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79. 그의 방문 (79/114)



〈 79화 〉79. 그의 방문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교사…… 그리고 헌터가 되었다고?”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갔나 봐요?”
“아들 녀석이 워낙에 말이 많아서 말이지.”

사람들 틈에서 기척을 잔뜩 죽인 채로, 이진명은 옅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S급 헌터로서는 쉽게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협회에는 언제쯤  생각이냐?”
“글쎄요.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에요. 아무래도 등급은 받아야 하니……”

“미리 말해두지만, 나와 아는 사이라서 볼  있는 혜택은 없을 거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명은 그 아내와 달리 인맥으로 장난질을 거는 걸 싫어했다.
회귀 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필요도 없구요.”
“하긴…… 너 정도면 A급은 무리 없이 따겠지.”
“어디 A클 뿐입니까? 저는S클이  몸인데요.”

능청스럽게 건내는 말에 그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패기 넘치는 그 말에 부정할  없는게 더 무섭군. 그래서, 아들 녀석은 잘 하고 있나?”

“안그래도 오늘 다시 한 번 참전하라고 일러뒀어요. 물론 남은 5일 동안도 계속 참가시킬 예정이긴 한데…… 녀석이라면 잘 하겠죠.”


첫 만남이야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지난 학기동안 녀석은 꽤나 많이변해 있었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그런 일마저 겪었으니……’

몸을 뺏겨서 생고생 한 것도 있고, 친형이 갑작스레 죽은 것도 있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상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음…? 뭐지?”

“지난 번에 말씀하셨던 스킬 북……”

내가 거기까지 말을 꺼냈을 때 였다.

갑작스레 누군가가 훼방을 놓은 것은.

“저 새끼야?! 니가 은가람이냐?!”

“……?”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세 명의 사람들이 성큼성큼 다가섰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들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이 삐쩍마른 새끼가, 우리 아들내미를 저렇게 만든 거야?”

“……?”

그제서야 그들의 뒤쪽으로 시선을 던진 나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승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애새끼도 아니고…에휴.’

엄마 아빠한테 다 말해! 라니……

낮게 한숨을 내쉬는 내게, 그들의 부모들은 목청을 높였다.

“너! 지금 당장 사과해!”


다짜고짜 사과를 요구하는 그들.
나는 의아한표정으로 받아쳤다.

“내가 왜?”

“아카데미 학생이 돼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겨룰 줄 알아야지!”

“정정당당했는데?”

코웃음을 치며 대답하자 그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뭣…! 어디, 새파랗게 어린 놈이 따박 따박……”
“나이가 뭔 벼슬이냐?  말도 못하게?”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자식이, 그래도?!”

덥썩!

다짜고짜 내 멱살을 틀어쥐는 남자.

나는 가만히 그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너 담임 교사 누구야? 어느 반이야?!”
“나? 난 내가 교산데?”

“……뭐?”


이런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그들은 잠시 벙 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눈 앞에, 나는 교사증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부로 교사라고. 월영 아카데미 교사한테 백골단의 학부모가 이렇게 난동부려도 되냐?”

“이…이…!”
“아니, 교사면 다야? 그러면 가중 처벌이지! 너 임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알아야 되냐?”

“내가, 자식아! 진명그룹 산하 길드, 『토템』의 길드마스터야!”
“지금 이렇게 무례하게 군 거! 분명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


뭐가 저렇게 당당한가 싶었더니, 길드 장이었구만?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이건가?’

아무리 중소 규모의 길드라고 해도, 길드 장의 위치는 가볍게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명 그룹이라……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어떻게 후회하게 만든다는 거지?”


조금 전 까지 기척을 죽이고 있던 이진명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조금  까지만 해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이의 등장에 둘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누구……?”
“허억…!!”

그리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달려들던 것이 무색하게 얼굴을 굳혔다.


“회…회장님?”
“이진명 헌터……?”

“이 녀석의 전투는 더할 나위 없이 정정당당했다. 그 녀석의 실력이 부족한 것을 가지고, 대체 누굴 탓하는 거지?”

“그…이진명 헌터, 그것이……”

“그리고 내가 길드 장으로 세워둔 건, 그런 식으로 권력을 남용하라고  게 아닌데 말야.”

그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투기.

그 강도가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구의 S급 헌터가 내뿜는 그것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그에 두 헌터는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뒤쪽에 서 있던 백승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저,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설마하니 회장님과 친한 분이실 줄은……”

“나와 친해서라고? 미쳤군.”

“……예에…?”

“틀렸다. 인맥과 위치를 가지고 덤비려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거기다 나를 똑같은 사람으로 몰아……?”

“시정하겠습니다!”

“……”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이진명.


“됐으니까, 돌아가라. 이번 만큼은 못  걸로 해 줄 테니.”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장난스런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말했다.

“어라~? 방금 제가 인맥으로 혜택 본 거 아닌가요~? 내로남불 아닌가?”
“하아…… 내가 아무 것도 안했으면,  일을 더 키울 생각 아니었나?”
“그것도 그렇지만요.”

“결과적으로 넌 혜택이나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없지. 오히려 저 쪽에서 길드장의 신분을 이용하려고  거니까.”


그의 말에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런데, 슬슬 가 보셔야 하는  아닌가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는 주변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스킬 북에 관한 건…… 빠른 시일 내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

“그러죠.”

다급하게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이곳에 모여 주신 3사 학생, 그리고 헌터여러분~! 어느덧 장장 7일간의 길었던 여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동안 힘써 주신 여러 헌터 학생 분들과 교사진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써 주신……]


일 주일간 진행되었던 아카데미 대항전.

첫 날부터 꽤나 소란스러운 사건이 터져었지만, 다행이 남은 일정 동안은 무사히 대항전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으아아아……! 쌰아앙! 뒤지겠네…!”
“드디어 끝났다아!”
“하하…… 하…”

“정말……쉽지 않군.”

 주일간 있었던 지옥같은 여정…… 아니, 꿈같은 즐거운 시간에 아쉬움을 고하며, 세 명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좋은지 욕을 해대는 서현이나, 맨 땅에 누워 버리는 현진, 그리고 실성한  처럼 웃음을 흘리는 아름……

나지막히 식은땀을 훔치는 세바스찬까지.


“고생 많았다, 짜식들아.”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만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즐거운 시간이 벌써 끝나서 많이 아쉽지?”

“씨발같은 소리  하지 마!”
“아뇨!!”
“아, 뭐라는 거야?!”

“……”

이 네 명…… 그리고 2반의 오지랖 3인방과, 한주희는 지난  주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대항전에 참가했다.

무려 교장으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특별교사의 권리로!

 중 오지랖 3인방은 벌써 녹초가 되어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말이다.

‘어쨌건 성장하는 데는 실전만한  없으니까.’


“확실히 조금 아쉬운데 말야. 한 두어 달만 더 해도 괜찮을  같아.”


“……”

물론, 진짜로 아쉬워하는 한주희는 제외.

그런 생각을 삼키는 내 뒤쪽에서 현화 쌤이 입을 열었다.

“적당히 좀 해라. 맨날 나보고 굴린다느니 뭐니 하더니…… 가만 보면 니가  심해?”
“에이, 하루 죙일 논문 쓰는 거랑, 하루에 한 번씩 경기 참가하는게 비교가 되나요?”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자, 다들 고생들 했다.”

그렇게 말하며 현화 쌤은 가져  이온음료를 녀석들에게 나눠 줬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인지, 함께  라우라도 옆에서 그녀를 도왔다.


“고생……”
“…쳇. 괜한 참견이야.”

“……그런가…괜한 참견이군.”

“아,아니 말이 그렇단 거지!”

……아니, 정정한다.
정확하게는 현화 쌤을 도운  아니라, 단순히 서현이 녀석만 돕고 싶었을 뿐이다.


‘하여간 저 놈도 어울리지 않게 저러네.’

라우라에게서 받은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녀석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저 거지같은 성격에 핑크빛 나날이라니.
내일은 타워가 무너지려나.

그런 생각을 한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옆에서 현화 쌤도 질색을 했다.

“하여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녀석은……”

“아아. 일단은 기숙사 방 하나를 따로 배정해 주시겠대.”
“국적이나 신분에 관한 건 문제  된다고 하시나요?”

“신분이라  봐야…… 어차피 가족도 없고, 공식적으로는 신분이 없는 거나 다름 없어서 말야. 결국 내가 보호자로 된 거지.”

“괜찮겠죠…?”

“문제는 없을 거야. 혹시나 싶어서 여러가지 조사도 해 봤는데, 결국에 저 녀석도…… 아직은 어린 애일 뿐이더라고.”

5주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약 7일.
그 시간 동안, 라우라는 조금씩 변했다.

큰 차이라고 하기는 힘들었지만……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 조금씩 생겨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괜찮겠어요?”


나는 현화 쌤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응?또 뭐가?”
“정작 그 라우라는 벌써 저러고 있는데…… 보호자 되신 분은 아직……하,하핫! 자,장난이에요 장난!”

일순간 폭사되어나오는 살기에 나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하지만……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인가 보다.


“니가 정녕…! 죽음을 맛보고 싶었구나~?”

현화 쌤의 몸에서 더없이 진득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쌔,쌤…? 현화 선생님?! 지,지,지,진정하시고! 지금 손에 그거 상당한 고위 마-”

“감히……! ‘다 늙은 노처녀’라고? 그딴 망발을 해?! 죽여버린다!!”


콰아아아앙!!

‘그렇게까지는 말 안했다고요!’



그것은 회귀한 이래 가장 크게 다가왔던 생명의 위협이었다.



*

“뭐 어때? 공식적으로는 네가 3종목 우승자잖아?”

“하지만, 쌤!! 이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니잖아요!”

“뭘 아니야? 이긴 거면 이긴 거지. 그 녀석이 비정상적인 거라고. 이제는 공식적으로 교사 신분이  헌터인데 뭘 그래?”

“하지만……!”


백설하의 말에도 한송희는 두 볼을 부풀리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은가람의 조기졸업이 결정되면서, 자연스레 그의 성적은 실격처리 되었다.

덕분에 점수상으로 2등에 머물러 있던 그녀가, 3종목 최종 우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송희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랑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데! 나는 수석인데에!”

“말했잖니?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우으……! 두고 봐요! 내가 조만간 뛰어넘어 보일테니까!”


의욕을 활활 불태우는 한송희.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성백의 교장- 백설하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상당히 자극이 되었나 보네.’

그녀로서는 제자의 이러한 변화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

“자, 여기가 네 방이야.”
“내 방…… 감사한다.”

“감사할  까지야. 대신, 지난번에  했듯이 단순한 임시에 불과하니까…… 적어도 입학 건에 대해서는 생각  봐.”

“……”


현화의 말에 라우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위해주는 이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과, 죽이지 않아도 살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는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시간들을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나 따위가…… 이래도 되는 걸까.”

어렸을 때 부터 받아왔던 상처가 이제서야 아물기 시작하듯,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호의며 대수롭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 모든  하나 하나가 그녀에게는 더없이 따뜻하고도 과분하게 느껴졌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막상 앞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말을, 그녀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머릿속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아니, 더 아름답다고 표현해야 할  같은 은발을 가진 소년의 얼굴이 그려지고 있었다.


은서현, 그리고 은서연.

자신 못지 않게특이한 그 소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살아있지 못했을 테니까.


새삼스레 느껴 보는 따스함게 그녀가 옅은 미소를 흘리고 있을 때였다.


[라우라.]

“……?!”


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긴장과 두려움으로 으로 손 끝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이제는 듣지 않으리라 여겼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다시   울려퍼졌다.


[꽤나 여유로워 보이는군.]

“B……?”

코사 노스트라의 수장, 베르톨도.

라우라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쪽에서 얇은 자켓 하나를 걸치는 그녀.

다급하게 방을 나서려는 그녀의 앞에,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 마법과 전송마법을 사용해 투영시킨 영상이었다.

[네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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