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87. 뭔가 어설픈 놈 (87/114)



〈 87화 〉87. 뭔가 어설픈 놈

“하아,  찾아왔네요.”
“어떻게 좀 할  없을까요?”


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실랑이에, 신월의 교사들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 끝에 있던 교장이라고 다를  없었다.

그에게도 이렇다 할 대책은 없었으니까.


“아니, 대체 왜 저런대? 우리도 변명의 한계가 있는데 말야!”
“내버려 두게. 저러다 결국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겠지.”

“그러는 동안 우리 신월의 명성은 곤두박질 치게  거라구요!”



그들이 바라보는 실랑이의 중심에는 ‘리웨이’라는 이름의 기간제 교사가 있었다.


근 일주일간 제대로 된 수업은 흉내도 내지 않던 그.


당연하게도 학부모들의 원성이 빗발쳤고, 그에 다른 교사들이 대신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교사들의 노고를 알고 있다고 해도, 교장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네들에게는 달리 뾰족한 수가 있나?”


“그,그건……”


“얼마 전에도 학부모 중 한 명이 그와 겨뤄서 패배했지.  학부모는 A급 헌터 중에서도 중급 이상의 헌터였고 말야.”


“……”

“무엇보다 흑사회의 연이 뒤를 봐 주는 사람이야. 어지간해서는 흑사회가 개입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걸세.”


흑사회의 문하인 신월.

사실 흑사회의 일원인 교사는 거의 없었지만, 흑사회로부터 들어오는 지원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 리더인 연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범죄조직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마음에 안 들어!”
“말 조심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듣고 있을지 모르니까.”

“쳇…! 이게 나라냐고! 우이씨!”




씩씩대며 그녀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 이상 리웨이의 진상을 보고 있다간 홧병 나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

“여러분, 판에 박힌 공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답니다? 앞으로의 세계를 이끌어 갈 인재들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력과 독창성! 그리고 꿈을 향한……”

“개소리 집어쳐!”


기간제 교사 리웨이…… 아니, 은가람의 연설을 학부모는 가차없이 잘랐다.

자신의 아들이 일 주일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니까.


그것이 일반적인 학교든, 혹은 헌터 양성 아카데미든 상관없었다.



“창의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맞아! 니가 그러고도 선생이냐?!”



물론 다른 학부모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을 차분하게 둘러보던 은가람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그러면 본인들이 직접 키우시든가?”


“뭐…뭐?”


“맨날 천날 아카데미 쳐들어와서 그지랄들 떨면 지겹지도 않소? 쟤들을 봐, 쟤네들이 진짜 공부하고 싶은 애들인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턱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자신이 배정받은 반의 학생들이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뛰놀기 좋아하는 애들한테 공부를 뭐 하러 시켜? 거기다가 여긴 헌터 양성 아카데미잖아? 공부 잘하는 놈이 뛰어난 헌터가 아니라고.”

“궤변이야!”

“자, 한  생각해 볼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이 좋은 학생이 살아남을까, 아니면  잘 외운 학생이 살아남을까?”


“……”

물론, 은가람 스스로도 궤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학부모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자습을 계속 시키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두고 봐. 나중에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할 녀석들이 절반 이상일 테니까.”

“그,그러는 너는 대체 얼마나 뛰어난 헌터이길래……”

“A클래스 최상급. 못 미더우면 어디 상대라도 데려와 보시든가.”

“……”




그렇게 말하며 그는 조금씩 투기를 피워 올렸다.


묘하게 자신들을 압박하는 기운과 더불어, 은가람의 ‘현혹’ 스킬이 발동되자 학부모들은 자연스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식들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돌아보았다.


항상 그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부 뿐.


지금처럼 신나게 웃는 모습을 봤던 것이 언제였던가.


‘지금이 슬슬 타이밍인가?’

그렇게 조금씩 납득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물론, 그의 말은 전부 개 뻥.
 자신의 나태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당사자들은 그걸 알 길이 없다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는 ‘온화한 미소’라고 망설임 없이 부르는, 그 미소를.





*




“흐음……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거지?”




신월에서 마련해 준 개인 숙소.
꽤나 화려한 침대에 몸을 던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북경으로 넘어 온 지도 어느덧 일 주일.


연의 말에 따라 ‘엄한 곳’, 즉 출입이 제한된 것이라면 웬만한 곳을   봤다.


‘그런데 도통 감이  잡힌단 말이지.’

심지어는 치한으로 몰릴 각오까지 하고 여자 탈의실에까지도 들어갔던 나였다.

물론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서.




‘그렇다고는 해도 연이 미리 말리지 않았다면 진짜로 큰일 났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감시라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탈의실에 들어선 지 1분도 되지 않아 그녀가 나를 쫓아냈었다.

여긴 아니라고.

“하아…… 대체 어딜 말하는 거지? 아니,  보다 전에 봤던 그 남자가 더 신경쓰이는데……”

워낙에 신월이 넓다 보니 짚이는 곳이 너무 많았다.



‘다시 지도를  살펴 봐야 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리웨이 선생님, 안에 있나요?”
“……?”

어디선가 들어  목소린데.

나는 침대 위에 던져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아아, 역시 계셨네요.”
“……? 저 아세요?”


그곳에는 처음 신월을 방문했을 때 마주쳤던 남성, 연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말을 걸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
“아니, 저기요. 저 아냐고요.”

“……”


가차 없이 말을 끊자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울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지 못했네요. 꼭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었는지라……”
“얼마나 걸리는데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흐음…… 일단은 정보가 너무 부족한데. 결국 직접 맞딱뜨리는  밖에는 답이 없겠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이라면 들어드리죠. 들어오세요.”
“아아, 감사합니다.”


다행히 숙소에 접대용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기에 나는 그를 그곳에 앉혔다.




“이야기 해 봐요.”






*


‘오케이, 됐다!’

은가람의 말에 남자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은가람이 신월에 방문하던 첫 날부터 마주친 그.


사실 그는 꽤나 오래 전부터 은가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현재 그의 신분이 가짜라는 것도, 그리고 가진 능력이 꽤나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부릴 수만 있다면, 인형이야 강할 수록 좋으니까.’

그는 서두르지 않고 말을 풀어나갔다.
지금 당장 조급해  필요는 없었다.

“저는 전략 및 전술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샤오 레이라고 합니다.”



우선은 자기소개부터 시작하는 그.


아직 상대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일이 틀어져버리면 곤란해 질 수도 있었기에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으며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리웨이 헌터께서 최근 사용하셨던 교육 방침이 꽤나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같더라구요. 저도 그 이야기를……”



때문에 그는 우선적으로 상대의 경계심을 푸는 것을 목표로 했다.

상대가 누구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장장 15분간 그의 리웨이 예찬론이 펼쳐졌고……




‘아,  참 쓸데없는 이야기 겁나 하네.’


은가람은 속으로 그렇게 궁시렁대고 있었다.


“…따라서, 저는 리웨이 선생님의…”
“저기요.”

“…네?”


“빨리 끝난다면서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노골적으로 지겹다는 듯 대꾸하는 은가람.

남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

지금같은 반응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내 그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아, 미안합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네. 좀 많이 길더라구요.”

“크흠! 사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수업 내용에 대해 리웨이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고자 해서 말이죠.”

“수업…?”




“네. 등가교환, 즉, 무언가에는 그만한 댓가가 따른다는 기본적인 원리에 기반한 내용입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자그마한 동전 하나를 꺼내들었다.


“말보다는 직접 시연해 보는게 더 빠르겠죠. 저와 간단한 거래 하나만 하시겠어요?”

“거래요?”


“네.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이를테면 종이쪼가리라도 상관없으니, 제가 사도록 하죠.”


“흐음……”


잠시 미간을 좁히는 은가람.
그의 눈 앞에 자그마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샤오레이_님이 거래를 신청하셨습니다.]




“뭔가 떴는데요?”
“아아,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생겨버린 스킬의 영향이니까요. 아무런 해가 없습니다.”

“네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은가람은 [감지] 스킬을 사용했다.

일 주일 전, 제약을 대거 해제하며 감지 스킬의 등급 역시도 A+ 급으로 오른 상태였다.

그가 스킬을 발동시키자, 이번에는 그의 눈 앞에만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_거래자 로 인한 미미한 속박을 감지했습니다.]


‘상세 정보, 거래자.’

[상대와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다른 스킬(알 수 없음)과 연계된 상태입니다.]


[연계 조건 : 거래의 완료]

그의 예상대로, 샤오레이는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다.

‘새끼, 연기 한  더럽게 못하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삼키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조금은 더 대담해 질 필요가 있었다.



“어디 보자…… 이거면 되나요?”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끝에 잡히는 털실 하나를 내밀었다.

“네, 아무거나 상관 없습니다. 그러면 이걸로 거래는  거죠?”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은가람의 눈 앞에 떠 있던 시스템창에 [거래 완료]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몸 주변으로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감을 잔뜩 곤두세우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정도.


은가람은 감지 스킬을 재시전했다.


[스킬_거래자 와 연계된 스킬 감지]
[스킬_인형사 감지]



그제서야 드러나는 본래 의도.

그러나 자신의 스킬이 발각당했다는 사실을   없는 샤오레이는 ‘거래할 수밖에 없는 거래’ 라느니, ‘그로 인한 미끼작전’이라느니, 전술과 관련된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물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어거지로 짜집기 한 말들이겠지만.’



그제서야 그는 흥미있는 눈으로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이론에는 조금 빈틈이 많은데요.”
“……네?”

갑작스레 돌변하는 그의 태도에 샤오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거래할 수밖에 없는 거래라면, 조금  판돈이 크던가 해야죠. 사실상 이런 동전은 큰 메리트도 없잖아요?”
“무,물론, 단순한 예시를 든……”

“야.”

“……?”

그는 곧바로 직구를 던졌다.



“말 돌리지말고 똑바로 말 해. 거래하고 싶은 게 있는 거 아냐?”

“……!”



눈에 띄게 당황하는 샤오레이.

이내 그는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후훗…… 생각보다 더 눈치가 빠른 분이셨네요, 리웨이 선생님은.”
“앵간하면  솔직해 지자? 거래하러  사람이 신뢰도가 바닥이면 내가 거래를 하겠냐?”

샤오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실례했군요. 거래는 자고로 신용이 밑받침되어야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은가람 헌터.”

정확하게 본명을 짚고 들어오는 샤오레이.
나름 충격요법을 노렸던 그였지만, 이미 그 정도는 예상했던 은가람이었기에 담담하게 받아쳤다.


“그래서, 거래하고 싶은게 뭔데? 말해 두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한다.”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그저, 한 남자의 소소한 부탁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그마한 약병을 꺼내들었다.

손바닥 안에 딱 들어올 정도로 작은 보라색의 병.

의아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은가람에게 샤오레이는 말했다.




“흑사회의 연에게 그 약을 먹여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신월…… 아니, 흑사회 전체에서의 입지는 물론, 중국 전체를 쥘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최근들어 중국의 입지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이 가진 힘은 막강했다.

 세계에 몇 없는 헌터 협회 소속 S급 헌터의 보유국이기도 했고, 인구가 많은 만큼 소질 있는 헌터의 숫자도 많았기에 ‘게이트’라는 것이 발생한 이후로 점차 입지를 늘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라면 거절할  없겠지. 내가 가진 속내를 드러낸 지금이라면 더더욱 힘들 거다. 어지간히 이기적인 놈이라도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게 된다는 소리. 하물며 이 정도의 거래라면……!’



은가람이 수락할 것이라고, 샤오레이는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알지  한 사실이 있었으니……



“싫은데?”



은가람은 ‘어지간히 이기적인’, 비교적 평범한 범주에 드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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