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1화 〉111. 재발견 (111/114)



〈 111화 〉111. 재발견

‘이 새끼, 대체 뭐지……?’

이제껏 이토록 강한 사람은 만나  적이 없었다.

아니, 만나봤다고 한들,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막대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처음이라고 해야겠지.

황재웅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은가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 안 까냐?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아니-”


짜악!

비록 곧바로  대를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지만.


“야, 선생이 말하는데 눈을 바라보고 들어야지?!”
“???”

짜악!

이번에는 아래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손바닥.


‘시발, 어쩌라고?!’

눈을 보면 눈을 깔아라.
눈을 피하면 눈을 똑바로 봐라.

그냥 때리고 싶으니 맞아라- 라고 하는게 더 마음이 편할 듯 했다.


가까스로 저항해 보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자신의 손이 밀려난 것이다. 도대체 상대가 무슨 수를 썼는지조차 알  없었다.

‘젠장할! 이런 식으로 당하고만 있을까 보냐?!’


그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모았다.

아무리 갑작스런 싸움이라고는 해도, 아카데미 학생을 상대로 살수를 쓰는 것은 잘못된 것.
그로 인해 문제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징계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얼마 전 3인방을 상대할 때에도 그리 치명적인 급소는 노리지 않았었고.

‘개새끼, 뒤져봐라!’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미 그런 사소한 규제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눈 앞의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만이 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홍월(紅月)!”

화륵- 촤아아앙!

일순간 그의  위로 붉은 빛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새빨간 달과 같은 형상의 검.

그가 자랑하는 월광검(月光劍) 스킬의 하나였다.

콰아아-!


엄청난 기세로 쇄도하는 그의 검.

은가람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황재웅은 승리를 확신했다.


촤아아악!
화르르륵!

“?!”

순간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는 은가람.
그러나 이미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의 스킬, ‘홍월’은 붉은 달의 기운을 머금어 상대를 불태우는 기술. 어설프게 방어하려고 했다가는 온 몸이 타들어가게 되는 섬뜩한 기술이었다.

“으아악!! 살려줘! 으아아악!!”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은가람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얼간아!”

승자의 미소와 함께 그렇게 내뱉는 황재웅.
보통의 경우였다면 징계를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하고 불을  줬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자국 물러서며, 자신의 검을 납도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듯이.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에, 한 여성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은가람의 뒷편에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여성.
한주희였다.


“주……주희 누님!”


당황 반, 반가움 반의 심정으로 외치는 그.

한주희는 그런 황재웅과, 여전히 몸부림치는 은가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하냐?”

*  * *



‘아, 하필이면……’


그제서야 제정신에 돌아오는 황재웅.
아무리 한주희의 정신세계가 독특하다고는 해도, 지금같은 광경은 그리 좋은 모습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그게…… 하핫, 가볍게 손을 쓴다는 것이 그만…”

어설픈 웃음과 함께 상황을 무마해 보려는 그.
황급히 은가람의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손을 뻗었다.

“자기가 교사니 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구요. 하핫! 말도 안 되잖아요?”
“……?”

의아한 표정의 한주희.
이미 손쓰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가슴  켠에 남은 황재웅이었으나, 애써 그 사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난 너한테 한 소리 아닌데?”

“……예?”

“그리고 이 녀석, 지금은 교사 맞아. 좀 특이하긴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그녀의 입에서 들려왔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벙쪄 있는 황재웅을 두고, 한주희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런 시답잖은 장난이나 받아줄 거냐? 이런게 재밌어?”

“주희 누님, 그게 무슨……”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황재웅.
그런 그의 귀에, 은가람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재미 없나? 나름 재미있을 줄 알았지.”

“……어?”


분명 온 몸이 타오르고 있는 은가람.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조금 전과 같은 절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야 재밌었지. 근데 너무 질질 끌잖아.”
“아아, 알았어.”

후욱-!


“?!”


순간, 그 자리에서 지워지듯 자취를 감추는 불꽃.

분명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은가람의 몸에는 자그마한 화상자국 하나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전 그가 되찾은 S급의 스킬, ‘그림자 갑주’.

처음부터 그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어,어떻게…… 아니, 그 전에 주희 누님?”
“엉? 왜?”

“아,아시는 분이셨어요…?”

그의 질문에, 한주희는 당당하게 답변을 내 놓았다.
눈 앞의 두 남자가 그대로 굳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대답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쿨럭!”
“……”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멈춰 선 황재웅과, 제대로 사레가 들린 은가람.

그런 둘을, 한주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볼 뿐이었다.

 * *



며칠만에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차현화.

그리 오랜 시간 비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리웠던 연구실로 돌아오니 새삼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하아…”


그럼에도 그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냐.”

연구실 전체에 널부러진 문서들과 재료들.
그녀가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할 때, 그로 인한 여파로 난장판이 된 연구실이었다.

“돌대가리라도 있으면…… 에휴. 도움 안되는 새끼.”

괜시리 그렇게 궁시렁대며 그녀는 연구실의 정리를 해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논문들과 문서들을 직접 줍고, 엎질러 진 재료들과 용액들, 그리고 구조물들은 마법을 이용해 말끔하게 정리했다.

혼자 일하면서도 서너명이 동시에 일하는 듯한 효율.

본래라면 조금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그럴 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우선은 후딱 정리부터 끝내고…… 간단하게 영상석 정리만 몇 개 하고 퍼질러 자야겠다. 몸이 못 버티겠어어……”


퀭한 눈으로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매, 이게 다 뭐신겨?”
“진우 쌤…?”

구수한 사투리가 진득하게 배인 목소리.
한진우는 현화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연구실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줍기 시작했다.

“이걸  혼자 정리할라고 그런 겨?”
“아아… 고마워요. 괜히 이런 거 시키고……”

“신경 쓰덜 말어. 보니께, 거서  일 하나 혔더구만.”

“……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한진우의 말에, 현화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 길지만은 않았던 시간.
더군다나 한진우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에 관한 것은 알린 기억이 없었다.

한진우는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말했다.

“얼마 전 부터 마인인지 뭐시긴지가 급작스레 늘어났다 카드만. 딱 시기도 겹치고…… 그거랑 관련된 일 아녀?”

“뭐어…… 맞긴 하죠.”

“그니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구나, 싶었제이. 지금은 기냥 적당히 정리만 허고, 가서 퍼질러 자기나 혀.”


“……”


무심한 듯이 말하는 한진우의 말에 현화는 손을 멈추고 잠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푸훗…”
“엉…? 뭐여. 지금  말이 우습다, 이거여?”

“아니에요. 그냥… 고마워서요.”

“뭐,뭣,무슨……! 허,허,헛소리 그만 허고 후딱 정리나 혀! 진짜……”

귀까지 새빨갛게 물든 한진우.
현화는 손에 쥔 종이더미를 책상으로 집어던졌다.

100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서류뭉치가 허공을 날아, 그녀의 책상 위에 차곡차곡히 정리되었다.


현화는 여전히 손을 바쁘게 놀리고 있는 진우에게 말했다.

“빈  아닌데. 왜 그렇게 까칠해요?”
“까,까,까칠허긴 누,뉘가 까칠하다는 겨?”

눈에 띄게 당황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

그는 어느새 한가득 모인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두더니,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나는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으니까네, 이만 가것구마!”

“……”

그러고는 부리나케 연구실을 나서는 그.
그런 한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현화는 웃음을 머금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쌤이라니까?’

조금은 더 대담해 져도 좋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정작 그녀 역시도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그녀였다.


“자, 그럼…… 어느 정도 정리는 됐으니까, 일단은……”


그녀는 한 쪽에 모아 뒀던 영상석들을 꺼내 재생했다.
은가람의 호출에 따라 중국에 가 있는 동안, 거기서 벌어진 일 전체를 전반적으로 촬영한 것들이었다.

단순히 영상만을 녹화하는 것이 아닌, 당시 주변의 마력의 움직임이나 스킬, 또는 마법의 발현과 소멸 과정 등을 담아야 했기에 그녀는 일반적인 카메라보다는 값이 조금 나가더라도 영상석을 구해서 사용하는 편이었다.

“역시 시간 순서로 보는게 맞겠지?”


시간대가 가장 이른 순서로 영상을 재생하는 그녀.

같은 장면을  번이나 돌려 보기도 하고 다양한 각도로 한 장면을 움직여 보는 등, 한참 동안이나 그녀는 영상의 분석에 몰입했다.

한쪽 손으로는 종이와 펜을 꺼내 빠르게 수식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그렇게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잠깐만…… 어…?”


미간을 좁히며 자신이 써내려 간 종이들을 훑어보는 현화.

그녀가 주목한 점은 인공 던전으로부터 흘러나온 마력파장과, 그를 감춘 베르톨도의 결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를 분석해 나온 패턴과 수식들을 조합한 후, 그녀가 가지고 있던 배경지식과 엮어 보니 어딘가 많이 익숙한 결과가 도출되었던 것이다.


“이건… 생각보다 더 위험한 거 아냐…?”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는 마인들이 판치고 있기는 했다.
베르톨도가 죽기 직전 미리 손을 써 둔 것들이 결국 재앙의 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만 본다면 그리 큰 문제라고는  수 없었다.


결국 베르톨도는 죽었고, 그가 심어놓은 마인의 씨앗들은 유한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언젠가 은가람에게 들었던 말.
마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에 그가 말했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가설이라고 넘겼던 그 말이, 지금 그녀의 눈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의 증명이 끝마쳐 진 상태로.


“이런, 미친 돌대가리 새끼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곧장 연구실을 나섰다.

조금  까지 그녀의 머릿속에 있던 ‘대충 정리만 하고 잔다’는 생각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였다.



* * *



황재웅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의 가슴 한켠에는 한주희를 향한 연모가 불타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랑은 크게 상관 없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입을 열었다.
어느새 우리는 내가 배정된 간이 교무실로 모인 상태였다.

“너도 참 너무하다, 진짜.”

물론 황재웅이 처음부터 저렇게 무너져 내렸던 것은 아니었다.

한주희의 충격발언을 들은 직후, 그는 엄청난 살기를 내게 뻗어냈으니까. 마치 연인을 빼앗긴 사람의 한을 눈으로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런 말을 꺼내기도 했다.

‘감히 주희 누님을 뺏어가다니! 라고 했던가…?’


대체 누가 누굴 뺏었다는 건지.
엄밀하게 따지자면, 애초부터 한주희는 이놈 소유가 아니었고, 지금도 내 소유는 아니며, 맞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 의지라고는 할  없었다.

그러나 내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한주희가 먼저  방을 먹였다.


그것도 엄청 큰……

말 한 마디로.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너는 남자로 본 적 없는데’ 같은 소리는 조금 심하지 않냐?”
“내가 뭐? 편들어 줘도 지랄이야?”

“편들고 자시고, 한 남자의 청춘을 사정없이 짓밟은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냐 이거지.”

“그딴 거, 내가  바냐?”


뭐가 대수냐는 표정을 짓는 한주희.
그녀는 한 쪽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황재웅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내가 얘한테 홀랑 넘어갔으면 좋았겠냐?”
“그럴 리가 있냐?!”

“그것 보라고!……어?”

“어………?”


“……”


잠시간의 정적이 좁은 교무실 안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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