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103. 두둥등장! (103/114)



〈 103화 〉103. 두둥등장!

“……여긴…”




공중에   있는 듯한 느낌.


어디선가 들려오는 웅얼거리는  소리와, 잠깐잠깐 스쳐 지나가는  수 없는 광경들.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공간을, 한주희는 걷고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현실이 아닌 공간 속.


무의식의 세계.


현재 그녀는 자각몽을 꾸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 잠이 들었더라……? 아니, 뭘 하고 있었지? 젠장, 뭔지는 몰라도 기분 더러운데.”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잠들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묘한 떨림만이 가슴  켠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귓가에, 누군가의 옅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안녕?]


“……?”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고개를 돌리는 한주희였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  풍경만이 덩그러니  자리에 비쳐지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줄곧 너를 지켜봐 왔어.]

“…뭐 하는 새끼야? 대화를 할 거라면 눈 앞에서 이야기하시지?”


단번에 살기를 피워올리는 한주희.


그러나 그녀가 피워올린 살기조차, 캄캄한 무의식에 녹아들어 사라질 뿐이었다.

그녀가 만들어 낸 꿈 속에서, 자신의 살기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전의 목소리가 다시 한  들려왔다.

[이미 그러고 있어. 네가 나를 보지 못하는  뿐. 걱정 마, 딱히 이상한 현상은 아니니까.]




─조금 특이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덧붙이는 목소리.
한주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


[나는 일정한 모습이 없는 존재라서 말이지. 보통은 대상자의 무의식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지.]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그 말에, 한주희는 덜컥 불안감을 느꼈다.



[어디보자, 너는…… 이런 모습이려나?]
“자,잠까……!”

그녀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의  앞에  남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적어도 외모만큼은 똑같은.

그런 은가람이 생긋-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반가워. 나는 『꿈의 초월자』. ‘꿈 속의 지배자’라든지, 혹은 ‘몽마의 권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해.]




* * *



‘어디 보자…… 일단은 뿔은 뭘 하든 범용성이 뛰어나니 챙기고……’



아라크네의 시체로부터 갈무리 가능한 재료들.

어쨌거나 삼각수이니 어떻게든 가공하면 쓸만하기야  것이다.

‘그래도 너무 잘게 잘렸는데…… 쓸만하려나?’




인벤토리에서 재료 가공용 망치를 꺼내들었다.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특별 제작한 소형 망치.


주된 용도는 각수의 뿔을 부수기 위함이었다,


‘내구도가 급격하게 하락하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이런 건 또 만들면 되니까.’

톡톡.
딱, 딱.

쩌적.


옅은 마력을 담아 몇 번 두드리자, 각수의 뿔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꽂혔다.



“야, 이 자식아!”


현화 쌤이었다.



“동작그만! 밑장 파밍이냐?”
“뭡니까?”


“지금 인벤토리에 아라크네 재료를 넣었지, 내가 핫다리 빙바지로 보이나?”


“증거 있어?”


“증거? 증거야 있지. 너는 지금 각수의 뿔을…… 잠깐만,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제서야  손에 들린 각수의 뿔을 발견한 그녀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뿔을 부수고 있는데요?”

“왜…왜, 뭐, 뭐 때문에 어째서 이걸 부수고 있는 건데?!”
“어…… 필요해서요?”


“그래도 상도덕이 있지! 네가 잡은 것도 아니면서?”



그건 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런 표정으로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연이 입을 열었다.


“어머?  상관없어요. 딱히 재료에 대한 욕심이 있지도 않구요.”


“그,그,그렇다고! 야, 이걸 너 혼자……!”

뒤늦게 상황파악을 마친 한아름과 이현진 역시도 거들었다.




“가람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잡은 건데?!”
“형님?! 엄연히 이건 우리가 잡았잖습니까!”
“독차지 하는건 아니지!”



“그런가? 먼저 먹으면  아냐?”

“……!”
“고마워, 잘 쓸게.”



깡!




환한 표정으로 망치를 내려치자, 균열이 가 있던 뿔이 후두둑 부서져 내렸다.

 명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으아아악!!  귀중한 재료를!!”
“굳이 부술 필욘 없잖아!”


“아, 난 이런게 필요해서. 이런 상태라도 괜찮다면 줄까?”

“……”

당연히 그럴 리 없지.
각수의 뿔이라 함은 보통 장비의 뼈대가 되는 재료였으니까.

이런 식으로 부숴져 버린 각수의 뿔은  용도가 상당히 한정되어 버린다.

“하아……”
“너무하십니다아……”


결국 한숨을 내쉬며 나머지 잔해를 뒤적거리는 그들.

다른 재료들이야 크게 상관은 없었기에 나는 굳이 그들을 막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기도 했고.


“너무해… 그래도 내가 도와준 게 얼만데.”

“하하, 그 점은 정말 고마워요.”

얻어먹은 커피랑 차만 해도 그 값어치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스킬의 전수까지.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분명 고마운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말로만.

“이……치사한 놈아!”
“칭찬 감사합니다.”


[마력 증가_2]



나를 흘겨보던 현화는 퉁명스런 말투로 받아쳤다.


“그렇게 고마우면 답례의 성의라도 보이지? 어차피 각수의 뿔은 많이 있잖아!”
“아, 맞다. 좀 드릴까요?”

“어……? 진짜로?”


그냥  본 말이었는지 얼빠진 표정을 짓는 현화 쌤을 보며 나는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당연하게도, 나 역시 해 본 말일 뿐.


내가 꺼낸 것은 마찬가지로 잘게 부숴진…… 아니, 그것을 넘어 가루로 만들어 버린 뿔이었다.

“이 상태인데,   드릴까요?”

“너어……! 진짜, 꼭 그렇게 다 부숴야만…”
“속이 후련해서요. 그래서, 드려요?”

“……일단은 고맙게 받으마.”

사양하지 않고 받아드는 그녀.


다른 녀석들이라면 모를까, 공학 기술 쪽에 조예가 깊은 그녀라면 어떤 식으로든 쓸모는 있을 것이다.


‘어차피 양은 많으니까.’


거기다 지금 당장에 쓸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사용할 방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고.


다시 재개되는 망치질.

그렇게 얼마나 망치를 두드렸을까, 눈 앞에 자그마한 시스템 창 하나가 떠올랐다.


[스킬_분해자(B)를 습득하였습니다]

[다른 이의 보상을 가로챘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증가_17]


‘드디어!’

길고 길었던 망치질의 결실이 맺히는 순간이었다.



*  * *





우우웅……!

쿵…!
쩌저적……




큼지막한 균열이 생겨나며 갈라지기 시작하는 공간.

천정에서 자그마한 돌조각과 모래가 흘러내리며 옅은 진동이 느껴져 왔다.

앞서 마주할 뻔 했던 공간 자체의 붕괴와는 달랐다.
트랩의 구심점과도 같은 술식과 장치를 차현화가 파괴했으니까.

지금의 현상은 그로 인한 트랩의 해체와도 같았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나가는군.”



조금  막 정신을 차린 세바스찬의 말에, 은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야. 이번에는 진짜로 위험했다고.”

사실 은가람 자신은 크게 상관없기는 했다.
회귀 이전에 몇 번이나 시달렸던 경험 덕분인지, 손쉽게 트랩을 파훼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순결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을 뻔했지.’



물론, 그의 입장에서 한주희가 싫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회귀 이전에도,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남아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고.

성격이 워낙에 사차원적이기는 했지만, 분명 그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이번 생에서는 그녀를 멀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자신과 함께 간다면 분명 죽음을 피하기 힘들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느닷없이 사랑을 나누는 건 좀 위험하잖아?’



 순간 그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조금만 정신을 늦게 차렸더라도, 그런 공간에서 이런 짓 저런 짓 다 했을게 뻔하니까.




쿠르륵… 쿠륵!
쩌저저적!


콰아아앙……!!


은가람이 내심 식은땀을 훔치고 있을 때, 영영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던 견고한 벽들이 부서져 나가며 바깥의 빛이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화려하구만.”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현화.

드러난 바깥 풍경은, 처음 건물 밖에서 봤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넓은 홀과 함께 중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성 안의 모습.
휘황찬란한 장식들이 수놓인 깃발들과 고풍스런 조각상.

그리고 그런 넓은 홀의 반대편에 위치한 커다란 문.

“……어째 불안할 정도로 조용하지 않나요?”

“왠지 익숙한 패턴인데……”


현진의 말에 현화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앞서 있었던 두 번의 트랩 역시도 일체의 전조증상 없이 나타났으니까.




탐지마법에도 반응을 하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일단은 저기로 오라는 것 같죠?”
“어쨌거나 가야지.”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

그들이 막 걸음을 옮기려는 그 때, 한아름의 등에 업혀 있던 한주희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아오……대가리 깨질 것 같네…”

“어,언니! 정신이 들어?!”
“이제야 다 깨어난 것 같네.”


“……”

아직 잠이 덜깬 듯, 한주희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뭐야? 내가 왜 이런데서 자고 있는……”

그러다 은가람의 얼굴에 시선이 미치고서는 입을 닫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피하는 은가람.


한주희는 옅게 입매를 말아올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포기할 거라 생각하진 마라…?”



“……?”



때마침 은가람이 있던 방향이 문이 있는 방향이었기에, 일행들은 그녀가 던전의 주인을 향해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한주희, 상태는  괜찮아?”

차현화의 물음에 한주희는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고작 이런 것에 내가 지치기라도 할까봐? 괜한 걱정이야.”

“그럼 됐어. 그럼 이제 전원 다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슬슬 가 볼까?”

“저기가 마지막이겠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상  뭔가 있다면…”


“그 이전에 저까지 가는 길도 험할게 분명한데 말이죠.”

“하아……”


연의 말에 그들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건 이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각자의 무기를 틀어쥐며, 그들은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



그리고─


“……?”
“뭐지…?”

긴장감 속에서 걸음을 옮기던 그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문 앞까지 도착한 그들.


그러나  사이에 그들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몬스터도, 트랩도.
환영이나 술식,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앞을 막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쉽게…? 뭔가 허무한데?”
“허무하다기보다는 불안한데요.”

“문을 여는 순간 또 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다들 조금 긴장하는게 좋을 거야.”



현화의 말에 그들은 조금씩 문에서 물러났다.


문득,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라우라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하다.”


“응? 뭐가?”


“이 느낌. 분위기. 상당히 낯이 익어.”

미간을 좁히며 말하는 라우라.
일행들은 숨을 죽이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어쩌면, 이 문 뒤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낯이 익다니…?”



서현의 말에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라우라.

그녀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베르톨도 프로벤차노.”


“……뭐?”

“그가 있는 곳이 바로 이랬어. 항상 그랬지. 그의 주변에는 그 어떤 적도 존재하지 않았어.”



─그 본인이 가장 강했으니까.

그렇게 덧붙이는 라우라.


한층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은가람이었다.



“그럼 오히려 좋지.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가 어디 있겠어?”


“뭐? 상대는 코사 노스트라의 수장이야. 실질적인 코사 노스트라의 전력 절반 이상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라우라.
아니, 일행들 전원이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까지 마주쳤던 적들과 차원이 다른 것이 베르톨도였으니까.


그러나 은가람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런 거야 이미 알고 있었잖아? 이왕 부딪힐 거라면, 지금이 제격이란 거지.”

그렇게 말을 내뱉은 그는, 미처 제지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당당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자,잠깐!”



그그그긍……!!



돌이 긁히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하는 문.

한껏 움츠러들었던 일행들의 걱정과 달리 정말로 그 뒤에서는 어떤 장치나 적들도 출현하지 않았다.


중앙으로 길게 이어진 레드카펫.

그들이 있던 넓은 홀과 마찬가지로, ‘성’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광경이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레드카펫의 끝에는 커다란 왕좌가 자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마주한 것 같네.”
“진짜로 여기에 숨어있던 게 맞다면요.”

“맞아.  사람이…… 현재 코사 노스트라의 수장. 베르톨도 프로벤차노야.”



왕좌 위에는 누군가가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턱을 덮은 짧은 수염.
날카로운 눈매가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


현 코사 노스트라의 수장인 베르톨도 프로벤차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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