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90. 열등감 덩어리 (90/114)



〈 90화 〉90. 열등감 덩어리

“큿…! 뭐가 그리 우습죠?”

“생각이란 걸 해. 연이 진짜로 너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싶었다면, 그런 ‘거래’를 하러 왔을까?”


“……뭐?”


“진짜로 니가 좋았다면 연인으로서 부탁을 했겠지. 결국 네가 날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한 치의 거리낌 없이 외치는 은가람의 말에 샤오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저를 너무 얕보는  아닙니까?”
“아닐걸? 너 별  없잖아.”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죠!”

“제발 해 보라니까?”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며 은가람은 몸을 살짝 긴장시켰다.
이미 피아식별은 진즉에 끝난 상황.
언제 공격이 날아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그러나 샤오레이는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저, 한 손을 가만히 들어올리며 입매를 말아올릴 뿐.


그리고 그에 반응하듯─

“?!”


투콰아아앙!!

─바람을 가르고 날아 든 청룡극 하나가 은가람을 강타했다.


*

‘조질 뻔 했네……!’

기습의 여파로 주변을 자욱히 메운 흙먼지.


산산조각 난 단도를 바닥에 버리며, 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체의 살기도 느껴지지 않은 공격.


만약 반응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박살난 건 단도가 아니라 내 머리통이었을 거다.



‘이 정도 위력에 청룡극이라……?’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재수 없는 얼굴.

나는 인벤토리에서 오각수의 뿔로 만들어 낸 두 개의 단도를 꺼내들며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다.


만약 내가 예상하는 놈이 맞다면, 전력으로 부딪혀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살아 있었군…! 재수 없는 한국인 새끼!”
“쯧…! 역시 이런 예감은 빗나가질 않냐.”

걷힌 연기 속에서 드러난 것은 헌터 협회 소속의 S급 헌터- 우앙  후에이였다.


“천하의 S급, 왕신휘 헌터가 여기는 어쩐 행차실까?”
“우앙.천.후에이!라고! 제대로 발음해라!”


탓-
콰아앙!!

바닥에 깊게 꽂힌 창을 빼들어 휘두르는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거리를 벌렸다.


“그거나 그거나. 확실히 여기가 베르톨도인지 뭔지랑 관련이 있나보네?”


“헛소리 하는군. 무슨 말을 지껄이는 지는 몰라도, 내가 그런  말에 휘둘릴  알고?!”



훅- 콰앙!콰아앙!

재차 이어져 오는 공격.
분명 그가 가진 것은 길어봐야 2미터의 창이었음에도, 체감되는 크기는 마치 20미터의 거창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아직까지는 할  하단 말이지.’


방어에 힘을 쏟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굳이 이런 곳에  있는 이유는 뭘까? 누가 봐도 이 너머에  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 게 뭐야?! 난 단순히 저 인형사와의 거래를 할 뿐이다. 너를 여기서 죽일 수 있도록 말이지.”

“그럼 나를 죽이려는 이유는?”



“……뭐?”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그의 움직임이 그제서야 멎었다.

‘아마  혼란스러울 거다.’


얼마 전 던전에서 탈출하는 순간, 내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서 만들어 낸 틈새를 같이 이용해 먹으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놈.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현혹 스킬을 한계까지 개방했었다.


균열을 일으킨 던전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은가람이 만들어 낸  덕분─ 이라는 사실을 인지시키기 위해서.

때문에 지금 놈의 머릿속에서는 나를 향한 증오와 감사가 맹렬하게 갈등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나마도  정도인 걸 보면 확실히 S급의 저항은 무시할 게 못 되네.’


왕천휘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딴 게 중요할까? 넌 처음 만났을  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래서, 저 인형사랑 거래를 했다?”

“덕분에 더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거든.”


비릿한 미소를 짓는 천휘.
그러나 나는 놈에게 조소로 받아쳤다.



“저 놈도 어지간히 멍청한 게 아닌데, 넌 더 하구나?”


“뭐라고?!”

“아, 미안. 멍청하다는 말은 컴플렉스였지? 어렸을 때 부터.”


“이 개자식……!”

빠득- 이를 가는 그.
그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근데 맞잖아? 애시당초 저 놈도 베르톨도의 끄나풀인데. 거기다가 ‘거래’를 했다는 의미를 제대로 모르냐?  결국 저 놈의 인형이 되었다, 이 소리라고, 이 등신아.”


“닥쳐, 이 개자식아!”



콰아아-!



내 말이 제대로 역린을 건드렸는지 그의 창 끝에 짙은 바람이 모여들었다.


쐐애액!

사람의 안력을 벗어난 속도로 쇄도해 오는 놈의 창.
그가 자랑하는 스킬 중 하나인 풍파창이었다.

‘저건  위험한데?’

나는 온 몸의 마나를 끌어올려  끝으로 집중했다.

콰가가가강!!


 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스무 번이 넘는 공격이 가해졌다.


최근 급격한 제약의 해제가 있었기에 간신히 막아낼  있었지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고역이 따로 없었다.


아마 오각수의 뿔로 만들어 진 무기가 아니었다면 채 3 번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히 부서져 나갔겠지.



‘하지만 나름 버텨볼 만 하다, 이거지!’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앞서 녀석의 속을 잔뜩 긁어 놓은 보람이 있었는지, 그의 움직임은 꽤나 커져 있었다.


콰앙!쾅!!


투콰악!



그만큼 위력이 강해 보기이는 했으나, 동작이 과도하게 커지면 그만큼 빈틈도 많아지는 법.



나는 방어에 열중하며 그 빈틈이 드러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피핏!


“?!”

미세하게 보이는 빈틈을 노린 나는 양쪽 소매에서 자그마한 단검을 빼들어 놈에게 던졌다.


“이깟 잔기술 따위!”


예상했던대로 쉽게 쳐내버리는 왕천휘.
그러나 내가 필요했던 것은 그로 인한 아주 작은 허점이었다.

놈의 신경이 분산된 틈을 타, 나는 공포잔상을 사용해 그의 뒤를 파고들었다.



 앞에 드리운 형상화된 두려움.

잠깐 사이에 드러난 그 틈을 타, 나는 녀석의 뒷허리에 단도를 박아넣었다.



푸욱-!

“끄윽?!”
“아프냐? 청춘이다, 새끼야.”

“지랄하지 마!”

후웅-!

곧바로 뒤로 창을 휘두르는 그.

상당히 깊은 상처에도 S급의 명성이 어딜 가지는 않는 것인지, 녀석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생각 이상으로 움직임이 느려졌는데? 의외로 쉬울지도……’



조금 전의 모습과 달리  자리에서 나를 노려보기만 하는 왕천휘.


나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너무 엄살 떠는거 아니냐? 너라면 그 정도는 버틸  알았는데.”
“비겁한 자식…!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싸움에 비겁하고 자시고가 어디있냐?”

“씨발…!”


“짜증나지? 아프긴 졸라 아프고, 분명 니가 더 강한데 왜 밀리는지도 모르겠고? 그게 바로 경험의 차이란 거다, 이 멍청아. 전투를 통해서 배우라고.”

꽤나 고통이 심했던 건지 놈은 내 도발에도 가만히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한 쪽 손으로는 허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붉은 피를 지혈해 가며.

S급의 몸을 가진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엄살을 떠는 놈을 향해, 나는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런데 넌 이제 배울 기회도 없겠구나? 여기서 죽을 테니까.”
“개…소리……! 죽,여…!버리겠어…!”


“책임 질 수 있는 말을 해. 그럴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내 말에 놈은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얼마나 세게 이를 갈았는지, 악다문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큿…! 약하지 않,아…!! 그,누구,보다…! 뛰어,난 헌…터가……!”

“이제 죽어라.”


 자 한 자 씹어 내뱉듯이 말하는 우앙 천 후에이.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나는 단도를 들어 놈의 목을 그어내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일순간 느껴진 묘한 위화감이 없었다면.


“음……? 잠깐,  설마……?”


*

그는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사촌도, 조부모도, 심지어는 하나뿐이었던 형 마저도.

어렸을 때 부터 그가 알고 지내던 ‘가족’들은 하나같이 학자의 핏줄을 타고 난 이들이었다.


다들 비상한 머리를 지녔고 뛰어난 학구열 덕에 무언가를 배워 나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던 이들이었다.



특히나 그의 부모는  때 이름을 날리던 연구원으로, 인류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천재라고 칭송받기도 했었다.


때문에 그가 태어났을 때에도, 그는 세상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나는 공부하는 거 보다 운동하는 게 좋은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를 쓰는 것 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했고, 뛰어난 두뇌 보다는 타고난 운동신경이 자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가족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엄마! 나 유치원 달리기 1등 했어!
-그래? 수학 성적은 어땠니?
-그건……



-아빠, 이번에 학교 체육대회에서 있잖아, 내가 최우수……
-너 곧 있으면 기말 아니냐?
-……

-복싱이니 뭐니 하면서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지 말고,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어?
-나 그래도 대회 준우승까지 했는데……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냐?

-……

자신이 무엇을 잘 하든, 그것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학문과 연구, 그리고 성적에만 기뻐하던 그들이었기에 그는 조금씩 작아져만 갔다.


이내 그는 집에서 아무런 대화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자신이 조금  잘했다면─

더 큰 무대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면 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그의 가슴 속에서 조금씩 타오르고 있었다.

때문에 가족들이 자신을 신경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뭐라 평가해도, 그는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연구원의 사이에서 태어난 주제에 운동이나 하려고 한다는 말을 수십  들었다.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기사가 나돌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걸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서.




하지만─

-저…저게 무슨……?



갑작스런 게이트의 개방.
이제껏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끔찍한 재난은, 그가 가진 삶의 이유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사람 몸 보다도 큰 거대한 마물들.
게이트를 넘어 온 그것들은, 인류를 유린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가족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크르르르……!
-으,으아아!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

눈 앞에서 가족들이 죽어가는 동안,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이 전부.



어차피 자신을 인정해 주지도 않았던 가족이니까─

그런 말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그는 있는 힘껏 내달렸다.



그렇게 그는 혼자가 되었다.





*

“크흐으……커헉…! 카학!”

몸을 뒤틀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우앙 천 후에이.
흰자를 까뒤집고 신음을 흘리는 그를 보던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젠장! 설마 싶었는데!’


오각수의 뿔로 만들어 진 칠흑 색의 단도.

분명 깊숙히 찔러 넣었음에도, 도신에는 자그마핫 핏방울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피가 도신으로 스며들었다는 건 결국 마물, 혹은 마인의 피라는 의미.



‘아직까지는 몸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어! 죽이려면 지금 뿐이다!’

나는 역수로 쥔 단도를 가차없이 그의 목에 찔러 넣었다.

푸욱-!


“?!”


그러나 내 공격은 그의 목에 닿지 못했다.

우앙  후에이가 손을 들어 단도를 막아낸 것이다.
그의 손을 관통한 단도.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크으윽…!크악!! 이렇게…쉽게 죽을  보냐!”

찌지직!


오히려 관통된 손을 밀어 넣어 도병을 붙잡아 왔다.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그.
새까만 눈동자를 둘러싼 흰자가 검은 색으로 점멸했다.

‘아직은 마인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충분히 기회는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만이 유일한 기회이리라.

나는 왼 손에 쥔 단도를 찔러갔다.




후우욱!


“?!”

그러나 그가   더 빨랐다.
내 손을 쥔 그가 나를 한쪽으로 집어던진 것이다.




쿠아앙!



“크헉…!”


입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한 번의 공격에 이 정도.
다행히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난 약하지 않아…!
-멍청한 게 아니라고!




설상가상으로 그의 몸에서 끈적한 사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놈의 사념에 침식되어 버릴게 뻔한 상황.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씨발, 진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자리에서 죽게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럴 확률이 현저히 높다고 봐야겠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어떻게든!’




다급한 마음만이 가득한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놈의 사념이 침식되어 들어왔다.

-단지 칭찬이 그리웠을 뿐이야…
-가족이잖아!


‘염병할,  닥쳐 보라고!’



사념 때문에 제대로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그로 인해 만들어  빈틈은, 결국 또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게 만들었다.

“일단 지금은……?!”
“죽어어어!!”



콰아앙!!

“쿨럭!”


입에서 한 웅큼 피가 쏟아져 나왔다.
고스란히 땅에 쳐박힌 나를, 놈은 곧장 따라붙어 공격을 재개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그의 사념은 계속해서 나를 파고들어왔다.




-괴물들이…!

-그런 놈들은 가족도 아냐!


-하지만 그래도……
-죽어! 괴물!


-강해져야만 해…… 인정 받아야만 해!

짧은 순간에도 수십 마디씩 들려 오는 목소리.


그 중에서  마디를 겨우 짚어 낸 나는, 입 꼬리를 말아올렸다.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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