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95. 이번 역은 함정역 (95/114)



〈 95화 〉95. 이번 역은 함정역

우우웅……



“아, 이제 오네.”

점차 빛을 머금기 시작하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땀을 닦아냈다.

조금만 더 늦게 개방되었다면 아마 그의 마력이 버티질 못했으리라.

잠시 후, 마법진 위쪽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자그마한 구멍 하나가 생겨났다.

그 구멍은 점차 크기를 키워 나가더니, 이내 사람 두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성장했다.

그리고─



“으아악~?!”
“으아앗!”

“……?”


쿠당탕! 콰당!!


“……”


일곱 명의 인형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맨 뒤에서 아슬아슬하게 통로를 통과한 여성이었다.

“나이스!! 좋은 타이밍이었다!”

“……”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외치는 한주희.

멀쩡한 것을 넘어 힘이 넘치는 그녀와 달리 다른 일행들은 죽을 상으로 바닥을 기었다.


“우으……속 안좋아.”
“토,토할 거 같아……”

“텔레포트 마법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

텔레포트의 여파로 헬쑥해진 일행들.
그 중에서 이현진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처럼 보였다.



“……할 말은 많지만, 일단 물부터 가져올게요.”





*

“야 다 풀었냐?”
“어. 이 정도 술식이면……”

아무도 없는 은가람의 개인 교무실.
조용한  곳에서, 세 명은 열심히 풀던 문제지를 서로 돌려 보았다.


채점 결과는 셋 다 만점.
그들이 스터디를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오……!”
“내년이면 잘하면 우리도 S급이 될 수 있겠지?”

“당연하지! 분명!”

기대감에 부푼 그들.
잠시 후, 그들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가람이 형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물론 그 형님이라면 어딜가서 다칠 것 같지는 않은데……”

“상대가 다친다면 모를까 말이지.”

지난 학기 1반으로 넘어 온  명, 목연우와 최하림, 그리고 경재석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빈 교실의 천정을 바라보았다.


2주가 조금 넘는 시간.


실종 처리된 은가람은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알게 모르게 그에게서 배운 것이 많았기에, 그들에게는 은가람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다.


비록 본인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S클을 가더라도, 은가람 형님이 안계시는데…”
“그러게. 언제쯤 돌아오실까?”

“……직접 알아볼까…?”


“……?”


최하림의 말에 둘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우리 힘으로야 힘들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차현화쌤……?”

“……!”



벌떡!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서 물어보자!”

곧장 교실을 나선 그들.
 와중에도 착실하게 문단속을 마친 세 명은 전력으로 뛰어 현화의 연구실로 내달렸다.

“……어?!”
“잠깐, 저건……”


“한주희?!”

그리고 연구실의 문 앞에서,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히는 한주희를   있었다.


연구실 안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마력의 파장.


분명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음을 확신한 그들은 다급하게 한주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으랴아!!”
“으악?!”

파아앗-!

“……”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텔레포트의 끝자락에 무임승차한 한주희의 뒷모습이었다.



*

“그래서, 얘네들이 왜 여기있나요?”

약 20분이 지났을까, 겨우 일행들이 진정한 것을 확인한 은가람은 시종일관 시선을 피하고 있던 차현화를 향해 물었다.


물론 그녀에게서 나온 대답은 없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따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쌤. 비밀 폭로했죠? 진우 쌤한테.”


“……그,그게……하하!”

“웃어넘기려고 하지 마요! 아까 전에 그렇게나 윽박지르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따지는 그를 향해, 차현화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의했다.

“나, 나한테 뭐라고 하지마! 왜 이래……? 왜 이래?”
“난 딴 돈의 반만……이 아니라! 어째서 얘네들이 다 와 있는 건데요?!”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싱글거리고 있는 여섯 명, 한주희를 포함한 일행들이 있었다.


“나도 어쩔  없었다고?! 얘네들이 막무가내로 오겠다는데 어떡해?”
“하아……그래도 말렸어아죠. 얼마나 위험한 지는 선생님도 잘……”

“가람아?”




그의 말을, 누군가가 잘랐다.
평소와 다름 없이,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한아름이었다.


“……어? 아,아름아…?”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묘한 살기를, 은가람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촤앙-!


“자,잠깐만! 갑자기 왜……!”


“일단  대 맞고 시작하자!”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한아름은 자신의 도끼를 휘둘렀다.

콰아앙!!


그녀의 뒷편에서 ‘아싸!’하고 주먹을 쥐는 차현화의 모습을, 은가람은 놓치지 않았다.



*




‘하아…… 인생.’




내가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러려고 회귀했나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둘이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렇기는 한데……”


“근데 왜! 우리는?!”


“……아까도 말했지만 상당히 위험하다고. 이제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지켜 줄 수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아니,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물론 그걸 내버려두고 내가 살 길만 찾는다면 가능하기는  것이다. 오히려 미끼로 던져두고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더 커진다.


‘하지만, 그랬다간 결국 이전과 다르지 않아.’


내 대답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한아름.
그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이현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주희 누님은  여기 있는 겁니까?”


“…엉?”
“그러고 보니… 언니는 어떻게 온 거야?”

집중되는 이목에 한주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텔레포트 타고 왔지.”

“어…? 근데 한동안 아카데미 안 나왔잖아? 가 봐야 재미있을 일도 없다면서……”

한주희는 자랑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랬지! 어차피 은가람이 없으면 아카데미 같은데 볼 일도 없고!”


“……”

그거  당당하십니다, 그려.
 편으로 오한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오늘 잠깐 와 봤는데, 하필이면 마력반응이 느껴져서 와 봤다, 이거지!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니까?”

-이런 게 바로 여자의 감이지!

그렇게 덧붙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근데, 가람이 너는 갑자기 중국은 왜 오게 된 건데?”

한아름의 질문에 나는 자연스레 의자로 올라 앉으며 대답했다.

“아아, 이전에 정보를 산 댓가를 지불하러 온 거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레 의자에 앉네?”

“아, 좀 앉자!”

“흐음~”

잠시간 미간을 좁히던 한아름.
그리고 그녀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은, 잠시간 수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정도로  줄게.”
“예에, 감사들 하십니다, 그려.”


“그러면 중국에는 계속 혼자 있던 거야?”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국어를 못 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연이랑 같이 있었지?”
“그……전에  수상한 사람?”


“응.”


내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어디선가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한주희 양? 지금 뭐 하는……”

한주희의 손에 쥐고 있던 컵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저거 분명 쇠로 만들어 진 컵이었는데.


“응? 아무것도 아냐. 신경쓰지 마.”
“……”

살기라도 감추고 말하시던가.
결국 유전은 유전인 것일까. 괜히 자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환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어쩌면…… 이번 생에는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



“후우…… 자, 그럼 해 볼까?”

모두가 잠든 시간.
성역 근처에서, 은가람은 크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말해두겠는데, 정말로 내키지 않으면 돌아가도 돼. 지금까지 상대  왔던 적들이랑은……”

“아, 쫌! 진짜 왜 그래?!”


은가람의 설교에 한아름은 짜증을 부렸다.
나머지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왜?”


“하아…… 물어 본 내가 바보지.”


“어이, 돌대가리. 잡담 고만하고 와서 돕지?”
“네에,네에~”

결국 체념하며 그는 차현화와 함께 결계를 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 성역에 입장 권한이 있는 녀석이 있다면서?  녀석은?”
“아아, 샤오레이인가…? 연락이  되더라구요”


사실 연락이 되면 더 이상할 것이다.
지금쯤이면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지도 몰랐다.


‘왠지 그 정도면 너튜브에 박제가 되었을 법도 한데…… 아니면 아직도 준비중인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샤오레이라면 어느 정도의 힘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제대로 준비한다면, 스케일이 상당히 커지리라.



‘그럴 수록 흑역사만 더 커지겠지만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은가람은 내심 웃음을 흘렸다.

“자, 시작한다. 준비해.”
“넵.”

잠시 후, 그는 차현화의 신호에 맞춰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가 흘려보낸 마력을 현화가 한 번 가다듬고 자신의 마력까지 얹은 후, 은가람이 다시 한  그것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증폭된 마나를 모아 현화는 자신이 그려 낸 술식에 차차 써내려갔다.

치이이이익……!


“크읏…!”


공간에 자그마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하자 은가람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슬슬 그의 마력이 힘에 부칠 즈음, 그들의 앞에 결계를 무력화시킨 통로가 드러났다.

“됐어!”


“후아아!!”



차현화가 뒷마무리를 받자, 은가람은 겨우 숨이 트일 수 있었다.

“자, 들어가.”
“네!”
“실례하겠습니다!”

현화의 신호에 맞춰 일행들이 하나 둘 결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고 있던 은가람이 문을 지나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따로 경보 마법은 없었어요?  번 뚫린 전적이 있으니 있을 법도 한데……”

“아아, 있었어. 지금은 일시적으로 무력화 해 뒀지만.”


“……역시 천재는 천재시네요.”

“니가 할 말은 아니다. 잡소리 말고 들어가, 임마.”


그렇게 은가람과 차현화 역시도 결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확실하게 성역 내로 들어서고 나서야 그 틈새는 본래의 모습대로 회복되었다.






*

“이거……상당한데…?”



성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제단.
얼마 전 샤오레이가 던전이 있다고 말했던 그곳에 도착한 차현화는 얼굴을 굳혔다.

“무슨 뜻이에요? 물론 마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는 않은데.”
“좀 묘하긴 하지만 말이지.”

한아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바스찬.
이현진 역시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화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은서현과 라우라, 한주희는 조금 다른 의견이었따.




“……기분 나빠.  이딴 게 다 있지?”
“나도 같은 생각이다.”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단 말이지.”

그들의 말을 차현화가 받았다.

“일반적인 마법이 아니야. 공간 왜곡 마법과 함께 마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결계까지 확실하게 되어 있어.”
“하지만 선생님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은가람의 질문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러나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나라서 시도는 해 볼 수 있겠지. 그런데, 빈틈이 전혀 없다시피 해. 안에 뭐가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도록 막아 뒀고…… 그렇다는건 곧바로 트랩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지.”

“흐음…… 역시 그냥 들여보내지는 않는다는 건가?”

과연 그 안에 뭐가 들었을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은가람이었다.

‘얼마 전에 기억 파편에 대한 찌라시도 있었으니…… 이번에는 진짜로 그게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꼭 그게 아니더라도, 분명 뭔가 결정적인게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2중 3중으로 감춰둘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이곳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도 없잖아 존재했지만, 상식적으로 마피아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를 냅두고 완전 적진의 한가운데라고 해도 될 중국에 이런 미끼를 만들어 놓을 리는 없을 터.

‘어쨌든  보면 알겠지.’


그렇게 확신하는 그에게, 현화가 물었다.


“너…… 괜찮겠어? 돌아가려면 지금이 마지막이야.”

“무슨 말이에요? 허허, 천하의 차현화 쌤이 지금 설마 무서워서 빼시는 건가?”

“……솔직히 그래.”


“예?”




고개를 끄덕이는 차현화.
일행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지금은 두려워.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없어.”


전 세계에서 손꼽아 주는 천재 마도사, 차현화.
그런 그녀가 두려워 할 정도라면 대체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일행들의 마음 속에 자그마한 불안감의 불씨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래도 고.”


“……뭐?”


그러나 은가람은 아니었다.



“전 혼자서라도 갈 겁니다.”

“……”

그는 다른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미리 말 할게. 전 세계적으로 손꼽는 실력자가 두렵다고 한 상황이야.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 딴 소리 하지 말고, 빠질 사람은 빠져. 뭐라고   테니까.”


“……”

잠시간 이어진 정적.


가장 먼저 입을 연  한주희였다.



“난 당연히 갈 거야. 재미있어 보이거든.”
“하아……언니가 가면 나도  수밖에 없지.”

뒤이어서 이현진과 은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죽인 놈들인데, 빠질  없죠.”
“빠지라니, 새삼 이제 와서 뭔 소리야?”


마지막으로 세바스찬과 라우라 역시도 단호했다.

“이젠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거거든.”
“서현이 간다면 나도 갈 거야.”


“……어휴, 이 눈치 없는 것들.”


그렇게 말하며 은가람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차현화는 잠시 머리를 긁더니, 이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아아, 이러면 나만 나쁜 년이야? 하여간… 학생들이 가겠다는데 선생이 안 갈수도 없고. 그래, 가 보자! 까짓거.”

결국 그녀는 제단에 겹겹이 전개된 정교한 마법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간간히 은가람의 서포트를 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시간여가 흘렀을까……



“후우…! 이제……! 조금만 더…!”

사아아악-
츠즈즛…



“됐다!”




제단의 봉인이 풀렸고─


“자,잠깐!”
“어……?”



투화아악!


─그 속에서 드러난 검은 빛덩이가 순식간에 그들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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