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108. 포식, 무의식
-야, 은가람.
머릿속에서 들려 온 목소리.
그것은 분명, 한주희의 음성이었다.
‘……? 뭐야?’
저녀석이 정신감응도 쓸 줄 알았던가?
그런 의문이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내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그 해답조차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옳겠지.
‘꿈의 권능이라는 건가……’
꿈은 사람의 무의식이 옅게나마 드러나는 곳이었다.
결국 그런 꿈에 관한 절대적인 권능이 있었기에, 무의식을 통해 말을 건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일행들끼리의 합이 묘하게 잘 맞았던 이유 역시도 같은 맥락이었다.
-권능을 오래 끌진 못해. 그래서 말인데……
한주희는 그렇게 말을 끌었다.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냐?’
-곧 있으면 꿈과의 경계가 다시금 명확해지게 돼. 쉽게 말해서……
‘권능을 사용하기 이전과 같아진다는 말이겠지.’
-맞아.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날아드는 베르톨도의 공격을 막아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끝나기 전에, 미리 손을 쓸 생각이야. 그러니까 협조 좀 해라.
구태여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나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몽환의 영역이 해체되기 직전.
나는 그녀가 만들어 낸 환영에 바짝 붙어, 베르톨도에게 접근했다.
-지금!
그리고, 그녀의 신호에 맞춰 꿈과 현실의 경계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무의식이 만들어 낸 잔재가 아닌, 실제의 공격.
상대의 방어나 회피를 도외시한 일격을 내질렀다.
그러나─
“어설프다!!”
“쯧……!”
개같은 놈의 베르톨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 나를 발견한 그가 공격을 맞찔러온 것이다.
그의 왼손바닥에서 뻗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검날.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권능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한주희는 한동안 수면에 빠져들게 된다.
꿈의 권능에 대한 반동.
지금 죽이지 못하면 뒤는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공포 잔상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베르톨도의 뒤쪽을 점하며, 내가 있던 곳으로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평소 내가 익히 사용해 오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닌, 내 죽음을 담은 광경.
내 의지가 아닌, 한주희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꿈의 공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베르톨도의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무슨 말씀이시죠…?”
이진명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냐는 질문은, 곧 자신은 원래 죽었어야 했다는 의미.
그는 몸을 긴장시켰다.
“내가 본 미래에서 자네는 죽었었네. 가족을 잃고 이성을 유지하지 못 한 채로, 무리하게 싸우다 죽었다는 말이네.”
이진명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들 둘이 죽는다.
이미 현성이 죽은 것 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남아있는 현진마저 잃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만약 진짜로 그랬다면……’
그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다면, 자신은 분명 앞 뒤 가리지 않고 몸을 혹사시켰으리라.
그는 알렉시스 몬테규가 선택자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그저, 미래를 볼 줄 아는 스킬을 지녔다고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는, 선택자가 아닐까 짐작하고는 있지만 이렇다 할 물증이 없었기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미래가 바뀌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그가 알기로, 이제까지 알렉시스의 예언이 틀린 적은 없었다.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든, 혹은 에둘러 말하는 비유적 표현이든 간에.
그의 말은 어떤 형태로든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지, 지금처럼 미래가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네. 사실 이런 적은 처음이지. 처음이면서도…… 최근들어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네.”
“그런…게, 가능한 겁니까?”
“물론 불가능하지. 아니, 불가능하다고 여겼어. 지금까지는.”
그는 종이컵에 담긴 달달한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라면 내가 선택자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겠지. 그럼에도 묻지 않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고.”
“…그렇습니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부탁하고 싶은게 있네. 앞서 말한 이야기의 연장선이 되겠구만.”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겠습니다.”
알렉시스 몬테규 정도의 인물이라면, 신뢰할 수 있었다.
가진 능력과 지혜가, 자신과는 비견되지도 않을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그러면서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는 않는 사람.
그것이 알렉시스 몬테규였다.
그랬기에 이진명이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적어도 그의 시선에서, 알렉시스 몬테규는 충분히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마인들이 판치기 시작할 거야. 진명그룹 산하의 길드원들을 전원 소집해야만 하네.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하지.”
“……!”
진명그룹은 결코 작은 기업이 아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 한성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인지도와 규모는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산하의 길드라고 한다면, 한국의 어지간한 곳은 대부분 즉시파견이 가능했다.
그랬기에, 본래 그가 계획했던 것도 그것이었고.
“진명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알렉시스는 단호했다.
“부족하네. 그저 머릿수만을 따지고 본다면 충분하겠지만…… 문제는 그 길드원들 하나하나의 역량이 부족하지. 그러니 다른 기업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걸세.”
“다른 기업이라 하시면……?”
“자네가 지금 생각하는 그 기업. 한성이네.”
* * *
은가람의 죽음을 담은 환영.
무의식에 잠식한 한주희의 권능.
베르톨도에게 있어서 그것을 구분할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토록 원했던 은가람의 죽음.
달콤한 그 유혹을, 그는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지금이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은가람이 공격을 피해낸 순간, 한주희가 그렇게 외쳤다.
휘오오오…!
은가람의 우수에 짙은 마나가 깃들었다.
쩌저적! 쩍!
파지지직!!
그것은 이내 검붉은 빛의 전격으로 변화하며, 손 끝으로 퍼져 나가 그가 쥐고 있던 단도 위를 덮었다.
주인의 마력을 있는 힘껏 빨아들이는 칠흑의 단도.
은가람은 그것으로, 베르톨도의 목을 있는 힘껏 그어 내렸다.
“좀 뒤져라, 이 망놈의 새끼야!”
카각!
그의 목에 부딪히자 시뻘건 불꽃을 자아내는 은가람의 단도.
그러나 저항은 잠시였다.
때마침 해체된 한주희의 권능.
주변은 어느새 원래 그들이 싸우던 던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베르톨도 혼자만이 여전히 꿈 속의 공간에 남아, 자신이 원했던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촤아악-!
은가람의 단도가, 베르톨도의 목을 양단했다.
* * *
“허억…!학……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분명 손 끝에는 베는 감각이 있었다.
확실하게 느껴졌던 묵직한 저항.
조금이라도 힘이 부족했다면 그 마저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끝난 건가?”
“해치웠-”
“안돼!”
“닥쳐! 세바스찬.”
“……”
부활의 주문을 외우려는 세바스찬을 향해 한아름과 나는 다급히 외쳤다.
“드디어 끝났어. 겨우 처리했는데도 믿기지가 않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회귀 이후로 지금처럼 아슬아슬한 전투는 처음이었다.
아마 한주희가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죽어 있는 것은 나였을 것이다.
털썩.
“언니!”
권능의 해체와 동시에 정신을 잃는 한주희.
쓰러진 그녀를 한아름이 다가가 부축했다.
나머지 인원들 역시도 쓰러진 이현진과 은서현, 그리고 연을 부축했다.
“으으……! 씨발, 엿같네…!”
“어이, 꼬맹이. 정신이 드냐?”
“뒤지고 싶냐? 누가 꼬맹이래?”
라우라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앙칼지게 받아치는 녀석.
나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보아하니 멀쩡한 것 같네.”
“진짜… 진짜로 끝난 거 맞지…?”
“네. 진짜로 끝이네요.”
“흐아아아……!! 진짜, 이 돌대가리 때문에 내가 뭔 짓거리를 하는 거냐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쿠구궁……!
우웅……쩌저적……
진동하기 시작하는 성.
바닥과 벽에 금이 가며, 자갈과 모래들이 흘러내렸다.
“결국 이렇게 클리어네요.”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던전.
처음부터 보스 몬스터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던 것인지, 던전의 주인이 죽자 던전은 조금씩 무너져 갔다.
“아 맞다.”
“……?”
무너져 가는 성의 천정을 바라보며, 현화 쌤이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집에 돌아가는 건 텔레포트로 못한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번에도 반대편에서 은가람이 좌표를 고정시켜 줬기에 가능했지, 안 그랬으면 못했어. 이번의 전투로 마력이 동난 것도 있고.”
“그러면 어떻게 가라고요?”
“비행기 타야지, 별 거 있냐? 돌대가리, 너는 내가 무슨 텔포 셔틀인줄 알아?”
“……”
쩝.
할 말 없네.
“근데, 이 던전은 인공던전인 거지?”
“그렇죠.”
“그래서 따로 전리품이 없는 건가……?”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르긴 하겠지만.”
“……넌 어째, 많이 겪어 봤다는 듯이 말한다?”
“하하, 글쎄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사실 진짜로 여럿 겪어보긴 했으니까.
이제와서 구태여 그런 사정을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타워에 들어가게 된다면 제대로 말이라도 해 주는게 낫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눈 앞에, 하나의 자그마한 상태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포식자』를 먹어치웠습니다.]
[『포식의 권능』일부를 전리품으로 획득했습니다.]
‘……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던전의 보상을 홀로 독차지했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스테이터스가 증가합니다.]
[전 스탯 +30]
[제약 해제_6%]
[현재 제약_23%]
‘이게 웬 떡이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아아…… 이틀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네.”
“그러니까요. 수영장 딸린 호텔…… 좋았는데.”
흑사회가 제공해 준 초호화 호텔을 전세냈던 우리는, 역시나 연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고 있었다.
“다음에 현진이 꼬셔서 쟤네 별장 같은 데라도 갈까…?”
“네에? 쌤, 아니, 쌤도 돈 많잖아요?”
한아름과 현화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진이 황당한 표정으로 따지고 들었다.
‘다들 팔자 좋구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여성을 잠시 바라봤다.
“……”
정말이지 단순히 잠들어 있을 뿐인데, 깨어 있을 때와는 너무도 느낌이 달랐다.
존재감 하나는 확실한 녀석.
그랬기에, 처음 그녀를 잃었을 때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이렇게 안 깨어나기냐……?”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베르톨도의 죽음으로부터 어느덧 이틀.
그녀는 여전히 그 때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었다.
‘별 일은 없는 거겠지……’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권능의 사용으로 인한 반동일 뿐이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내심 불안한 가슴을 진정시켰다.
“역시 생각을 비울 때는 너튜브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빌런’과 다른 ‘마인’의 출현]
[현 사태, 이대로 괜찮은가]
[철혈금강의 완벽한 대처,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리다]
[현자 알렉시스는 이미 이 사태를 예견했다?]
“아주 가관이구만, 그래.”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시끌시끌했다.
너튜브 뿐만이 아니었다.
각 포털 사이트마다 탑 라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마인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베르톨도가 죽기 직전 벌인 일이었다.
미리 이진명 회장에게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일은 더 크게 번졌으리라.
‘역시 S급은 다르긴 하다니까?’
회귀 이전에도 마주친 것은 고작해야 한두번에 불과했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강했다.
현존하는 S급 헌터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소문은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말.
거기에 『혜안의 선택자』인 알렉시스 몬테규까지 있었기에, 마인 사태는 회귀 이전처럼 크게 번지지 않았다.
“이런 재미없는 거 말고, 뭐 없나……?”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다.
이제는.
나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여 스크롤을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손가락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영상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증가했던 스테이터스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영상을 재생중인 휴대전화 앞에 떠오른 창.
그와 함께, 약간의 힘이 몸에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