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99. 미치겠네 (99/114)



〈 99화 〉99. 미치겠네

“뭐야,  먼저 와 있었네?”
“뭘 새삼스레.”


“하긴, 그렇기도 하다.”


은가람의 능력을 잘 아는 만큼 그녀는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는 다분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아…… 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 뭐 이딴 곳이  있냐고?”

“아무래도 그리 유쾌한 던전은 아니죠?”

“……”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은가람.

“너도 비슷한 거였냐? 노골적으로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은가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네? 아뇨. 전 더 직관적이면서도 단순한 트랩이었는데요?”
“그래? 뭐였길래……?”


“그냥 배틀로얄이었죠. 도플갱어 상위종 가지고 장난질을 치더라구요.”
“도플갱어 상위종? 혹시 각수?”

“아마도 그렇겠죠? 그래봐야 체감상 일각수 정도겠지만요.”

당연한 듯 말하는 은가람을, 차현화는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잘도 나왔네?”

“에이,  정도는 껌이죠. 뭐…… 다른 녀석들이라면 헤맬 지도 모르겠지만……”

“도플갱어에 배틀로얄이란 건… 결국 서로 죽이라느니 뭐니 했다는 거 아니냐?”



은가람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렇게 빨리 나왔다는건 다 죽였다는 거고……?”


“그렇죠?”

“……내 모습을 한 놈도 있었겠지…?”


“제일 먼저 척살했죠.”

환한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은가람.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분위기를, 은가람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 딱히 이유라도 있었니?”
“으음…… 명목상요? 아무래도 그 자리에서 적이 된다면 가장 위험했던 게 현화 쌤……아니,  잠시만요?! 왜요?!”

뒤늦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왜요’~? ‘왜요’ 소리가 나오냐, 이 화상아?!”



화르르륵!




“아니!! 그게 쌤인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뭐,  손 놓고 죽어요?”
“어쨌건 기분 나쁘니까 한 대 맞어!”



그녀의 손 끝에 피어오른 한 줄기의 불꽃.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한가득 들어찬 마력의 양은 상당했다.


그에 은가람이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순간.

쾅!


“이런 썅!”

다행히 그를 구원해 준 이가 있었다.

은발 머리를 가진 꼬마, 은서현이었다.

“기분 나빠, 씨발같은 트랩!”



온 몸의 분노란 분노는 죄다 짜낸 듯한 일갈.


은가람과 차현화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돌아온 것은 그리 좋은 반응이 아니었다.

“뭘 봐, 씨발?!”

“어우, 저 입담 봐.”
“하여간 버르장머리 하고는……쯧쯧.”

담담하게 감탄하는 차현화와 혀를 차는 은가람.

일순간 짙은 살기를 피워올리던 은서현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근처의 적당한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됐어. 그딴  뭐하러 물어?”

“뭐가 있었는지 알아야 대처를 하든  테니까. 말해주기 싫다면 말고.”



은가람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은서현은 이내 입을 열었다.



*



“후우…… 슬슬 기어나오시지? 어차피 너도  죽일 수 없잖아?”

남은 시간 1분 47초.

구역질나는 혈향만이 가득한 콜로세움 속에서, 은가람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검은색 도신을 자랑하는  개의 단도는 어느새 시뻘건 피를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같은 동료였던 이들은,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예 두개골이 함몰되어 버린 시체도 있었고,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거나 마법으로 인해 터져 버린 이들도 존재했다.



아비규환의 광경 속에서, 은서현은 조용히, 자신의 권능으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둘 다 죽어.”


광기를 머금은 은가람의 말.


아니, 그것은 은가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은서현은,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고작 저 정도의 강함이 아니었어.’


다른 이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한 명이 강한 전력인 것은 맞았지만, 조금 전 보여줬던 그들의 힘은 실제 당사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음에도 은서현은 그 점을 명확하게 인지할  있었다.

그랬기에,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 나와?! 지금 죽일 수 있잖아? 할 거면 빨리 죽여 보라고,  꼬맹아!”

“……”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이라면, 그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만약 실제라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자신의 권능을 사용한다고 해도, 진짜 은가람이라면 자신의 공격을 분명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지?



그런 그의 머릿속에, 무미건조한 음성 하나가 울려왔다.

“서연……”

-이대로 있다간 넌 죽게  거야. 망설일 여유가 있나?

“…하지만……”



평소 틈만 나면 싸우기 바쁜 은가람.
그러나 은서현은 선뜻 그를 죽이지 못했다.

설령 그것이 가짜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이들을 향해 나이프를 겨누는 것이 옳은 것일까?

만에 하나라도 이들이 진짜라면?



온갖 경험을 다 겪었다고는 해도, 그는 여전히 15살.

아직은 어린 마음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정 못하겠으면 내가 하지. 이대로 있다가 나까지 죽음을 맞이하는  사양이야.


“……”

서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그런 말 한 마디를 남긴 그.

잠시 후, 그의 기도가 완전히 뒤바뀌며 권능이 해제되었다.


“드디어 할 마음이 든 거냐, 꼬맹─”

그리고 몸의 통제를 차지한 서연은, 망설임 없이 상대의 몸을 갈라버렸다.

일체의 적의나 살기조차 존재하지 않은 공격.




그는  없이 개방된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




“그래서 망설였구나~? 우리 서현이, 귀엽네?”

“씨발, 안 닥쳐?! 여기서 죽여버린다?!”
“워워~ 진정해, 진정!”


“하아……”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장난을 거는 은가람을 보며 차현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진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구나…’



어떤 면으로는 참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그래서 서현이도 그런 배틀로얄식의 함정이었다는 거네…?”
“아무튼 아무 문제 없이 나와서 다행이야.”

“……쳇! 재수없어.”


“그럼 나만 달랐던 건가…?”




현화의 말에 은가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쌤은 뭐였는데요?”
“뭐랄까…… 일종의 트라우마 증폭실같다고 해야 할까?”

“트라우마 증폭실…요…?”


은가람의 말에 차현화는 꺼림찍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까지 자신이 있던 방에서, 그녀는 시달릴 대로 시달린 상태였다.

떠올리는 것 만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외로움이라……’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최근 들어서 점차 잊어간 것일까.

남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만성적인 외로움과 고독함에 언제나 잠겨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그런 걸 찔러?’




그녀가 있던 방은, 그런 외로움과 고독함을 증폭시키며 끊임없이 그것을 자각시키는 형태의 마법이 걸려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리라.

누가 들어가든, 그 사람의 아픈 과거나 가진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자극하는 쪽으로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사람 제대로 미치게 만드는 장치더라. 그래도 미리 그 점을 알아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우울증 걸려서 자살했을지도 몰라.”


“……”


“그럼 다른 녀석들은……”

“아무래도 비슷한 무언가에 시달리고 있지 않을까? 트라우마가 됐든, 너희처럼 배틀로얄이 되었든.”


현화의 설명에 은가람은 낮게 혀를 찼다.

“그러면 서둘러 빼내는게 낫지 않을까요?”




현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아. 술식이 대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정신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 더군다나 그 반대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가 가장  관건이야. 분명 어딘가로 연결된 곳이 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감지되지 않았다.

그저 대략적인 위치나 규모만  수 있을 뿐.


“그 대략적인 위치나 규모라는게 어딘데? 그거라도 알면 가서 부숴버리는게 낫지 않아?”


서현의 말에 현화는 짧게 대답했다.

“그게 여기야.”

“……뭐?”

“우리가  있는 바로 이 곳. 아마도 전체와 연결되어 있을 건데…… 문제는 그게 어디까지, 그리고 왜 연결되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섣불리 뭔가를 해 보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야.”

“결국 녀석들이 잘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속이 타는 감정으로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간 주변을 가득 메운 정적.


석벽에서 느껴지는 퀴퀴한 냄새나, 간간히 들려 오는 모래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메워 갔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긴 한데…”


정적을 뚫고 현화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때─

“으아!! 개같은 던전, 진짜!”
“후우…… 정말이지 열받게 하는군.”



“……하나같이 반응은 똑같네요.”
“그렇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거의 동시에  명의 인형이 다른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한아름과 세바스찬, 그리고 이현진이었다.


*





“하여간! 마음에  드는 던전이라니까?”


“아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한아름의 불평에 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사람을미치게 만드는 것 같더군.”
“아, 그 말. 현화쌤이 이미 했는데.”


“……”

“어쨌거나, 다들 가진 생각은 매한가지다 이거구만?”

슬쩍 웃음을 흘리며, 현화는 인벤토리에서 자그마한 포션을 꺼내들었다.


체력과 마력의 회복과 더불어, 약간의 진정 효과까지 가져다 주는 포션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한다. 그런데…… 나머지 둘은 아직인 건가…?”


“그러게나 말이다.”



세바스찬의 말에 은가람은 여전히 굳게 닫힌 문 세 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문은 세 개인 거지?”
“하나는 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겠지. 출구라던가…… 그게 아니면 다른 무언가던가.”


“…어쨌건 조심하는게 좋겠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은가람은, 문득 조금 전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현화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쌤, 조금 전에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 맞아. 그런데…… 왠지 지금은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미간을 좁히는 현화의 말에 은가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또 시작이야…?”
“쯧…! 개같은 새끼들……”

“다시 한 번 싸워야겠군.”


각자 앉아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전투태세를 갖추는 일행들.


바깥 쪽으로 향한 그들의 시선 끝에서, 붉은 안광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크르르르…!
-캬악! 크으으윽…

낮은 짐승의 울음 소리.


이내 머리에 자그마한 뿔을 달고 있는 라이칸스로프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나왔다.

숫자는  셋.


그러나 고작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네.”
“네?”

“이게…… 술식이 연결된 곳의 결과야. 대상자의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들여 몬스터를 강화시키거나, 혹은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 같아.”
“만들어낸다구요? 그런  가능해요?”

은가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몬스터를 만든다는 개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처럼 몬스터를 순수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일종의 ‘키메라’를 합성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발상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의문에, 술식의 파악을 마친 현화가 설명을 이었다.



“몬스터의 스폰 지점, 정확히는 그 마력이 모여드는 곳에 끌어들인 감정에너지를 모으는 거지. 마치 비료를 주듯이 말야.”
“그게… 가능한 거에요?”


“적은 양이라면 모를까, 사람 몇 명 제대로 미칠 정도의 양이라면…… 충분할 거라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지금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걸?

그렇게 덧붙이는 차현화.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열세 마리의 라이칸 스로프는 서서히 그들의 주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입가에 침을 흘리며 주변을 맴도는 그들.


긴장을 풀지 않으며, 은가람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한  없으면 더 이상하지. 아까  밖에서도 그렇고……”

“이 정도 양이면 진즉에 던전에 균열이 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요.”

그의 말에 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던전의 주인이 누구냐가 가장 큰 관건이겠는데……?”


긴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차현화.
그녀는 어깨 너머로 은가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계속 시간이 지체된다면 저 둘은 분명 돌아오지 못할 거야. 어떻게 할래? ”




아니, 그건 단지 은가람을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함께한 일행들 전부를 향한 질문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몬스터는 끝도 없어. 두 명이 나랑 같이 저 둘을 구하러 갈래, 아니면 끝까지 녀석들이 나오기를 기다려 볼래?”



그리고 돌아온 것은 물을 것도 없다는 듯한 확답이었다.




“당연히 구하러 가야죠!”
“그럼 누가  건데?”


그녀의 질문에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은서현이었다.

“내가 가겠어!”
“한주희는 제가 구하러 갑니다, 쌤.”



뒤이어 은가람이 그렇게 나섰다.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아있는 세 명이서 이들을 감당해야 해.   있겠어?”


그녀의 말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셋.

“해 볼게요.”
“이 정도는 문제 없다구요.”
“안심하고 다녀 와라.”



“흐음…… 그래도 가람이나 서현이   명은 남는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주변을 맴돌고 있던 몬스터들은 어느덧 사정거리 안까지 들어 와 있었다.



“이 녀석들도 그간 많이 성장했잖아요? 한 번쯤은, 믿어 보자고요.”


은가람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차현화.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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