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82. 반갑습니다~!
“뭐야, 대체 어떻게……?”
“‘어떻게’는 지랄! 내 고유 권능이 뭔지 모르냐?”
분명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불쑥 나타난 은서현.
“아, 하긴……”
녀석은 낮게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놈은 생각보다 더 강해. 내가 고유 권능으로 녀석의 스킬을 침묵시키지 않았으면, 이미 놈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다 알아챘을 거야.”
“역시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거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현화 쌤을 향해, 나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저 놈도 선택자일지 몰라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지.”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저 정도의 영향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더 납득이 갔다.
“놈이 어떤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까?”
“그걸 지금부터 잘 찾아봐야죠.”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택자의 권능이란 것은 말 그대로 고유 권능.
어떤 능력이 어떻게 주어질 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당사자가 직접 입을 열지 않는다면 알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기사, 지금 내가 가진 권능부터가 제정신이 아닌데…’
세상에 이기적인 행동으로 힘을 주는 변태같은 초월자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베르톨도인지 뭔지 하는 놈 역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다면……’
조금의 정보라도 더 얻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베르톨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
“약자…… 피식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비참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겠죠.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설령…… 베르톨도님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인다고 하셔도 말입니다.”
라우라는 비장했다.
지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을 위해 준 이들을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길이었다.
베르톨도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지금 당장 죽일 필요는 없지. 정 원한다면 할 수 있는 만큼 발버둥쳐 보아라. 그것이 죄인의 편에 선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일 테니.”
그의 목소리에서 배신감이나 실망,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에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게 될 터.”
그런 말을 남기며, 그의 몸은 서서히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갔다.
그가 조금 전 까지 있던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라우라.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어리석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5주간이나 잠들어 있었던 그녀.
상식적으로라면 언제 죽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니, 그 자리에서 건물이 붕괴하며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합리적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은서현은 몸을 던져 자신을 살렸다.
차현화는 죽어가던 자신을돌봐 주었다.
언제 자신을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을은가람도, 이현진도……
분명 적이었던 그들.
그러나 자신 역시 ‘그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해 준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왔던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1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대우는 자신에게 너무도 과분한 것들이었다.
그것이 감사해서라도, 라우라는 그들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라우라!”
“……?”
사색에 잠긴 그녀의 귓가에, 현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온 것인지 은가람과 은서현도 함께였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을 살피며 걱정의 한 마디를 건내는 그들에게 라우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어리석더라도 괜찮아.’
설령 죽는다고 해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 녀석이, 코사 노스트라의 수장인 거지?”
늦은 밤, 불이 켜진 현화의 연구실 안.
은가람의 질문에 라우라는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톨도프로벤차노…… 코사 노스트라의수장이면서 실질적으로 전력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야.”
“그런 힘을 가진 주제에 알려진 게 없다니……”
“헌터 협회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긴 한거야? 저런 녀석 하나 못 찾고……”
인상을 찌푸리며 내뱉는 은서현의 말에 은가람은 고개를 저었다.
“못 찾는게 아니야. 오히려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거겠지.”
“그 말이 맞아.”
라우라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이미 헌터 협회에도 베르톨도의 영향력이 미친 상태야.”
“거기에 S급 헌터는 이진명 회장님을 제외하면 전부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헌터 협회가 이 정도면…… 다른 곳도 무사하지는 않을 거야.”
“……!”
경악하는 은서현.
라우라는 놀란 듯한 눈으로 은가람을 돌아보았다.
‘분명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코사 노스트라]라는 이름 자체는 꽤나 악명을 떨치고 있으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코사 노스트라는 헌터 협회와 척을 지고 있는 상태.
둘의 상관관계를 이토록 쉽게 간파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벌써 거기까지 알아냈을 줄이야……!’
베르톨도의 강함은 그녀가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끝은 비극일 것이라고 확신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과연 어떨까?
이들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그러한 기대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문제는 정작 그놈의 베르톨도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인데.”
“본체가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한 상태고요.”
“라우라, 혹시……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은서현의 질문에라우라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 있는지는 몰라. 단 한 번도 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까.”
“뭐……?”
“아까 전 그랬던 것 처럼, 항상 분신을 보낼 뿐,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작정하고 찾으려고 해도 못 찾았고.”
“흐음……”
“이거 점점 어려워지네…?”
미간을 찌푸리며말하는 현화.
위치만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기습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지금은 가망이없었다.
그 기습 자체가 유효할 지도 의문.
라우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
“뭔데?”
“말해 봐.”
“그는…… 초월자의 선택을 받은 선택자야.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말을 이어가고 있을 때 였다.
“잠깐!”
“……?”
심각한 표정의 현화가 돌연 그녀의 말을 막았다.
우우우웅……!
밖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마력의 파장.
“이건…?”
“뭐가? 왜 그러는 건데?!”
다급하게 창문을 열어젖히는 현화.
먼 곳을 향하는 그녀의 시선 끝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옅은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설마……! 게이트가?!”
먼 거리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짙은 마력 반응.
적어도 A급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규모의 게이트였다.
경악하는 그들의 귀에, 라우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톨도는 이미, 인공 게이트를 열 수 있어.”
*
[A급 규모의 게이트 발생. 반경 5km 내의 시민들은 즉시 대피소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오전 7시 27분.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대피 방송이 울려퍼졌다.
“아, 뭐야 진짜?”
“한동안 조용하더니만……”
대피소로 이동하며 사람들은 저마다 불만을 토로해 냈다.
거대한 규모의 게이트가 출현했음에도 그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큰데?”
“이렇게 큰 게이트인데도 사전에 못 찾고 뭐 하는 거야? 협회 놈들 진짜 일 안하네.”
“공무원이잖아? 어련하겠어.”
이미 게이트나 헌터라는 것은 더 이상 그들에게 위협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 시간에 대피할 수만 있다면 안전은 보장되어 있었으니까.
“하긴, 이래봬도 S급이 왔는데.”
“알아서 잘들 하시겠지.”
더군다나, 게이트의 앞에 포진한 S급 헌터들을 본 이상 그들이 두려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협회 소속 S급 헌터 중 하나인 우앙 천 후에이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덜떨어지는 천민 놈들.이런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말야.”
“그놈의 천민이니 뭐니 좀 그만해. 언제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거야?”
“닥쳐, 타카하시. 힘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가 더 우월한 건 사실이잖아? 고작해야 하급 몬스터 따위도 상대 못하는 놈들인데.”
“에휴……”
자신의 창을 목에 걸친 채로 건들거리는 그를 바라보며 타카하시 세츠나와 성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쯧…! 한숨은. 여튼, 그 놈도 꽤나 별종이야? 이런 곳에 게이트라니.”
“말 조심해. 괜한 말은 안 하는게 좋아.”
“이런 놈들이들어봐야 뭘 안다고?”
대놓고 헌터가 아닌 사람들을 무시하는 그.
스스로도 조심해야 함을 알고는 있었기에 그 이상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규모의 게이트를 바라볼 뿐.
문득 성유리가 입을 열었다.
“타카하시, 활성화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아마 빠르면 사흘…… 늦어도 7일 이내로는 열리겠지.”
“이진명은……?”
“……”
침묵하는 타카하시 세츠나.
잠시 후,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마 오지 않겠지. 만에 하나 온다고 해도…… ‘그’가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야.”
*
“믿을 수 없어. 대체 어떻게 저렇게 갑작스런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거지? 더군다나 마력의 팽창 속도가 말이 안 될 수준이라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게이트를 바라보는 차현화.
그에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라우라가 말했잖아요? 생각했던 것 보다 때가 빨리 이른 거겠죠.”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넌 지나치게 침착한 거 아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인공 던전을 만들어 낸다는게?”
“언제가 되었든 실현됐을 일이에요. 제가 섣불리 이론을 발표하면서……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
현화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그랬었지. 인공 던전을 여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고. 설마…… 그래서 케히빈 학회에서의 발표를 꺼렸던 거야?”
“맞아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힘을 전부 되찾지 못한 시점에서 유명세를 타는 것은 위험요소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해. 저 녀석들은 어떻게 벌써부터 알고 온 거지? 아무리 헌터 협회에서 미리 감지를 했다고 해도 너무 시기가 빠른데.”
“뒤가 구린 놈들이란 거죠.”
“……역시 헌터 협회 마저……”
지난 밤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는 미간을 좁혔다.
“열린 시점이나 장소를 고려해 보면, 라우라가 목적일 가능성이 크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다시 말해, 저 던전이 붕괴할 가능성도 높다는 거고.”
은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 던전의등장과, 인위적인 던전 브레이크.
이전이라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을 차현화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골드 코스트에 갔을 때 부터 예견할 정도면……’
자신 역시도 천재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어왔었다.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 때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 최고의 마도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그녀.
그런 그녀였지만, 바로 옆의 은가람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향해, 은가람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 이야기 잘 들어요.”
*
갑작스레 나타난 게이트가 열리는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이트 파장의 출현 이후 6일.
여타의 평범한 게이트에 비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그럼에도 협회의 헌터들은 그리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그들.
S급 헌터 세 명과 다수의 A급 헌터들로 구성된 원정대는 게이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협회의 헌터들이 전원 입장하자, 그들 중 몇 명은 곧바로 게이트 봉쇄 작업에 들어갔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훼방꾼을 방지하기위함이었다.
“대체 그놈은 무슨 생각인 걸까?”
던전의 내부로 들어선 성유리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슬슬 준비가 된 것 아닐까?”
“뭘들 그렇게 떨고 있는 거야? 개수작 부릴 것 같으면 죽여버리면 그만인데.”
“그래도 뭔가 미심쩍단 말이지.”
사뭇 진지한 성유리의 말에 우앙 천 후에이는 조소를 머금었다.
“그래봐야 일개 마피아일 뿐이잖아? 끽해봐야 던전인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란 말이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기는 했지만, 타카하시 세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건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는 마, 성유리.”
“그럴까…?”
“그래, 이 겁쟁아! 우리야 적당히 놀다가 그놈의 베르토인지 뭔지가 시킨 대로 균열만 일으키면……”
말을 이어가던 우앙 천 후에이의 미간에 깊은 골이 잠겼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막 봉쇄 작업이 끝나가는 게이트.
낯선 마력 반응이 느껴진 것이다.
“어……?”
“이,이건?!”
당황하는 협회 소속 헌터들을 향해 우앙 천 후에이가 소리를 질렀다.
“뭐야?!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봉쇄 안 해?!”
“그,그것이……”
“저희도 하고 있습니다만…!”
“헉……!”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누군가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직후 닫혀버리는 게이트.
난입한 남자의 모습을, 우앙 천후에이는 어디선가 본 적 있었다.
“휘유~!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네! 다들 반갑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