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77. 조건 (77/114)



〈 77화 〉77. 조건

“뭐지?”
“끝났다니……?  했길래?”

“뭐 보이냐?”

뜬금없이 끝을 선언하는 은가람의 말에 관중들은 물론이요, 심사위원들까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은가람은 인벤토리에서 자그마한 투척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

그리고는 한쪽에서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주희를 향해, 가차없이 단검을날렸다.


덥썩!

“뭐야, 이제  맘이 생긴거야?”

여유롭게 단검을 낚아채는 한주희.

드디어 싸울  있다고 여긴 것일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마치 잠시간의 정적이 폭풍전야였던 것처럼, 사람들이 난리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조용했던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뭐야?! 대체 어떻게……?”

“방금 방벽을 뚫고 온 거야?”

“야! 여기 방벽이 없어!!”

“뭐라고?”


관중석과 경기장 내부를구분해 주던 마력방벽.

웬만한공격에도 흠집 하나나지 않던 방벽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심사관들과, 경기장의 관리책임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방벽 시스템에 문제라도 생긴거요?!”

“아,아닙니다! 사람 목숨이 오갈  있는데…… 저희는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

“그런데  저게 지금 사라진 거냐고!”

“지……지금도 패널에는 정상작동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억울한 표정으로 패널을 보여주는 관리자.

그에 사람들은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개인의 힘으로 방벽을 걷어냈다는 말이야?”

좌중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은가람은 마술사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들 물러나 주세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몸이 잘려나갈  있어요.


그렇게 덧붙이는 은가람.

그 말에 방멱 너머로 손이나 몸을 내놓고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몸을 물렸다.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몸을 뺐음을 확인한 은가람은 그제서야 마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사라졌던 마력 방벽이 거짓말처럼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상입니다.”



*


[대항전 첫 날!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고생 많았습니다. 많은학생분들이 참가해 주셨고……]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던  번째 날.

예상치 못했던 일도 있었으나, 아직 6일의 시간이 더 남아있었기에 학생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첫 날 시험을 치렀던 사람들의 반발이 조금 있기는 했으나, 추가적인 시간이 주어지는 것 역시도 심사 점수에 영향을 끼쳤기에  문제는 없었다.

자연스레 재시험을 보고자 하는 학생들도 생겨났고, 심사관들의 판단 하에 적합하다고 판명될 경우 재시험에 대한 부분도 허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정작 가장 높은 점수를 석권한 은가람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아서가 아니었다.


“실격이라니요? 대체 왜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는 은가람.

그에 말을 전달하러 왔던 교사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비록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긴 했지만 눈 앞의 상대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저,저도 자세한 사항은 자세히 알지 못해요. 김경원 교장님께서 문의하실게 있으시다면 직접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

아카데미 대항전은 결국 실기 평가의 일환이었다.

대항전에서의 점수에 따라 실기의 점수가 정해지는 것이다.


‘물론 나는 실기평가 보다는 제약의해제가 더 우선이기는 했지만……’


이미 S클래스인 내가 그토록 성심성의껏 대항전에 참여했던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급이 있다면 월반도 있을 터.

높은 점수를 명분삼아, 교사들을 설득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능력이 있으니, 조금 일찍 졸업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는 식으로.

‘그런데 실격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나는김경원 교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곳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은가람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인 것은 김경원 교장만이 아니었다.


‘이 세 명이 모여 있다라……?’

성백의 교장인 백설하와 백골단의 단장인 천일호.

 아카데미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기에 나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문득 케히빈에 대한 것이 뇌리를 스쳤다.

마인화가 진행된 케히빈.

그가 스스로 마인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조력자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눈 앞의 세 명이라면 그럴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특히나 백설하라면 더……’

내가 이론을 발표하던 당시 백설하도 그 자리에 있었을 터.

미간을 좁히는 내게 김경원 교장이 먼저 말했다.

“우선은 앉아요, 가람군. 갑작스런 통보에 놀라셨을 텐데……”

“안 놀랄 수가 없죠. 적어도 저는 제가 실격당할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으니까.”

자연스레  목소리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김경원 교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은정말 미안해요. 여러가지로 심사숙고를 하였지만…… 부족한 저로서는 역시 이 방법밖에는 생각나지 않더군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분명 재시험을 보는 학생도 있고, 규정에도 중복 참가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없었죠.”

“그렇죠. 분명,가람 군은 규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죠? 혹시…… 케히빈을 죽인  때문인가요?”

내 말에 세 명의 시선이 잠시 날카로워졌다.

잠시간의 정적 후, 한쪽에서 백설하가 입을 열었다.

“그것 역시도…… 적지 않은 이유이기는 해요. 경기장의 마력 방벽을 걷어냈던 것도 있구요.”

“다른 이유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백승태라고 기억할테지. 너와 결승에서 마주쳤던?”


이번에는 천일호 단장.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옮겼다.

“그래서…… 마력 방벽을 무력화시킨 것과, 케히빈을 죽인 것. 그리고 백골단의 학생을 이겼다는 이유로 저를 실격시키신다구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허…… 어이가 없는데요?  분이 대단하신 분인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우수한 학생을-”


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문득, 김경원 교장이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아니에요.”

“……?”

“우선은…… 진정하고 말을할 여유를 줬으면 좋겠네요. 간단하게 끝낼 만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어진 그의 말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단은 먼저 그 사실부터 정정해 드려야겠네요. 은가람 군은…… 이제 ‘학생’이 아닙니다.”


“……네?”


“그러니 자연스레 실격 처리를 할 수밖에없었구요.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닌 사람이, 아카데미 대항전에 참가할 수는 없으니까.”



*



“요즘 부쩍 밖으로 잘 돌아다니는군.”

“어머……”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에 연은입매를 말아올렸다.

그녀의 뒤쪽에서 검은색의 복면을 쓴 사내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나왔다.

복면 너머로 드러난 눈동자에서는 불신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제가 할 일을 하는 것 뿐인걸요?”

“정보를 모으기 위해?”

“그게 제 주특기인걸요.”

웃음기를 머금은 대답.
그러나 그녀의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그것을 꿰뚫어보듯, 복면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괜한 수작을 부리려는게 아니고?”

“후훗, 그럴 리가 있나요? 저는 당신에게복종할 뿐인걸.”


흑사회의 우두머리라고 알려져 있는 연.

그런 그녀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흑사회의 일원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녀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코사노스트라가 무너졌더라구요. 이젠 흑사회도, 신월도 한 시름 놓을 수 있겠어요.”

“……”

말을 아끼는 상대.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그가 웃음을 흘렸다.

“훗…… 그런가. 꽤나 열심인 모양이군.”


잘 됐다는  말하는 그의 목소리.

그러나 그 속에 옅게 배인 불안을, 연은 놓치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이래봬도 바쁜 몸인지라.”

“그래. 가 봐라.”


그의 말에 걸음을 옮기는 연.

그녀의 뒷모습을바라보며, 사내는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네가 흑사회의 리더라고 해서 뭔가 착각하나 본데…… 인형사의 팔이 하나 잘려나간다고 해서, 꼭두각시가 자유로워지는  아니야.”

“……”


낮은 조소를 남기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사내.


 자리에 멈춰 채, 연은 아랫입술을깨물었다.



*


비슷한 말을 예전에 들어본 적 있었다.

같은 사람, 김경원 교장에게서.


[가람 군은…… 헌터와는 전혀 맞지않는 듯해요. 다른 길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자퇴서를 내밀며,김경원 교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선택자라고 해서 우수한 헌터는 아니었다.

시간의선택을받았어도 내게는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강해지는 방법을알지 못했다.


실기 성적과 필기 성적, 어느하나 봐줄만한 것이 없었기에 1학년 말에나는 아카데미를 떠날 생각까지도 했었다.


‘만약 때 마지막으로 발악해 보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판이하게 달랐다.

그  처럼 성적이 부진한 것도 아니었고, 김경원 교장이 기회를 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서류상으로 나는 아카데미 학생이 아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다른 교사 분들이나 학생들에게 들어보니, 아카데미 생활을 꽤나 즐기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게…문제가 되나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 문제될 건 없지요. 오히려 보통이었다면 아주 바람직한 태도이구요. 다만 이번 경우는……”


잠시 말을 끌던 그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부분에서, 제가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그건 확실히…… 미안하다.”

백설하와 천일호 역시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런것이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전혀없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퇴학을당하고, 뒤늦게서야 통보를 받을 짓을 한 기억은 없었다.

“미안…하다구요……? 대체 제가 뭘 잘못한 거죠?”


그래,  놓고 말해서 아카데미 졸업이 헌터가 되는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워에 오르기 위해서는 바닥 성적으로라도 졸업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쉽게 퇴학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세 분이 대단하신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작스레 퇴학처리를 진행해 버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다.

그렇게 따지려던 내 뒷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네? 퇴학이라뇨…?”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백설하.

그녀의 말을 김경원 교장이 받았다.

“가람 군 같은 우수한 ‘헌터’를, 무엇하러 퇴학시키겠나요?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었던 듯 하군요.”

“……네?”

순간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오해할 만도 하군. 이건 우리들의불찰이 맞다.”

“그것도 그렇네요. 은가람 헌터가 착각할 만도 했어요.”


분명, 헌터라고 했다.

학생이 아니라.

“가람 군을 퇴학조치한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우리 월영은 가람 군을 담기는 버거운 것 같아서요. 조기 졸업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조기 졸업?!

월반도 아니고, 1학년 말에 벌써 졸업을 시킨다고?

‘이게 웬 떡이냐!’


속으로쾌재를 불렀다.

고작해야 높은 성적으로 한두 학기 정도를 넘기려고생각했던나였다.

조기 졸업이라면 절을 하고 받을 상황이 아닌가!

그런 내 심정이 드러났던 건지,세 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보여 준 가람 헌터의 능력은 학생의 능력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죠.”

“다른 학생들을 이끌고 현장학습을 주도할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났죠. 엄연한 한 명의 헌터로부족함이 없어요.”

“표정을 보아하니…… 이 쪽도 나름 만족하는 모양이군. 아무래도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강행하기는 힘드니 다행이라고 봐야겠지.”

천일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나는, 문득  가지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잠깐… 내 동의 없이는 조기졸업도 사실은 힘들지……?’


누구에게나 조기 졸업은 쌍수를 들고환영할 말.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빌드업을 쌓은 것은 결국 내 동의를 얻기 위함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기댔다.

팔짱을 낀 채로 미간을 좁혔다.


“흐음…… 글쎄요? 일단 한 가지 먼저 여쭤봐도 되나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만약 제가 졸업하게 되면, 결국 아카데미에는 자유롭게 오가기 힘들다는 말이죠?”

“그야…… 기본적으로 헌터 아카데미는 관계자가 아니면 잘 들어오기 힘들죠.”

백설하의 대답에 나는 한층더 인상을 썼다.
심각하게 고민이라도 하듯.

“하아…… 그러면 조금 힘들겠는데요?  그냥 계속 다니면 안돼요?”

“……”

잠시 화색이 감돌던 세 명의 표정이 굳었다.


“졸업 자체야 나쁘진 않지만, 지금 마땅히  일도 없고…… 이제서야 겨우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다시 혼자가 되고싶지도 않구요.”

“하…하지만, 가람 헌터!”

“아아, 백설하 교장님. ‘헌터’라는 호칭도 너무 과분해요. 전 아직학생이고 싶어서요.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사양하도록 할게요.”

물론, 그랬다가는 이 세 명의 입장은 난처해지겠지.

이미 졸업시키려고 마음 먹고 실격처리까지 진행했을 테니까.

“흐음…… 이거 곤란하네요…”

“난처하군. 역시 먼저 말을 봤어야…”
“설마하니 거부하실 줄은 저도…”
“역시나 미리 말씀을드렸어야……”

머리를 맞대고 침음을 흘리는 그들에게 나는 태연스럽게 물었다.


“어라…? 혹시 제가 거부하면 안되는 거였나요?  분의 입장이 난처해지신다거나……”

“아,아닙니다. 가람 군의 뜻이 그렇다면 뭐……”
“그건……”

시선을 피하는 그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그런가 보네요…… 이런…그렇다면 제가 너무 죄송한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나는 조그맣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기 졸업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정말요?”
“괜찮으시겠어요?”

눈에 띄게 화색이 도는 세 명.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패를 꺼내들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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