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 근황
“요즘 현화 쌤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 갑자기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한아름의 걱정에 서현은 그렇게 대꾸했다.
“저 쌤이 안 이상한 적이 어디 있다고?”
“으음…… 그것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 다르지 않나 싶어서.”
그녀의 시선 끝에는 강의실 밖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현화쌤이 있었다.
“……쯧, 무슨 상관이야.”
잠시간 그 광경을 보던 서현은 다시금 책상에 엎드렸다.
은가람이 사라진 지 벌써 2주.
처음 아무렇지도 않던 차현화는 최근 들어 그들의 강의실을 서성댔다.
아니, 정확하게는 용건이 있는 듯 찾아들었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다시 돌아가기 일쑤.
‘하여간 머리만 좋지 나사 한 세 개는 빠져 있다니까.’
은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은가람이 사라진 이후로도, 그들은 여전히 현화의 연구실에 찾아들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논문이나 연구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모든 것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은가람만이 그곳에서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재는 결코 작지 않았다.
“확실히 조금 이상하긴 하군. 매 번 강의실을 착각하는 것도 그렇고.”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세바스찬이 끼어들었다.
“응? 강의실을 착각하다니?”
“벌써 몇 번이나 저랬지 않나? 아마 본인 수업이 있는 강의실을 잘못 찾아온 거겠지.”
“근데 현화 쌤은 수업 같은 거 없는데?”
“그건……”
그 때 서현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우라가 말했다.
“뻔하지 않나? 은가람에게 용무가 있었던 거겠지.”
“……”
“……”
어쩌면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뻔한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뿐.
늘상 투닥거리기는 했지만, 이미 그는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상태였다.
“아, 답답해!”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이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가 뭐든 간에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그렇게 말을 내뱉은 그는 성큼성큼 현화에게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일행들.
이현진은 차현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차현화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퍼어엉-!!
“에휴……”
“저 병신… 또 무슨 말을 했기에.”
“켈룩! 쿨럭…!”
잠시 후 까맣게 그을린 채로 돌아온 이현진에게 한아름이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불덩어리를 맞고 와?”
“별 말 안 했어. 단순히 ‘형은 사라졌어, 이제 없어!’ 까지만 말했는데 느닷없이 화내시던데.”
“……”
“반말을 하니까 쳐맞지, 병신아.”
“…그런가?”
그런 이유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한아름이었지만, 구태여 그 사실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아니, 근데 뭐? 병신? 이 꼬맹이가?!”
“꼬맹이?! 세상 하직하고 싶냐, 빨간대가리 새끼야?!”
“에휴……”
이 레파토리는 변하지를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짚는 한아름과 세바스찬.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꼬맹이라고? 지금 말 다 했나?”
“……어?”
“그렇게나 나이를 먹었으면 제대로 나잇값이라도 하던가. 한심하긴.”
“……”
옆에서 듣고 있던 라우라가 단번에 상황을 종결시켜 버린 것이다.
갑작스런 그녀의 난입에 당황한 이현진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은 다른 모습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
“음…? 현화쌤? 여는 뭔 일이당가?”
강의실을 나서며 현화를 발견한 한진우.
그에 현화는 화들짝 놀라며 횡설수설했다.
“아!아? 아! 진우 쌤! 언제 여기 오셨대요?”
“…? 뭔 소리여? 나가 방금 전까지 여서 수업을 혔는디?”
“그,그,그렇죠? 하하하……”
“와 그라는 겨? 뭐 필요한 거라도 있당가?”
현화는 어색한 웃음을 잔뜩 흘리며 손사레를 쳤다.
“아뇨아뇨! 괜찮아요. 사실 은가람 좀 만나러 온 것 뿐이라…”
“엉? 은가람은…… 지금 실종됐지 않았디야? 얼마 전 현화 쌤 말로는 뭔 계획이 있담서?”
“제,제,제말은 그 패거리들 말이죠! 하하핫……”
“……”
아무리 은가람이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패거리’라니.
괴랄한 단어 선택에 한진우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뭔 소식은 있댜?”
“하하…그러게요……”
“……”
어색한 웃음으로 허둥대던 그녀의 표정에 옅은 그림자가 들었다.
그에 진우는 잠시 측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비 둬. 그 놈이 어떤 놈인디. 지가 계획이 있다 캤으믄, 뭐라도 있을 거여. 현화 쌤도 잘 알자네?”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오늘도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온 건데…… 이게 며칠 째인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을 거여. 명색이 아카데미 대항전의 비공식 우승자인디, 어데 가서 쉽게 뒤질 놈은 아니란 말여.”
“그렇겠죠?”
그의 위로를 받은 현화의 표정에 조금은 화색이 감돌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한진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근디…… 쪼매 나이 차이가 있지는 않은겨? 뭐, 영계가 좋다면 우짤 수 없지마는……”
“……네?”
“사실상 그 노마가 성인이고, 20대 중반이기는 허지만……”
잠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던 현화는, 이내 인상을 팍!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엉……? 아니, 물론 취향이야 그랄 수 있제이, 내 말은……”
“전.혀. 아니거든요?! 진짜! 한진우 쌤, 멍청이! 헹!!”
“……”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가는 현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진우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조사부렀네. 이런 기회를 놓치냐, 으휴…… 이 모지리야!”
괜히 조급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운 그.
그러면서도 ‘전혀 아니다’라는 차현화의 말에 왠지 모를 희망을 발견한 한진우였다.
*
“선생님, 제 이야기 잘 들어요.”
갑작스레 한국에 출현했던 대형 게이트.
협회 소속의 헌터들을 따라 던전으로 난입하기 전, 은가람은 그런 말을 건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아마 저는 한동안 없을 거에요.”
“뭐…? 없다니, 무슨 말이야?”
“장담드리기는 힘들지만요. 아마 한동안 저를 찾기 힘들 겁니다.”
그의 말에 현화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뭐? 왜?! 무슨 일인데?”
“아마 한동안…… 중국에 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중국에? 뭐하러?”
“갚아야 할 빚이 있어서죠. 뭐…… 겸사겸사 휴가도 좀 갔다 오고요.”
“너……”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말에 차현화는 미간을 좁혔다.
비록 겉으로는 장난스레 이야기해도, 그는 이유 없이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체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또 이번에도 어울려 달라, 이거지? 뭐 우리를 배신했다니 뭐니?”
“하핫, 그 정도는 아니구요. 그냥 제가 어딜 간 걸 눈감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는 물어보고 시켰냐? 거기에도 뭔가 짚히는게 있으니 가는 거겠지.”
그에 은가람은 옅은 웃음을 흘렸다.
차현화는 괜히 천재가 아니었다.
벌써부터 그의 생각을 어느정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가는 건 흑사회의 연과 관련된 일이에요. 어쩌면 거기도 단서가 있을지 모르죠.”
“흑사회? 하긴…… 흑사회라면 가진 정보량 자체가 어마어마할 테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 연인가 하는 사람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면 더 좋을 거고.”
비록 음지에서 활동하는 연이었지만, 그녀에 대한 것은 현화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분명 A급의 헌터였지? 그 실력이 과연 ‘고작’A급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야.”
“그렇죠. 그렇긴 한데……”
“??”
그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글쎄요. 가진 힘은 강하긴 한데, 딱히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지는……”
“네가 아무리 잘나도, 그게 네 맘대로 되겠니?”
“그런 것도 있지만요.”
물론 연이 같은 편이 된다면 그가 가진 전력은 대폭 상승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그는 연과 가까이하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원체 생각을 알 수가 있어야지.’
항상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
그 뒤편에는 아마 능구렁이가 한 50마리는 들어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혹시 지금도 주변에 있는 거 아냐? 어우……”
괜시리 오한이 드는 그에게, 이번에는 현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거기서 그 놈과 관련된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혼자 상대하겠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마. 베르톨도 본인이라면 더 그렇고.”
“에이, 그런 데서 만날 수 있었으면 이 고생 안했죠. 아마 중국이 아니라 시칠리아에서 그리 멀진 않은 곳에 있을 테니까.”
“아무튼!”
“아, 알았어요. 진짜 성격 급하시네.”
은가람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현화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적어도 2주 안에는 연락을 줘. 돌아가는 꼬라지를 알아야 내가 뭘 어떻게 하든가 하지.”
“여건이 된다면 그럴게요.”
“여건이고 자시고, 연락 안 주면 애들 데리고 쳐들어갈테니까 그렇게 알아.”
“……”
당당하게 말하는 현화를, 은가람은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난폭교사.”
“진짜 난폭이 뭔지 보여줄까? 난수 폭발이라고……”
“아니…아니, 잠깐! 이 미친 선생이 뭘 하는 거에요?!!”
진짜로 마력을 이용해 난수폭발을 일으키려던 현화를, 은가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말려야만 했다.
당시 근방 500미터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살린, 은가람의 살신성인이었다.
*
[아아, 들리시나요?]
“……”
익숙한 목소리.
아니,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할 목소리에 현화는 전화기를 빤히 바라봤다.
“후우……”
두세번 크게 심호흡한 그녀는
“크흠…! 큼……”
목을 가다듬은 후─
“야, 이 정신나간 돌대가리 새끼야!!!”
“으악?!”
“뭐,뭐야?!”
연구실이 떠나갈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크게 고함을 쳤다.
같은 연구실 안에서 쉬고 있던 일행들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고고…… 쌤, 귀에서 삐 소리-]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야, 이, 망놈아! 이상한 짓거리를 해도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냐, 적당히! 내가 어디 간다고 뭐래?!”
[그럼 왜 화내시는……]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냐, 연락을!! 대놓고 위험한 짓 하러 간다는 놈이 2주가 넘도록 전화 한통 안 되면 안 빡치겠냐?! 실종처리까지 해 놓고?!!”
[……죄송해요.]
“어후우~!! 진짜, 내가! 어휴……!”
은가람이 사과를 건네자 겨우 사그라드는 그녀.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이현진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에 관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신월은 좀 어땠어? 발견한 단서라도 있냐?”
[어디 발견하다 뿐이겠습니까? 제가 누굽니까?]
“말 돌리지 말고. 그래서 뭔데?”
[어쩌면 생각보다 결전의 순간이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은 말로 하기는 좀 그래요.]
“직접 가야되냐?”
[네. 가급적이면 선생님만요. 다른 애들은 위험할 수 있으니까……]
은가람의 당부에 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좌표는?”
[안 그래도 쌤의 도움을 받아서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릴까 해서요. 좌표값이랑 경로값은……]
현화는 한쪽 허공에 자그마한 창을 띄운 후, 그 위에 마력으로 좌표값을 적어 내려갔다.
“꽤 멀긴 하네? 그래도 괜찮을 거야. 장거리 마법진이라도 양쪽에서 잡으면 할만할 테니까.”
[역시 쌤! 대단하십니다~?]
“닥쳐. 이것도 반대쪽 사람이 너같은 괴물 아니면 못 하는 거니까. 준비 다 되면 문자해.”
[넵! 그럼 이따 봬요!]
그 말을 끝으로 은가람은 전화를 끊었다.
차현화는 꺼진 전화 화면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 돌대가리 하나 때문에 내가 뭔 개고생을……”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다섯 명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혹시 들었니?”
“저희 귀머거리 아닌데요?”
“……그, 이번에는 조금 위험한…”
“쌤, 우리 버리시려구요?”
“아니, 잠깐만 이건 아무리 너희가 강하다고 해도……”
섣불리 허락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려던 차현화를 향해, 한아름이 말을 건냈다.
“흐음, 그러면 나는 진우쌤한테 말해야겠다. 현화 쌤이 제.자. 인 우리들을 버.리.고. 갔다고.”
꽤나 눈치가 빠른 한아름이었다.
“……!!아,아름아 너……!”
“네, 갔다오세요~ 저희는 여기서 외.롭.고. 쓸.쓸.하.게! 있을 테니까!”
“……하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차현화.
한아름, 그녀는 생각보다 더 강적이었다.
우웅……
[쌤, 준비 됐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현화의 휴대폰에 문자가 날아들었다.
“대신, 위험할 것 같은 짓은 절대로! 하면 안돼?! 알겠지?!”
“네엡~!”
“네.”
“알았다.”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며, 그녀는 자신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마법진을 그린 후 전력을 다해 준비해야만 했던 은가람과 달리, 그녀는 이렇다 할 시동어조차 외치지 않고 마법을 전개했다.
파지지직…!
우웅…웅……!
파아아앙!!
연구실의 한가운데 열리는 공간 이동의 통로.
갈라진 공간 속에서 흘러나온 서늘한 바람이 연구실을 맴돌며 종이를 흩날리기 시작했다.
“빨리 들어가!”
“네,네!”
“으앗?!”
서둘러 통로 안쪽으로 몸을 던지는 이들.
마지막으로 차현화가 그 안으로 걸음을 옮긴 후 통로를 닫을 때 즘─
쾅!
연구실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