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81. 밤 산책 (81/114)



〈 81화 〉81. 밤 산책

“그런데…… 저 꼬마는…?”
“그러게. 나도 처음 보는데…”

대항전 마지막 날 처음 본 소녀.
라우라를 향해 눈짓하며, 경재석과 목연우는 수근거렸다.

은가람이 주변에 사람을 잘 두지 않는 만큼, 낯선 꼬마의 등장은 어색했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오해한 은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발,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뒤질래?!”
“너보고 말 아니거든?!”
“찔리냐?”

“뭐?! 이런썅!”

“하아…… 제발 조용히들좀 해.”

옆에서 듣고 있던 한아름이 이마를 턱-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녀의 만류에도 경재석과 목연우, 그리고 최하림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한아름은 그저 조용한 모범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은서현에게 말했다.


“네가 강한 건 알지만, 우리라고 맨날 놀고 있던  아니거든?”

“……조용히 좀  달라니까? 정신사나워.”
“얘들아, 그만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옆에서 이현진이 말려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현진이 은가람에게 패배한 이후 많이 순해졌다고 여길 뿐이었다.


그들은 한아름의 본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현진이,  조용히 해 봐. 물론, 우리가 너에 비하면 약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예전의 우리가 아니라, 이거야! 이래봬도 가람 형님의……”

결국 한아름은 인벤토리에서 삼각수의 뿔로 만들어진 도끼를 꺼내들었다.

후웅-콰직!!

“……!”

일순간 주변을 무겁게 가라앉힌 정적.

이현진과 세바스찬, 그리고 은서현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씨바알……! 내 말이  같지 않냐?! 셋 다 여기서 족쳐 줘?!”

“……”
“…어…어?”

너무나도 충격적인 반전에 얼어버린 셋.
한아름은 거침없었다.


“‘어?’는 지랄! 뭘 꼴아?! 황산에 담가서 숨쉬게 해 줘?!”

“아니……그게…”
“미,미안!”


“푸하하핫!! 너네들 코미디 찍냐?”


자신있게 나섰던 것과 달리 곧바로 꼬리를 내리는 세 명.

 광경을 옆에서 바라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한주희의 웃음소리만이, 한동안 교실을 가득 채웠다.


*


“라우라 페란테라고한다. 잘 부탁한다.”

“네에……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한아름의 일갈로 인한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세 명은 어색한 표정으로 라우라의 인사를 받았다.

그녀가 교실 바닥에 깊게 박아 놓은 도끼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물론, 라우라의무거운 분위기 역시도 한 몫 했다.

‘어린 애 맞아…?’
‘뭐야, 이거… 무서워……’

‘엄마 보고싶다……’

살아  환경 자체가 남달랐기에 라우라에게서 느껴지는 음침한 분위기는 그들을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뭔가 이상해.’

그런 어색한 상황 속에서, 서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코사 노스트라에서 버림받았던 소녀, 라우라.

만난 지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자로서 서현은 라우라의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현재 주변에 있는 그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낯선 환경 속에서 조금씩 적응해 가는 라우라의모습을 보며 그는 내심 안도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뭔가……’


오늘들어 뭔가 찝찝함을 지울 수 없는 그였다.

평소에도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라우라였지만, 오늘만큼은 유난히 이상했던 것이다.


‘은가람이라면 분명 알아챌 것 같았는데…… 그런 기색은 없었어. 아무래도 직접 알아봐야겠어!’



*

“후우……”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라우라는 홀로 기숙사를 나와 거리를 거닐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뺨을 스치며, 새하얀입김을 만들어 냈다.

‘3일…인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시간.
차갑게 식은 공기와 소리마저 사라진 듯한 고요한 분위기.

그녀는 그러한 적막이 좋았다.

베르톨도가 자신을 찾아 온 후로 3일.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을 찾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자신을 버린것일까.

그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너는 이제부터 우리들의 가족이다.]

언젠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건내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처음으로 느껴 봤던 ‘가족’이라는 유대감.

 방향이 잘못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감정이었다.

힘들더라도 그들을 떠나야만 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을 알게  준 서현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인정해야만 했다.

‘거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라는, 사실을.

“여전히 밤 산책을 즐기는군.”
“……!!”

그런 그녀의  앞에, 낯익은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톨도 님……”
“많이 동요하고 있는 것 같군. 감정을 드러내다니…… 너 답지 않아.”

“……죄송합니다.”


마음 한 켠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두려움을 누르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까지 그녀의 표정에 드러나 있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아 갔다.


“아니, 죄송할 필요는 없어.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니까.”
“……”
“하지만…… 네가 나를 떠난다면 나는 많이 섭섭하겠지.”

“……!”

가라앉았던 그녀의 속마음에 다시금 동요가 일었다.


“머리가 좋은 너라면 기억하고 있겠지. 네게 직접 건냈던 그 말…… 너 역시도 우리의 ‘가족’이라는 말을 말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러니…… 이제는 돌아와라.”


라우라의 두 눈이 떨렸다.

그의 앞에서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그녀는 동요하고 있었다.

“코사 노스트라에는 아직 네 힘이 필요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제서야 겨우, 자신은 인정받은 것일까.

진정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의 곁이었던 걸까.

‘지금이라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려던 라우라.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갈데 없는 어린애를 그냥 죽게 버려두는…… 더군다나 살려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는데도 그러는 사람은 없어.]

자신을향해 차를 권하던 차현화의 목소리.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가진 은서현의 얼굴 역시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결심을 내뱉었다.

“베르톨도 님께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미 마음은 정한 건가.”

“오갈 데 없던 저를 받아주고,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살바토리오 님이나…… 가족으로 받아들여준 베르톨도 님. 알론조 님. 코사 노스트라의 모두에게 받은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응시하는 베르톨도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코사 노스트라에 받아들여진 이래 처음이었다.


“저는 이제, 저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이어떤 길이든.”
“그렇군.”

비장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베르톨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떠한 분노나 감정의 표출도 없었다.

그저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듯이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의 너는 죽는 것이 코사 노스트라에 가장 도움이 되겠구나.”


*


‘베르톨도? 저 녀석은처음 보는데……’
‘전에 잠시 들었던 ‘B’라는 녀석 아닐까요?’

‘이 정도로 자신을 철저하게 숨길 정도라니… 그것만 해도 쉽게 볼 녀석이 아니야.’

하이드_Hide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차현화와 은가람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저 녀석, 진짜가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기척이 느껴지는데……’
‘그러니까 더 이상하지. 분명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지는데, 본체라고 하기에는 뭔가 빠져 있어. 아마 고위 스킬을 이용한 분신 정도라고 볼 수 있겠지.’

‘여기서 현장을 덥치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겠네요.’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아직 상대가 자신들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까.

그들은 한껏 귀를 기울여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라우라가 저 정도로 동요한다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여차하면 라우라를 죽여야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서현이는 괜찮을지……’

‘……’

은가람은 입을 다물었다.
분명, 라우라를 죽이는 것은 은서현에게 달갑지 않을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을 생각은 없어요.’

‘결국…… 라우라가 어떻게 행동할 지가 관건이겠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자신은 망설이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라우라가 올바른 선택을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하지만…… 저는 이제, 저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어떤 길이든.]

‘후우……’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네.’

확고한 라우라의 대답에,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더 큰게 남아있긴 하지만요.’
‘베르톨도라는 저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 봐야겠네.’
‘그 전에  녀석이 가진 힘이 얼마일지도 모르니……’

‘일단 이 정도의 마법으로 숨을  있는 걸 보면 의외로 할만할 지도 몰라.’

‘방심은 금물이지만 말이죠.’


물론, 현화의 마법 실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을 감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상태로도 전투가 가능하다는 거야.’
‘그렇다는 건……’
‘우리가 라우라를 지켜야 할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

현화의 말에 은가람은 낮게 혀를 찼다.

정보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그였다.

베르톨도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대한 그의 인지 범위 밖에서 기회를 보는 것이 유리했으니까.

‘까짓거, 한 번 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자신에게 걸린 제약도 꽤나 풀린 상태.

그가 그렇게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들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으려면 제대로 숨지 그래?”

“……?!”


*

“으음……? 이건…! 팀장님, 이거……”

여러개의 스크린을 바쁘게 관찰하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그가 가리킨  끝에서는 게이트의 파장을 나타내는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꽤나 큰  아닙니까? 뭔가 이상한데……”

그에 단상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중년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군. 얼마  갑작스레 개방되었던 던전과도 비슷해.”

“이대로 둬도 괜찮은 겁니까? 이 속도로 가자면 적어도 이틀 안에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그의 목소리.

화면에 드러난 규모와 속도를 생각해 본다면 그리 무리도 아니었다.

일반적인 게이트에 비해 속도 역시도 만만치 않았지만, 문제는  규모였다.

작게 봐도 A급, 어쩌면 S급의 던전이 한국에서 개방될 지도 몰랐던 것이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던전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팀장’이라 불린 중년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말게. 지난 번에도 무리 없이 해결하였지 않나?”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S급의 전력을 사용할 때지. 내가 직접 연락을 넣어 둘테니 걱정하지 말게.”


“예에…… 알겠습니다.우선은 경보 발령 대기만 시켜두겠습니다.”
“그러게.”

미심쩍은기분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남자는 팀장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완전히 일리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금 자신의 임무에 착수하는 그를 보며, 팀장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벌써 두 번째.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는 건가? 베르톨도 녀석……’

아마 자신이 직접 말을 전달하지 않더라도, 이미 S급의 헌터들에게는 정보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진명을 제외한 우앙  후에이와 타카하시 세츠나, 그리고 성유리 헌터.

이 명은이미 자신과  배를  상태였으니까.

‘지긋지긋한 이 곳 생활도 조만간 막을 내리겠군. 후후……’


이미 내부의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헌터 협회는 부패해 있었다.

상층부에서는 탁상공론에만 힘을 기울였고, 시민들의 안전이나 던전에 대한 관리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어떻게 더 극대화시킬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심지어 협회의 가장  전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S급 헌터나 A급 헌터들 역시도, 자신들의 국가에 대한 입장만을 생각해서 행동할 정도.


‘코사 노스트라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무너졌을 단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죄라고 할 수 있지.’


머지않아 무너져 내릴 헌터 협회.
때문에 그 일에 공조하면서도 그는 양심의 가책 따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일이 마무리지어진 후, 변하게 될 자신의 삶이 더 기대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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