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3화 〉113. 가능성 (113/114)



〈 113화 〉113. 가능성

“허억…!후우……! 흐응가라……흐!가람…!”

“……일단   고르고 이야기하지 않으실래요?”

“아좀!”

답답하다는 듯, 빨리 오라고 손을 휘젓는 현화.
무척이나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은가람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데요?”

“후우……!이…일단은 연구실로 와. 급하게 이야기할  있으니까.”

“……?”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은가람이었지만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황재웅을 바라봤다.


“너도 적당히 하고 들어가라. 또 내 책상에 지랄하지 말고.”
“…지랄할 만한 것도  남아 있잖아?”
“무슨 소리냐? 저렇게 멀쩡하게 있는데?”

“……?”

황재웅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은가람의 책상을 바라봤다.

여전히 처참하게 부서진 채로 널부러져 있는 그의 책상.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그를 향해, 은가람은 싸늘하게 말했다.


“멀쩡하지? 내일까진 멀쩡해야 할 거야. 안 그럼 네가 저런 모습이 될 수도 있거든.”

“어…? 자,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형님?! 무슨 말이에요?!”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간다.”

다급하게 존대까지 붙이는 황재웅이었지만, 은가람은 매몰차게 걸음을 옮겼다.

쾅! 하고 문을 닫으며.


“……뒤끝 개쩌네, 진짜. 쪼잔한…”

드륵!

“다 들린다.”
“……”


쾅!


*  *




현화의 연구실.

끓인 물을 커피 드리퍼 위로 부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전에 그런 말 한적 있지? 인공적으로 헌터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을 하긴 했었죠. 뭐, 나름의 추측이긴 했지만요.”


인공 던전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인공적으로 적합자가 아닌 사람을 적합자로, 그리고 이어서 헌터로 만들어 낼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기억이 있었다.


당시 그 생각을 허무맹랑한 소리라고만 치부했던 현화.

그러나 지금 그녀의 생각은  때와 달랐다.


“이번에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분석하고 있었는데…”
“그걸 또 분석을 해요? 대단하십니다.”

“헛소리 하지 말고. 아무튼, 영상석으로 촬영한 내용을 보고 당시 주변에 돌던 마력 패턴과 던전 자체의 파장을 비교해 봤었거든. 물론, 전에 네가 학술회에서 증명한 이론들까지도 접목해 보면서 말야.”

“그렇군요.”

‘뭔 말인지 모르겠네.’

전혀 다른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은가람.
 사실을 알 리 없는 현화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근데, 그러다보니  가지 가능성을 발견했단 말이지? 인공적으로 던전을 만드는게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 상태. 만약 그걸 사람의 몸에, 던전의 게이트를 ‘마력 적합도’로 치환해서 적용시킨다면?”

“……인공적으로 헌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요?”

“그래! 어쩌면 네가 그 때 말했던 그 허무맹랑한 소리가, 진짜로 실현될 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차현화.
그러나 은가람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미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시기가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지금 쯤이면 적당히 써먹기도 좋고, 나쁘진 않지.’

스스로 이론 자체를 증명해내고 분석하지는 못해도,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을 포장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 놀라지 않는 그를 보며, 현화는 속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놀라지 않는다고……? 그 때 말했던 게, 그냥 던진게 아니란 말야…?’

대체 어디까지 앞을 내다본 것일까.

스스로도 천재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는 그녀였지만, 은가람의 행보를 보면 자신은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그녀였다.

‘어쩌면…… 아니, 분명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도 있을 테고.’

그것까지 감안한다면, 은가람이 가진 재능은 가히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지식 하나만으로도 S급의 헌터보다 더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 시대의 현자라고 하면 흔히들 아발론의 교장인 알렉시스 몬테규를 떠올리지만, 그녀가 보기에 현자는 알렉시스가 아니라 눈 앞의 돌대가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넌 놀랍지도 않냐? 어떻게 그렇게 담담해?”
“네…? 뭐, 조금은 충격이긴 한데. 인공 던전도 있는 판에……하핫!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했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인공적으로 마력적합도를 늘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라고.”

흥분한 상태로 말하는 현화.

그녀가 건낸 커피를 받아든 은가람은 여유롭게 한 모금 들이킨  말했다.

“왠지 고민하고 계시는 듯하네요? 그래서 절 그렇게 찾으신 거였어요?”

“……”

“‘발상’이니 ‘가설’이니 했지만, 사실 이미 증명은 끝났죠? 발표만 하면 되는 거고.”

하지만 그러한 발표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점이 차현화가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 모르는 돌대가리인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쌤, 예전부터 말씀드렸지만  돌대가리가…”

“아무튼!”

“……하아…”

그래, 지금 중요한  그게 아닐테지.

은가람은 다시 한 모금을 들이키며 물었다.

“그 이론, 알기만 하면 누구나 쓸  있는 건가요?”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개인이 남용할 만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정해진 답을 묻는 그에게 차현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무래도 힘들지. 규모도 규모이고, 들어가는 마력도 상당하니까.”
“그러면 상관 없지 않을까요? 도대체  그리 걱정하시는 건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걸 누가 사용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잖아. 좋은 곳에 쓰인다면 문제야 없겠지. 문제는……”

“빌런이 대거 등장할 수 있다, 이거죠?”


“……”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빌런’이라고 함은, 범죄자들 중에서도 스킬과 시스템의 활용 등, 헌터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뜻한다.

인공적으로 마력적합도를 늘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힘 역시도 강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그리고 은가람이 회귀하기 이전,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드러난 상태였었다.


“상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 쉽게 남용하기도 어려운 이론이라면 더 그렇겠죠. 더군다나 그로 인해 빌런이 늘어난다고 한들,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헌터들이 생겨날 테니까 결과적으로는 상향평준화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어떻게 그 사실을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끝까지 분석을 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그녀로서는, 마치 답을 알고 있는 듯한 은가람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편으로는 은가람의 대답에 납득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차현화였다.

“정 불안하다면 제가 할까요?”

“……뭐?”
“그 발표. 쌤이 두려워하는 건 결국 자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돌아올 부정적인 시선들이 두려운 거잖아요?”

“……”

차현화는 부정하지 못했다.

한 때 세계의 정상에 서 있던 그녀.
케히빈의 등장으로 잠시 쇄락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입지는 높은 편이었다.

스스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세계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전에 타워에 들어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

 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기는 했지만.

회귀 전의 일을 떠올리며 그는 말을 이었다.


“아……! 물론, 선생님의 이론을 뺏고 싶은 건 절대로 아니에요. 으음…… 죄송해요. 이건 제가 말 실수를 했네요.”

“아,아냐! 전혀. 오히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인데.”

“아니긴요. 아무튼, 제가 필요하시다면 말해주세요. 이번에는  빼고 제대로 발표해 드릴 테니까.”


그의 말에 현화는 묘하게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왠지 전과는 많이 다르지 않냐? 그 때는 그렇게나 싫어하더니?”

“사실 그 때는 주목을 받는게 싫었거든요.”

─그래서 좋을 것이 없다고 여겼으니까.

그런 뒷말을 그는 속으로 삼킨 그는, 대신 전혀 다른 이유를 내밀었다.


“그런데 한 번 뜨고 나니까, 생각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아서요.”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고?”

“글쎄요?”

말을 늘리던 그는 입 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그 때는 위험했었고, 지금은 상관없다는  정도로 해 둘까요?”
“뭐가?”

“뭐든지 간에요.”

대충 대답을 얼버무린 그는 잔에 남아있던 커피를 마저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망설임 없이 연구실을 나서는 그를 보며, 현화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안되고, 이번에는 된다…… 대체 어디까지 볼 수 있는 걸까?’

나름 남들과는 더 깊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차현화.
그러나 정작 자신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은가람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진리를 꿰뚫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 *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황재웅.
언제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아봤던가?

S클래스의 우수한 학생임과 동시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꽤나 많은 수입원까지 있는 헌터.

그런 자신을 이토록 막 대하던 사람은 전투광인 한주희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원상복구라니……에이, 까짓거 하나 새로  오지 뭐.”


당일 바로 배송이 되는 업체를 이용한다면 내일 안으로 새로운 책상 정도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돈이 나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은 진심이었다고…’

마지막 순간, 문 틈으로 비쳤던 은가람의 눈에는 서늘한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

섬뜩한 그 표정을 보건데, 자신이 배째라고 버틸 경우 진짜로 배를 째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냥 돈 주고 사자…… 에휴, 내가 더러워서 진짜.”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가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뭐하러 돈까지 지불해?”

화들짝!

크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그는 몸을 떨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

괜시리 ‘더러워서’라는 말이 찔렸다.


“왜 그렇게 놀라? 잘못한 거라도 있는 것 처럼.”
“무,무,무슨 소리야? 내가 잘못하긴 뭘?”

찾아 온 사람은 강헌권이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난 또. 조금 전에 ‘에휴, 더러워서 진짜’라는 말 때문인 줄 알았지.”
“들었으면서 그러냐?! 아니, 애초부터  하러 온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나야 가람이랑 예전부터 친했으니까 여기 자주 왔었고. 넌 아니잖아?”

“하! 그래서, 그게 아니꼽다? 한  해 볼래?”

“……”

강헌권은 아무런 대답 없이 싱긋 미소지었다.
최근 들어 그는 급격한 성장을 이룬 상태.

한진우의 활약으로 현재 그가 가진 힘은 일반적인 A클래스 학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력으로 붙어 본다면 황재웅을 상대로도 호각을 이룰 정도.

그러나 그는 구태여 싸움을 걸지 않았다.

그저  없이.

“……?”


휴대전화를 꺼내든 후,

“……???”

연락처에서 은가람의 번호를 찾아 화면에 띄웠다.


“??자,잠깐! 뭐 하려는……?”
“아아, 전화나 한 통 할까 해서.”


그리고는 녹색의 수화기 버튼을 누르는 그.

그에 따라 황재웅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갔다.

“자자자자자잠깐만요!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아!”
“……”


다급하게 손을 뻗어 통화 종료를 누르는 황재웅.

순간 그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괜히 서로 시비 걸지 말자고, 응?”
“……아,알았어…”

“뭐, 말 놓는거야 크게 신경은 안 쓰니까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함부로 깝치지 마라.

그런 의미로 그는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사비까지 들여서 책상을 사려고? 굳이 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해?”
“뭐…? 하,하지만 내일까지 원상복구 해 놓으라고…”


 그러면 제가 다져지니까.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는 재웅.
헌권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밖에서  오면 내일 안에 못 쓸 텐데? 인가 받는 것도 있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무리 빨라도 내일 저녁이나 되어야 겨우 여기로 들어올 거고.”
“어어……? 그러면 결국 안 되는 거잖아?!”

“그냥 교무실 가서 말씀드리면 되잖아? A클래스든, B클래스든…… 잘 설명드리면 바로 가져다 주실 텐데?”

“……그래요?”

“그렇지.”

벙 찐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황재웅.

결국 그들은 A클래스 교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밖에서 기다리기만 할 거야. 네가 저지른 일이니까 스스로 해결하고 와.”
“……그래도 좀 그런데…”

“그러면 뭐, 가람이한테 맞던지.”

“……”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내키지 않았던 그.

결국 잠시간의 고민을 접고, 그는 교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저…… 시,실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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