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83.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 (83/114)



〈 83화 〉83.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

“던전 브레이크?! 말도  돼! 저 정도 크기를 가진 게이트가 붕괴한다면 그 여파는……”
“맞아. 어쩌면 이 도시 전체가 지워질지도 모르지. 런던에서 그랬던 것 처럼 말이야.”

경악하는 세바스찬의 말에 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연우와 경재석, 그리고 최하림은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가람 형님은 위험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S급 헌터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은서현이 차갑게 대꾸했다.

“뭔 호들갑들이야?”

“뭐라고? 야, 넌 걱정되지도 않냐?!”

“걱정은 무슨? 그 녀석이 그걸 모르고 갔을 리도 없고, 분명 무슨 수를 가지고 있겠지.”

“……”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세 명.
확실히, 자신들이 아는 은가람이라면 아무런 대책 없이 그런 일을 벌일 리 없었다.

이현진과 한주희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건 맞아. 길드 창설까지 말하던 형이니까, 어떻게든 대책을 가지고 있었겠지.”
“그놈 걱정을 뭐하러 해? 던전이 터져나가도 잘만 살아 나갈 놈인데.”

“그렇지만……”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 아닐까 하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혹시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하는 현진에게 현화가 물었다.

“뭐가?”
“사실 이틀 전에 가람이 형이 저희 아버지를 찾아오셨거든요. 혹시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 해서……”

“뭐 때문에 찾은 건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두 분 다, 그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셔서요.”

“흐음……”

잠시 고민하던 현화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뭔가 준비한 게 있다는 거겠지.그렇다고 안심하라는 소리는 아냐. 말했듯이, 녀석은 던전 브레이크를 단언했어. 내게 신신당부할 정도였으니…… 제대로 준비해 두는게 좋을 거야.”

“하지만…… 저희 힘으로 가능할까요? 현화 쌤이야 강하시지만……”

조금은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한아름.
현화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사실 따져 보면 우리가 그리 약한 전력은 아니잖아?”


세계 제일의 마도사, 차현화.
한  코사 노스트라에 몸담고 살아오던 라우라.
비상식적인 강함을 가진 한주희와, 은서현.

골든 헬리오스에서 이름을 날리던 세바스찬.

아직 학생의 신분이지만 꽤나 자질을 보이고 있는이현진과 경재석, 목연우, 그리고 최하림.

이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던전의 클리어는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A급의 던전을 거의 클리어한 경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균열은 조금 다르지 않나요? 지난 번에도 가람이 혼자서 처리했을 뿐이고……”

“그야 우리끼리만 막는다고 생각했을 때의 경우지.”

“원군이라도 있는 건가?”

세바스찬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꽤나 든든한 원군이 말야.”



*


“넌……? 어디선가……”

나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히는 남자.

‘멍청한 건 고칠 수 없나 봐?’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그의 속을 긁었다.


“기억력이 꽤나 나쁘시네요, ‘왕천휘’ 헌터? 지난 번에 회의실에서 한 번 뵀었는데……”

“……!!”


그제서야 떠오른 듯, 인상을 팍! 찌푸리는 그.
그는 곧장 자신의 창을 꺼내들고는 내게 달려들었다.


후우우웅-


무겁게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의 창은내  앞에서 멈춰섰다.


“개자식이…! 뒤지고 싶지?!”
“아아, 이제서야 생각났나 봐요, 우엉천 헤이 헌터?”

“우앙  후에이라고! 제대로발음  해?!”

“그거나 그거나.”

“씨발, 죽여버리겠어!”

이번에는 진짜.
저릿하게 느껴지는 살기를 받아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마인이 되기 싫나봐?”

“……!!”

금방이라도 내 목을 날려버릴 것 같던 그의창이 허공에서 멈춰섰다.

단지 그 뿐이 아니었다.

던전 안에 있던 모든 이의 행동이 정지했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것 처럼.

‘이런 기분은 또 오랜만인데? 전에는 진짜로 시간을 멈추긴 했지만.’

나는 내 목 옆에서 정지한 우앙 천 후에이의 창날을 손으로 부드럽게 걷어냈다.


“왜? 꽤나 의외인가봐,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있는게?”

“네…네놈이 대체 어떻게…?!”
“어떻게긴? 같은 배를 탄 상황에서 모를 수가 없지.뭐어…… 살짝 다르긴 하지만 말야.”

“그게 무슨 소리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유리가 끼어들었다.

‘보기 좋게 패닉한 우앙 천 후에이와는 다르네.’

예전부터 그녀는 이런 쪽에서 철저한 편이었다.

같은 협회 소속 S급 중에서 가진 힘이 약한 편에 속한 만큼, 그것이 그녀만의 생존방식이겠지.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 역시도 어느정도 준비해 온 상태였다.

“말 그대로야. B에게서 특별 임무를 받은 몸이니까.”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는 모양이네.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회귀 이후로 꽤나 많은 제약이 풀렸고, 또 동시에 빠르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  앞의 S급 놈들을 당해내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뭘 새삼스레? 멀리  것 없이, 이 던전도 B가 만들어 낸 거잖아?”


인공 던전과 마인.
아직까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분명 내부에서도 기밀로서 유지되고 있을 정보.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걸?’

쉽게 손을  수는 없겠지.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 세 명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 해? 작업 안  거야?”

“개소리 집어 쳐! 그런 정보야 어디서든……”
“너나 개소리 좀 집어치우지?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는다는 건데?”

“……뭐?”

“혹시… 다른 곳에 정보를 주고 있기라도 한 거냐?”

“……”

내 말에 천 후에이의 표정이 굳었다.

“분명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 거라 생각했는데? 인공 던전과 마인 개발에 기초가 되는 이론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말야.”

“확실히……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겠네.”


이번에는 타카하시 세츠나였다.

“그런데, 우리가 전해 들은 바로 너는 이번 계획에 없었는데? 뭐하러 여기까지 들어 온 거지?”

“그거야 너희들이 알 거 없고.”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네? 그렇다면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우리에게 돌아올 잘못은 없을 거고.”

싸늘하게 내뱉으며 살기를 피워 올리는 타카하시.

나는 입매를 말아올리며 받아쳤다.

“그건 그렇긴 하지? 그런데 어쩌나?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에 따라, 너희들이 압도적인 힘을 가질  있을  아닐지가 결정날 텐데?”
“뭐?”
“다시 말해, 내가 죽으면 너희는 마인과는 거리가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지.”

“웃기고 있네! 그깟 마피아 자식이 하는 걸 우리라고 못 할  알아? 너 따위 없어도……”


“그래서, 그 병든 이진명 하나 구슬리지 못한 거냐?”

“……!”

“그리고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생각해? 헛소리 할 시간이 남아돈다면, 닥치고 할 일들이나 해. 뭣하면 먼저 밖으로 꺼지시든지.”

“……쳇!”

내 말에 천 후에이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돌아서자, 나머지 인원들도 다시금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부분이야 있겠지만, 섣불리 죽일 수는 없겠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럼…… 차근차근 뜯어 보실까?’



*

“은가람이라…… 꽤나 재미있는 녀석이군.”


자신의 눈 앞에 떠오른 화면을 바라보며, 베르톨도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앞에는 십수 개의 스크린이 어지러이 펼쳐져 각기 다른 장면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박혀 있던 곳은 자신이 개방한 던전의 게이트.

조금 전  은가람이 몸을 던진 던전의 입구였다.

“가진 전력으로 따지면 S급에는  미친다만……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지난 번에도 그렇고, 지금까지 봐 왔던 객기 넘치는 놈들과는 사뭇 다른 녀석이야.”


케히빈 학회에서 발표를 한 것도 그렇고, 마인화가 진행된 살바토리오나 죠마르, 그리고 케히빈을 상대할 실력자.

‘하지만…… 어딘가 허술하단 말이지.’

은가람의 태도는 한 없이 조심스러웠다.

S급조차도 홀로 감당하기 힘든 게 마인이었다.

그런 마인을 제압할 만큼 강한 힘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조심스러울 리 없을 터.

강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결국 가진 힘이 제한되어 있거나, 그에 대한 댓가가 따르는 거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힘을 증폭시키는 스킬일 수도 있겠군.”


문제될 것은 없었다.

지금 당장에 그가 설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굴겠지.

그럼에도 그는 협회 소속의 S급 헌터들에게 별다른 언질을 주지 않았다.

‘어디 날뛰고 싶은 만큼 날뛰어 봐라. 가장 높은 곳에서, 네놈이 의기양양해 있을  때 먹어치워 줄 테니까.’

꽤나 강한 힘을 가진 적의 등장.

그럼에도 그는 여유로웠다.

자신이 가장 강한 헌터인 양 설치는 놈이, 절대적인 포식자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절망할지……

그것이 가장 기대되는 베르톨도였다.


‘이번에 살아 남는다면, 내 앞까지 찾아올 수도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단지 그 뿐.’

그런 생각을 삼키며 그는 그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방법은 생각 외로 다양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것이 던전의 방치.

개방된 던전을 공략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 속에서 성장한 몬스터들로 인해 던전의 등급이 상승하거나, 던전 자체가 가진 허용량을 초과하게 되면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같은 경우는 해당이 안되지.’

이미 던전 내부로 S급의 헌터가 들어선 이상, 공략을 하지 않고방치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인위적으로 몬스터들을 급성장시킬 수도 있긴 한데……’


던전의 내부로 진행될 수록 몬스터의 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각 개체가 가진 힘도 조금씩 강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그들은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를 그저 무시할 뿐이었다.

‘A급 헌터들을 제물로 삼는다면야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이래서는  방법도 그리 설득력이 없어.’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모종의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봉인된 다수의 각수들을 던전 내부에 푸는 것 역시도 방법의 하나였다.


‘이녀석들이라면 이각수나 삼각수 몇 마리 쯤은 봉인시킬 힘이 있을 테니……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가.’

물론 다른 아티팩트 역시도 존재했다.
기억파편이라는 아티팩트라면 이런 용도로 안성맞춤일 테니까.


‘하지만 기억파편 같은게 이런 곳에 있을 리도 없고……’

그렇게 확신한 나는 근처를 걷고 있던 성유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굳이 시간을 끌어야  이유라도 있는 거야?”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이들.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각수를 풀 거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문제는 없을 듯 한데 말이지. 삼각수 정도라면야 여기 인원으로도 문제는 없을 거고.”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

순간 그녀의 눈에 의심의 빛이 감돌았다.

“어? 아니었나? 내가 듣기로는 아티팩트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티팩트로봉인한 각수를 이용한다면 쉽게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을 거고.”

“……”

잠시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응시하던 성유리가 물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사항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나봐?”
“너희도 내가 하는 일은 모르잖아?”

“……하아. 물론,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맞아. 하지만 각수를 푸는 것과는 조금 달라.”

“다르다고? 설마하니 기억파편 같은게 이런 던전에 있을 리는 없는데……”

짧은 순간 굳어지는 그들의 표정.
나는 내가 정확하게 짚었음을 확신했다.

‘진짜로 기억 파편이 있다고? 말도 안 돼!’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타워에서나 발견되는 기억파편을 이런 곳에서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타워의 저층부라면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구할  있는 아티팩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심 놀라는 나를 향해 우앙  후에이가 말을 이었다.

“멍청한 놈아, 니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는 아냐. 무슨 수를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베르톨도인지 뭔지 하는 놈은 이 던전의 심층부에 그걸 심어놨으니까.”
“흐음……”

“듣자하니 뭐, 던전 내부에서직접 만들어 낸 거라고 하던데…… 그거야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 우리야 가서 그걸 가동시키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흐음……”

던전 내부에서 생성이라.

그렇다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던전 내부라면 타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고, 실제로  점을 이용해서 아티팩트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도의 고급 아티팩트를, 이런 인공 던전에서 만드는게 가능할까?’

묘한 불안감을 안고,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이렇다 할 전투도, 긴장감도 없는 행군의 연속.

약 30분 정도를 더  후에서야, 우리는 던전의 최심부, 보스 룸의 코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회색 빛이 감도는 돌로만들어진 거대한 문.

굳게 닫힌 그 문 앞에, 자그마한 제단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여러 가지 마법으로 봉인된 하나의 물건이 기이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음……? 잠깐만, 저건……!’

그리고, 가까이서 그것을 확인한 나는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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