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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74. 전력 (74/114)



〈 74화 〉74. 전력

분명 베히모스 방향으로 쇄도하는 마법과 스킬들.

그러나 묘하게, 그것들은 내 신경을 긁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쳐 지나가거나 시야를 가리는 마법들.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하급 트롤링이구만.’


티나지 않게 하려고 하는 듯했지만, 내게는 그들의 의도가 너무도 뻔히 보였다.

저 정도의 트롤링 쯤이야 나도 얼마든지 생각했으니까.


처음부터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것이고.

‘조금 놀아줘 볼까?’

사실 점수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레이드에 실패하더라도 나는 이득이었다.


나는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살짝 떠밀었다.

‘뭐야? 여기서 티내는 거야?’

숨길 거라면 끝까지 숨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들의 장단에맞춰 주었다.

베히모스가 공격하는 타이밍을 계산한 노림수.

베히모스의 주먹이 쇄도하는게 보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머지 인원들은재빨리 포기를 선언했다.

[모든 동료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일시적인 스킬의 제약해제.

나는 한쪽 손에서 그림자를 뽑아내 베히모스에게로뻗었다.

스핏-!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련의 동작.

코 앞까지 다가섰던 베히모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

심사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무슨 일이벌어진것일까.


반으로 갈라진 채, 사라져가는 베히모스를 바라보며 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잠시 정밀 판정이 있겠습니다!]

점수 분배가 걸린 만큼 심혈을 기울여 판독하는 심사관들.

잠시 후, 말을 전달받은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베…베히모스의 레이드에 성공한 것은 은가람 단  명입니다!]


“뭐…?!”

“자,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성공이라고……?”

막 경기장에서 내려선 7명의 인원들은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행자를 바라보았다.

레이드에 성공한 인원은 단 한 명.

그것이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우리들은?! 우리도점수가 있는 거지?!”

“같이 싸웠잖아!”

“왜 한 명만……”

불만을 터뜨리는 그들에게 사회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정밀판독 결과, 은가람을 제외한 7명은 레이드의 성공 전에 포기 선언을 하고 전장을 이탈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때문에 규정에 따라, 나머지 7명은 레이드의 성공이 아닌, 포기에 대한점수가 주어집니다.]

“이런, 씨발! 이런 게 어디있어?!”

분을 참지 못했던 김상현은 은가람에게로 달려가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 개자식아! 그런 힘이 있었으면서 대체 왜……?!”

“야.”

“……어…?”


멱살을 쥔 손을 붙잡는 은가람.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니들이 뭐라고 했냐?”


그는 허망한 표정으로 벙 쪄 있는 7명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말했다.

“나 뒤지라고 떠밀때는 언제고? 점수 떠먹여 주려 했더니 도망간 건 니들 아니냐?”

“개……개소리 하지 마!”

멱살을 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치는 은가람.


그는 김상현의코앞까지 다가서며 말했다.


“자업자득이다.”

“……”

그는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막아서는 이는아무도 없었다.

베히모스를 일격에 죽인 남자.

동시에, 백골단의 백승태를 꺾고 대인 격투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를 막아설 만큼 멍청한 이들은 없었다.

‘사실 나야 나쁠  없지만.’

겉으로 화를 내보인 것과 달리, 은가람은 속으로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경기장 밖으로 향하는 복도로 들어섰을 때-

콰아아앙!!


돌연 관중석 쪽에서 굉음이 울려퍼졌다.

*



최근 은가람과 함께 다니며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던 한주희였지만, 그녀 역시엄연한 S클래스의 학생이었다.


아니, ‘고작’ S클래스의 학생 정도가 아니었다.


제멋대로인 성격과 지독한 마이페이스적 행동의 결과로 세 번이나 유급을 당한 그녀.

실질적으로 이미 현직 헌터와 맞먹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잠깐이나마 느꼈던 살기를 정확히 짚어낼  있었다.


극단적인 무투파이면서도, 마법에 대한 내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현화의 수업에서 은가람의 연습상대를해 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록 공격은 마음껏 못 했지만…… 쳇.’


그녀는 남자의 팔목을 붙잡아 마력을 흐트렸다.

그에 남자의 눈에 놀라움이 감돌았다.

“넌 대체……?!”

“일단 맞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상대에게 주먹을 날렸다.

가까스로방벽을 펼친 남자였지만, 그 반탄력으로 몸이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큭?!”

콰아앙!!

“꺄악?!”

“뭐야?!”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의 방벽에 부딪힌 그.

갑작스런 상황에 학생들은 패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털썩!

“쿨럭…!”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깊게 눌러쓰고 있던 검은색의 모자가 벗겨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저 사람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았다.

그를 아랑곳 않고, 남자는 양 손에 마력을 끌어올려 바닥을 짚었다.

콰지지직!!


푸른 빛의 전격이 바닥을 타고 빠르게 주변으로 흘렀다.

“꺄아악!”

“바,방벽!!”


“크읏……! 이,이 위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이래봬도 그들은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다급하게 방어 계열의 스킬을 전개하는 이들.

그러나 그들은 아직 학생일 뿐, 실전을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떨떨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애송이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엄청난 위력의 마법을  마디의 시동어도 없이 펼쳐낸 남자, 케히빈은 입매를 말아올리며 앞을 주시했다.

조금 전 자신을 당황시킨 한주희 역시도 강한 것은 확실했지만, 그래봐야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 때 마법계의 권위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는 바닥을 짚었던 손을 들어 앞쪽으로 뻗었다.

한주희를 향한 그의  끝에서 시뻘건 불길이 쏘아져 나갔다.


정확히 한주희를 강타하는 마법.

‘일단  명 처리!’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훑어보는데, 불길 속에서 한주희가 앞쪽으로 도약했다.

어느정도 내성을 가지고 있는 그녀.

 몸에 그을음이 일었지만 그녀의 두 눈은 오히려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싸워 보자는 거지?! 좋아, 아주 마음에 들었어!”

“뭣……?!”


콰아앙!


설마 자신의 마법을 맨몸으로 받아낼 줄은 몰랐던 그는 고스란히 한주희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인파 사이로 날아가는 그의 몸.

근처에 있던 학생들은 몸을 피하느라 분주히 발을 놀렸다.

‘제기랄! 대체 어떻게……?’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케히빈.

그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인파.

그들 중 대다수는  없는 허수아비였지만, 행여나 차현화가 뜨기라도 한다면 일은 귀찮아진다.


더군다나 어느새 경기장 안쪽에서 있던 은가람도 자취를 감춘 상태.

‘다른 피래미들은 볼 거 없다. 그놈만 죽일 수 있다면……!’


그는 빠르게 탐지마법을 사용해 주변을 훑었다.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은가람.

그는 곧바로 공간 전이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공간 사이의 빈틈을 비집고 통로를 만들어냈다.

단숨에 은가람의 뒤쪽으로 이동한 케히빈.

등을 보이는 상대에게, 그는 곧바로 마법을 날렸다.


“뒤져버려!!”

퍼엉!


“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복도.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을 채워 나갔다.

그러나 케히빈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번 그의 손끝에서 마법이 발현되었다.

콰앙!

그리고 또 한번-

쾅!


다시 한 번-

콰앙!!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채워갈 수록, 그의 손은 더더욱 속도를 붙여갔다.


콰앙!쾅!쾅!

“개같은 자식! 뒤져! 뒤져버려!!”


연속적으로 울려퍼지는 굉음 속에서 그는 그렇게 울부짖었다.


자신의 명예
자신의 위치
자신의 지식


자신이힘들게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린 상대를 향해, 쌓인 울분을 원없이 토해냈다.

“허억…!헉……!헉…”

마나가역류할 만큼 마법을 난사한 케히빈.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거면  것이다.

이제 다른 것들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 했냐?”

“?!!”

그의 뒤쪽에서 은가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뭐야……대체 뭐야, 네놈은!”

“뭐긴 뭐야? 아카데미 학생이지.”

“어떻게 피한거지?! 분명 공간 이동 마법은……”

은가람은 가차 없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래, 그놈의 공간 이동 마법. 실력만 받쳐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이동 가능하지. 근데…… 어째 좀 상태가 안 좋았나 보다?”

“……!”

바로 조금 전 있었던 한주희와의 소란.

 자그마한 충격으로 미세한 마력 컨트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그는 간과했다.

“그리고, 바로 좀전에  소란을 피워 놓으면 내가 긴장을 하겠니,  하겠니? 아주 그냥대놓고 고위마법을 쓰는데, 그 마력 반응은 무시하고?”


미리 기습을 대비하고 있던 은가람은 곧바로 속임수를 사용해 케히빈의 뒤쪽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케히빈이 마력을 퍼부었던 것은, 죄 없는 아카데미 재학생이었고.

“하아……”


낮게 한숨을 내쉬는 은가람.

자신이 공격을 피함으로 인해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

중상을 입은 사람도 여럿 존재했고.

그로 인해 자신은 꽤나 큰 제약의 해제를 얻어낼 수 있었지만,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기분 엿같았는데…… 넌 좀 쳐맞아야겠다. 뒤지기 직전 까지.”

앞전과 달리,그는 지금 진심이었다.
한 걸음씩 다가서는 은가람.

그를 바라보며 케히빈은 웃음을 흘렸다.

“후우……후후……흐흐흐……”

“……?”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몸을 떠는 케히빈.

“그래……그래, 죽여 봐! 어디 죽일 수 있다면 죽여봐라! 어차피 이 정도는 이미 각오했던 바다!”

“……!”

은가람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너…  새끼……!”

“왜 그러냐? 겁나는 거냐?! 조금 전 까지의 기세는 어디 간 거냐고!!”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하는 케히빈의 목소리.

단지 목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마력의 파장에 점차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로 흘러나오는 진득한 마기.

“너를 포함해서……!  자리의 전부 다 죽여주마…!! 모조리 말살해 버리겠어!”

이미 그의 이성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아니, 마인화가 진행되기 이전부터 그는 조금씩 잠식되어 가고 있던 상태였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도,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살기도……

마인의 유전인자가 그를 침식해 가며 생겨난 결과였다.


그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바로 이거야!! 이 끓어오르는 힘……! 아이러니 하지 않나! 이 힘은 네가 증명해  그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 말야! 너는 네 무덤을  거라고!”

완전히 마인화가 진행된 상태의 케히빈.

겉모습은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그의 몸을 감싸는 기운은 더 이상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쯧……!”

은가람은 낮게 혀를 차며, 인벤토리에서 새까만 색의 단도를 꺼내들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넌 그냥 죽어라.”

“멍청한 자식!”

투쾅!

그렇게 말한 케히빈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견고한 바닥이 깊게 패일 정도.

인간의 안력을 벗어난 움직임으로 은가람의 코앞에 도착한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을휘둘렀다.

콰아앙!!

분명살과 살이 맞닿았음에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잠시 가라앉았던 매캐한 연기가 다시금 주변을 매웠다.


“어디, 이것도 한 번 피해 보라고!”

콰앙!


이번에는 왼손.

검은 색의 전격을 머금은 공격이었다.


콰가가가가각!


곧바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공격.

앞서그가 보여줬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연속적인 마법의 발현으로 인한 마나가 주변으로 흩어져 가며 스파크를일으킬 정도.


그럼에도 지칠 줄 모르는 자신의 체력에 케히빈은 희열을느꼈다.


“어디!!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 이론을, 내가 평생을 기울인 노력을!”

쏟아내면 낼 수록 더욱 더 그를 잠식해 가는 분노.

그러나 이미 스스로 그것을 인지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마인화가 진행된 그에게 더이상 이성이란 것은 남아있지않았다.

젊은 시절 총기가 넘쳤던 그의  눈에는 오직 살의와 분노만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저  앞의 인간을 죽일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그가 생각하는 전부였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핫!!”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베히모스와의 일전.
케히빈의 공격을 피하며 죽어버린 사람들.

전혀 다른 이 두 가지 사건이 겹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를.


덥썩!


“……?!”

그의 팔을 붙잡은 은가람.

그는 서늘한 살기가 가라앉은 눈으로 케히빈을 노려보았다.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타인을 희생했습니다.]


지금, 그에게 적용된 제약은 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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