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97. 이기주의 (97/114)



〈 97화 〉97. 이기주의

“흐음……? 이건 대체…”


자신의 집무실에서 평소와 다름 없는 나날을 보내던 아발론의 교장.

『혜안의 선택자』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던 알렉시스 몬테규는 사뭇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래가……바뀌었다? 내가 바라봤던 미래는 이제껏 달라진 적이 없었거늘……”


그가 은가람에게 알려 준 미래.

그러나 당시에 알려줬다고는 해도,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발생하지 않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미래는 변함없이 그대로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전혀 달랐다.



‘역시 초월자의 권능인 건가…? 아니면 단순히 회귀로 인한 여파인가?’


어느 쪽이건, 절대로 평범하다고  수는 없었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찾아 뵈어야겠군.”




*



헌터 협회의 상부층.

검은 색의 정장을  입은 십수 명의 사람들이 길다란 테이블 주위로 앉았다.



“그래서, 다들 대책은 있으신가?”




헌터는 아니었으나, 헌터 협회를 설립하고 소속된 헌터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

실질적으로 헌터들에게 게이트나 영역, 혹은 임무를 배정해 주는 것도 그들의 일 중 하나였다.


그런 그들의 입에 최근 들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S급 헌터들의 생사 문제였다.




“검성은 느닷없이 타워로 향하고…… 스트라이커를 비롯한 나머지 S급 헌터는 전혀 연락이 닿질 않아.”
“죽었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돌더군. 정보원들까지도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걸 보면, 완전히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중국 측 임원의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그들이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군.”

중국의 흑사회는 정보적인 면에서만큼은 알아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다고 S급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하지만 이진명 혼자서는 무리가 있지.”


“더군다나 그로 인해 다른 헌터들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으니…… 결코 쉽게  일은 아니라는 소리지.”



S급 헌터라고 한다면, 단순히 등급이 높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들 알려져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진명을 포함한 나머지 S급이 가진 힘은 단신으로 A급 헌터를 수십명 상대할  있을 만한 정도였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말을 꺼내들었다.

“굳이 협회 소속만 따질 건 또 없지 않나? 협회 소속이 아닌 S급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헌터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헌터 협회의 소속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각성하거나 개인적인 훈련을 통해 헌터가 된 경우, 헌터 협회는 단순히 그들의 등급을 인정해 주기만 할 뿐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스스로가 협회에 소속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개인의 자유였다.



당연하게도, S급 중에서 헌터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었다.

“아직 A급에 머무르기를 원했던 이들 말이군.”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일하는 놈들도 있지.”

“……그들은 위험하지 않겠나?”



누군가의 의문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인가도 받지 않고, 힘은 있으나 그에 대한 책임감은 결여되어 있지.”

“그래봐야 그들의 등급을 인정한 것도 우리 협회가 아닌가? 결국 우리 말을 무시하지는 못할 텐데.”

“순순히 따라  놈들이었다면 진즉에 협회 아래로 들어왔겠지.”


“……”

잠시간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정 안되면  뽑으면 그만이야.”




이내 먼저 입을 연 것은 러시아 측이었다.

“그것도 실력이 돼야 뽑지? 어설픈 A급을 S급으로 올렸다가는 반발이 심할 거고.”

“그러니까, 그걸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흘렸다.

“크게 고민할 필요까지 있나? 어차피 개돼지들은 등급의 기준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는데 말야.”

“그렇다고는 해도, 분명 이상하게 생각하는 헌터들도 있을 텐데.”

“그만한 힘을…… 아니, 그럴 것만 같은 장면을 보여주기만 하면 그만이지.”



어차피 등급은 처음부터 보여주기식이나 다름 없었다.
처음 1세대 헌터들에게는 그런 등급조차 부여되지 않았으니까.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는 준비했던 말을 꺼내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나라에 뛰어난 인재가 많거든.”

“……?”


“이왕 S급에 앉힐 거라면, 조금은 더 능력 있는 쪽에 투자하는게 맞지 않겠어?”


“결국 이제서야 본성을 드러내시는군?”




그제서야 그가 뱉은 말의 의도를 알아채는 이들.


기본적으로 자국 내에 S급 헌터의 숫자는  국가의 힘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조금이라도 자국의 헌터들을 S급에 앉히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자국의 인재들을 S급으로 올리시겠다?”


그러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런 그의 말에 반대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뛰어난 헌터라면 얼마든지 있지.”


결국 그들 역시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까.


단지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들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웃기는군! 고작해야 섬나라 따위가……”


“있는 거라곤 얼어붙은 땅덩어리 뿐인 주제에 말이 많군!”



순식간에 높아지는 언성.


처음부터, 그들에게 있어서 헌터들의 안위나 등급, 혹은 국민들의 안전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들이었다.


‘헌터 협회’라는 것은 단지 그들의 직장일 뿐.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도, 악에 대항하는 정의의 용사도 아니었다.


결국 헌터는 그들에게 정치적인, 혹은 외교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탁상공론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





“뭐……뭐야, 이건?”



각자의  앞에 떠오른 하나의 시스템 창.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그것을 알아 본 이들은 하나같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 죽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이현진이 그렇게 조소를 흘리고 있을 때, 그들의 눈 앞에 새로운 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살아나갈 수 있는 인원은 단  명.]


[공간의 붕괴까지_5:00]

[4:49]
[4:48]

.
.


“부,붕괴라고?”


느닷없이 시작되는 카운트 다운에 일행들은 조금씩 패닉하기 시작했다.

공간의 붕괴.

그것이 단순히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행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잠깐만! 다들 진정해! 이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쌤, 어떻게 좀  봐요!”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알아 볼 테니까…!”

다급하게 일행들을 진정시키며, 차현화는 마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훑었다.


짧은 순간 정적이 가득찬 공간.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며 마력을 전개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4:02]
[4:01]
[4:00]


[3:59]
.
.

그러나 약 1분이 흘렀음에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했다.

“이,이럴 리 없는데?”
“왜요?! 무슨 일인데요?”


한아름의 재촉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방 전체…… 아니, 어쩌면 이 던전 전체에 대규모의 마법이 전개되고 있어! 아무리 나라도 이건……”

“씨발! 그러면 괜히 1분을 허비한 거잖아?!”

“은서현, 너는 닥치고 있어!”

신경질을 내는 은서현과 한아름.

남은 시간은 채 4분이 되지 않았다.


일행들의 언성이 조금씩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언니! 혹시 어떻게  될까?”
“쯧…! 이젠 스스로  길을 찾아 볼 생각도 하지?”



싸늘한 그녀의 말에 한아름의 표정이 변했다.


“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한아름의 말에 한주희는 주먹을 들어 있는 힘껏 벽을 내리쳤다.




콰아앙!!!

귀청이 터져나갈 정도의 굉음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


“됐냐? 아무 소용 없잖아!”


“그, 그럼 어떻게……”
“그걸  나한테 물어?!”




그렇게 그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스릉-

“……?!”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바스찬이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일순간 일행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너…… 뒤지고 싶은 거지?”

싸늘한 한주희의 말.
그러나 그는 비장했다.


“어차피 죽게  거라면…… 부딪혀 볼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

“젠장할!”

촤앙!

챵!


결국 은서현과 이현진, 그리고 한아름 역시도 자신의 애검을 꺼내들었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그러나 그 속에서 고조되어 가는 팽팽한 긴장감만큼은 선명하게 느낄  있었다.

양  끝에 마력을 끌어모았던 차현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일단은 진정하고 이야기하자. 지금 우리끼리 이런다고 해결이 되는 건 아냐!”


“어이, 차현화인지 뭔지하는 선생.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돼?”

“……한주희. 말이 지나쳐.”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일일히 예의 따지고 있을 상황은 아니잖아?”


언제든 달려들  있을 정도로 몸을 낮추는 한주희.

마른침을 삼킨 차현화가 다시금 그녀를 진정시켰다.



“이 타이머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야. 혹시 모르잖아? 5분이 지나면 아무런 일 없이 문이 열릴지.”


“그리고 혹시 모르지? 5분이 지나면 공간이 붕괴를 일으켜서 죄다 몰살을 당할지도 말야.”

“……”




“그럴 거라면  조금은 더 생존에 힘쓰는 선택을 하고 싶은데 말이지.”



서늘한 웃음을 짓는 한주희.



[2:17]
[2:16]
[2:15]
.
.


어느덧 시간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차현화는 은가람을 돌아보았다.

조금  부터 아무런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은가람.


그라면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언제나 그래왔던 것 처럼, 이런 절망 속에서도 무언가 열쇠를 쥐고 있지 않을까 하고.



“현화 쌤.”
“응……?”



하지만─




“거슬려요. 쌤이 가장.”
“……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싸늘하기만 했다.




스걱!!

“?!!”



그리고 그는, 차현화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목을 그어버렸다.


“?! 끄윽……!끄르륵……”


푸슈우우우……

자신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양 손으로 막으며 쓰러지는 차현화.



“꺄아악!”
“으…은가람!!”

“저 미친 새끼가!”



느닷없이 새빨간 피를 뒤집어 쓴 일행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은가람은 한 없이 태연하기만 했다.



“왜? 어차피 너희들도 싸울 생각 아니었냐?”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지나치잖아!”
“지나칠  있어? 어차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야. 피차 솔직해 지자고.”

“……!”

순간 굳어버린 일행들.

한주희만이 유일하게 입매를 말아올렸다.



“역시……! 넌 정말 재미있다니까? 그래, 이렇게 나와야 나도 싸울 마음이 들지!”




투콰앙!!



곧바로 은가람에게 달려드는 한주희.


그러나 은가람이 한 발 더 빨랐다.

일체의 망설임 없이, 그는 검은색으로 점철된 자신의 단도를 휘둘렀다.


스아아악!


“……?!”


그 끝에서 길게 뻗어 나온 검은색의 그림자.
그것은 새까만 도신과 어우러져, 마치 도신 자체가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S급 스킬- 그림자 검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이는 행위는, 결국 극도로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지되었다.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던 스킬의 해제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비록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림자를 흩뿌렸다.



서늘한 예기를 담은 그림자가 달려드는 한주희의 상체를 순식간에 갈라버렸다.




촤아아아!!


또 다시 터져 나오는 시뻘건 피분수.




“언니!!”
“이런…미친……!”


일행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흡사 지옥을 방불케 하는 광경.


분명 조금  까지만 해도 같은 일행이던 그들이, 어느새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며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은가람은 싸늘한 어조로 내뱉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살려면, 너희가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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