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78. 호갱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78/114)



〈 78화 〉78. 호갱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자, 여기서 내가 아직 출전을 안 했다, 손.”

늦은 저녁, 현화 쌤의 연구실에 사람들을 모은 나는 그렇게 물었다.

 네 명의 학생.

그러나 그 중에서 손을 든 것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응? 뭐야, 넌 왜 안 봤대?”

“아직 충분히 준비를 못 했다.”

“얼씨구? 왜 못했는데?”

당당하게 대답하는 세바스찬의 말에 나는 그렇게 되받아친다.

잠시 미간을 좁히는 그.

그러나 자신의 말에서 문제점을 찾지는 못한 듯 보였다.


“입국한 이후, 그리고 입학절차가 끝난 지 오래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할 기간이 충분했던 것도 아니……”

“저 게이트 너머의 친구들은 네가 준비를 다 끝마칠 때 까지 기다려 준대?”

“……”

“인생 실전이야, 임마. 한 번 부딪혀  수는 있는 거잖아? 어차피 재전도 가능하니까.”

 말에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 불찰이다. 짚어줘서 고맙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이럴 때 보면 꼭 융통성이 없는 것만은 아닌데 말야.

본래도 꽤나 소질이 있는 기사였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그를 더 위로 끌어올려주겠지.

“야.”


그런 생각을 삼키고 있는데, 불만 가득한 표정의 은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부른 건데? 설교할 거면 우리는 상관 없지 않냐?”

“허허……그놈  마음 한  급하네.”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는 녀석.
나는 목소리를 한껏 가다듬었다.


“크흠…!큼! 어헛! 서현이, 어디 버릇없게?!”

“그건 또 무슨 컨셉이야? 집어 쳐, 재미 없어.”

“어허어~! 으디, 일개 학생이 말이얏!”

“지도 학생이면서 지랄은……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래, 조금은 현명해 졌구나, 서현아.

포기도 할 알고.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뭐…… 오래 끌어봐야 좋을 건 없겠지?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났지만, 아무래도 너희들에게는 미리 말해야  것 같아서.”

“응? 뭐길래 그래?”
“무슨  있나요?”


“난 오늘부로 월영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야. 오늘 자퇴수속을 밟았거든.”

“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이야기를 듣는 척도 하지 않던 은서현이었다.

“왜? 너한테는 좋은 거 아니었어? 나 그렇게 싫어하더니?”

“시…싫어한 것 아니거든?!”

“어이구야… 우리 서현이 나랑 함께하지 못하니까 많이 섭섭했나 봐?”

“젠장! 오히려 잘 됐지, 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녀석.
아직 어린 애는 어린 애라니까?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는데, 아름이와 현진이 물어왔다.

“그런데 정말 무슨 말이야? 자퇴라니?”
“저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갑자기 어째서……”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나는 다른 말을 꺼내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기념으로! 너희들 전원 내일 재참전하도록!”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
“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개소리고 자시고, 오늘보다 무조건 좋은 성적을 받아와. 충분히  수 있지?”

그리고 예상대로,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서현이었다.

“싫어! 내가 왜?!”

“어헛! 시키면 할 것이지, 말이 많아?”

“까놓고 말해서 니가 뭔데? 이젠 학생도 아니라면서!”

나는 다시금 목소리를 깔았다.

“어헛! 으디 버릇없게 말이얏! 내가  너희 좋으라고 하는 건데 말얏!”

“그 개같은 컨셉좀 치우라고!”

그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솔직히 저한테 말씀하시면 저는 두말 않고 따르기는할 겁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시키신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서현이나 다른 학생들한테까지 그러시는  조금 아닌  같아요.”

“흐음……? 그런가?”

“본래 형님이 조금 생각 외로 행동하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납득은 되었었는데…… 오늘은 조금 의아해요.”

“……”

그의 말에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서현과 아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바스찬 역시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흐으음~ 너도 많이 변하긴 했네? 무작정 달려들 줄만 아는 녀석이었는데.”

“……”

“네 말은, 같은 학생의 신분이었던 내가, 이제는 학생마저 아닌 주제에 이런  시키는게 부당하게 느껴진다는 거지?”

“……조금은…”
“당연하지! 부당하다고! 니가 뭔데!”

“만약 내게 그럴만한 명분이 있다면?”

“……?”

동시에 같은 표정을 짓는 세 명을 향해, 나는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척! 내밀었다.

월영 아카데미교사증이었다.

“이건……?”
“뭐,뭐야 이건!”
“가람아?”

“공식적으로! 나는 오늘부터 ‘학생’이 아닌, ‘선생’의 입장으로 월영에 있게 되었다는 말씀!”

비록 일반적인 교사와는 조금다른 ‘특별교사’이긴 했지만.

그것이 내가 김경원 교장에게서 힘겹게 따낸 조기졸업의 조건이었다.

‘사실 조기졸업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기는 했지만.’


밑져야 본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썩힐 이유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정상적인 루트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스펙을 쌓기는 충분했다.


“마…말도 안 돼…!”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군요.”

“가람이가 선생이라니…… 아니, 이제 가람 쌤이라고 해야 하나…?”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셋을 바라보며, 나는 최대한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할게, ‘내’ ‘특별반’ 학생들~?”

조만간 만들어 질 길드의 정예 멤버들이 결성된 순간이었다.



*


 시간전.

은가람의 이야기를 듣던 김경원 교장은 낮게 침음을 흘렸다.


“다른 요구사항은 안 될까요……? 아무래도 그런 건 전례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전례가 없다고 보기는힘들죠? 들어보니 현화 쌤도 월영 출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건……”


비록 기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차현화 역시도 엄연한 월영 졸업생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같은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것 자체만 바라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조기졸업과, 즉시채용이라는 조건, 그리고 ‘특별교사’라는 직책까지 겹친다는 점에서 다르기는 했지만.

‘하긴, 다른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덥썩 받아먹기도 꺼려지겠지.’


그는 이미 김경원의 속내를 어느정도 파악하고있었다.

헌터의 숫자는 많아도,아카데미 교사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은 요즘.

이미 은가람의 가진 재량을  눈으로  왔던 김경원이었기에, 그로서도 은가람의 교사 지원은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문제는 다른 학생들이었다.

비록 이제 겨우 두 학기가 지난 정도이기는 했지만, 은가람은 다른 학생들에게 있어서 친구이자 동급생, 그리고 후배이지 않았던가.


‘그런 학생이 하루 아침에 선생으로 온다면 그리 달갑지는 않을 텐데……’


미간을 좁히는 그를향해,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먼저 말씀드릴게요.”

“네, 말씀하세요.”

“은서현과 한아름, 이현진, 한주희…… 그리고 세바스찬과 헌권이 형 정도가 전부에요.”

“네……?”


의아한 표정을 짓는 김경원.


“저랑 그래도 어느정도 ‘친하다’고  수 있는 사람들이요. 그 이외에는…… 아마 두 학기동안 말 섞어 본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걸요?”

“……”


그의 표정에 묘한 감정이 감돌았다.

아무리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이토록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 이도 찾기 힘들 것이다.

따돌림같은 하찮은 이유가 아니라, 스스로 남들과의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 지…… 과연 처음부터 이런 걸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어쩌면……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크게  인재인지도 모르겠어.’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는 김경원.
그의 마음  편에서는 ‘은가람’이라는 상식을 넘어선 인재에 대한 욕심마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설하가 입을 열었다.


“상관 없을  같은데요? 내가 아까 봤을 때, 고작 그런 걸로 사이가 틀어질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백승태와의 일전, 그리고 그 이후의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도 충분히 그렇게 판단된다. 갑자기 교사가 된다고 해서, 그들이 돌아설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지.”

마찬가지로 한 마디를 거드는 천일호.

그들의 표정에서도 자그마한 사심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인재…… 아니, 이제껏 봐 왔던 이들 중 제일가는 ‘천재’에 대한 욕심.


만약 빈틈이 보인다면 자신들에게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속내를 모를 리 없는 김경원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문제는 없겠죠.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말이죠.”




*

교장 선생으로서 마지막 면담을 하고싶다는 이유로 김경원 교장은 나머지 둘을 내보냈다.

아무래도 학생의 개인적인 사생활이 드러날 수도 있는 부분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백설하 교장과 천일호 단장은 군말 없이 자리를 비워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김경원 교장의 말을 기다렸다.

“가람 군은 처음 입학 때부터 상당히 남달랐지요. 혹시…… 따로 뜻을 두고 있는 것이 있는가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 명의 선생님으로서 학생의 진로가 궁금할 뿐이죠. 내키지 않는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만……”

뭐,크게 상관 없으려나.

미리 알려진다고 해서 나쁠 건 없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글쎄요, 하려고 하는 건  가지 되죠.”

“역시…… 확고한 꿈이 있는 거군요. 하긴, 그렇지 않다면 보일  없는 모습이기는 했죠.”


낮게 감탄을 흘리며 그는 물었다.

“그래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혹, 그 ‘몇 가지’가 어떤 것들인지……”

“우선은 아무래도 친구들과 졸업하는게먼저겠죠. 그거야 특별교사가 되었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단순히 함께 졸업하고 싶어서 교사를 자청하지는 않으셨겠죠?”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녀석들이 졸업하면, 저는 길드를만들 생각입니다.”

-정확히는 만들어서 맡기는 거지만.

그런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길드 창설이라…… 정말이지 가람 군은 가진 그릇이 너무나도 크군요. 물론, 그만한 능력이야 충분하겠죠.”

“인정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특별 교사를 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나요? 길드의 멤버들을 양성하기위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본다면 그 부분은 월영에게 있어서 리스크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창설한 길드가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면 모를까, 반대로 혹평만 가득 받는다면 월영의 입장에서도 그리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공식적으로 교사의 자격이 없는 주제에 교사가 된다는  부터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기 충분했다.


대놓고 내 길드원을 모으기 위해 아카데미를 이용하겠다는 말과 다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있는 만큼 그에 대한 기대치도 큰 법.

나는 확신에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한 가지 장담하죠.”

“무엇을 말인가요?”

“제가 가르친 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S급이 될 겁니다.”



*



“어머어머! 이것 봐!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금쪽같은 아들 얼굴이이게 뭐냐구?”
“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비겁한 자식이……!”

하루만에 떡이 되어 온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남녀는 잔뜩 얼굴을 구겼다.
그런 그들에게 청년…… 백골단에서 최상위의 실력을 자랑하던 백승태는 둘을 만류했다.


“아…아니야. 갠차나…”

“괜찮기는 뭐가 괜찮니?! 분명 뭔가 비겁한 수에 당한 거지?!”
“다른 녀석도 아니고, 세상 착한 우리 아들내미를 건들였겠다?!  당장에 그놈도 똑같이 만들어 놔야겠어!”
“분명 아카데미 대항전이니 뭐니 했던 것 같은데…… 다른 아카데미 학생이니?”

“다른 아카데미든 뭐든! 명색이  길드의 지부장으로서  맛을 똑똑히 보여줘야겠어! 이대로는 못 넘어가!”

처음으로 보는 아들의 상처.

두 부모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역정을 부렸다.

그는 비록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엄연한 헌터 길드의 지부장이었다.
더군다나  길드가 진명그룹 산하의 길드였기에그들이 두려워 할 것은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연기를 하며, 백승태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은가람인지 뭔지…… 지까짓게 그래봐야 일개 학생일 뿐이지!’

짧은 순간 뇌리에 각인되어버린 두려움.

여전히 그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부모님이 가진 힘에 대한확신이   백승태였다.

어쨌건, 그의 부모는 한 길드의 지부장.
A급 헌터 중에서도 중상위권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목 씻고 뒤질 준비나 해라……!’

다음날, 이제  대항전의 2일차가 시작되려는 찰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경기장 안을 가득 울렸다.



“여기 은가람이라는 새끼가 누구야?! 당장 안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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