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112. 변화의 시작 (112/114)



〈 112화 〉112. 변화의 시작

“아,아무튼! 얘랑 할  있으니까 이제  나가!”
“하, 참…… 축객령이냐? 어이가 없네?”

“내 교무실이거든?”

내 말에 한주희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음흉한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새끼, 부끄럼 타기는.”
“……!!누,누가 부끄럼을-”

“잘 해 보셔~”

그녀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교무실을 나섰다.


“……하아…”

한참 동안이나 굳어 있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졌단 말이지……’

베르톨도와의 일전 이후로 그녀는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정확하게 어디가 어떻게 변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들이대지는 않았는데……’

한주희가 처음 내게 흥미를 가진 것은 내가 가진  때문이었다.

용건은  하나.

싸워보고 싶다는 것이 전부였다.

회귀 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갑자기 이상해졌단 말이지……’

물론 묘약의 영향도 없잖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런 쪽에 내성이 전무하다시피 한 그녀인 만큼, 다른 사람에 비해  효과가 더 극대화되기도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효력이 지금까지 유지될 리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묘하게 회귀 전의 한주희를 보는 느낌이란 말이지……’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말 실수를 하는 빈도가 늘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
“……뭐?”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내게, 황재웅이 그렇게 물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경고 드리죠. 주희 누님은  누구보다 전투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당신을 따라다니는 것도, 그저 당신과 한 번 붙어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 분명하죠.”

“그래서?”

“더군다나 주희 누님은 엄연한 S클래스. 그쪽이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볼  보기 전에……”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넌 눈이 어떻게 됐냐?”
“……?”

“니가 보기엔 저 한주희가, 내가 ‘저리 가세요’ 한다고 들을 것 같디?”

“……”

“그리고 모르긴 뭘 몰라? 쟤가 전투광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정도도 내가 감당 못할 것 같냐? 내가 너보다  알았으면 잘 알았지, 더 모르지는 않을 걸?”

“……”

이래봬도 회귀 전에는 정말이지 볼  못볼 꼴 다 본 사이였다.
결혼만 안했다 뿐이지, 타워 안에서의 생활은 남녀간의 그렇고 그런 관계였으니까.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황재웅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넌 어쩌다가 저런 애를 좋아하게 됐냐?”
“저런 애라뇨…? 주희 누님이 어때서요?”

“그래, 물론 남다른 미인이긴 하지. 비록 그걸 전혀 활용하지 않기는 하지만 말야. 근데 생각해 보라고. 틈만 나면 싸우려 들고, 극단적인 마이페이스의 한주희가 뭐가 좋냐는 거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러잖아?”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그는 다른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는 형님은 주희 누님이 싫으세요?”

“아니, 나도 좋긴 한데.”

“……”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라.
시건방진 자식이 말이야.

그런 의미를 담은 눈으로 그를 보자, 홱 하고 시선을 피하는 녀석.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서 시부지기 손 내릴래? 임마, 지금 그런 게 중요하냐?!”
“…죄송합니다…”

“어디 선생 책상을 이따위로 만들어 놔?!

탕!
탕!

나는 박살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 책상을 두드렸다.

쩌적-
콰르르륵……!

“……”

그리고 그 충격에 책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자,잠깐만요! 이건  잘못이……”
“아오! 이 똘빡 새끼를 그냥!”


따악!

그의 뒤통수에 한번 더 스매싱을 갈겼다.


*  * *

“이건 조금 심각하게 봐야 할  아닌가?”

헌터 협회의 상부층.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회의에, 임원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갑작스레 등장한 ‘마인’이라는 존재.

이제껏 상대해 왔던 빌런, 즉, 헌터의 소질을 갖춘 범죄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에 그들은 새로운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마인이라니……”
“그 놈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이란 말인가?”

“거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이라니…”

처음 그들은 마인의 존재를 그리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당히 다른 빌런들과 매한가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 온 것은 파견된 헌터 길드의 궤멸.

그제서야 그들은 제대로 적의 존재를 신경쓰기 시작했다.


“놈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 따지고 보면, 헌터라는 것도 그렇고, 게이트나 타워같은 것도  원인을 알 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이진명 헌터가 한성그룹과 손잡고 활동하며 많은 피해를 줄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네.”

“앞으로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문제인데……”

결국 그리 진전되지는 않는 대화.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들은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지 않나? 수를 늘리려면, 그만한 혜택을 더 주는 수밖에.”

“혜택이라고?”

“헌터의 전체적인 숫자를 늘리려면, ‘헌터’라는 직업이 가지는 메리트가 있어야지. 더 강한 헌터가 필요한 만큼, 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을 지급하는 방법도 있고 말야.”

“결국 욕구를 이용하자는 거군.”

“거기다가 전체적으로 등급에 대한 기준을 조금씩 낮춰 보는 것도 좋지.”


그의 말에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 중 또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다분히 비꼬는 투가 강한 어조였다.


“그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뭐라고?”

“피차 다들 솔직해 지자고. 지금 우리가 신경쓰려고 하는 건,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아니잖아?”

“크흠……”


불편한 마음을 담은 헛기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말을 꺼내 든 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단순히 S급의 숫자를 늘리는 것. 그게 여기 모인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 잖아? 그럴 만한 명분이 필요할 뿐이고.”

그의 말에 부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처음부터, 마인이니 재앙이니 하는 것은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이번 일은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고. 헌터들의 전체적인 숫자, 특히나 고위 등급의 헌터들이 늘어나면 좋은 건 우리들이야.”
“……판돈을 올려 보겠다는 거군.”

“그렇지. 어차피 그들을 쥐고 흔드는  우리들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어서 말야.”




*  *

“러시아 놈들, 너무 기고만장해 있는 거 아닙니까?”

회의실을 나서며, 청년은 그렇게 투덜댔다.
그의 앞에는 같은 한국측 간부인 이진화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김재현의 말에 앞서 걸어가던 이진화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내버려 둬. 어차피 저래 봐야 별 것 없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저희라고 크게 준비된 건……”

이진화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침  좋을 시기이지.”
“네……?”

“원하는 인원을 스카우트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쪽은 우리라고. 지금 한창 유명한 녀석들이 있잖아?”

조금 전의 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다름아닌 각 국가에서 일정한 수의 헌터를 직접 스카우트하자는 제안이었다.

최대 수는 각 국가마다 3명.

A급 상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들을 뽑아, S급으로 올려주는 대신 협회 소속의 헌터로서 활동하는 조건을 대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조만간 발표하게 될 헌터의 지원 정책에 관한 것 역시도 통과되었고.


“지금 유명한 녀석들이라면……”

잠시 미간을 좁히던 김재현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설마, 케히빈 학회에서의……?”


몇 달 전 케히빈 학회에서 발표된 이론.
이제까지의 마력학과 마공학 등, 게이트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론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것을 발표한 이는 다름아닌 월영의 한 재학생이었다.

아직 서른살도 되지 않은 나이로.

“그래. 은가람이라고 했던가? 마침 아카데미를 조기졸업했다고 했으니 자격에도 문제가 없고 말이지.”

“하지만…… 그는 현재 실종상태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한 달정도 전.
한국에서 갑작스레 개방되었던 대규모의 게이트가, 그 자리에서 붕괴해 버린 일이 있었다.

다행히 그를 미리 알아챈 S급 헌터들이 진압에 나섰기에 큰 인명 피해는 면할 수 있었지만, 당시 헌터들의 피해가 없다고는  수 없었다.


이진명을 제외한 나머지 S급의 헌터들과, 다수의 A급 헌터.
그리고 그가 알기로, 은가람이라는 청년 역시도 그로 인한 피해자 중 하나였다.

“얼마 전, 공항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실종 처리된 상태지만, 분명 한국에 있겠지.”
“그렇지만…… 그가 순순히 협회 소속으로 전향하려고 할까요?”

“당연하지. 비록 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는 해도, 그 녀석은 프리랜서 헌터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야.”

최근 들어 프리랜서 헌터의 입지가 많이 높아진 편이기는 했다.
예전이야 무조건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반드시 아카데미를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잠재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개인 헌터들의 입지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하긴 했어도 그런 개인 헌터들, 혹은 갓 헌터가 된 새내기들의 입장에서 ‘협회’란 결코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지.”
“확실히, 대기업 취직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이니까요.”

“거기다 등급의 상향과 더불어 갖가지 혜택  복지를 들먹인다면 제 아무리 이상한 놈이라도 덥썩 기회를 잡지 않겠나? 두개골 안에 제대로 뇌가 박혀 있다면 말이지.”

이진화의 말에 김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녀석의 뒤에는 차현화라는 거물 역시도 있지. 잘만 구슬린다면 둘 다 우리 손 안에 넣는게 가능할 거야.”

“과연…! 거기까지 생각하셨군요. 저는 현재 A급 헌터중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을 살펴보려고만 했었는데……”

“정 안되면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지. 어차피 다른 놈들도 다 같은 생각일 테니까.”


그는 걸음을 멈춰 김재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이 정해졌으면 빠르게 처리하자고. 우선은 은가람의 소재 파악이 먼저다.”



 * *



“뭐? 이미 헌터라고?”

한주희가 나간 후, 나는 녀석에 대한 체벌을 그만뒀다.
스트레스야 받은 만큼 풀기도 했고, 더 이상은 의미가 없었으니까.


‘거기다 사나이의 청춘이 그렇게 짓밟혔는데 좀 안쓰럽기도 하고.’

내친김에 말까지 편하게 하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그가 이미 헌터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어…… 일단은, B급이긴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근데 왜 아카데미에 와?  너신이야?”

물론, 한때는 그런 일이 종종 있기는 했었다.

아카데미 입학 조건에 헌터가 아닌 사람의 입학을 금지하는 법은 없었으니, 그를 이용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등급의 상향을 노리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헌터와, 단순히 개인이 등급 시험을 쳐서 합격한 헌터를 차별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참이나 옛날의 이야기.

지금 시기라면 개인 헌터들의 입지 역시도 상당히 올라 있었고,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만큼 구태여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개인 헌터는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싶었어. 어느 정도의 등급 조정도 있을 거고, 뭔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했으니까.”

“근데 지금 S급이라면서? 수업 없잖아? 특별수업이라도 받나?”

“……그래서 나도 후회 중이라고.”

한숨을 푹푹 쉬어대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자퇴 수속이라도 밟지?”
“이미 3학년인데 뭐하러? 그런 서류작업 하는 것도 귀찮아.”

“돈이 썩어나나보다?”

“뭐, 돈이야 넘치긴 하지. 나름 이래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니까.”


“허……”


거  좋겠수다.
돈이 많으면 머리가 나빠도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드르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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