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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5화 (5/222)

# 5

5화

최성진이 집어 든 물건은 공구였다. 대체로 못을 박는 데 쓰이거나 유리창을 깰 때 쓰는 그것. 이 물건은 여의치 않을 땐 누군가의 머리통을 깰 때도 쓰인다.

- 앗··· 아앗!

- 크고 우람한 무기를 얻었다.

- 망치: 용사여! 나를 깨운 것은 네 녀석인가?

- 이제 장르가 액션에서 고어로 바뀌는 겁미까?

- 근데 식칼도 보이는데; 왜 안 식칼?

- 헌팅 나이프 아니면 몬스터한테 제대로 안 박힘여; 박혀도 오래 쓸 게 못 됨. 이런 것도 모름?

- 미안. 나 아까 굴라크에서 석탄 캐던 사람이야

- 동지! 미안하오. 나는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캐던 거 마저 캐시오;

나이프만으로는 다가올 위협에 대응하기 불안한 것도 있고 해머는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해머를 허리춤에 갈무리하고 위급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는 도주로를 확인했다. 마트는 지하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최성진은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선 그곳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전투를 해서 그런가, 조금 피곤하네.’

최성진은 졸음이 쏟아져 와 아까 봐두었던 재고 창고로 들어갔다. 재고 창고 근처에 느껴지는 적은 없으니까 아마 문을 잠그면 훌륭한 잠자리가 되어줄 터였다.

- 님들 그거 암? 튜토리얼 이미 깼음;

- 잠만 자면 깨지자넠ㅋㅋ 튜토리얼 최초 클리어;

- 근데 올빼미님 풀 다이버인가 보네? 고오급캡슐ㄷㄷ

- 몇천 한다던 그거? 와; 재력가인가 보네. 방송은 취미로 하나?

- 스칸다는 이해하는데 종말을? 잠까지 종말에서 잔다고? 와;; 담력 ㅅㅌㅊ인데; 몰입감 쩔겠다

적당한 상자를 모으니 훌륭한 침대가 완성됐다. 비록 꽝꽝 얼어 얼음보다 단단했을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차피 최성진에게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두꺼운 외투까지 챙겨입은 최성진은 이 엄동설한에도 얼른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펄-럭! 한국의 해방은 한국인이 해낸다!

- 솔직히 킹능성 있긴 함; 능력에 피지컬까지 받쳐주자너~

- 아직 튜토리얼임, 설레발 ㄴㄴ해.

- 그래도 나는 오늘 히망을 보았따

- 주모오! 샷따 내려! 나 오늘 취해버릴라니까!

- 어이 김씨! 같이 한잔 하드라고! 크어! 취한다~

최성진의 침대 위에서의 5년. 그는 매일 누워지냈다. 잠은 자고 싶다고 해서 잘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갈증만 더 키워갔을 뿐. 그런 최성진이 5년 만에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 한 번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긴 했지만···.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고된 전투 끝에 잠이 들었다. 5년 동안 찾아온 적 없었던 꿀맛 같은 단잠이었다.

최성진이 잠에 빠진 사이, 그의 방송은 가십거리와 수많은 화제를 몰고 와 실시간으로 순위가 상승했다. 이렇게 가파른 상승 폭은 데자뷰 소유 인터넷 방송 플랫폼 ‘Miro’에서도 처음 보는 지표였다.

***

올빼미의 방송이 화제를 몰고 온 만큼 그의 화제성에 편승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최성진에게 향한 시선들을 자신들에게 흡수하려는 사람들, 하지만 개중에는 오로지 최성진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그의 화제성을 분석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타 스트리머 컨텐츠 중계방송 ‘종말에 안녕하세요’의 진행자, 왕이나라는 여성이 그 별종이었다. 분명 바른 사람은 아니었다. 이 모든 컨텐츠는 철저히 사전 동의 없이 진행되는 거니까. 해적방송계의 거두라고 하면 적당하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즐거운 종말이죠? 네? 배급을 못 받았다고요? 곧 아사한다고요? 즐기자고요! 어차피 종말이니까.”

- ㅗㅜㅑ··· 누나 나 죽어~!

- 오늘 의상 뭔데! 넘나 파였자넠ㅋㅋ

- 또또!(힐끔) 하여튼(힐끔) 남자들이란(힐끔)

- 네, 동족이구연ㅋㅋㅋ

- 오늘 게스트 누구임?

- 알고 온 손님! 입장해주세여! ㅉㅉㅉ!

‘의상이 훌륭해’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오늘도 즐거워. 너무 행복해! 이나 누나 최고!]

왕이나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녀의 컨텐츠가 자극적이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녀의 외모도 분명히 한몫했다.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과감한 의상. 여기에 청순한 얼굴까지 첨가되었으니 그녀의 방송은 그녀의 외모 덕을 톡톡히 보았다.

아무튼, 왕이나가 컨텐츠 고갈로 끙끙댈 무렵. 전문성 있는 사람을 게스트로 초빙해보았더니 반응이 썩 괜찮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주력으로 몰고 갔다.

“하여튼, 성질들도 급하긴! 누가 내 방 시청자 아니랄까 봐. 아무튼, 자! 오늘의 게스트는 랭커 신해랑님이에요! 박수우!”

- 나, 남자라고? 제정신인가?

- 이 시간선은 틀렸어··· 회귀해야 해!

- (꼬무룩)

- 나는 나쁘지 않은걸? 핥핥

“으이그! 하여튼 이쁜 사람들만 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해! 여러분, 신해랑님은 남미 서버 랭커신 거 다들 아시죠?”

- 남미 솔직히 개꿀섭 아닌가; 살만 하드만;

- 응, 그래도 못 살아~

- 조용~ 매너챗 합시다! 어차피 오늘 주제가 더 중요하니까

- 맏따, 맏아! 형제들이여! 오늘은 음심을 다스리시오

“제가 오늘 신해랑님을 초빙한 이유는 다들 짐작하시죠? 바로 방금까지 시청자 수, 급! 상승한 방송 때문!”

- 외쳐! 갓빼미!

- 한국섭의 호프!

- 부산 트롤 요리 잘하는 집~

- 모야모야? 나만 몰라? 나도 끼워 줘!

“이런··· 그 방송을 모르는 분들이 있으셨군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바로 영상부터 보고 오시죠! 저도 사실 처음 보는 거예요!”

- 역시! 이나 누나 준비성은 알아줘야 해!

- 본인이 안 본 게 레전드다

- 그것조차 매력이야··· 커엽다 커여워

왕이나가 연동한 화면에는 올빼미 최성진의 화면이 띄워졌다. 영상은 짤막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처음 능력을 각성하고 무너지는 벙커를 탈출하는 순간, 몸이 적응하며 추위를 견디는 순간, 건물에 진입해서 아이스 트롤들을 구축하고 잠에 빠지는 순간까지.

“와···.”

“흐흠···.”

- 방한 슈트 없이 야외활동 실화임?;;

- 에반디······ 능력 무엇?

- 능력도 짱짱한데 저 무빙보셈ㅋㅋㅋ 인간 아님

- 와··· 그냥 와밖에 안 나온다;;

왕이나는 영상에 등장하는 남자에게 경악했다. 일단 적응이란 능력 자체를 여태 종말 이후를 중계하면서 처음 보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희귀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종종 있었으니까. 문제는 올빼미가 보여준 전투 능력이었다. 심지어 초보인 것 같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데···

‘이건 특종이야! 당분간 독점해서 빨대 좀 꽂아 봐?’

“하, 하하··· 대단하죠? 저도 그렇게 느끼는 데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끼시겠죠. 자! 그럼 신해랑님의 고견을 들어볼까요?”

“······.”

“시, 신해랑님?”

“아! 제가 잠깐 생각하느라, 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잠시 정리 좀 하겠습니다.”

“아··· 예, 그럼 잠시 기다릴게요.”

- 나 같아도 뇌정지 온닼ㅋㅋㅋ

- 영상 안 본 눈 삽니다; 난 이 겜을 왜 하는 거지?

- 갓직히 올빼미가 스킬 빼고 붙으면 랭커들 다 바를 듯?

- 응, 그건 아니야; 뇌절 심하네.

- 뇌절이라고? 저 기본 나이프로 트롤 잡는 게?

“또 싸우신다! 우리 방 시청자들은 착해서 말싸움 같은 거 안 하기로 저랑 약속했잖아요!”

- 누구 약속한 사람?

- 누구 착한 사람?

- 어리둥절행;

“아무튼! 신해랑님? 준비되셨나요?”

“예, 정리 끝났습니다. 올빼미란 분이 어떤 분인지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 ㅇㅇ 여기 다 머리 나빠서 쉽게 말해야 함

- 게스트 양반이 뭘 좀 아시네!

“하나 묻겠습니다. 종말 이후가 왜 인기 있는지 아시는 분? 이렇게 가혹하고 살아남기 힘든 세계관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까요?”

- 갑자기 철학 빌드업? 오바자너;;

- 음··· 희망이 있어서?

- 대체재가 없어서? 솔까말 데자뷰 게임 아니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자넠ㅋ 이름값이 있는 거지;

- ㄴ 그거 아니어도 했을 듯

“네. 많은 의견이 있으신데요. 뭐, 성공하고 나서 성공 요인을 분석한다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해보겠습니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죠.”

- 이 사람 간단한 거 참 좋아하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종말 이후는 딱 이런 게임입니다.”

- 소오름;; 정확한데;

- 나 지금 그러고 있는데? 당신 누구야!?

“비참한 가상세계와 현실의 유리. 그 간극에서 줄타기를 하는 게임입니다. 의도했다면 아주 치밀한 거겠죠. 비참한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이 아름다워 보이겠죠? 그런 게임입니다.”

- 키야ㅏㅏ 설명 정확하고!

- (대충 공감한다는 내용)

“그래서 종말 방송은 랭커 방송이 인기가 많습니다. 난이도가 말도 못 하게 어려우니 간접적으로나마 랭커들이 시원하게 해결해줬으면 하는 거겠죠.”

- ㅇㅈ 나 구독 랭커들만 한가득임;

- 이거 맏따. 학계 공식 입장임니다.

“하지만 한국 유저들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다른 나라 서버가서 랭커 찍어봐야 뭐합니까? 눈 파랗고 머리 노란 사람들만 한가득인데.”

- 흑흑··· 정확하십니다.

- 브라보 ㅉㅉㅉ

- 김치가 그리워!

- 나는 한국 NPC가 보고 시파요ㅠㅠ

“설정상 종말 이후는 게이트 연구자의 실수로 전 세계에 종말이 닥친 겁니다. 문제는 그 게이트 연구 시설이 한국에 있었어요. 그래서 가장 가혹한 환경이 주어진 겁니다.

덕분에 한국서버는 딸피로 시작해서 벙커를 탈출해야 하고 또다시 극한 상황에 내몰려야만 하죠.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과정에서 죽어 나갔습니까?”

- 싹 다~ 에브리~ 올~

- 데자뷰 아니었으면 진작에 소송걸림ㅋㅋㅋ

“근데,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여겼던 한국서버 튜토리얼의 초반부가 뚫린 겁니다. 올빼미가 각성한 적응이라는 능력 덕분에요.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칩시다. 근데 그 올빼미가 능력 같은 거 없어도 몬스터를 때려잡는 무시무시한 피지컬의 소유자라면?”

- 꿀꺽···

- 마, 마사카!

“맞습니다. 그가 혹시나 게이트 시대의 유물인 무공이나 마법, 혹은 신성 유물이라도 얻게 된다면? 제 짐작입니다만 아마도 그 뒤에 한국서버는 튜토리얼 지옥에서 해방될 겁니다.”

- 우아ㅏㅏㅏㅏ 올빼미를 국회로!

- 아아······ 한국에 구원자가 나타났어!

- 한국 사람이라면 갓직히 올빼미 응원합시다.

- 어흑 마이깟; 나 눈물 났자너;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좀 길었나요?”

- 네, 좀;

- 들을 만했음 TMI긴 했지만

- 이나누나! 나와주세요!

굴곡진 몸을 화면에 들이밀며 왕이나가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그녀도 지금까지 신해랑의 설명을 듣고 있느라 잠시 소외됐었다. 하지만 그녀도 엄연히 프로 방송인. 관심이 고팠다.

“호호호! 설명 잘 들으셨나요? 해랑님,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정도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가 초보라는 건 조금 의외인데요. 혹시 올빼미님은 이세계 스칸다의 랭커가 아니었을까요?”

나름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 왕이나였지만 신해랑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아마 아닐 겁니다.”

“에··· 예? 왜요?”

“스칸다의 랭커 중에 한국 사람은 몇 명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제가 다 아는 사람이었고요.”

“그, 그렇군요.”

- 그럼 그냥 천재인 건가?

- 구독하러 가야겠다

- 어차피 이제 곧 깰 시간임ㅋㅋ

왕이나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말 이후에 새로이 등장한 스트리머 올빼미의 화제성을 같이 누려보고자 그녀는 폭탄 선언을 했다.

“흠흠! 제가 올빼미님과 전화 연결을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 헐; 머박사건;

- 이나 누나 무리하는 거 아니야?

- 하긴, 이나 누나 얼굴이면 전화 바로 받아야지

“그럼, 자··· 어디, 올빼미님이 등록해둔 캡슐 번호로 전화를 걸면···.”

[상대방이 수신 거부 상태입니다.]

“으, 응?”

‘이나의 속마음’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나 차인 거니?]

- 응, 누나 차였어;

- 최단시간 실연녀 ㅋㅋㅋ

“왜, 뭐하러 수신 거부를··· 여보세요?”

-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어흑흫

- ···자니?

- 이나야 추하다······ 그만해;

- 추나야 이하다···

***

[‘올빼미’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너 채팅 부탁드립니다.]

최성진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답지 않게 깊은 잠에 빠진 것을 자책했으며 상황이 어떤지를 감지하려 했다. 다행히 당장에 위협은 없어 보였다.

“근데 이건···.”

잠에서 깬 최성진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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