는 걸 쉽다고 하네;

- 말해봐야 못 알아먹음. 상대하지 마셈, 어그로임

- 진짜 탑골공원 가면 이세돌도 바둑 훈수 듣는다더니; 지금 미로가 딱 그렇네. 훈수 오지누

처음에는 장난이 섞여 있던 채팅창 반응이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 어떻게 한 번도 실수를 안 하지? 로봇인가?

- ㄹㅇ 줄 한번 놓치면 낙사에 손아귀에 걸리면 압사 확정인데 다 피하자너~

- 경외감이 든다. 진짜다. 올빼미는 진짜야

- 아예 클래스가 다른데, 이러다 진짜 혼자 잡아버리는 거 아니야? 아직 프로스트 오우거 처치한 곳 없지?

- 캐나다 섭 밴쿠버 그 쉘터 터지고 뒤늦게 잡긴 함. 근데 수십 명 떼거지로 몰려가서 랭커 몇 명만 살았음. 진짜 캐릭터 삭제펀치 오졌었음ㅋㅋㅋ

- 와;; 지금 그걸 혼자 잡고 있다고?

채팅창의 뜨거운 반응과는 별개로 최성진의 감각은 싸늘하게 식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그편이 실수를 줄이기에 좋았으므로.

‘오랜만이네, 이 감각.’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얼개가 짜였으니 이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하면 될 뿐이다.

최성진이 무릎을 굽히고 총알처럼 오우거에게 날아갔다.

“크와아아악!”

붕-! 붕-!

오우거가 내뻗는 팔마다 최성진은 기상천외한 몸놀림으로 피해냈다. 거미줄에 일부러 부딪히고 몸을 튕겨 날아간다든지, 혹은 원숭이처럼 거미줄 여러 개를 동시에 건너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최성진이 오우거의 팔을 두세 번쯤 피하면 그때마다 오우거에게 한 번의 빈틈이 생겼다. 망설이면 놓치게 되는 빈틈이건만 최성진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빈틈을 찔렀다.

푸슉!

“크와아아아아! 크와악!”

푸슈욱!

“크우아아!”

오우거가 손을 내뻗는 횟수가 처음과는 달리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한 손은 언제고 쇄골 부위를 감싸 쥘 수 있도록 방어적으로 전환한 상태.

오우거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지만, 최성진은 거미줄 위에서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장검을 늘어트리고 흔들림 없는 동공으로 오우거를 바라보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 야; 야ㅑㅑㅑㅑ 다들 살아있냐

- 숨 못 쉬어서 다 뒤짐

- (대충 살아는 있다는 내용)

- ;; ㅈㄴ 멋있다. 내 성 정체성이 깨어나고 있어

- 멈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팝콘 다 쏟았다 시발. 다시 사러 가면 오우거 뒤져있는 거 아니냐?

- 난 초반부에 치킨 삼켰음 뼈있는 치킨인뎈ㅋㅋ

- 헐; 어캄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님?

- 이거 보고 가게. 어차피 병원 가도 의사들도 다 이거 보느라 바쁠 듯;

채팅창의 누군가가 오우거의 습성을 지적했다. 잘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타당한 지적이었다.

‘근데 왜 안 도망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오우거 왜 안 도망감? 쟤 똥멍청이임?]

- 글게; 도망갈 만한데

- ㄴㄴ 이거 현실 기반이자나. 도망가는 오우거 본 적 있음?

- 어라, 글게? 진짜 없네?

- 오우거 세포 레벨부터 이미 도망이라는 선택지가 없는 거임. 살면서 천적을 만나 봤겠어?

- ㅎㄷㄷ 그릉가

- 늙고 병든 오우거짱! 힘을 내!

- 이제 하다 하다 오우거 응원 빌런이 나오넼ㅋㅋ

- 솔까 너무 압도적으로 발리니까 언더독 심리가 발동했자누ㅋㅋ 급 오우거 불쌍해져서 ㅠㅠ

오우거가 숨을 쉴 때마다 흉부가 들썩거렸다. 아직 생명력이 꺼지지 않는 모습이 포식자다웠다. 억울하고 분에 사무친 듯 오우거의 동공 핏줄이 터지고 망막에 피가 맺혔다. 하지만 그럴수록 최성진의 노림수에 걸려들 뿐이었다. 오우거가 이제는 최성진을 시야에서 놓치기만 해도 고개를 푹 숙이고 쇄골 부위를 방어하려 했다.

헛된 노력이었다. 최성진이 또다시 날았다.

푸슉-!

“크으어······.”

푸슉!

“그어어···.”

오우거의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게 그로울링으로도 확인됐다. 앞으로 한 번.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줄을 타고 오우거를 향해 날아간 최성진. 하지만, 오우거도 최우의 발악을 하듯 최성진의 위치로 주먹을 내뻗었다. 모든 생명의 기운이 그 주먹에 깃든 것처럼 대기가 진동했다.

‘위험···! 바람이···.’

급작스럽게 빌딩 사이로 강풍이 불었다. 얇디얇은 줄에 의지한 최성진은 체공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오우거의 주먹에 노출되었다. 이는 명백히 그의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지켜보던 시청자들 대부분이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놀라 벌떡 일어난 순간, 최성진은 바닥으로 거미줄을 사출했다. 그와 동시에 최성진의 몸이 바닥으로 훅 꺼져갔다.

급작스러운 방향 전환.

다행히 오우거의 주먹은 피했지만, 바닥에 부딪혀 몸이 터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성진은 줄을 끊고 새 거미줄을 오우거의 몸에 사출했다. 그네 타듯이 날아오른 최성진이 어느새 오우거의 목 뒤 높이까지 도달했다.

오우거의 목 뒤로 한 줄기 섬광이 번뜩였다.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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