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92. 뭐? 찐따라서 안 들리는데? (92/114)



〈 92화 〉92. 뭐? 찐따라서 안 들리는데?

‘아…… 집에 가고싶다…’




S급 헌터인 우앙 천 후에이를 죽여버린 은가람.
그리고 그런 그를 찾아든 연.

자신이 생각했던 그림과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 샤오레이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비장의 카드와도 같았던 우앙 천 후에이였으나, 그가 죽어버린 지금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엄마 보고싶어요…’

진즉에 풀린 다리로 인해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그.


유난히 어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은 샤오레이였다.




*



“하아…… 어쩔 수 없죠. 그것이 은가람 헌터의 뜻이라면……


“……”

연의 말에 은가람은 아무런 말을 건내지 못했다.
이제와서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연은 그에 관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분명 다른 뜻이 있으실 테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허무하게 죽어버린 우앙 천 후에이에게로 다가간 후,  안에서 하얀 천 하나를 꺼내 그의 얼굴을 덮어 주었다.



“어쨌건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요.”

한 쪽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샤오레이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그녀.

그에 따라 은가람의 시선 역시도 그에게로 향했다.




“자, 그럼……”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걸음을 옮기는 은가람.

그런 그의 모습이, 샤오레이의 눈에는 사신의 그것처럼만 보였다.



“인형사 양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으으……!”




천천히 다가오는 그를 보며, 샤오레이는 맹렬하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설마하니 S급 헌터까지도 당해낼 줄은 몰랐다.

그만큼 은가람이 가진 전력은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자신을 얕보고 있는 지금이라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었다.
비록 인형사 스킬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 역시도 엄연한 헌터였으니까.

“후우……!”


그는 깊게 숨을 내쉬며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쩔 수 없군요.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




그의 몸에서 진득한 적의가 베어져 나왔다.

일순간, 그의 몸이 은가람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저를 얕본 것을 후회하게 해 드릴─”




*

“…죄송합니다.”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무릎꿇은 샤오레이.
의지는 좋았으나, 그는 은가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황당한 표정으로 은가람은 입을 열었다.



“뭐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허접이었잖아?”
“……”


그 쪽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안하나요?



그런 생각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샤오레이는 간신히 참아냈다.
괜히 입  번 잘못 놀렸다가, 여기서 세상 하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강한 것도 강한 것이었지만, 은가람의 파탄난 성격이라면 언제 자신을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거기다 우앙  후에이를 죽일 정도라면……’


아무리 기습이니 방심이니 해도 승산이 있을 리 없지.
그는 스스로 강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강한 상대를 쉽게 움직일 수 있을 뿐.


‘그렇지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뒤늦게, 괜히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연의 시야를 어느 정도 공유할  있었기에, 그 역시도 은가람이 강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우앙 천 후에이를 끌어들였던 것은 단순히 자신을보호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거래를 이용해서 연과 우앙 천 후에이를 속박한 것이야 잘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 못  짓 시킨것도 아니고, 자유를 뺏은 것도 아니었다.

그 이외에 자신이 연에게 잘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저 좋아한다고 따라다닌 죄 밖에는 없으리라.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응……? 뭐야?”
“어머…”


“야, 울어? 우냐?”


그의 눈물을 발견한 은가람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물었다.

“이런 썅, 뭘 잘했다고 울어?!”

인상을 팍- 쓰며 다그치는 은가람.
이번에는 샤오레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이씨……! 그럼 제가  그리 잘못했는데요! 내가 뭘 폭력을 썼어, 뭘 했어?!”
“우앙 천 후에이는?”


“아니, 아무리 나라도 당신이 얼마나 쎈줄은 알거든요? 그런 사람이 오는데 나보고 혼자 감당하라구요?”
“……엉?”


“아니, 애초부터 도와준다며! 도와준다고 그랬잖아! 흐어어엉~!”


“허……”

아예 대놓고 울음을 터뜨리는 샤오레이.
그런 모습 자체도 준수한 얼굴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은가람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내세운다는게 동정심 유발이냐? 가지가지 한다, 진짜.”

“내가 잘못한  뭐가 있어! 난 그저  사랑에 진심이었던  밖에 없다고! 이씽……!”



“잘못한 게…… 없다고요…?”


그 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연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왠지 모를 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무,물론…… 완전히 없다고는…”
“제 가족을, 제 손으로 죽이게 만든 주제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단 말인가요?!”



인형사 스킬의 속박으로 인해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못할 뿐, 그녀의 살기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에 움츠러들면서도 샤오레이는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내가 언제?”
“지금 기억 안 난다고 발뺌할……”

“애초부터 내가 건 속박은 그정도까지 되지도 않는다구요! 나 아니야!”

“……뭐?”


*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다.


삼합회 소속이었던 그들을, 코사 노스트라의 일원들이 죽여버린 것이다.


이제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의 그녀는, 그렇게 세상에 홀로 남았다.



그런 그녀를 돌봐 준 것이 다름아닌 흑사회의 고위급 간부들이었다.

[어쩌다 이런 어린 아이가……]
[쯧쯧……]


비록 범죄자들의 단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흑사회였지만, 일말의 인간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흑사회의 품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기에 어렸을 때 부터, 그녀는 스스로 또래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지 누구보다  알았고, 특히 자신이 소속된 흑사회가 얼마나 엉망인 상태인지 파악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의 비상함을, 그녀의 양부모가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의 흑사회가 많이 혼란하다는 사실은 너도  알고 있을 거다.]
[……]

이제 막 15살이 된 그녀에게, 그들은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아마 그 정도로 작금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제게 부탁하실 게 있는 건가요?]


자신보다 까마득히 어린 소녀에게 그는 부탁했다.


[네가 리더가 되어 줬으면 한다. 네가 그 위치에 올라 흑사회를 바로잡아 준다면……]


─지금의 고통은 곧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직 성인조차 되지 않은 소녀에게 거는 기대.


그만큼 그들은 절박했다.
자신의 딸과도 같은 그녀를, 죽음에 몰아넣어야만 했을 정도로.


그녀 스스로도 그 길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친부모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었으니까.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필사적으로 힘을 길렀다.
자신의 위치에서  수 있는 모든 것을  나갔다.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포기했으며,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가차 없이 죽였다.

아마 그녀가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샤오레이가 찾아온 것은.

[제…제가 돕게 해 주세요!]



꽤나 준수한 얼굴과 친근한 표정.
온 몸으로 느껴지는 호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이 악연의 시작이었다.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날 샤오레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찾아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흑사회의 리더로 자리잡기 직전.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었다.

[사실, 저는 ‘인형사’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로 미안한 말씀이지만……]

[……]



자신에게도 그의 ‘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괜찮아요.]


받은 도움이 적지 않았으니까.
스스로 그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그가 악의가 없다는 반증이라고 여겼던 그녀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그녀였다.




그 무렵부터, 샤오레이는 직접 찾아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인형으로 소식을 전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2년이 되지 않아, 그녀는 흑사회를 통솔하는 위치에 오를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스스로도 필사적으로 달려왔고, 옆에서 샤오레이 역시도 선뜻 힘을 거들어 주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기도 했고, 죽여야만  적이라면 망설임 없이 처단했다.



특히나 간세, 스파이에 관해서 그녀는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흑사회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라고…?]
[그들이 코사 노스트라와 연줄이 있다는 것은 이미 파악한 뒤다.]

[하,하지만……]


[그들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너와 친하다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그 점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  인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전해왔다.


[네가 하지 못하겠다면 다른……]

[……아뇨. 제가 직접 보겠어요.]
[좋을 대로.]



자신을 길러준 이들, 그야말로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가족들이 코사 노스트라의 스파이라는 사실이었다.



*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번째 가족마저 잃는다는 것…… 그것도 스스로의 손으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녀는 망설일 여지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가, 처음으로 인형사 스킬의 ‘속박’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너무 안일했죠. 인형사의 스킬로 그런 상황쯤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있었을 텐데.”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말하는 연.
이제껏 그녀가 보여줬던 분위기와 확연히 다른 모습에, 은가람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지만……”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여는 샤오레이였지만 연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제 손으로 그들을 죽이게 만든 주제에…! 저를 좋아한다고요……? 이제와서? 고작 그런 입에 발린 말에 제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입에 발린 말이라니요?! 난 그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잃더라도……! 설령 흑사회가 몰락하거나,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악을 지르는 연.

샤오레이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연모하는 사람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해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그런 죄책감에, 억울함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흐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가람이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


‘뭔가 이상한데.’



분명 연의 이야기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회귀 전에도 흑사회의 연은 온갖 해프닝을 겪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고, 스스로의 가족을 죽였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정사실이었으니까.

‘당시에는 그냥 독한 년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자의가 아니었을 줄이야.




‘하지만 뭔가 핀트가 어긋난 것 같단 말이지.’



직접 그렇게 일을 저질러 놓고 발뺌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제까지  바로 샤오레이는 그렇게 머리 좋은 놈이 아니었다.

오히려 띨빵하고 미련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지.

‘거기다 스스로 인형사 스킬의 존재를 밝혔단 말이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의심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괜히 스스로의 이미지를 만든답시고 불필요한 말을 꺼낼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더 큰데 말이다.



‘물론 그 정도조차 생각 못하는 바보라면 할 말 없긴 하다만……’


그랬다면 이런 식의 혼신의 연기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연, 이 녀석이 확실해?”
“제가 그 정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도  남자의 스킬로 인한 속박이 느껴지고 있는데.”


“물론 너라면  정도는 잘 알아채겠지만…… 만약 ‘중복’이라면?”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으신 거죠?”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샤오레이에게로 다가섰다.



“어이, 꼴통.”

“……왜요.”

“새끼 까칠하네. 하나 묻자.  여기 뭐 하러 있냐? 여기 성역인지 뭔지로 출입금지던데?”


그에 녀석은 나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잘도 들어오셨네요?”
“나야 힘이 되니까 강제로 침범한 거고. 근데 넌 뭐하러 와 있냐고. 굳이 여기가 싸움터일 이유가 있어?”



“……”

그에 녀석은 슬쩍 눈을 피했다.


이것 봐라?
 이럴 줄 알았지.

나는 한 손을 들어올리며 그를 재촉했다.




“확, 씨! 눈까리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더 때려 줘?!”
“아,아,알았어요! 마,말하면 되잖아요!”


“하아… 꼭 예절을 주입해줘야 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래서, 뭔데?”



잠시간 망설이던 그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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