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93. 바람 (93/114)



〈 93화 〉93. 바람

“뭐……?”

샤오레이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진짜에요! 저도 사실 잘 아는 관계는 아니고…… 그냥 ‘B’라고만 들어서……”

“그래서, 그 B라는 놈이, 이 제단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혹시 B라고 한다면…?”
“아마 맞을거야. 베르톨도인지 뭔지 하는 놈.”


일전에 코사 노스트라와 대치하면서 그를 ‘B’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아마 그의 본명을 부르는 것이 금기 비슷한 거겠지.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직접적인 단서를 찾게  줄은 몰랐지만……

내 설명에 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맞아 떨어져 가는 거 같은데? 그 왜…… 너도 기억할 거 아냐? 에이전트라고.”
“…확실히 정신 지배 계열의 스킬은  두개가 아니죠. 하지만 저는 그 남자와 만난 적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제게 속박을  ‘인형사’라는 스킬은……”

다시금 샤오레이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놈이 교활한 것일 가능성이 커. ‘인형사’라는 스킬 자체가 고유스킬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그 놈이 더 상위 계열의 스킬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위험한 것 아닌가요?”


“뭐야, 이제 와서 겁 먹은 거야?”


“……”



그래, 겁먹지 않는게 이상하지.
그녀가 알아 본 것만 해도, 코사 노스트라에 대한 두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수장에 관한 것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선뜻 나설 용기는 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그런 그녀를 두고, 다시금 샤오레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말해 보실래요? 이 제단에 숨겨진 비밀이 뭔지?”
“저,저도 이 이상은 아무거도 몰라요! 어차피 성역이니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흐음… 그러면 만일에 대비해서 함정같은 것이라도 설치되어 있으려나?”


“아, 그건 아닌데……”

“새끼  말 돌리네…?”

“……”


싱긋 웃으며 말하자 그는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뭘 또 겁먹어? 내가 너 때린 것도 아니고.”
“……”


물론 조금 팬 건 있지만, 그건 단순히 대화의 수단이었다.


 대화가 물리적인 대화였을 뿐.

소소한 디테일은 넘어가자.


나는 잠시 고민한 후, 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멀찍이 떨어져 있을  있어?”
“……네?”

“일단은 말야. 우리끼리 이야기해 볼 게 있어서 말이지.”

“흐음……”


내 말에 연은 미심쩍은 눈으로 나와 샤오레이를 번갈아 보았지만, 이내 거리를 벌렸다.




그녀와의 거리가 어느정도 확보되었을 즈음, 나는 샤오레이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어때? 제대로  정보를 준다면, 이번에는 나도 진짜 진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줄 수 있는데.”

“이미 신뢰가…”
“날 여기로 데려온 건 연이잖아? 내가 어떻게 꼬드겼을까? 참고로 난 한국에도 주변에 여자가 아주 그냥 득실득실……”

“……일단 들어보죠.”



걸려들었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여심을 100%의 확률로 사로잡는 방법! 그 방법과, 이 제단의 정보를 맞교환하는 거지. 좋은 거래 아냐?”

“……그렇다면…”

멍청하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나름 숨긴다고 했겠지만, 그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한껏 드러나고 있었다.

확실히 이 놈, 거래자라는 스킬이랑은 전혀  맞다.

나는 현혹 스킬을 서서히 발동하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한  내리깐 채로.



“여자란 건 말이지, 의외로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어하는 동물이라고.”
“과시…요…?”
“이를테면 이런 거지! 내 남친은 명품 사 줬다, 내 남친은 날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 줬다, 뭐 그런거!”


“……하지만 제가 뭘 사줘도……”

나는 단번에 그의 말을 끊었다.



“당연히 무덤덤하겠지? 가진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상대의 진심을  원하는 거야. 때로는 손수 만든 초콜릿이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 스테이크보다도 맛있을 수가 있다고!”

“확실히…! 그,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봐봐. 네가 연의 남자친구야? 아니잖아? 그러면 네가 해야 할 가장  번째 단계는 뭘까?”


“……??”


“아, 새끼 얼굴만 개같이 잘생긴 주제에 쑥맥이네?! 일단은 고백부터 해야  거 아냐!”

“아!”

아는 무슨.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내리 눌렀다.



“그러면 생각해 보라고. 연같은 위인이 어떤 고백을 바랄까? 평생을 뒷세계에서 숨어 살아온 그녀라면?”
“으음…… 조금 어려운데… 아마 공개적인…?”

나는 과장된 말투로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공개적으로! 거기다가 누구나가 다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로 고백하는 거지! 바닥에 촛불로  하트를 그리던지 말야.”

“아하……! 그건 전혀 생각 못했어요! 하,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받아줄지는…”

낙심하는 그에게 나는 희망을 끼얹어 주었다.
그의 행복 회로가 활활 불타올라 사라질 수 있도록.


“멍청아. 연이 지금까지 니가 싫어서  받아줬을까? 이제까지 네 짓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겠지? 여기서 네가 그에 대한 만회도 하면서, 문제의 해결까지 돕는거야! 거기에 스케일 높은 고백까지 더해지면 일석이조… 아니, 일석 삼조 아니냐?”




“오오……!그렇군요! 확실히 일리가 있어요!”




일리가 있기는 개뿔이.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여러가지로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놈…… 어디 엿 한번 제대로 먹어 봐라.


어차피 거래니 뭐니 해도, 애초부터 내 조언은 ‘도움되는 조언’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개적으로 개쪽 당하고, 그러면서도 거래의 효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즈음, 나는 이미 한국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어야 깨닫겠지.



‘본인이 속았다는 사실을 말야.’



나는 태연함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어때, 이 정도 조언이면 댓가로 충분할까?”
“그럼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말에 나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자신 있게 살아, 짜샤! 자신 있게!”

이렇게 또 한명의 흑역사가 만들어 질 예정이었다.




*



“확실히, 저도 조금 이상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는 했단 말이죠? 일단 이상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기도 하구요.”

“확실히 그래. 아주 대놓고 그걸 숨기려 들고는 있지만 말이지.”




연, 그리고 샤오레이와 함께 거대한 제단을 살펴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걸려 있는 마법을 해제해 보려고 시도해 봤죠.”

“직접?”


의외의 눈으로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멍청해도 이런  직접 시도할 멍청이는 아닐텐데.

예상대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제가 산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시도했죠. 혹시라도 뭔가 터질까봐.”
“그래서?”

“예상대로…… 그 비싼 인형이 가루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순간 비친 광경을 똑똑히 봤어요.”

우리는 숨죽여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믿기 힘든 사실을 담고 있었다.



“이 제단 안에는 던전 게이트가 봉인되어 있어요.”

“……뭐?”
“거짓말이겠죠…?”


그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니에요! 진짜라구요!”

“아니, 생각해 봐. 아무리 제단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던전 게이트가 들어갈만한 크기라고 보기는 힘든데?”

“하지만 분명 떠올랐어요! 제가 똑똑히 봤는걸요?”

“확실히…… 공간 왜곡 계열의 마법이 동반된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대체 누가 그런……”


연의 말에 나는 낮게 침음을 흘렸다.


“……그만큼 놈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는 거겠죠.”

“저…외람된 말이긴 한데, 그 ‘베르톨도’라는 사람이 대체 뭐가 그렇게 위험한 건데요? 사실 제가 지시를 받기는 했어도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니라서……”



“……”



나는 잠시 한심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있어, 그런 놈이.”




그런 말로 대답을 얼버무리면서.

‘하기야, 이런 머리가   놈이니까 죽이지 않고 이용한 거겠지.’


적당히 시야를 공유해서 정보를 얻기도 좋았을 거고, 머릿속이 순수하니 배신할 염려도 없을 거고.


그렇다고 자신을 죽일 정도로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적당히 쓰고 버리기 좋은 말이라 생각했겠지.’

지금 와서 본다면, 이미 그가 의도한 대로 샤오레이는 충분히 이용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정작 본인은 아무런 자각이 없었겠지만.

“……야, 그런데 넌 인형사라며? 인형으로 싸우는게 주무기 아니냐?”

“예…맞는데요?”


“인형이 생각보다 비싼가? 왜 오늘 안 가져왔대?”




뜬금없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조금 비싸긴 하죠. 웬만한  한대 값은 나가니까. 근데 안 가져온 건 아니에요. 사실 아까 전부터 성역 근처에 와 있어요.”


“그런데? 나랑 싸울 때 썼어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저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직접 동행하는게 아니면 결계를 통과하지 못하더라구요.”

“미리 좀 들고 오지?”

“그래서 데려온 게 우앙 천 후에인데요……?”



“……”

얼빵하게 되묻는 샤오레이의 말에 나와 연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놈 하나 잡겠답시고 둘이서 이 생고생을 했었다니.




“……띨빵한 놈.”
“부정할 수는 없네요.”



“두 분 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너무한  너의 지능이 아닐까 싶다.


*


꽤나 늦은 새벽.

새벽 달빛을 받으며, 연은 무릎을 꿇었다.

성역 중심부에 위치한 제단.
던전 게이트가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연과 은가람은, 잠시 정비를 거친  내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렇게…… 또 한 명이 떠나갔네요.”


성역 안에서도 지나간 영웅들을 기리는 곳.
성역의 묘지에는 유난히 달빛이 잘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 오늘 그녀는  다른 신월의 인재를 묻었다.




“부디…… 그 곳에서는 가족들과 행복하길.”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남자.
몇 없는 S급 헌터로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뭇 헌터들에게 있어서 존경과 경의를 받는 그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는 그저 칭찬이 필요했던 어린아이였다.



“이래도 괜찮을까요……?”



그녀의 뒷편에 진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그렇게 물어왔다.




“이제 공식적으로 S급 헌터들은 전멸한 상태입니다.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

“……”



그림자 속의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은가람이라는 남자를 이대로 두는 것이 옳은가, 의문이 듭니다.”

“걱정이 많으시네요. 조금만  멀리 보셨으면…”


“예…?”



잠시 뒤쪽을 돌아봤던 그녀가 다시금 묘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바람은 불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기존의 분들에게는 그리 달갑지는 않은 바람이. 하지만…… 이대로 썩어 사라지는  보다는 나을테죠.”

“앞으로 흑사회는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견뎌낸다면 더욱 크게 성장할 수도 있겠죠.”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남자는 침묵했다.

연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흑사회는 분명 견뎌낼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에요.”

“상당히 그를 신뢰하시는군요.”
“그만큼 능력이 있으니까요.”


“……”



둘이 그렇게 침묵하자, 한동안 서늘한 공기만이 그들 사이를 나돌았다.


이내, 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는 크게 관계가 없었지만… 흑사회와 협회의 연결고리가 더 짙어질 거에요.”

“……무슨 말씀이신지…?”



연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차가운 미소를 얹은 그녀의 얼굴이, 달빛에 비치며 묘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마음의 준비를  두세요.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비교할  없을 만큼… 강한 폭풍이 불어닥칠 테니까요.”


*


“후우……”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걸로 벌써 몇 번째일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겁이 나는 그였다.



그의 손에는 전원이 꺼진 하나의 휴대폰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이 주간 잠들어 있던 휴대폰.
신월에  이후로는 연이 건내 준 전화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쓰던 것을 켜야 할 때였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2주밖에 안 됐는데. 괜히 호들갑 떨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우웅-
우웅-
우웅-




“……”


전화가 켜지자 마자 득달같이 몰려드는 문자 메시지.


현화를 비롯하여 현진이나 서현, 심지어는 세바스찬까지도.


읽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100통 이상 쌓여 있었다.


잠시간 벙 찐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해 갔다.


“하여간 이 놈들도 정상이 아냐. 게이트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사람 하나 실종된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랍시고……”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오랜 시간동안 혼자 생활했었기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새삼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였다.



“아무튼, 그리운 거야 그리운 거고. 일단은 해야 할 일이 먼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동안이나 이어진 신호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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