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4화 〉114. 성장과 징조 (114/114)



〈 114화 〉114. 성장과 징조

사실을 말하자면,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겠지만, 인위적으로 마력적합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리스크가 컸다.

분명 빌런들의 존재가 증가할 것이고, 현재 제대로 된 구심점을 전혀 하지 못하는 헌터 협회는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 화살은 이론을 발표한 현화 쌤의 탓으로 돌아갔지.’


괜히 세상에 환멸을 느낀 게 아니었다.

마인 때도 그랬고, 이번 이론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랬기에,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 것이다.

‘가급적이면 책임을 다 떠안고 싶은데 말이지……’


단기적으로 보나, 장기적으로 보나 그게  좋았다.

우선은 지금 당장에 이기적인 선택자의 권능으로 능력치를 끌어모을 수 있었고, 다른  편으로는 현화 쌤의 의지가 되어 동료애를 늘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로 인한 마지막 장식은  화려할 것이 분명했다.


‘사실상 어느 정도 능력 있는 동료들은 모였단 말이지.’

처음 막 회귀했을 때보다 훨씬 더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쓸만한 녀석이 있다 싶으면 그 때 가서 영입을 생각해 봐도 될 테고.

“예정보다 더 빨리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슬슬 사전작업을 시작해야겠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부터 교무실로 출근했다.

“자, 어디 우리의 재웅이가 제대로 일을 하셨나 한 번 볼까요~?”

드르륵-


“……”

이상하네.


분명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하게 원상복구 된 내 책상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탁!

다시금 문을 닫은 나는 10초 기다린 후에, 다시금 문을 열었다.

드르륵.


“……이게 뭐지? 내 눈이 이상해 진 건가…?”

몇 번을 봐도, 분명  책상이 맞았다.
그것도 완전히 새 제품을 한.

나는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서랍 안을 확인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못 했겠지.
완전히 박살이 났었는데.


스윽-


“이거 미친 녀석인가…?”


헛것이라도 보이는 걸까.
본래 내 서랍 안에 있던 교재들이 고스란히 새 책이 된 채로 정리되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뭐야?! 이런 게 아닌데……?”

그리고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형님? 무슨 일 있으세요?”

“혀,현진아! 이게 뭐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알고 있어?”

“……네?”


녀석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얼굴과 멀쩡하게 돌아 온 서랍장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아, 이거요? 그러고 보니까 어제 황재웅인가? 하는  사람이 새 걸로 바꿔 두고 가던데요?”
“……그게 사실이야…?”

“네에…… 얼핏 듣기로는 안 하면 자기 목숨이 위태롭다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녀석은 꺼림찍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형님, 어제 무슨 일 있었죠?”

“어…? ‘무슨 일’이라니…?”
“형님이 뭔가 하신 거 아니었어요?”


이게 좀 친해 지더니 생사람 잡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 짓도  했거든?! 그 놈이  책상을 박살내 놔서 오늘까지 원상복구하라고 말한 것 밖에 없어!”
“그 ‘말’이라는 거, 혹시 몸의 대화 아니었어요?”

“……무,물론…… 교사로서 약간의 인성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물리 교육?”

“물리는 모르겠고 물리 속성이었던 것 같긴 해.”


겁나게 팼으니까.

……아니지.
팬 게 아니지?

교사로서 정당하게 체벌을 했을 뿐이다.

슬쩍 시선을 피하자, 현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럼 된 거 아니에요? 제대로 복구해 뒀잖아요.”

“그러니까 문제라고! 왜 복구가 되어 있지? 분명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때리고 싶으셨던 거 아니에요……?”

“……”


부정은 못 하겠다.

하여간 이래서 눈치 빠른 놈들은 싫다니까.


“그나저나…… 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네?”

“사실 나야 크게 상관없긴 하다만……”

나는 녀석의 머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새빨간 색……. 아니, 이제는 약간 검붉은 빛을 띠는 녀석의 머리 색깔은 은서현과 더불어 아카데미에서 가장 튀는 색 중 하나였다.

물론, 그리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듯하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중2병 말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너 다른 애들이 너보고 중2병이라고 하는 거, 알지?”
“하아……그러게요……”

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저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일단 노력은 해 보는게 어떨까…? 일단 머리 색부터 좀 평범하게 말야.”

“그게……”

잠시 망설이던 녀석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안 돼요.”
“어…?”

“저도 바꾸려고 탈색도 해 보고, 염색도  봤는데…… 스킬의 영향인지 안 바뀌더라구요.”

“스킬?”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녀석은   앞에 자그마한 창 하나를 띄워 줬다.

“아마 이게 아닌가 싶어요.”

“흐음……”

[혈광검(血光劍)_A+]
-패시브(액티브) 스킬.
-핏빛 기운을 감싼 도결_도(刀) 사용시 스테이터스 증가.
-스테이터스 영구 증가.

-액티브_<혈광검> : 일정 시간동안 시전자의 민첩 대폭 증가. 핏빛 기운으로 몸을 감싸 일정 수치의 피해 흡수. 도의 위력 및 내구도 증가.

-파생_<피를 머금은 자>

“상당히 괜찮은 스킬이네.”

조금 꺼림찍하기는 하지만.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적힌 파생 스킬 때문인지, 아무리 머리를 염색하려 해 봐도 안되더라구요.”
“이 스킬의 효과는?”

“그건 몰라요. 아무런 설명도 없고…… 알아서 개화하길 기다리고 있죠.”

“그래?”

나는 묘한 표정으로 스킬의 내용을 응시했다.

제대로 된 효과를 알  없는 스킬이라.
이런 경우, 보통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성장한 것 같네.’


이미 습득한 A+ 등급의 스킬 자체도 좋았지만, 아직 개화하지 않은 <피를 머금은 자>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상당히 기대가 되는 녀석이었다.



“잘 해 봐. 분명 뭔가 좋은 징조일 테니까.”

* * *



[최근 마인 사태로 심각성을 느낀 헌터 협회가 새로운 정책 안을 발표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헌터를 대상으로 한 복지와 혜택의 추가 및, 상위 헌터들이 받게 되는 메리트가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서는 최근 있었던 마인들에 대한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갑작스레 나타나 폭주하는 그들을 헌터들이 제압하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종종 이름 있는 헌터들의 모습도 비쳤다.


잠시 동안 정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던 화면에서는, 이내 헌터 협회의 공식 선전이 흘러나왔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S급의 자리, 어쩌면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마무리되는 그의 멘트.

자신의 교무실에서 그걸 바라보던 은가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염병하고 앉아있네.”


협회에서 발표한 정책의 수정안.

겉으로 봤을 때, 그것은 그저 좋은 개선안으로만 보였다.

전반적으로 모든 헌터들에게 적용되는 혜택의 질과 양 개선.
등급에 관한 기준 수정으로 개개인의 잠재력을 더욱 활용할 수 있는 체제로의 변화.

그리고 고위 등급의 헌터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특혜들까지.

이전까지의 대우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발표된 부분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라고 할  있는 정도.

그러나 은가람은 그것을 그리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쟤네들이 저런 게 한두번도 아니고 말야.’

같은 화면을 보고 있던 현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이렇게 나오는 건…… 역시 마인 때문일까요?”
“그렇겠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까.”

“절호의 기회요?”

그 말에 함께 있던 강헌권이나 한아름, 그리고 세바스찬 역시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외의 은서현이나 한주희, 그리고 라우라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화면을 끄며 은가람은 말했다.

“이번 기회에 자국의 고위 헌터 숫자를 대거 늘리려는 거겠지. 아무래도 그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엄청난 무기가 될 테니까.”


한동안 한국이 헌터계에서 강국으로 불렸던 것 역시, S급 헌터를 세 명이나 보유한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이진명과 성유리, 그리고 강기호까지.

그러나 강기호가 타워로 떠나고, 성유리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지금 그런 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마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거야. 마인 사태로 대대적인 이야기가 오갔겠지.”

“그건 결국 우리한테 좋다는 거 아냐? 어차피 헌터가 되려고 아카데미에 온 거잖아.”

“그건 그렇지. 뭐…… 사실 지금만 따져 본다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한아름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자, 일행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특히 아름이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긴 한데…… 전에 이태리에서 우리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
“갑자기 물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데…?”

“헌터 협회에 관한 것 말야.”


“흐음……”

그에 잠시간 고민하던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헌터가 히어로는 아니라고 한 거…?”

“맞아. ‘헌터’ 자체가 히어로같은 자선사업가가 아닌 것 처럼, ‘헌터 협회’도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혜택을 퍼줄  없다는 거지. 협회가 가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 점들을 간과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말야.”

“하지만 어째서지? 협회에서 굳이 그럴 이유가 있긴 한가?”


세바스찬의 질문.
은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만큼 더 부려먹겠다는 소리거든.”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고, 모험과 스릴만이 가득할 것 처럼 보이는 것이 헌터였다.

그러나 그런 헌터 역시도 정치의 영향권 안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던전을 공략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죽어도 가기 싫은 던전에 내던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협회가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에 이렇다 할 반박조차 할  없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하지만 부려먹는다고 해 봐야 결국 던전을 공략하는 수준이 아닌가? 아무리 협회라고 해도 능력 밖의 일을 강요할 수는 없을 텐데.”

“강요는 하지 않지. 다만 은근하게 압박을 줄 뿐. 그리고…… 꼭 그게 ‘게이트’에 한정되지만은 않아.”

“……?”

“가령 예를 들어서, A급 상위권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러면 매일같이 던전에 드나들고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할까? 오히려 경호 일을 더 많이 하게  걸?”


 많은 양반들의 호위.
오히려 그런 곳에 고위급 헌터들이 더 많이 쓰이고 있었다.

“결국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거지. 어쩔 수 없어.”

“그럴 수가……”


눈에 띄게 침울한 표정을 짓는 한아름.

은가람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근데, 걱정은  해도 돼.”
“어? 무슨 말이야……?”

“적어도 너희들은, 크게 해당사항이 없을 거거든.”

하나같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일행들.

그런 그들을, 은가람은 그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 때 가 보면 알아.”


그런 말을 덧붙이며.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는, 내뱉어지지 않은 마지막 말이 삼켜지고 있었다.

‘조만간 내가 협회를 지워버릴 테니까.’


 * *

은가람의 교무실.

헌터 협회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이 막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바로 그 때,  문이 세차게 열렸다.


드르르륵- 쾅!


그리고, 은가람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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