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76. 실격 (76/114)



〈 76화 〉76. 실격

세 번째 경기의 룰은 간단했다.

마법이든 무투든,  어떤 스킬을 사용해도 무관.

최대 5개의 기술을 혼합하여 스스로 할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점수의 책정에는 기술의 정밀성과 섬세함.

마력 운용의 참신함과 효율성.

기술의 난이도.

기술의 위력.

거기에 약간의 예술성마저도 포함되었다.

필요하다면 표적을 세울 수도 있었고.

때문에 대체적으로 무투가보다는 마법사들에게 더 유리한 종목이기는 했다.


“흐음…… 그럼 어차피 사용할 것이야 정해져 있겠지만…”

한창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은가람은 자신의 눈앞에 스킬창을 띄워 올렸다.


이번에 있었던 사건으로 두 개의 스킬에 대한 제약이 풀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검_A]
[마력 교란_B]


꽤나 준수한 성능의 두 스킬.

중 그가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마력 교란이었다.

타인의 마법 술식이나, 이미 전개된 마법의 마력 파장을 흐트리는 스킬.

본래가 B급 스킬인 만큼 그리 눈에 띄는 스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에 한계가 있었고, 이런저런 제한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회귀 이전의 그는 마법쪽에 이렇다할 스킬을 가지고있지도 않았거니와, 제대로 된 지식을 파고들었던 적도 없었다.

세계 제일의 마법사라고도  있는 현화에게 받은 지식들과 스킬을 응용하면 충분히 엄청난 위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처럼 판을 깔아준다면야 나는 땡큐지.’

그동안 마셔 왔던 다양한 차와 커피를 떠올리며, 그는 미소지었다.

*

“뭐야…… 여긴 왜 나왔대?”
“민망하지도 않나……킥킥.”

“야야, 들리겠다.”


무대 위로 올라선 남자를 보며,몇몇 학생들이 조소를 흘렸다.

나 역시도 의외의 눈길로 무대 위를 주시했다.


‘여기서 만회할 생각인가? 이건 진짜 의외네.’


무대 위에는 엄청난 거구가 자세를 잡은 채로 서 있었다.


“타겟…… 서른.”

[서,서른……! 서른 개의 타겟! 확인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무대 위로서른 명의 가상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바라보던남자- 대인전 때 나에게 제대로 얻어맞고, 공포잔상에 걸려 오줌까지 지린 백승태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세는 꽤나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인성이 터졌다는 거지.

마침 내가 앉은 방향이 그의 정면이었기에, 나는 그가 준비하는 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있었다.

아무래도 앞전에 내게 사용했던 백보신권인지 뭔지를 쓰는 거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어……?”


문득, 나와 눈이 마주친 백승태.

그는 온 몸으로 끌어올렸던 마력을 주체하지 못하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으……으아…! 으아아악!!”

“……?”

기술을 시전하려다 말고 갑자기 주저앉아 버리는 그.

‘난 아무 스킬도 안 썼는데…?’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잡혀 버린 걸까.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배……백승태 학생… 실격 처리하겠습니다…]


끝내 두 발로 일어서지 못했던 그는 교사 세 명의 부축을 받고 나서야 겨우겨우 무대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어머…… 가여워라. 나름 장래유망한 청년이었을 텐데.”

“장래 유망하긴, 인성이  따위……저기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콧소리 섞인 목소리에나는 말을 꺼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다를까, 흑사회의 연이 옆자리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이젠 뭐 놀랍지도 않다.’


실없는 생각을 삼키는 내게, 그녀는 입을 열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정보료에 대해 이야기할까 해서요.”

“…또 지난번처럼 말만 돌리려고 온 건 아니고?”

“그럴 리가요. 아마 조만간 기회가 될 테지만…… 조만간 신월에 한 번 들러 주셨으면 해서요.”

“신월……?”


신월은 중국에 존재하는 두 개의 아카데미 하나였다.

“흑사회가 왜 신월을…?”

“어머, 모르셨나요? 신월 아카데미도 저희 문하인데.”

“……그래서, 방문의 목적은?”

“교육이죠.”


“……”

염병할.

내가 무슨 과외선생도 아니고.

이진명은 그렇다 쳐도, 천하의 흑사회가 나한테 교육을 요청한다?

‘말이 안 되지.’


나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명분 하나는 그럴싸하네요. 굳이 그 명분에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뭐, 그건 그렇지만…… 이왕이면 그 쪽도 최선을 다해주시면 저는 좋죠.”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는 다시금 웃어 보인다.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를 명분으로 다른 일을 시킬 거라는 소리.

그리고 지금 당장은 그에 대해 언급하기 싫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지.  돌리러   맞잖아?”

“어머…… 화나셨나요? 그런 사람으로는  보였는데……”

“미안하지만 제대로 봤어. 나는 쫌생이에 속 좁고 쪼잔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까지는 말 안했어요.”

“말하려고 했잖아.”

“티 났나요?”

“……”


아오, 진짜.

질색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그녀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때 봬요. 이왕이면 현직 헌터의신분으로요.”

“뭐……?”


현직 헌터라니?

그런 내 의문에 대답하지도 않고,연은 그 자리에서흩어지듯 사라졌다.


“……진짜, 정신 나간 연일세.”

욕이 아니다.
이중적인 의미가 담겼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겠지만.


*

백승태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난 후로, 다양한 학생들이 저마다의 스킬을 과시했다.

화염계열의 마법을 조합해 거대한 불사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나, 반대로 물을 정밀하게 조종하여 다양한 기교를 부리는 학생.

무투 계열의 스킬과 마법 계열의 스킬을 혼합해서 선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성백 아카데미의 테일러입니다.”

“오…… 유학생인가?”
“한국인 아냐?”

무대 위로 올라서는 한 남성.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그는 양 손에 각기 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왼 손에는 냉기가 흐르는 얼음 계열의 마법.
그리고 오른 손에는 뜨거운 염화가 깃들었다.

심사관들의 얼굴에 감탄이 서렸다.


“오오…… 두 가지의 원소마법인가?”

“마력 안정도도 준수하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는 두 개의 마법을 한 곳으로 모았다.


푸쉬이이이-!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진득한 수증기.

폭발하듯이 피어오른 그것은 주변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마치구름을 압축해서 모아둔 것 같은 형상.

그것을 허공으로 띄워올린 후, 그는 또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윈드 블로우_Wind Blow.”


원소마법 중에서도 기초적인 축에 속하는 마법.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세 가지의 다른 원소마법이라고?”

“과연…… 이건 정말 대단하군.”
“이렇다할 위력은 없지만…… 저 정도의 섬세함이라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앞서 만들어냈던 작은 구름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내, 그의 양 손 끝에 떠올랐던 수증기가 바람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아무런 형상 없이 뭉쳐있기만 하던 그것은 조금씩 형상을 갖춰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해파리의 모양으로 변했다.


“오오…!”

“미세한 마력의 컨트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텐데……”

“세 개의원소를 다루면서 저 정도의 정밀성이라. 기초마법인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군.”

“저런 정밀도를 공격마법이나 방어마법에 활용한다면 엄청나겠군.”


거대한 하나의 해파리가 허공에서 둘로, 그리고 셋으로 갈라지며 주변을 떠다니는 광경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테일러 학생의 정밀한 기술! 잘 봤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군요!]

무대를 내려가는 그에게 감탄사가 쏟아져 내렸다.

한 가지 이상의 원소마법을 동시에 시전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한송희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성백의 수.석. 학생, 한송희입니다!”

“꼴값을 떤다, 진짜.”

 한번 ‘수석’을 강조하는 그녀를 보며, 은가람은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귀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우리 딸 화이팅!!사랑한다! 우리딸!!”

“……”

아주 그냥쌍으로 지랄들이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비단 은가람 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시작하세요.]


주변의 시선이 어떻건, 한아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의 마법을 시전했다.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마력.


잠시 후 벌어진 일에, 심사관들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될 정도군!”


“오…… 하네?”

시종일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은가람도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


경기장 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그녀의 마법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화염속성과 수속성, 바람속성에 그치지 않고 대지 속성의 마법까지.

4가지의 전혀 다른 마법을 동시에 시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그것을 정밀하게 조합해 나갔던 것이다.

경기장 한가득, 반투명한 장미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잎 그려내듯이, 그녀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투명한 색의 장미.

경기장 전체를 가득 메운 그 광경에 사람들은 넋을 놓았다.


수석이라는 자리를 거저 차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듯, 그녀는 완벽하게 자신의 마법을 끝맺었다.

“훗!”

그리고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지랄 났네, 지랄 났어.”

비록 그는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지만.

그녀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다시 한 번 사회자의 목소리가울려퍼졌다.

그 때 까지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야말로 굉장하다고밖에 수 없는 시연이었습니다! 정말 성백의 저력은 무시할 것이 못되는군요!! 이것이 마법이다! 이것이 성백이다! 라고 몸으로 말하고있는 듯 합니다!]

목이 터져라 그렇게 외치던 그는 곧바로 다음 순서를 불렀다.


[어느덧오늘의 마지막순서가 찾아왔네요. 앞서  번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은가람 학생! 과연 이번에도 그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은가람은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 광경을 봤다면 아마 부정할 사람은 없을 거다.”


월영의 교장, 김경원의 말에 나머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30대 초반의 외모를 가진 여성, 성백의 교장인 백설하.

그리고 꽤나 중후한 이미지를 가진 중년 남성, 천일호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걱정은 되는군요.”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경원.

천일호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사실 저 정도면…… 굳이 아카데미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긴 하잖아요?”

“오히려 계속 남아있다면 다른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이 갈 지도 의문이다. 좋은 방향으로만 영향을 끼친다면 모르겠지만……”


“흐음……”

천일호의 말에 김경원은 침음을흘렸다.

자신도 몇 번이나 고민해 봤던 사항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섣불리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천일호의 말에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몇몇 학생들에게는 좋은 친구나 동기생으로 비칠 수 있지만, 오히려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학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경원 선생님의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만…… 다른 학생들의 입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같아요.”

“그건 그렇죠. 그러나 그들도 그를 받아들일지……”


“오히려 쌍수들고 환영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상   사람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는 느낌도 있구요.”

경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는 무거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은가람 학생은, 곧바로 실격처리하도록 하죠.”

*


“뭐야…… 또 나왔어?”

“물론 괴물같은 건 맞긴 한데, 조금 나대는 것 같지 않냐?”

“혼자 짱 먹겠다, 이건가?”


“다른 학생들은 엿 먹으란 거지…… 바로 앞전에만 봐도 답 나오잖아?”

벌써 무대 위로 올라선 것도 세 번째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환하게 웃음지었다.

‘그래! 어디 더 지껄여 봐라~!’

그래봤자  안 내려갈 테니까.

나는 여기서 약속을지켜야 할…… 아니지, 약속을 어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송희의  집사가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도 기대가 컸다.

‘그래봐야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사실 이제는 제약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기는 했다.

때문에 나는 약속을 어기면서도 적당히 현혹 스킬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최대한 나한테 피해가 돌아오지 않도록.


‘이번에는 제발 그 3인방처럼만 되지 말아라……’


학기 초부터 졸졸 따라다녔던 2학년 A클래스의  명을 떠올리며 나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럼, 시작하세요!]


사회자의 말과 함께, 나는 양 손끝에서 마력을 발산했다.

쏘아 보냈다기보다, 흘려보낸다는 느낌으로.

이번에 제약이 풀린 마력 교란을 응용하여, 주변을 가득 채워 나갔다.


그리고……

“끝났습니다.”

“……네?”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가득 채워가는 의아함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