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4화 (4/222)

# 4

4화

‘몬스터의 심장을 먹어도 능력치가 오르는구나.’

최성진이 방금 한 행동은 그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심장을 삼켰고 능력치가 올랐다. 이는 분명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귀중한 스텟을 얻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 아까 누가 몹 잡아서 종말 극복 코인 말하지 않았냐?ㅋㅋ 응 나 좀 태워줘

- ㄴㄷ? ㄴㄷㄴㄷ

- 정보) 올빼미는 3개월 전에 생성한 내 캐릭 보다 스텟이 높아졌다.

- ㅋㅋㅋㅋ놀았음? 스텟 추월을 여기서 당한다고?

- 러시아섭에 만들었다

- 아; ㅈㅅ 혁명동지셨구만. 설마 굴라크에 보내지셨소?

- 오늘도 접속하면 석탄 캐야 한다. 누가 나 좀 구해줘!

- 그래도 거기는 배급은 받잖아옄ㅋㅋㅋㅋ 감자 한 덩이라도 받는 게 어디임ㅋㅋ

‘마! 우리가 남이가!’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내도 심장 한입 도! 군침 도는구마!]

- 응, 먹으면 독이랑 바로 어둠의 듀얼행ㅋㅋ 님 무조건 짐 ㅋㅋㅋ

- 트롤 한 마리 잡고 스텟 얻고 마트까지 점거했다? 으이? 이거 SNS에 올린 사람 없음?

- 트이타에 올렸음. 안 믿어서 방송 링크까지 남겼음

- 수고하셨소 동지. 한국섭의 희망이 이곳에 있소이다!

최성진은 심장을 남김없이 먹은 후에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 피를 묻히고 일어난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한가한 쇼핑이 아니었다. 그는 나이프의 손잡이를 여전히 꽉 움켜쥐고 있었고 쥔 손을 왼손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이다.

‘오늘 밤을 보내려면 마트 내부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해야 해.’

그는 천천히 직원 휴게실과 재고 창고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올빼미 왜 HP부터 안 채움? 이럴 땐 또 초보야;

- 고추 참치부터 까야지! 일단 비비고 생각해!

- 입종말 특) 여기서 고추 참치 뚜껑부터 염

- 이거 맞따, 아직 색적 끝난 거 아님.

- 근데 스텟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건 되게 잘 아네?

- 보니까 올빼미님 이세계 스칸다 할 때 어쎄신 아녔을까?

- ㅇㅈ 랭커들한테 내가 맞아봐서 암. 저 트롤처럼 맞았음ㅋㅋㅋ ···뭐ㅋㅋ 나 안 우는데?

최성진은 몸을 움찔할 뻔했다. 또다시 인기척이 들려왔기 때문. 소음은 재고 창고에서 들려왔다. 걸음걸이가 무겁고 발소리의 간격은 멀지 않았다. 지척이라는 얘기.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다. 두 개였다.

‘아이스 트롤! 두 마리다. 소음으로 판단하면 적어도 20초 내로 마주하겠네.’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최성진은 문 옆에 기대어 생각했다. 암살은 문밖으로 걸어 나오는 첫 번째 트롤에게 시도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 따라 나오는 트롤과의 정면승부는 피할 수 없었다. 전투 계획을 다시 짜야 했다.

‘조병창’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아··· 아쉽네요. 기대해볼 만한 분이었는데]

- ㅇ? 북미섭 랭커 조병창? 사칭임?

- ㅎㅎ 본인입니다. 소란스러워서 놀러 왔어요.

- 팬임! 이번에 쉘터 정상복구한 거 잘 봤음!

- 감사합니다 ㅎㅎ 근데 올빼미님 상황이 많이 안 좋네요. 지금 재고 창고에 트롤이 두 마리나 있어요.

- 와 ㄹㅇ? 난 몰랐어; 갑자기 왜 멈추나 했네.

- 랭커는 랭커네. 사플 지렸구연. 아까 묵직한 울림이 그건가? 근데 진짜 억득하냐;

- 암살 불가능ㅋㅋㅋㅋ 빤스런각 씨게 잡혔자넠ㅋ

- 안돼! 올빼미니므 흐규흐규ㅠㅠ 도망쳐유ㅠㅠ

- ㅌㅌ해도 ㅇㅈ 애써 먹은 마트가 아깝긴 하지만

‘아까 5만원 쏜 놈’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잡으면··· 아니다. 등신 차려 정신아!]

- 현명하자넠ㅋㅋ 등신 차려!

- 또 걸면 집에서 쫓겨날 듯ㅋㅋㅋ

- 혹시라도 잡을까 봐 심각하게 쫄았누ㅋ

- 쫄긴 누가 쫄아? 이건 랭커 앉혀놔도 바로 ㅈㅈ임. 5만원 또 간다!

- 가즈아아ㅏㅏㅏㅏㅏ!

- 근데 이번엔 5만원 지킬 듯? 또 꼴면 레전듴ㅋㅋ

최성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5년이란 시간은 그의 천부적인 전투 감각을 녹슬게 하긴 너무 짧았다. 이미 최성진의 머릿속에선 이 전투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설계가 완료됐다.

- 오, 온다!

- 어린이 여러분~ 헤어질 시간이에요~

- ㅠㅠ 이방 터지면 어디 가냐;

- 왜, 왜 우느냐 제자야?

- 행복한 꿈을 꾸었읍니다··· 하지만 꿈은 꿈인걸요

- 크흑ㅠㅠ 내 몰입 어쩔··· 올빼미니뮤ㅠ

모두가 불가능을 점칠 때, 최성진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전투에서 흥분은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고른 숨을 뱉었고 심장 박동과 발소리가 일치한다는 걸 눈치챘다. 그렇다면 이마저도 이용해야 한다.

‘눈을 감는다. 앞으로 다섯 걸음.’

하나···

둘···

셋···

넷···

다섯···

- 눈은 왜 감음?

- 포기했나 보네;

- 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 나왔다!

“크륵··· 큭큭···.”

아이스 트롤이 코를 큼큼거리며 나오는 게 최성진의 감각에 잡혔다. 앞으로 5초 안에 자신이 바로 옆에 숨어있다는 걸 들키겠지. 하지만 괜찮았다. 최성진은 5초 안에 이들을 죽일 셈이니까.

뒤에 있던 트롤의 몸까지 빠져나오고서야 최성진은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왼손에 역수로 쥔 나이프를 뒤따라 나온 트롤의 목에 정확히 처박았다.

“컥···!”

최성진은 일전에 사냥했던 트롤의 생명력이 질겼음을 떠올렸다. 그의 오른손이 망치라도 된 듯이 박힌 나이프의 자루를 때렸다. 그 여파로 나이프가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푹-!

“꺼······.”

팔에 전해지는 감각은 트롤이 죽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여기까지 2초 안에 일어난 일. 즉,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새다. 앞에 먼저 나섰던 트롤이 느껴지는 바람과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최성진은 나이프를 뽑으며 피도 털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돌리는 트롤의 목을 베었다. 뽑는 동작부터 베는 동작까지가 한 동작.

“끄윽···.”

아마 즉사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겠지. 트롤도 정신을 차리면 반격도 해올 것이고. 때문에, 최성진은 몸을 회전시켜 오른발로 뒤돌아 차기를 했다. 오른발의 뒤꿈치가 트롤의 턱에 적중하자 목의 상처가 벌어지며 폭포수처럼 많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것으로 상황은 끝이었다.

두 트롤의 목숨이 확실하게 끊긴 걸 확인한 최성진은 나이프를 훅하고 털었다.

촤악-!

나이프를 횡으로 털었기 때문에 피가 벽면에 일자로 자국을 남겼다.

- 와

- 와 ㄹㅇ;;

- 캬;;

- ······실화?

- ;;

- 에반데;

- 10초도 안 지남;

- 즈기요··· 다들 왜 아무 말씀이 없으세요?

- 영화냐? 와; 공짜로 액션 영화 봤다;

채팅창은 오히려 트롤이 나타나기 전보다 조용했다. 최성진은 주변에 다른 트롤이 있는지 꼼꼼히 수색했다. 다행히 마트 내부에 몬스터는 트롤 셋이 전부인 걸로 확인됐다.

‘통장이 텅장됐어’님이 5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누가 내 통장에 총 쐈냐; 줄줄 새는데;]

- 다시는 올빼미를 무시하지 마라!ㅋㅋㅋ

-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새자넠ㅋㅋ

- 이거 근데 심각함; 방금 피지컬 본 사람?

- 보기야 봤지. 다들 눈은 있으니까

- 아까 그 조병창님 있지 않았나? 전문가님? 등판해주세요! 오피셜로 듣고 싶어여!

- 조병창! 진실의 방으로!

‘조병창’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마디 하자면 음···]

- 어허! 뜸 들이지 말고! 어차피 다른 사람은 제대로 보지도 못함ㅋㅋㅋ

- 발언핮입이오!

-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이 분은 절대 초보가 아니시고 아마 스칸다에서 이름 대면 알만한 분이었을 겁니다.

- 그거야 저희도 아는디; 어차피 스칸다야 섭종했고 종말 이후로 판단해야쥬;

- 종말 이후로요? 뭐 말할 게 있습니까? 튜토리얼에서 아이스 트롤 둘을 10초 내로 사냥했습니다. 나이프 하나만 가지고요; 제가 여기서 뭘 더 말해야 하죠?

- 그 말은 올빼미가 랭커들보다 쩐다는 거?

- 굳이 비교하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시비는 사양합니다. 그냥 오피셜로 말씀드리죠. 이분 피지컬이나 전투 감각은 랭커랑 동급. 혹은 그 이상입니다. 그렇다고 로지컬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없어요.

채팅창이 난리가 난 것도 모르는 최성진은 아이스 트롤의 시체를 깔끔하게 도려내 심장을 꺼냈다. 이 심장을 먹으면 능력치가 오를 것을 상상하니 심장을 도려내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 엄마! 저 사람 무서워!

- 으아아아아앙! 콧노래 뭐ㅓㅓㅓ야!

- 사탄: 흡-족

- 미래에도 지옥은 굳건합니다! 포 더 헬!

- 와; 근데 이거 두 개 더 먹으면 체력 2 더 오르는 거 아님?

- ㅇㅇ; 피지컬도 쩌는데 이러다 스텟까지 쩔어지면?

- 쉿! 스포 ㄴㄴ해

양손에 올려진 심장을 최성진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추위에 적응하며 몸집이 커지느라 입도 커졌는지 한입에 심장이 반 절씩 없어졌다.

[아이스 트롤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아이스 트롤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 미친ㅋㅋㅋㅋ 진짜 올랐엌ㅋㅋㅋ

- 태그 하나 더 달아야 함. 완전 먹방이네ㅋㅋ

- 쿡방이기도 함ㅋㅋ 트롤도 이제 요릿감이쥬?

- 이거 보고 군침 돌면 정상임? 치킨 시켰음;

- 아뇨; 가까운 병원부터 가보세요;

- 안 받아주네 ㅠㅠ

[아이스 트롤의 심장을 3개 이상 섭취했습니다.]

[몸에 아이스 트롤의 피 냄새가 뱁니다. 아이스 트롤은 당신과 마주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 아이스 트롤님들! 한국은 위험합니다!

- 도망쳐! 어서! 고! 트롤 고!

- 먼데 상태창 아직도 안 끝나냐;

- 트롤 이제 다 뒤졌넠ㅋㅋ

최성진은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독에 내성이 생겼으니 독 때문에 불편한 건 아니었다. 그냥, 몸이 또다시 변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우득··· 우드득···!

[완벽한 사냥을 하기에는 몸이 부적합함을 느낍니다.]

[더 훌륭한 사냥을 위해 몸이 적응합니다.]

[섭취한 아이스 트롤의 유전자를 사용합니다.]

[털이 짧아집니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집니다. 체온이 상승합니다.]

[후각이 발달합니다.]

[체온이 상승함에 따라 다시 팔다리가 길어집니다.]

[혈액이 미약한 독성을 가집니다.]

[약한 재생능력을 가집니다.]

- 와; ㅅㅂ;; 적응 선 넘는데; 완존 진화 아니냐?

- 원래 확장성 좋은 능력들이 꿀임; 이제 암? 적응하려고 진화하는 거지;

- 올빼미 ㅂㅅ로봇된 썰 푼다

- (대충 환불하러 간다는 얘기)

- 응, 돌아올 거 알아. 멀리 안 나가ㅋ

- SSS급 능력 가져도 트롤한테 1초 컷 당할 분들이 말이 많넼ㅋㅋㅋ

- 여러분.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어차피 우리가 적응능력 얻어도 패배에 적응할 뿐입니다ㅎ

- 팩트 밴; 뼈 때리지 마셍;;

최성진은 몸의 변화를 마치고 미뤄뒀던 일들을 시작했다. 피 냄새를 맡고 몬스터가 몰려들 것을 우려해 직원 휴게실에 트롤 시체 세 구를 던져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트를 둘러보았다.

- 아주머니 장 보러 오셨어요? 수박이 아주 달아요!

- 한 마리에 5000원! 종말이라 싸게 파는 겁니다~ 어디 가서 이 가격 주고 못 산다니까?

- 여러분은 지금 종말 이후에서 가장 여유로운 1인을 보고 계십니다.

- 카트 끌고 다니는 거 실화냐곸ㅋㅋㅋㅋ 콧노래 그만하라고!

- 여보! 포인트 당신 거였나?

최성진은 마트의 품목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한 바퀴 돌아본 후 확신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찢어진 옷가지와 속옷들, 그리고 보존식을 보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덤으로 가방까지.

- 초보자 세트 여기서 다 맞췄네;

- 트롤 3마리 30초 컷한게 초보자라니··· 이제 종말 이후도 경력 있는 신입 뽑자넠ㅋㅋ

- 속보) 초보자 취업난 심각. 올빼미에게 설 자리 빼앗겨···

최성진은 부피가 얼마 나가지 않는 육포 종류와 통조림. 열량이 많이 나가는 음식들로 가방을 채웠고 옷을 갈아입었다. 두터운 옷가지에 가방까지 둘러매자 극지 모험가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것도 챙겨가야지.’

최성진이 마지막으로 마트의 구석으로 다가갔다. 이내 멈춰선 공간에는 그가 찾던 물건들이 한가득 있었다.

- 이건;;

- 한국섭 진짜 개통 당하는 거 아니냐?

최성진이 물건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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