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7화 〉107. 예상 밖의 전개 (107/114)



〈 107화 〉107. 예상 밖의 전개

“가람아!”

후욱- 츠파아앙!

차현화의 외침에 우수의 단도를 역으로  은가람.
그는 현화가 날린 검붉은 빛의 전격을 단도로 갈랐다.


자연스레 단도에 깃들어가는 마법.

소름끼치는 마기(魔氣)를 담은 그것을, 은가람은 베르톨도를 향해 휘둘렀다.

콰아앙!!




짙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뚫고, 베르톨도는 빠르게 은가람을 추격해 들어갔다.

콰과가각!!


까앙!




짧은 순간 이어지는 십수번의 연격.

어느 한 쪽도 우세하다고 하기 힘든 상황 속으로, 라우라의 나이프가 끼어들어갔다.

“?! 실드!!”

“폭사!”


콰앙!!


사방으로 비산하는 칼날.

간신히 실드로 몸을 감싼 그의 뒤쪽으로, 한아름의 도끼가 날아들었다.

“Here comes the pain!”

“쯧……!”



콰앙! 쾅!쾅!!

육중한  번의 공격에 뒤로 물러서는 베르톨도.

그러나  역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순식간에 자세를 회복한 그가 진각을 강하게 내딛었다.

쿠우웅……!

투화악!




그의 주변으로 반경 2미터의 바닥이 움푹 가라앉으며, 바닥이 요동쳤다.

“큿…!”

낮게 혀를 차며 몸을 물리는 은가람과 한아름.


베르톨도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아름을 빠르게 추격해 들어갔다.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색의 그림자 낫.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그것은, S급 헌터, 『추격자』의 이명을 가지고 있던 켈벤 스트라이커의 스킬이었다.

슈아악!



다급하게 양 손에 쥔 도끼를 교차해 드는 한아름.

키아아앙!!

“썅…!!”



시뻘건 불꽃이 튀며 뒤로 날아간 한아름.

그러나 앞서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적어도 자신의  발로 몸을 멈춰 세울  있었던 것이다.



“피어싱 쓰러스트_Piercing Thrust!”


“산개, 비산!”

콰자자작!



한아름을 추격하는 베르톨도에게, 세바스찬과 라우라의 공격이 이어졌다.

짧은 순간, 자그마한 호흡  번을 내뱉는 순간조차 이어지는 공방.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줄타기에 은가람의 입술은 조금씩 말라 갔다.

‘저 놈은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물론 속수무책으로 방어하기 급급했던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다른 전투 양상이기는 했다.

묘하게 가벼운 몸.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팔과, 상대의 동선을 읽는 듯한 기분.

미묘한  감각에도 전투가 훨씬 수월하게 바뀌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꿈』의 권능.

한주희가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타인의 무의식에 간섭할  있는 그녀였기에 서로의 생각이 읽히는 듯한 감각을 느낄  있었던 일행들이었다.




한주희가 익히 사용해 오던 저돌적이고 단순했던 전투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방식.
때문에 미숙하긴 해도, 그녀는 착실하게 자신의 권능을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가람은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 하면 곧바로 그 빈틈을 베르톨도가 파고들었다.

 그대로 막상막하의 상황.

바로  점이, 그는 이해할  없었다.


초월자로부터 부여받게 되는 권능은 다른 여타의 스킬이나 마법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 어떤 스킬이라도 같은 계열의 권능에 대적할 수는 없다.


가령, 탐지계열의 스킬이 제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은서현이 가진 『침묵의 권능』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할 수 없는 것이다.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있기에 붙은 ‘권능’이라는 이름.




그러나 같은 권능끼리는 통상적으로 엇비슷한 수준이어야 정상이었다.


적어도, 그가 회귀 이전가지 봐 온 바로는 그랬다.

침묵의 은서현과 이기의 은가람, 그리고 꿈의 한주희까지.
은가람의 일행에게만 3명의 선택자가 있는 상황.


이 상태로 ‘비등비등한 상태’라면 말이 되지 않았다.




‘젠장할, 이렇게  거…… 다시 한 번 가불이라도 받아야 하나…?’


섣불리 다른 일행들을 방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
그에 따른 리스크가 상당하긴 하겠지만, 이대로 개죽음을 맞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카데미 입학 시험 당시를 떠올리며,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야, 은가람.

그의 머릿속에서, 돌연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 *  *




“너무 경계하진 말게나. 싸우려고 온 건 아니니 말일세.”

“……”




머리가 새하얀 중년의 말에, 이진명은 집사에게 손짓했다.

갑작스런 침입자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최 현 집사는 가볍게 목례를 취한 후, 집무실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이 일하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접대용의 테이블로 향하는 이진명.


푹신한 소파에 몸을 싣자, 백발의 중년 역시도 맞은편에 앉았다.


분명 머리는 완전한 백발로 새하얗게 새어 있었지만, 그의 외모는 그리 늙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이에 비해 머리색이 어울리지 않는 느낌.


그런 사람을, 이진명은 잘 알고 있었다.




“알렉시스 몬테규님이 여기는 무슨 일이시죠?”

정중하게 말을 높이는 이진명.


그런 광경을 다른 이들이 봤다면 자신의 두 눈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존재하는 이들을  수 있을 정도로 수가 적은 것이 S급의 헌터였다.


그 중에서도 강하다고 알려진 이진명.


그에게 오만하다고 손가락질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말 그대로, 현존하는 인류 중 가장 강하다고 할  있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그인데 말이다.


때문에 그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에도, 그 점을 꼬투리 잡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러한 자신의 입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진명 역시도 섣불리 타인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고.

그것이, 그 나름의 예의였다.

“허허…… 자네도 여전하구만.”




옅은 웃음을 머금는 알렉시스.


누구에게나 당연한 듯이 말을 놓는 이진명이었지만, 유일하게 그가 말을 높이는 상대가 바로 『혜안의 선택자』, 알렉시스 몬테규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예를 지키는 그를 보며, 알렉시스는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한 청년을 만난 적이 있지. 아주 인상깊은 청년을 말이야.”

“……”


“아니, 사실 그가 ‘청년’인지, ‘중년’인지도  모르겠어. 자네라면 잘 알고 있겠지?”



그의 질문에 이진명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짤막한 설명만으로도, 그가 누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은가람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분명 겉보기에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이지만……”




그는 말을 길게 끌었다.


뒷말은 이진명이 자연스레 받았다.

“그 속에  것은 결코 어린 녀석이 아니었죠. 처음 봤을 때 부터 느끼게 되더군요.”

지금에야 그의 강함이 익숙해져 나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기는 했지만, 처음 은가람을 봤을 때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온 삶의 발자취와 경험, 고통과 노력의 흔적들이 쌓여야만 볼 수 있을 기운.

마흔은 족히 넘을 듯한 관록이, 고작해야 스물다섯을  넘긴 청년에게서 느껴졌으니까.

“그는 이제껏 제가  온 그 어떤 헌터들과도 달랐습니다.”

“그렇지. 다를 수밖에 없지. 살아 온 배경과 세월 자체가 남다를테니 말야.”

“……?”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알렉시스의 말.
아니, 사실 그라면 분명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이진명은 확신했다.



그러나 알렉시스는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주겠나? 전에 그 인스턴트 커피가 맛있더군.”

그저, 태연하게 음료를 요구할 뿐.


이진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쪽으로 향했다.
문을 살짝 열어 집사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그는, 다시금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잠시 후,  현 집사가 종이컵 두 잔에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미안하네. 먼 길을 갔다오게 시켰구만.”
“아닙니다. 편한 이야기 나누시지요.”

달칵.


정중한 인사와 함께 집무실을 나서는 최 현 집사.
알렉시스는 그가 가져 온 커피를  모금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은가람이 자네에겐 말했을 걸세. ‘마인’에 관한 이야기 말이야.”
“…맞습니다. 조만간 전 세계적인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알고 계셨습니까?”

“허허…… 나야 미래를 보는게 일이지 않나? 마인에 관한 것 외에도, 그와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것 역시 있었지.”

“……예?”




“바로 자네에 관한 것 말이야.”

그의 말에 이진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알렉시스 몬테규.
그의 두 눈동자는, 옅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네는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



* *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권능이군!’

아슬아슬하게 라우라의 공격을 막아내며, 베르톨도는 미간을 좁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긴 했으나,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고전하고 있는 상태였다.

[꺄아아아악!!]
[키에엑!]


“……!”

조금만 방심하면 그의 근처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기괴한 환상들.

소름끼치는 악마의 형상이나 거대한 최상급 몬스터들의 공격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나약-한 녀─
-너너너같은 놈은 죽죽죽죽죽어 마마마땅해!
-키히히히!! 재밌다!!
-어디?어디?어디?어디?어디?어디?



거기에 시도때도 없이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혀 오는 정신공격 역시도 무시할  없었다.

겨우 정신을 집중해서 그 목소리들을 떨쳐버리려고 하면, 다시금 눈 앞을 어지럽히는 환각 덕에 그는 적잖이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Here comes the pain!!”




‘이건 진짜다.’



그런 환상들 속에서 진짜 공격들을 구분해 내는 그.
이제껏 자신이 포식해 왔던 이들의 스킬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고작 이런 잔재주로 날 넘어서진 못한다!’

그는 진각을 강하게 밟아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린 후, 켈벤으로부터 흡수한 죽음의 낫을 꺼내들었다.




슈아악-

[크아아아!!!!]




“?!”


키아앙!!

그러나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 그의 눈 앞으로 드리운 베히모스의 그림자.

자신도 모르게 망설인 탓에, 그의 공격은 위력이 대폭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이런 곳에서 패배를 겪는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 아무리 많은 수가 모인다고 해도, 결국 그들은 약자.


‘피식자’일 뿐.

자신은 그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였다.

“네깟 놈들에게, 이 내가……!!”

그 순간.


그의 눈 앞에 여덟 명의 은가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일제히 공격을 감행해 오는 그들.
자신이 도망칠 곳을 완벽하게 점하고 날아드는 공격에 베르톨도는 이를 갈았다.



완벽하게 같은 모습과, 같은 기운.
이전처럼 쉽게 가짜를 구분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에 진짜는 없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반격을 준비하는 그.

그리고 자신이 공격에 맞는 그 순간, 여덟 개의 그림자들은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쐐애액!!


거의 동시에 자신의 목을 치고 들어오는 은가람의 흑색 단도.



베르톨도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어설프다!!”


촤아악!!



“커어억……?!”

자신의 손 끝에서 길게 뻗어져 나온 칼날.
그것은 은가람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선혈이 흘러 나오는 목을 붙잡으며 마른 기침을 뱉어내는 그.
이내 그의 입에서도 검붉은 핏덩어리가 쏟아져 내렸다.

“시도는 좋았다만……  너무 얕봤군!”


간신히 입매를 말아올리는 베르톨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가람의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꽂아 넣었다.



“너의 그 힘, 다른 일행들을 죽이는데 잘 사용하마!”




푸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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