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96. 던전 입장......? (96/114)



〈 96화 〉96. 던전 입장......?

“이런……!”

곧바로 몸을 긴장시키는 그들.
순식간에 그들을 집어 삼킨 어둠은 그들의 시야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젠장! 트랩이야! 빨리 벗어나야 돼!”


가장 먼저 상황을 눈치챈 것은 차현화였다.


그녀의 말이 신호라도 되듯, 주변을 감싼 공간이 급격하게 좁아지기 시작했다.



“으윽……!?”
“잠깐, 이게 어떻게 된……!”

“벽이… 밀려 들어오고 있어!!”



“공간 균열 계열의 마법의 응용이야! 공간이 점점 수축되고 있다고! 이대로 있다간……!”



뭔가를 해 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터져 죽을 것이 뻔한 상황.


아니, 어쩌면 이 곳의 사람들이 사람 주먹만한 크기로 압축될 가능성이 더 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라우라가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제어……!”


쿠웅……!

금속으로 만들어 진 것인지,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춘 보이지 않는 벽.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라우라는 힘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긍……!


“큿……! 오래는 못 버틴다…! 순수한 금속이 아냐!”

“일단은 앞이 보여야  하든…… 현화 쌤?!”




라이트 마법이라도 사용해 보라는 이현진의 외침.
차현화는 신경질적으로 그를 받아쳤다.


“나도 아까부터 시도하고 있다고! 내가 바본줄 알아?! 마법 시전이 되어도 빛을 곧바로 흡수당해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

“젠장…!”




혀를 차며, 은가람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단도를 꺼내들었다.

오각수의 뿔로 만든 무기.


최근 마인의 피를 흡수하며 급성장을 이룬 그의 애검이었다.


콰가가가각!



그의  끝으로 전해지는 확연한 타격감.
그러나 그리 깊게 베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자세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점차 좁혀오는 벽.


이제는 서로가 등을 맞대고 있어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그긍……!




“쿨럭…!”



라우라의 입에서 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과도한 능력의 사용으로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벽이 좁혀오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이대로 있다간……!”


그리고 그 때, 다시 한 번 벽이 멈춰섰다.


쿠우웅……!
끼이이익……




간신히 숨통이 트이는 일행들.
그들의 머리 위에서 한주희가 입을 열었다.


점차 좁혀오는 벽을, 그녀가 팔과 다리로 멈춰 세운 것이다.



“일단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테니까, 빨리 나갈 궁리나 해! 이런 곳에 계속 갇혀 있는 건 질색이니까…!”


쿠우웅!!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으로 벽을 후려쳤다.




“어……?!”
“……?”


그리고 그 때, 차현화는 마력의 틈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희야, 한 번만 더!”
“뭐?”

“한  더 쳐 보라고! 되도록이면 세게!”

“……쯧!”

혀를 차면서도 한쪽 팔을 구부리는 한주희.
그에 따라 벽이 조금 좁혀왔지만, 그녀가 주먹을 뻗자 좁혀  만큼 되돌아갔다.

콰아아앙!!



이전보다 더 큰 폭으로 진동하는 벽.



“은가람! 어디야?!”
“쌤 바로 옆이요!”

“마나 좀 빌린다!”

“……예?”



황당한 어조로 되묻는 은가람.
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차현화는 은가람의 목 뒤로 손을 가져갔다.

“흐아아악?!”


그리고 곧바로, 그의 목을 통해 소름끼치는 감각이 그의 몸을 잠식했다.

그의 몸에 남아있던 마나가 차현화에게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좀만 참아!”
“이런건…… 좀 미리 말좀…!”

“그럴 시간 없어!”




키이이익…!키잉!
스파아앗!



차현화의 손 끝에서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주변 공간을 가득 덮어가며, 그녀는 전개된 마법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우우우……


기이이익-기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벽.

조금씩 주변 공간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쩌저적…! 쩍!

“지금이야!”


그녀의 신호에 따라 은가람은 자신의 단도를 휘둘렀다.
살짝 벌어진 틈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칠흑색의 단도.


주변을 단단하게 밀봉하고 있던 마력의 그물이, 검은 색의 이빨에 찢어져 가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쩌적!


그리고 어느  순간─


콰차아앙!


검은 색의 단도가 술식을 찢어버리며, 그들을 가두고 있던 공간이 열렸다.

“어……?”



그리고  곳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





“여긴……?”


평범한 게이트의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마치 다른 세계에라도 떨어진 듯한 모습에 일행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던전이라고?”
“이 때까지 봐 오던 던전이랑 너무 다른데……”

그들의 말에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 오히려 여긴 타워와 더 가깝거든.”

눈 앞의 풍경은 마치 타워와 같았다.


물론 훨씬 규모는 작겠지만.
그런 생각을 중얼거리는 내게 한아름이 물었다.

“가 본적 있어?”
“글쎄?”

대답을 얼버무린다.

일반적으로 타워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나오지 못하는 것이 정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층까지는 다시 나오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직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왜곡의 영향을 적게 받았으니까.

‘하지만 층수가 높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당장에 15층만 넘어가도 왜곡이 심해진다.


타워 바깥의 공간과 다르게 흐르는 시간. 높아질 수록 그 차이는 점점 심해지게 된다.

그럼에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란 건, 단순히 내가 시간의 선택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당장에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타워가 이렇게 평화로운 공간이었어…?”
“몬스터도 안 보이고… 이래서 안 나오는 건가?”

이현진과 은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겠지.”


“……?”

중요한 건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한 손을 휘둘러 허공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낚아챘다.




-키이익!키익……키이잉…!

“으악?! 이게 뭐야…?”

내  안에서 몸부림치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보며 현진이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마치 자그마한 사람과 같은 형상.


그러나 등에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을 하고 있었으며, 몸을 덮은 피부는 진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페어리야. 아니, 페어리 계열의 무언가라고 해야 할까?”


“……뭐?”

흥미를 가진 현화 쌤이 가까이서 그것을 관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에 잡힌 페어리는 안간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사실 페어리와 거의 흡사하게 생기긴 했는데, 이 정도로 흉측하진 않거든요.”
“흐음…… 이런  실제로도 거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당연하죠. 웬만해서는 던전에서 잘 등장하지 않으니.”


다시 말해 지금은 그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내 말에 잠시 미간을 좁히던 현화 쌤은 인벤토리에서 자그마한 유리 병 하나를 꺼냈다.




“그거, 나 주면 안되냐?”
“연구하시게요…?”

“재미있어 보여서 말이지.”

“……”



순간 등골이 서늘했던 것은 내 착각이 아니리라.
자그마한 광기를 선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잡은 몬스터를 건냈다.



“그런데 저기는 뭐지? 뭔가 성 같은게……”


“……?”

한아름의 말에 우리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꽤나 멀리서 비치는 건물의 형상.

실루엣만 보자면 중세 시대에나 볼 수 있던 성과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저기가 본거지가 아닐까?”
“어쩌면 보스 몬스터가 저기에 있겠군.”


라우라의 말에 자신의 검병을  틀어쥐는 세바스찬.

열의를 보이는 것은 좋지만, 벌써부터 힘을 빼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 전에 주변의 적들부터 어떻게 하는게 좋겠지?”


“……뭐?”


일행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물들었다.


“적이라니……”
“그런 게 있나…?”

“아아, 이 놈들 말하는 거지?”
“하기야 이 녀석들이라면 아직 모를 수도 있겠다.”


한주희와 현화 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둘 뿐이었다.

“현화 쌤, 얘네들 어떻게  해줄 수 없어요? 환상 계열 마법의 해제라던가……”

“으음…… 잠시만.”

 말에 그녀는 한 손을 딱! 하고 튕겼다.


그에 맞춰 미미한 마력의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으아앗?! 저,저게 뭐야?!”
“어,언제 이런 놈들이……!”


“썅! 어떻게 된 거냐고?!”



자신의 바로 근처까지 접근한 마물들.


엘프의 모습을 한 무언가와, 늑대인간처럼 보이는 괴물들.

그리고 바로 근처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아르라우네까지.

저마다 머리에 뿔 하나씩을 달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일행들은 자신의 애검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거긴. 니들이 페어리의 술수에 넘어가서 못 본 거지.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특히나 이런 곳에서는 더.




그렇게 덧붙이며 나 역시도 두 개의 단도를 꺼내들었다.


오각수의 뿔로 만든 그것이었다.

“자, 그러면…… 저기 보이는 성까지 잘들 한 번 해 보자고!”





*




“허억…! 헉!”
“하아악! 크아아……!”



꽤나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주파한 은가람 일행.


약 2시간 정도의 고군분투 끝에 목표했던 성 앞에 도착한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가 이렇게 약골이야? 고작 이 정도 싸웠다고 지치긴.”




물론, 그들 전부가 지친 것은 아니었다.

은가람과 한주희, 그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던 차현화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일단 주변은 나름대로 정리된  같으니까, 잠시 쉬었다가 가자. 성 안에 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없으니까.”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그들을 보며, 은가람은 자신의 인벤토리를 뒤져 회복포션을 꺼내들었다.

“자, 일단은 마셔. 그대로 있다가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가…감사합니다아……”


“……”

받아든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일행들.

반면 그의 호의를 받지 못한 현화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개인 마력 포션을 꺼내 들이켰고, 그것마저 없었던 한주희는 냅다 은가람에게 따지고 들었다.


“잠깐!  나는 없는데?!”
“어…? 넌 필요 없잖아? 멀쩡한데.”

“그래도! 이런 식으로 차별하냐?!”

“……그럼 너도 쟤네들처럼 나약하다는 거, 인정하는 거냐?”

“……!!”


일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갔다.

머릿속으로 맹렬하게 충돌하는 두 감정.
한참 동안이나 내적갈등을 겪던 그녀는 이내 살짝 붉어진 표정으로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내놔! 내 거!”


그러나 그렇게 비장했던 그녀의 결심과 달리, 은가람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뭐?”

그녀는   먹은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건 없거든.”
“이런 씨발! 그럼 처음부터 없다고 하든가!”

“네가 ‘내 거’라고 하길래 그랬지. 얘네들 준 것도 다 내가 준비해  걸 호의로 나눠 준  뿐이지, 자기들 포션이 아닌데?”

“……”


조용히 불어나는 한주희의 살기.

따지고 보자면 그의 말도 맞는 말이었기에  말은 없었지만, 괜히 속으로 열이 뻗치는 것은 어쩔  없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은가람은 결국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너도 줄게. 됐냐?”

그렇게 또 하나의 회복포션을 꺼내드는 그.


그렇게 그가 건내기도 전에, 한주희는 그의 손에서 그것을 낚아챘다.



벌컥…벌컥!



“크하……!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제서야 승리자의 미소를 보이는 한주희를 바라보며 은가람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하여간 단세포……’


일행들이 전부 자신이 먹은 포션의 병을 버리는 와중에, 한주희는 자신의 인벤토리에 남은 포션 병을 집어넣었다.


그 사실을, 은가람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자, 그러면 슬슬 성의 공략에 들어가자고. 아마도 이게 보스 룸인 것 같으니까.”



한 차례 정비를 마친 그들은 무겁게 닫힌 성문을 열어젖혔고─



“응……? 어?!”
“잠깐만! 이런 건 분명 없었-”

파아앗!


다시  번 발동되는 트랩 마법.
이번에는 조금 다른 계열의 함정이었다.

“왜 이런 건 감지조차 안되는 거냐고오오!!”

차현화의 그런 절규를 마지막으로, 일행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



“아이고야……”

꽤나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걸까, 삭신이 쑤셨다.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리 달가운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여긴 대체 어디야…?”




주변이  막힌 좁은 공간.

복도처럼 길게 이어진 공간의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흐음……”

콰앙!



혹시나 싶어서 한쪽 벽을 주먹으로 힘껏 후려쳐 봤지만, 가소롭다는 듯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오라는 것 같지?”


그러면 가 줘야겠지.


어차피 다른 길도 없을 것 같으니까.

나는 성큼성큼 걸어, 통로의 출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서로 죽여라.]



─라는 메시지 창.


그리고 다른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던 자그마한 콜로세움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