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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3화 (3/222)

# 3

3화

최성진은 나이프를 꺼내 역수로 쥐었다. 발걸음 소리는 최소한으로 했고, 불 꺼진 복도를 꿰뚫어 보고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둠에 눈이 적응합니다.]

[어둠 속에서 더 잘 보게 됩니다.]

- 적응이 정말 빠르시네요! 바로 일 시작하셔도 되겠어요!

- 초보인 거 연기였네. 은신 요령부터 다 티 나는데?

- 자세 낮추는 거 보소 ㅋㅋ 딱 봐도 스칸다 고인물

‘식량을 구해야겠어. 어차피 야간에 탐색하는 건 위험하니 오늘 베이스캠프는 이곳으로 해야지.’

베이스캠프는 정해졌으나 안전한지는 알 수 없었다. 최성진은 이 넓은 건물의 모든 집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지하의 마트를 확보하고 오늘 밤 그곳에서 묵는다.’

1층을 샅샅이 뒤졌지만, 위협이 될만한 건 발견되지 않았다. 정문을 안에서 잠그고 지하로 향하는 무빙워크를 살금살금 기어 내려갔다.

- 리얼 털 수북한 게 바야바인줄 알았;;

- 지금 들어온 사람들 올빼미님 원래 일케 안 생김. 남자답게 생김. 저거 변신한 거.

- 주의) 드루이드 아님. 그냥 추워서 난 털임.

- 근데 튜토리얼이 하룻밤 살아남는 거 아닌가? 굳이 식량까지 구해야 하나?

- 초보티 ㄷㄷ;; HP 낮은 상태로 시작하자나여. 뭐라도 먹어야 피가 차지.

- 아 깜빡;;ㅋ 글구 나 초보 아님, 캐나다 섭임.

- Oh! Are you canadian?

- thanks, you’re welcome. ha ha :)

- 뭐라는뎈ㅋㅋㅋ

최성진은 시청자들이 채팅창에 뭐라고 하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스트리밍 첫날인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채팅을 읽으며 소통하는 불편한 행동보다는 작금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빙워크를 다 내려간 최성진은 갑자기 멈춰섰다. 아니, 멈춰서야 했다. 인기척이 들렸으니까.

깡···

푸슈우우우-!

뭔가가 근처에 데구르르 굴러다녔다. 첫소리에서 쇠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기에 보존식 혹은 음료라고 생각했고 터진 소리에 음료가 맞다고 확신했다. 큼큼한 냄새와 알콜향이 나는 게 구르는 물체를 맥주캔으로 짐작했다.

“크륵··· 크르륵···.”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지성을 잃어버리거나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게 아니라면 저런 소리를 낼 리 없다. 아마도, 설명받았던 몬스터가 아닐까?

- 한국섭 튜토리얼 난이도 실화?

- 튜토리얼에서 몬스터 나오기 있음? 빙하기 배경에 저 소리는 아이스 트롤 아닌가?

- 오! 님 좀 고수?

- ㄴㄴ 들어보기만 함

- 후··· 나였으면 아이스 트롤쯤은 벌써 3초 컷했다. 만나서 딱! 어? 푹! 찍! 버러지 컷!

- 아이스 트롤 말고 본인 얘기 셨군요. 인증하라고 할 뻔ㅋ

- ㅇㅇ;; ㅋ 혼자 나이프 하나 들고 아이스 트롤을 어케 잡음ㅋㅋ소드 마스터임?

‘아이스 트롤이라고?’

최성진은 벽면에 달라붙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눈으로 확인했다. 성인 남성보다 큰 2M 정도의 거체가 눈에 들어왔다. 트롤이 인간형인 걸 확인하자 최성진은 안심했다. 입대 후에는 꾸준히 인간만을 상대로 해왔으니까.

‘이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졷댓씁니다. 아이스 트롤 ㄷㄷ;]

- 지금까지 올빼미의 방송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베페네 배너 올라와 주세요.

- 사요나라··· 올빼미쿤

-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 백지 캐릭터론 절대 못 잡음.

- 잡으면 어케 할 꺼?

- 잡으면 5만원 후원ㄱ, 어차피 절대 못 잡음.

- 올빼미님 제가 해냈습니다! 쟤가 후원한대욬ㅋㅋ 근데··· 힘들겠죠?

‘적은 하나인가?’

지하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매장이다.

수백 평의 매장에 아이스 트롤이 하나만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최성진은 바닥을 기어 아이스 트롤의 사각에서 매장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 다른 트롤은 보이지 않는다.

“크륵··· 큭··· 큭···.”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트롤이 코가 예민한 건지,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서 들킬 것이다. 식량을 몰래 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저 트롤을 처치해야 했다.

- 아, 아쉽다 딸피만 아니었으면 몰랐는데

- 뭘 몰라. 만피여도 나이프 하나 쥐고는 에바;

- 고롬고롬. 솔직히 도망치기도 늦은 거 같음

- 한국썹 튜토리얼 클리어하는 사람 나오는 줄 알았는데ㅋㅋ 왜 한국썹만 딸피로 시작하는가!

- 아아···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목표가 정해진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최성진은 이후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곧장 행동으로 들어갔다. 단검을 쥔 손을 오른손으로 바꿨고 근처에 소음을 낼 물건을 골랐다. 마침 적당한 참치 캔을 집었다.

‘고추 참치네? 크기가 달라. 더 큰 거 없나?’

들었던 고추 참치를 눈에 띄는 곳에 내려놓고 마일드 참치를 집어 들었다.

- 방금 본 사람?

- 갓직히 고추 참치는 아깝자너;;

-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인간의 기호는 작용한다.

- 메모··· 고추 참치··· 밥도둑··· 두 그릇 뚝딱···

- 근데 참치 캔 어따 쓸라고 하지?

- 당연히 죽기 전에 꿀맛 식사하려는 거지

- ㅇㅈ 종말도 식후경인데

최성진은 몇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 아이스 트롤의 근처로 접근했다. 아이스 트롤이 계속해서 킁킁대고 얼마 못 가 들킬 게 뻔한 상황. 최성진은 들키기 전에 참치 캔을 투척했다. 투척의 방향은 아이스 트롤의 사각지대였다.

깡! 까강···

빙그르 굴러가는 참치 캔 소리가 매장에 선명하게 울렸다. 최성진은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방금까지 아이스 트롤이 있던 위치로 접근했다. 그 속도는 빨랐지만,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크륵··· 크르륵!”

상황은 이렇다. 트롤은 참치 캔에 접근해야 했고 트롤이 소리의 근원지에 다다르는 속도보다 최성진이 트롤의 배후에 접근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최성진은 트롤이 참치 캔을 드는 순간을 기다렸다. 트롤의 고개가 내려가는 순간, 최성진의 오른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서걱-!

주륵···

“컥··· 커억···”

최성진의 단검이 트롤의 목울대 부분을 정확하게 잘랐다. 인간형 몬스터라는 말은 인간과 급소의 위치가 유사하다는 것이고 목은 인간의 훌륭한 급소였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노린 점은 지원을 요청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소리를 지르면 건물 내의 다른 몬스터가 올 수도 있었으므로.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상처 입은 맹수를 사냥해야 했다. 기습이 깔끔하게 들어갔지만, 몬스터이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최성진은 가볍게 탐색하는 의도로 단검을 찔렀다.

“칵! 하아···.”

트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리고, 단검에 맞서는 대응은 어설펐다. 격통에 사리 분별을 못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목을 부여잡느라 한 손이 봉해지기도 했고.

‘괜히 긴장했네.’

반격이 거세지 않자, 최성진은 단검을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휘둘렀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 트롤의 반격은 허공을 휘젓기만 할 뿐이었다. 트롤의 몸에 자상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많은 출혈은 트롤의 움직임을 굼뜨게 만들었다. 결국, 최성진의 단검이 트롤의 왼손가락들을 잘라내고, 바로 이어서 목을 반절이나 베었다.

툭···

쿵!

“하아··· 하아··· 오랜만이라 힘드네.”

- ······?

- ···숨 쉬어도 되나요? 다들 숨 쉬세요.

- 랭커 방 잘못 들어왔나? 저기요?

- 랭커긴 함. 한국 섭에 올빼미밖에 없잖앜ㅋㅋ

- 와··· 이건··· 캐릭터 성능 문제가 아닌데? 튜토리얼 캐릭 아님?

- ㅁㅊ다. ㄹㅇ루 ㅁㅊ다. 오랜만이다? 역시 스칸다 랭커가 쉬다가 복귀한 거네;

- 아까 바지 추켜올린 사람입니다. 다시 내렸습니다.

‘이놈의 입이 문제다’님이 5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과거의 나야! 멈춰! 안돼! 말하지 마!]

- Stay······!

- 약속 지켰넼ㅋㅋㅋ

- 도망 안 쳤자넠ㅋㅋ 사나이였누

- 도망치는 것보다 방송을 보는 걸 선택했습니다.

- 현명합니다. 50000원 아끼자고 이거 라이브 놓치면 후회합니다.

‘합리적 의심’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핵 아님? 스킬 없이 저게 됨?]

- 응, 우리가 확인했어. 돌아가. 스킬 창 개털이야

- 또! 또! 또! 견제 들어오죠? 스트리머 텃세 지렸다.

- 근데 방금 들어왔으면 의심할만함ㅋ

- 즈기요··· 이 스트리머 본업이 뭐죠? 킬러인가요?

- 올빼미입니다. 야행성이죠.

- 아, 그렇군요.

‘오늘부터 내꺼하자’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너 마음에 든다! 내 원픽 해라!(덜렁덜렁)]

- 3000원으로 킬러를 고용했다!

- 와, 나 두근거렸는데 정상?

- 근데 리액션 하나 없네. 쿨 가이~

- 리액션 요즘 트랜드 아님 ㅋ

최성진은 점점 불어나는 채팅 공세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에겐 이 모든 과정이 신아름에게 보상하는 방법이었고 5년을 참아온 자유였으며 복수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아직 5년 만에 되찾은 감각에 적응하기도 벅찼으니 이들과 당장에 어울리기는 어색했다.

‘어? 이건 뭐지?’

[아이스 트롤을 사냥했습니다.]

[사냥에 적합한 몸으로 성장합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근력? 근력 수치 1이면 어느 정도지?’

- 저 능력 뭐지? 몬스터 사냥했다고 근력 상승이라고?

- 적응 빌드업 미쵸따. 이걸 스텟 상승까지 넘보다니;

- 몹 잡아서 종말 극복. 코인 탑승하쉴 분? 가즈ㅏㅏㅏㅏ

- 응, 혼자 타. 타는 흑우 없지?

최성진은 근력이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당장에 느껴지는 감각은 아까와 비슷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야 생존할 수 있지 않은가?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처음으로 시청자에게 질문했다.

“저··· 근력 1이면 어느 정도입니까?”

- ······지금 우리한테 물어본 건가? 아니지?

- 에이, 설마 그런 초보적인 걸 물어보겠어?

- 그렇지? 말이 안 되잖아. 난 또. 무슨 독백을 저렇게 대답해주고 싶게 해?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는걸?

“물어본 거 맞습니다. 근력 1이면 어느 정도죠?”

- 어? 그, 그게요 뭐라고 해야 하지?

- 채팅창 보고 계셨구나. 매너채팅 하겠습니다. 찌르지만 말아줏에요.

- 근력 1이면 아마··· 벤치 프레스 10kg 중량 더 친다고 보면 댐. 대충 맞음

- 저게 맏따. 학계의 정설임.

“감사합니다.”

- ···갭 뭐냐고.

- 아아··· 그는 몬스터에게는 잔혹하지만, 시청자에게만큼은 상냥한 종말 남자.

- 이 남자, 잠자리에선 어떨까?

최성진은 원하는 답을 얻었으니 수색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한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마치 본능에 이끌리는 듯한 기분. 이상하게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이스 트롤의 시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 킹빼미님 왜요? 그냥 가요.

- 마트라서 식량 좀 얻겠네. 처음 온 곳에서 식량 보급 ㅁㅌㅊ?

- ㅆㅅㅌㅊ 근데 올빼미님 왜 저러신데?

- 어어? 그러면 안 돼요!

-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뭍에 올라왔거늘, 다시 백덤블링으로 다이빙하시네;

- 아, 불-편

시청자들이 지금 이렇게 요동치는 이유는 최성진이 트롤의 사체에서 심장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최성진은 트롤의 심장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지지야 지지 울 애기 먹지마’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그거 먹는 거 아니에여; 독 있어요.]

- 착한 훈수 ㅇㅈ합니다.

- 허기졌다고 몬스터 함부로 먹으면 그대로 황천가자넠ㅋㅋ 이미 여럿 보냈지?

- 그 여럿 중의 하나가 접니다

- 캐생비 애도···

채팅창의 반응과는 별개로, 최성진은 트롤의 심장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채팅창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다시 폭발적인 화력으로 올빼미의 행동을 꾸짖었다.

- 올빼미는 강한 남자였어. 하지만 그는 이제 여기에 없어!

- 아 빡친다. 잠 못 잘 것 같아. 여태 잘하다가 왜 트롤 짓함···

- 진짜 초본가?

[아이스 트롤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아이스 트롤의 독에 중독됩니다.]

[아이스 트롤의 독에 적응합니다. 독의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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