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109. 아니 이게 왜때문에 어째서?
[역대급 규모의 고백 장면(설렘주의)]
“……”
오글거림이 한가득 담겨 있는 그것이, 영상의 제목이었다.
현재 조회수가 급증하고 있는 영상으로, 게시일은 오늘 오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너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거니- 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헛걸 보고 있나?”
영상 안에는 내가 아주 잘 아는 누군가가 비치고 있었다.
잠시 있고 있던 얼굴.
짜증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을 지닌 샤오레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돈지랄을 할 데가 없어서 이런 미친 짓을……”
영상 안에는 거대한 공원을 통째로 빌린 그가 서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한 땀 한 땀 손으로 수놓은 촛불들이 하트를 그리고 있었고, 주변으로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있었다.
“어우…… 진짜로 공개 고백이라니…”
당연하게도, 그 가운데 서 있던 것은 흑사회의 연이었다.
하늘로 터지는 폭죽들과, 쫙 빼 입은 샤오레이의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그리고……
[차마 꽃은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라는 꽃 때문에, 다른-]
“구아아아악……!”
꾹꾹꾹꾹꾹!
다급하게 볼륨을 0으로 낮췄다.
미친놈이 진짜로 저 헛소리를 지껄이네.
누구 손발 사라지는 꼴 보고 싶은 건가?
한참이나 입을 뻥긋거리는 것을 보아, 준비한 멘트가 한두개가 아닌가 보다.
소리 없는 그 영상을, 나는 썩어가는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기나긴 그의 멘트가 끝난 후에서야 나는 조심스레 볼륨을 올렸다.
소리 없는 영상만으로 보다 보니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내 감이 맞다면 연이 대답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정신나간 고백 방식을……’
정상인이라면 받을 리가 없는데.
그러나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당신에게도, 제게도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난생 처음 보는 수줍은 얼굴과 함께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저를 좋아해 줘서. 저 역시…]
“정신나간 연일세.”
이건 중의적 표현이 아니다.
정신나간 걸 정신나갔다고 하지, 뭐라고 하겠는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이성과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내게, 둘은 아무리 봐도 제대로 좌뇌와 우뇌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뭐, 상뇌와 하뇌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겠지.
“하아…… 이게 왜 되는 거냐고. 아니, 이걸 왜 받아?!”
새삼 생각하니 열받네.
스테이터스를 줬다 뺏어가는게 더 기분나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재생되던 영상이 정지하며 진동이 울렸다.
“응……?”
한국에서 온 전화.
얼마 전 진우 쌤의 도움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 헌권이 형이었다.
“여보세요? 네, 형.”
[가람아? 진짜 가람이 맞지?!]
“……?”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살아 있었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느닷없이 사라져 놓고 그게 할 소리야?]
“……아, 맞다.”
약간 화난 듯한 목소리에, 나는 그제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실종 처리 되었었지?
베르톨도인지 뭐시긴지 하는 놈 때문에 정신 사나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까맣게 있고 있었다.
“미안해요. 저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늦었네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쩌다보니 중국으로 오게 돼서요…… 안 그래도 지금 귀국중이니까, 크게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중국……?]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던 그는 이내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게 아니지. 일단은 아카데미 오는 거 맞지?]
“당연하죠. 제가 달리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언제쯤 와……?]
“일단 귀국하고 아카데미로 바로 간다고 해도 이틀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그래…?]
“혹시… 무슨 일 있어요?”
[……]
내 말에 그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 참.
이거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니까.
어쩌면 이놈의 초월자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원정으로 일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 설명하긴 조금 힘든데… 2학년에 그 세 명 기억나지? 목연우랑…]
“아아, 알죠 알죠. 걔네들이 왜요? 또 문제 일으켰대요?”
[그건 아닌데, 걔네들 지금……]
수화기를 통해 들려 온 그의 뒷말.
그에 나는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
“드디어 귀국이다!”
한국으로 돌아 온 것을 실감하며, 한아름은 그렇게 외쳤다.
평소 ‘애국자’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 어떤 것보다도 반가웠다.
“어우…… 속 안 좋아…”
그녀의 뒤쪽에서 배를 움켜쥔 이현진이 걸어 나왔다.
“넌 어떻게 매번마다 멀미를 하니? 전용기니 뭐니 있다면서, 그거 탈 때도 그래?”
“아니…… 전용기는 괜찮은데…”
“뭐야, 그럼? 전용기 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한아름의 말에 이현진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흘렸다.
“몰라…알아서…생각해라……”
새하얗게 질린 채로 헬쑥해진 얼굴.
그에게는 정상적인 대답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고생 많았어, 서현.”
“고,고생은 무슨? 고작 이 정도 가지고……”
“……”
귀까지 새빨갛게 익은 은서현과, 그런 그에게 바짝 붙어 있는 라우라.
백발과 은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바스찬은 낮게 혀를 찼다.
“쯧……”
하여간 더러운 커플 같으니라고-
그런 말이 턱밑까지 차 올랐지만, 간신히 내리 눌렀다.
“흐아아암…… 잘 잤다.”
“어우, 시원하게 잤네.”
“뭐야… 여긴 어디야?”
그리고 그런 세바스찬의 뒤쪽에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세 명이 흐느적대며 걸어 나왔다.
은가람과 차현화, 그리고 한주희였다.
“어디긴, 짜샤. 한국이지. 너 업고 온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음……? 아아. 그러고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은가람의 말에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를 업고 왔다고? 네가?”
“그럼 나 말고 누구 시키랴? 세바스찬과 이현진은 맞아서 기절해 있고, 그렇다고 꼬맹이를 시킬 수도 없잖아? 그나마 힘이 남는 내가 해야지.”
“흐음……”
그의 말에 한주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긴, 꼭 그게 아니라도 네가 업는게 맞지.”
“……뭐?”
“아무것도 아냐. 빨리 나가기나 하시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는 은가람.
그러나 되묻는 그의 말에도 한주희는 그저 음흉한 웃음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에휴…… 내가 말을 말지.”
결국 먼저 포기하는 것은 은가람이었다.
한주희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체념이 가장 편해지는 길이란 것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한주희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단은, 고맙다.”
“엉? 뭐가?”
“그냥…… 여러가지로.”
“……”
그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는 한주희.
평소 진지함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였으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그녀 스스로도 느끼는 바가 많은 여정이었으니까.
“크흠……!”
“……”
그녀의 시선에 은가람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그.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한주희는 옅은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두다다다-
“……??”
짜아악!!
“끄아아악!!”
있는 힘껏 달려가서 은가람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녀가 가진 힘의 전력으로.
그녀가, 가진 힘의,
‘전력’으로.
거의 쓰러지다시피 앞으로 밀려나는 은가람을 향해, 한주희는 웃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가슴 펴고 걸어, 짜샤!”
“이런 미친……? 사람 죽일 일 있냐?!”
“뭐래? 안 죽잖아, 그 정도로는?”
“아오! 진짜!!”
“왜? 싸우자고?”
“싸우겠냐?!”
그렇게, 일상의 모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 * *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헌권이 형이 보내 준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기억으로 아카데미에서 본 적 없는 얼굴.
그 대상을 찾아, 나는 빠르게 아카데미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S클래스라고 했지…? 그래서 그런가?’
하기야, 월영에서 S클래스는 수업 자체가 없으니 얼굴 볼 일도 흔치 않기는 했다.
한주희처럼 특이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그런데 넌 왜 자꾸 따라오냐?”
“이유가 필요하냐? 재미있어 보여서 그런데.”
“……”
“나 신경쓸 시간에 빨리 그 사람이나 찾지?”
그 특이케이스가, 바로 내 옆에서 같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 휴대전화 화면을 멋대로 훔쳐봐 가면서.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이전에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였지만, 신월에 다녀온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해졌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상해 졌다’는 것은 단순히 한주희의 기준이겠지만.
‘오히려 정상인에 0.2미리 정도 가까워 졌다고 해야 하나…?’
조금은, 회귀 이전의 그녀를 보는 듯한 기분에 나는 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놈의 묘약이 뭔가……’
내가 그런 생각을 삼키고 있을 때, 한주희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한쪽을 가리키는 그녀.
그 손가락 끝에는, 사진에 나와 있는 S클래스 학생, 황재웅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쟤 아니냐?”
“……맞네.”
찾았다.
“이제 어쩌려고?”
의아하게 묻는 그녀를 향해, 나는 무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것도.”
“……?”
의아한 표정의 그녀를 두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처음 느릿하던 걸음은 이내 경보로, 또 전력질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야, 황재웅.”
“엉? 뭐야……? 어어어?!”
투콱!!
“컥?!”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의 턱주가리에 플라잉 니킥을 선사했다.
“─이 미친 시발놈이, 뒤질라고.”
* * *
“크흐흐……! 힘이 넘쳐 흐른다! 바로 이런 기분이지!”
처참하게 죽은 은가람 일행들을 왕좌에서 내려다보며, 베르톨도는 한껏 웃음을 터뜨렸다.
나약한 자는 그저 먹힐 뿐.
돌이켜 보면, 우연찮은 기회로 전대의 포식자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 테니까.
“아직 부족하다. 더 강해져야만 해. 그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게.”
죽은 자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포식의 권능』.
이렇다 할 패널티조차 없이 강해질 수 있었기에 그는 그것이 가히 최강의 권능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강하다는 차현화와 은가람을 죽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들의 힘을 흡수하며 그는 더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이제는 S급의 헌터가 떼거지로 몰려들더라도 충분히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하마터면 이 좋은 권능을 뺏길 뻔 했지만 말이지.”
자신이 죽게 되면 권능은 고스란히 자신을 죽인 이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이미 자신이 죽은 이후인 만큼 그게 무슨 대수냐 싶긴 했지만, 이미 『포식』의 맛에 취한 그로서는 그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위험하긴 했어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하지만……
“……?!”
자신의 죽음을 걱정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안한 미래를 연상했기 때문에.
─꿈의 세계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현실로써 다가왔다.
“커어억?!!”
기도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그의 입에서 폐부를 쥐어짜내는 신음소리가 내뱉어졌다.
왈칵!
“쿨럭!쿨럭…!”
이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내리는 붉은 선혈.
목을 통해, 하나의 칼날이 서서히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끄윽……끄아아악!! 이,이게 무…쿨럭!! 끄르륵…!”
선명하게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그는 몸부림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기괴한 광경을 두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푸슈우우욱!!
쿵!
“!!”
갑자기 바닥으로 추락하는 시야.
언뜻 비친 시야 속에서, 목이 잘린 자신의 몸이 쓰러지고 있었다.
시뻘건 피분수를 흩뿌리면서.
‘어째서……?! 대체 어째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살아있는 채로, 자신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하는 끔찍한 고통을 처절하게 맛봐야만 했다.
‘끄아아아!!! 아파!아프다고! 이런 씨발!! 이게 뭐냔 말야!!!’
“끄르르륵……!커억…!켁!켈룩…!”
속으로 아무리 외쳐 봐도,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검붉은 핏덩이 뿐이었다.
현실에 비해 현저히 느려진 시간 속.
목이 잘린 채로, 그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갇혀버렸다.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한 왕좌 앞에서, 그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