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75.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어떻게……?!”
케히빈은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로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멈출 리 없었던 자신의 양손이, 그에게 붙잡힌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녀석…… 사람이 아닌 건가…?’
마인화로 인해 증가된 것은 순전히 마력 뿐이 아니었다.
근력과 체력, 민첩성 등…… 모든 방면에서 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상태였다.
제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현재 자신을 상대할 수는 없어야만 정상이었다.
“말 했지?넌 여기서 죽어야겠다고.”
은가람은 케히빈의 팔을 쥔 오른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퍼억!
“끄아아악!!”
그의 손에 쥐여진 케히빈의 팔이 그 자리에서 터져나갔다.
“크윽……!그래도 소용 없다! 고작 그 정도로는 나를 죽일 수 없어!”
두 걸음이나 물러서며 그는그렇게 소리질렀다.
그 짧은 순간에도 터져나갔던 그의 팔은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알아. 그래도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뭐?”
의아하게 되묻는 케히빈.
은가람은 한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퍽!
“끅!!”
이번에는 그의 한쪽 다리가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이번에도 곧바로 재생되기는 했지만 케히빈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는 눈을 돌려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대다수가 이미 도망친 상태였지만,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직접 타격을 줄 수 없다면……!’
놈이 스스로 빌게 만들면 그만.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주변인이 죽는 꼴을 두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여유를 부리고 있는 은가람에게 소리질렀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싫다면? 어쩔건데?”
“네 몸뚱아리가 단단한 건 이해하지만…… 과연 다른 사람도 그럴까?”
그는 곧바로 한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의 동시에, 그의 손에서는 마법이 쏘아져 나갔다.
웬만한 헌터라면 제대로 마력이 모이는 것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
퍼엉!!
한쪽에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케히빈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지금 내 마력이면 이 경기장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 정도는 일도아니지…… 너야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다른 놈들은 어떨까?! 그 잘나신 몸으로 전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케히빈.
은가람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웃음을 흘렸다.
“풋……”
“뭐가 우습지?!”
“해 봐.”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는 어떻게 되든상관 없다는 건가?역시 네놈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은가람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윽?!”
정확히는그의 옆쪽.
조금 전 케히빈이 마법을 쏘아낸 방향이었다.
“뭘 쪼냐? 보라고.”
“……”
자신에게 공격이 날아들 것이라 생각하고 괜히 움츠러들었던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분명 자신의 마법을 직격으로 맞았을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말했잖아? 해 봐.”
“익……! 하라면 내가 못할 줄 알고?!”
쿠르르릉……!
그의 양 손으로 진득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공간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
이내 그의 몸에서 사방으로 마법이 쏘아졌다.
파바바방!
단순히 무작위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 하나에 엄청난 위력을 담은마력구가, 사람이 있는 방향을 찾아가며 쏘아져 나갔다.
사사삭……!
“뭐야?!”
그러나 그의 공격은 그의 몸에서 채 2미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하듯이, 마력이 흩어진 것이다.
그것이 은가람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것을 케히빈은 모르지 않았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은가람을 노려보았다.
“왜? 이런 스킬은 처음 보나봐?”
“이런게…이런게 가능할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발악이라도 하듯이, 그는 계속해서 마법을 난사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큰 호수에 던져진 자그마한 돌맹이마냥, 그의 공격은 힘없이 사라져 갔다.
그런 그를 향해,은가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칠흑색의 단도가쥐여져있었다.
“으윽…!개자식! 잘도…잘도 내 마법을……! 죽여버리겠어!!”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괴성을 지르며 은가람에게 달려들었다.
앞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기억에서 희미해져있었다.
그런 케히빈을, 은가람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이제, 죽어라.”
─가볍게 한 손을 휘둘렀다.
“……!!”
마물의 그것처럼 길게 늘어난 케히빈의 손톱.
강철도 쉽게 자르는 그의 손톱은 은가람에게 닿지 못했다.
허공에서 멈춰 버린 케히빈의 움직임.
약간의 시간차 후, 그는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어떻……대체 어느새……”
그의 목에 생겨나는 붉은색의 혈선.
거의 동시에, 그의온몸에 무수한 선들이새겨졌다.
찰나의 순간.
수백번의 공격이 자신의 온 몸을 도륙낸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의 공격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스르륵-
콰르륵……철퍽!
온 몸이 조각조각나며 무너져 내리는 그를 향해, 은가람은 차갑게 내뱉었다.
“엿같지만, 지금은 전력을 다할 수 있거든.”
*
총 사망자 여섯 명.
부상자 열 둘.
마인이 출현한 것 치고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규모의 피해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마인이, 한때 마법 학회를 주름잡을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직 ‘마인’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간대였기에 그에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이번 행사를 주최한 한성그룹에 원성을 보내거나, 엄청난은가람의 힘에 감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체 뭐지……?’
은가람은 깊은 생각에빠져 있었다.
분명 마인은 죽었고,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불안감과 위화감이 그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복수심에 불탈 정도면……처음부터 발견하지 못했어야할 텐데……’
그는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가졌던 원한은, 분명 이론의 부정에 기반하고 있었다.
마인화가 진행되며 그 분노가 주체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없는 원한이 저절로 생겨날 리는 없을 터.
‘그런 주제에, 내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마인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고……?’
그는 마인화가 어느 이론에 기반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본래 그의 성격이라면, 구태여 마인까지 되어가며 분노를 일으키지는 않았을 터.
자존심은 상하더라도, 새로운 이론의 발견에 더 힘을 쏟았을 것이다.
‘복수심이 처음부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컸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이상해. 뭔가가… 맞지 않아.’
그는 한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톱니바퀴 하나가 빠진 것 같은 감각에 그는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문득 라이터를 꺼내려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후우……”
허공으로 흩어지는 옅은 잿빛의 연기를 보며 그는 자신의 상태창을 띄워 올렸다.
[은가람]
근력: 666 (1092) 민첩: 725 (1190)
마력: 549 (900) 체력: 609 (999)
현재 제약_39%
타인을 죽음으로 몰게 한 이기적인 행동.
그로 인해 생겨났던 일시적인 제약의 해제는 지워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웬만한 현직 헌터에 비하면 강하다고 할 수는 있었지만.
‘설마 코사 노스트라 놈들이 아직 남아있는 건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어후! 냄새야!”
“……?”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자신이있는 곳은 경기장의 내부가 아닌 밖이었다.
그것도 엄연히 재떨이가 위치한 곳.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는데 문제라도?”
“어,어쨌든!”
“……”
또 시작이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뭔 일인데?”
물론,담뱃불을 끄지는 않았다.
그에 그를 찾아온 여성, 한송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곧 시작한다고.”
“아아.”
마인으로 인한 소란.
사람이 죽었음에도 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헌터 아카데미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장소.
언제라도 죽을지 모르는 것이 헌터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한성 회장이 그 자리에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사망자에게 돌아가는 위로금과, 부상자들의 치료비 전부를 그가 부담했다.
그는 손에 쥔 담뱃불을 쥐어서 꺼트리며, 걸음을 옮겼다.
“근데, 그 말 한 마디 하려고 온 거냐?”
“그,그게 뭐 어때서!”
“아니 그냥…… 너도 참 대단하다 싶어서.”
애초부터 이번 대항전이 열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자신때문이라는 사실을,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어차피 난 앞선 종목들을 참가해서…… 굳이 세 번째는 안 나가도 되는데?”
“뭐라고?!”
그의 말에 한송희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되지! 네가 참가해야지!”
“응? 굳이? 왜? 내가? 어째서?”
“네가 안 하면 의미가 없잖아!”
“글쎄요, 한송희 수석님? 제가 구우우~욷이 왜 참가해야 할지 세 문장 내외로 서술해 주실 수는 없나요? 점수는 루트 5점 드리죠.”
“야아아!!”
버럭소리를 지르는 한송희.
은가람은 웃음을 흘리며 먼저 안쪽으로걸음을 옮겼다.
참가 여부에 대한 답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
“아아……결국 다 참가하네.”
이건 뭐 철인 삼종경기도 아니고.
대기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잘 된 건가? 세번째 종목에서도 탑을 차지하면 한송희도 말끔히 물러날 지 모르고……’
오히려 누구누구처럼 더 재미 있겠다면서 덤벼들면 곤란하긴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제와서 주목받는 건 어쩔 수 없겠네. 내일 헤드라인에 떠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트롤링을 하기가 더 힘들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되려나…?’
어느덧 남은 제약은 39%.
한동안은 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아마 S급 현직 헌터가 아닌 이상, 단신으로 날 이길 사람은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남은 제약을 거의한번에 없애버릴 비장의 한 수를, 나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당장은 무리겠지만…… 길어봐야 2년 정도. 그 전까지는 적당히 사리면 문제는 없을 거고.’
본격적으로 무언가 시작되는 것도 그 때부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선은 개인 전투력도 좋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묶어두냐가……’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똑똑-
“……?”
누군가가 대기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달칵.
문을 열고 두 명의 남성이 들어섰다.
대략적인 전투력은 A급의 하위 정도.
현직 헌터였다.
“무슨일이죠?”
까만 색의 정장을 맞춰 입은 그들에게 묻자, 그들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꺼냈다.
“저희는 한송희아가씨의……”
“아아, 그 대단하신 수석의 집사님들이시구나. 일단 앉아요.”
나는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 그들을 앉혔다.
“그래서, 두 분은 아가씨의 부탁으로 오신 건가요?”
“……”
침묵을 지키는 그들.
잠시 후,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순전히 저희들의 독단적인 선택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무슨 용건이신가요?”
“사실…… 이번 세 번째 경기에 관해서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게 뭐죠? 기권이라도 하라는 말인가요?”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참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그……”
“뭔데요? 말을 해야 제가 부탁을 들어드리든 말든 하죠.”
양심에 찔리기라도 하는 건지 그들을 떫떠름한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저희는 아가씨가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근 들어 자극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능하면 웃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해서……”
“그래서요?”
“금액은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힘조절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얼씨구.
이사람들 보게.
나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보고 승부조작을 해달라는 거죠?”
“……”
“그런데 그건 심사관한테 가 보시는게 맞지 않나요?그게 훨씬 더 잘 먹힐 텐데.”
그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저었다.
“염치 없는 말인 것은 알지만…… 사실 다들 알다시피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셔서……”
“……”
그러니까, 내가 전력을 다하면 누가 봐도 내가 한수 위니까 알아서 힘을 빼달라는 거구만.
‘심사관한테는 진즉에 갔다왔을 거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제가 얻는 이득이 뭔가요? 사실 저는 여기서 들은 내용을 밖에서 발설하기만 해도 이득이긴 한데.”
“우선은 백지수표부터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한성그룹의 주식 지분 역시도 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추가로 원하시는게 있으시다면 최대한 맞춰드릴 생각이구요.”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한성그룹의 딸내미라더니, 주변에서 아주 그냥 오냐오냐 떠받들어 주는구나.
팔불출인 그 아버지를 떠올려 보면 그녀의 그런 성격이 이해도 간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최대한 환한 미소와 함께.
‘힘의 차이…… 아니, 마력의 차이가 뭔지 보여주지.’
벌써부터 설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