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88. 딱 대
“……네?”
샤오레이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설마 상대가 거절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어……? 이,이게 아닌데?’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죠…? 혹시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그에 은가람은 몸을 뒤로 기대며 대답했다.
“이유고 자시고, 너무 조건이 좋잖아? 뒤가 구릴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든단 말이지?”
“뒤가 구리다뇨? 전 다만……”
“바로 5분 전까지 ‘수락할 수밖에 없는 거래’를 이용한 전술이니 뭐니 했던 게 너 아니냐?”
“……”
말 문이 막힌 샤오레이.
나름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뭐…… 사실 그게 이유는 아냐. 고작 그런 걸로 거래를 안 할 사람도 아니고.”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있지. 몇 가지…… 아주 많이. 자, 잘 들어봐? 내가 하나 하나 열거해 줄 테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 쪽에서 종이와 펜을 집어들었다.
“자, 하나.”
말을 건내며 펜을 놀리기 시작하는 그.
샤오레이은 자연스레 그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 완료의 조건이 너무 불분명해. 약을 먹인다는게, 먹이는 척만 할 수도 있고 한 방울을 먹이는 것일 수도 있고……”
“아, 그건…”
“닥쳐봐. 말 하고 있잖아.”
“넵.”
갑작스레 공손해진 샤오레이.
은가람은 말을 이었다.
“둘. 거래 완료의 시점이 언제인가도 불분명하지? 약을 먹였을 때냐, 아니면 내가 중국을 틀어쥐었을 때냐? 아니면 그냥 여기서 ‘하겠다’하면 완료야? 이상하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그게 크게 상관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했던 샤오레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스킬로 인해 완료 시점을 임의로 지정할 수 있지만,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스킬의 존재를 알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한 편으로 은가람이 약의 정체를 묻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마지막. 이게 가장 중요해.”
샤오레이는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서 돌아 온 대답은……
“너 처럼 얼굴 잘 생긴 새끼는 그냥 싫어.”
“……”
일순간 방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작스레 돌변한 샤오레이의 태도에 은가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하아……”
아카데미 C클래스 건물 옥상에서, 한진우는 하염없이 한 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일까.
그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카데미를 휩쓸던 한 학생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에휴……”
분명 골칫거리였던 녀석.
첫 날부터 대형사고를 치고 다니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으로 얼버무리던……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길이 뚜렷했던 녀석.
‘언제는 걱정하지 말라드만……에휴우……’
강헌권이라는, 나름의 인재를 발견한 것 역시도 은가람의 덕이 컸다.
제대로 헌터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의 마음이, 최근 들어서 조금씩 열리고 있던 것도 은가람의 영향이 컸다.
그 녀석이라면……
그와 같은 재능과 열정, 그리고 패기를 가진 녀석이라면 쉽게 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은가람이 실종된 이후로 어느덧 이 주 가까이 흘렀다.
여전히 그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우 쌤.”
“……?”
그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평소 자신의 연구실에서 잘 나오지 않던 차현화였다.
“……현화 쌤은 걱정도 안 되는가? 그 문디 자슥, 그라고 사라진 뒤로 벌써 이 주여, 이 주! 깜깜 무소식인게 뭔 일 난 거 아녀?”
“그건 아닐 거에요. 아시잖아요? 원래 좀 사차원적인 거……”
“아무리 그라도 말여! 하아…… 그 때 못 드가게 막았어야 허는 건디…”
“……”
자책하는 한진우.
그런 그를, 현화는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의 일도 그렇고, 지금도.
학생의 안위에, 그는 그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우 쌤은…… 항상 그랬었지.’
비록 남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런 한진우의 모습이 좋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가람이는 원래부터 이럴 계획이었어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뭐여……? 원래부터…?”
“네. 저한테 말했었거든요. 한동안 사라져 있을 계획이라고.”
─은가람이 비밀로 해 달라고 했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말해버린 것은.
*
쾅!
“으아악?!”
갑작스레 코 앞으로 다가선 샤오레이의 태도에, 은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
본능적으로 인벤토리의 단도를 꺼내들려던 그였지만, 간발의 차로 샤오레이의 말이 더 빨랐다.
“맞죠?! 그쵸!! 저 잘생긴 거!”
“……뭐,뭐?”
“방금 그러셨잖아요?! ‘저 같이 잘생긴’이라고! 저 잘생긴거…… 맞죠? 맞다고 해 줘요!”
“뭐 이런 씨……”
-발같은.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끝내 참아냈다.
“……그렇긴 한데… 왜 이래?”
떫떠름한 표정으로 되묻는 은가람을 향해, 샤오레이는 자신의 고민을 술술 털어놓았다.
답답한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듯, 양 손으로 테이블을 몇 번이나 쳐 가면서.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은가람을 인형으로 삼는다’는 계획은 묻혀버린 뒤였다.
“저도 제가 잘 생긴 거 알거든요! 근데!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구요! 이 정도면 넘어 올 만도 한데, 제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씨발같네, 진짜.”
이번에는 구태여 막지 않고 내뱉었다.
비록 샤오레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사실 제가 드린 그 약도, ‘사랑의 묘약’이라고…… 진짜 힘들게 구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이 놈 봐라……?’
그제서야 그는 대강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냥 직접 말하면 되잖아?”
“말해 봤죠! 몇 번이나! 그런데 거절당한 걸 어떻게 해요?”
“……그래서, 약점까지 잡고 행동에 제약까지 걸었다?”
“그,그건…… 어떻게……?”
“뻔하지, 뭐. 연이 제대로 말 못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그 정도면 반은 성공한 거 아냐? 네 멋대로 부릴 수 있을텐데?”
그의 질문에 샤오레이는 그제서야 다시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근데 그 스킬이란 것도 사실 완전하진 못하거든요.”
“뭐가?”
“행동이야 어느 정도 제약이 가능하고, 정도에 따라 감시도 가능하긴 하지만……”
“정작 진심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렇죠.”
처량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샤오레이.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이,이런…! 이렇게 술술 불어버리면……’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은가람에게 돌아 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오케이! 그럼 한 번 해 보자.”
“……네?”
“네가 말한 그 거래, 한 번 해 보자고.”
“저…정말요?!”
두 눈을 빛내는 샤오레이.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었다.
‘이게 바로 일석이조인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그에게 은가람은 인벤토리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내들었다.
일반적인 재질이 아닌, 통상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종이로 특수 가공이 된 종이였다.
“자, 그러면 일단은 조건을 정해 보자고.”
그는 계약서에 거래에 대한 내용을 차근차근 적어내려갔다.
“거래 완료의 조건은, 연이 사랑의 묘약을 음용한 시점. 내가 받을 보상은 전반적으로 신월 및 중국에서의 입지와 권력. 구체적인 사항은 차후 협력 하에 조정.”
“어…? 그렇게 해도 되나요?”
“왜? 구체적으로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어느 정도 있긴 한데… 미리 적어둬야 나중에 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잖아요?”
그의 말에 은가람은 손사레를 쳤다.
“됐어. 나중에 정하면 되지. 남자끼리 이런 고민까지 털어놨는데, 설마 사기를 치겠어? 안 그래, 거래자 양반?”
“하핫…! 그것도 그렇죠!”
멋쩍은 웃음을 삼키며 샤오레이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야, 생각보다 쉽잖아? 이러면 나중에 가서 발뺌해도 어떻게든 벗어날 순 있단 말이지…!’
결국 아직 어린 녀석이라 허술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은가람의 생각은 달랐다.
‘이 정도의 빈틈은 보여 줘야 진짜 허점을 못 찾지.’
사실 그는 처음부터 거래를 이행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애초부터 파기를 전제로 한 거래.
때문에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샤오레이의 스킬이 영향을 미치는 ‘거래 완료 시점’이었다.
그가 보상에 대한 허술한 대처로 빈틈을 보여준 것은, ‘거래 파기’에 대한 패널티를 어물쩍 넘기기 위함이었다.
“자, 그럼! 잘 해 보자고. 거래자 양반.”
“잘 부탁드리죠…! 은가람 헌터!”
각자의 서명을 마지막으로 작성이 끝난 계약서.
은가람은 은가람대로, 샤오레이는 샤오레이대로 음흉한 미소가 그들의 입매에 감돌았다.
*
[차현화_가 한진우_에게 비밀을 발설했습니다]
[차현화_가 당신을 배신했습니다]
[마력 +3]
“결국 말했구만? 흐음…… 진우 쌤이라… 상승한 스탯 양을 보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정도만 말했으려나?”
사실 진우 쌤 정도면 믿을만 하긴 하지.
갑작스레 사라진 게 미안하기도 했고.
아마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쌤이라면 지금쯤 또 땅 파고 있을 테니까……’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오히려 현화 쌤의 대처가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저나…… 매 번 보는 거지만, 이놈의 지도는 진짜 겁나게 넓네.”
하기야, 신월 자체가 넓으니 어쩔 수 없긴 하겠다만.
신월 게시판 옆쪽에 마련된 아카데미 지도를 훑으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신월로 넘어 온지도 어느덧 2주.
아직도 연이 말한 ‘엄한 장소’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한 상태였다.
‘직접 물어본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렇게 낙담하던 내 눈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지도의 한쪽 구석을 차지한 ‘빈’ 공간.
단순히 그려넣지 않았다고 보기 애매한 그 곳에는 그 어떤 문구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자그마한 기호가 작게 표시되어 있을 뿐.
나는 마침 지나가던 반 학생을 불러세웠다.
분명 이름이…… 리천 이었던가?
“리천?”
“어? 리웨이 쌤! 무슨 일이세요?”
“내가 아직 신월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데… 여기는 뭐하는 곳이야?”
“아아, 거기요? 거기는 성역이에요.”
당연한 듯이 대답하는 리천.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성역? 여기는 뭐 하는 곳인데? 왜 지도에는 아무것도 없지…?”
“그야, 성역이니까요? 웬만하면 출입금지라고 보시면 돼요. 선생님들 중에서도 거기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잘 없…”
그 때, 앙칼진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거에요?!”
“……?”
“안녕하세요, 니니 쌤!”
“리천, 너는 이만 가 봐라.”
다소 강압적으로 내쫓는 니니의 말에 리천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멀어져 갔다.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내게, 니니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리웨이 선생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 거죠?”
“아아, 여기 ‘성역’이라는 곳이 대체 뭐 하는 곳인가 싶어서 말이죠. 혹시 제가 가 봐도……”
“절대 안 되죠!!”
“……?”
기겁을 하며 말하는 니니.
내게 쌓인 것이 많았는지, 그녀는 그동안의 설움을 폭발시키듯 말을 내뱉었다.
“말이 되는 소리르 하세요! 성역이라구요, 성!역! 신월의 교사들, 혹은 교장선생님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아아… 그런가요? 혹시 그럼 허가는 어디서……”
“안된다구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제대로 된 수업도 안 하시고, 대체 뭐하시는 거에요?! 리웨이 쌤 덕분에 신월의 명성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거, 모르시나요? 제발 좀 그만하세요! 아무리 흑사회의 연님이 뒤를 봐 주신다고는 하지만…!”
속사포로 뱉어지는 그녀의 외침에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아, 알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안 가겠습니다, 네!”
“…진짜로 안 됩니다?! 얼씬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수업도 좀 성의 있게…”
“아, 알겠어요, 알겠어! 내가 미안했어요.”
그렇게 사과를 건내며 나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어휴…… 하여간 쌓인 게 많긴 하나보네.”
하긴,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하겠지만.
대놓고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시간만 떼우니 좋게 보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성역이라……’
뭔가 팍! 하고 감이 왔다.
연이 말한 장소가 분명 여기라고.
조금 전 까지 니니 선생에게는 안 가겠다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미 성역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일 당장 간다.’
딱 대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