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71. 스스로를 넘어서기
“하이고~ 약하다, 약해!”
후욱- 퍼억!
“끄윽……?!”
조소를 흘리며, 남자는 상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상대.
한진우의 제자로 월영에 입학하게 된 강헌권이었다.
복부를 가격당한 그는 허공으로 잠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커헉……쿨럭!쿨럭……”
거칠게 기침을 뱉어내는 그를 보며, 큰 덩치를 가진 남자, 백승태는 웃음을 흘렸다.
“푸하핫! 야, 장난하냐? 뭐가 이렇게 약해? 그래 가지고 헌터 해 먹겠어?”
“후우……! 뇌랑권……!”
다시금 주먹을 내지르는 헌권.
옅은 푸른 빛의 전격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백승태에게 닿지 못했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드는 그의 주먹을, 백승태는 간단하게 피해냈다.
그리고는 한쪽 발로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퍼억!
“보니까 나이도 나보다 10살이나 많던데…… 뭐 이래? 월영은 다 그따위냐?”
“후욱……!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는 헌권.
그는 떨리는 팔로 다시 한번 바닥을 밀어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
불안감과 공포.
지금 여기서 무너진다면 영영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 진짜 열받게 계속 일어나네? 적당히 좀 하고 꺼져, 진짜! 나잇값 못하고 말야.”
다시 한 번 백승태의 몸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 싶은 순간, 그는 헌권의 바로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확- 퍼억!
“쿨럭!”
헌권의 옆구리를 걷어차는 백승태.
그는 다시 한 번 바닥을 굴렀다.
스크린에 떠오른 그의 체력 게이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저거, 괜찮은 걸까……?”
“이제 중단시켜야 되는 거 아냐?”
관객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백승태가 인상을 찌푸렸다.
“에휴, 능력도 없는 버러지 새끼가.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해 봐라. 일어날 때마다 패줄게.”
그는 다시 한번 앞으로 도약했다.
엄청난 역도가 실린 그의 주먹이 헌권의 명치를 노리고 들어갔다.
아무리 헌터라고는 해도, 지금 상태에서 그만한 공격을 받아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백승태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제 모르고나댄 새끼가 잘못이지.’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주먹이 상대의 내장을 헤집어놓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러나-
“신풍.”
후욱-파아앙!
“……?!”
그 자리에서 꺼지듯, 헌권의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허공을 가른 백승태의 주먹 끝에서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오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뭣……?”
순간 당황한 백승태.
그의 뒤쪽으로 도달한 헌권이,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쿠웅……!
강하게 진각을 내딛는 그.
하체에서 시작된 힘이 허리를타고 올라 그의 손 끝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위력은, 그의 주먹 끝에서 터져나왔다.
“폭렬권!”
콰앙!
경기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적중한 그의 주먹.
한진우가 자랑하던 권법 중 하나가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아직 어설픈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가 가진 남은 저력을 전부 쥐어짜 낸 일격이었다.
고스란히 턱을 얻어맞은 백승태.
“……다했냐?”
그러나 그에게 타격을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진 재능도, 경험도 너무도 부족했다.
훅-
“?!”
강헌권의 품 안으로 파고든 백승태.
그는 있는 힘껏 헌권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콰아앙-!
그리고는 내리찍듯, 그의 얼굴을 바닥으로 찍어내렸다.
[경기 종료! 승자, 백골단의 백승태!]
헌권의 체력 게이지가 바닥으로 치닫자, 사회자는 다급하게 경기의 종료를 알렸다.
잠시 헌권을 내려다보던 백승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엉?”
그리고는 자신을 노려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조금 전 자신이 떡으로 만들어버린 상대와 비슷한 나잇대.
아니, 그보다는 조금 어리지 않을까 싶었지만,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에게로 다가갔다.
“넌 뭐야? 뭘 꼴아봐?”
“……”
상대는 말 없이 그를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려 들 것에 실려가는 헌권을바라보았다.
백승태 역시도 그 시선을 따라 잠시 뒤를 돌아보다가, 웃음을 흘렸다.
“아하! 혹시 아는 사이냐? 남자친구…… 아니, 여자친구인가? 킥킥……”
대놓고 조롱하는 그를 보며 은가람은 낮게 이를 갈았다.
“꼬우면 너도 올라와 봐? 그래봐야 나한테까지 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건 니가 걱정해야 할 문제지.”
그제서야 은가람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하하핫! 그래, 기개라도 좋아야지? 하여간, 월영 이새끼들은 허세만 존나게 부려요. 성백은 그나마 마법이라도 잘하지, 너네는 제대로 하는게 뭐냐?”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그딴 개소리는 무대에 올라오고 이야기해라, 늙은 꼰대 새끼야.”
그렇게 웃음을 흘리며, 백승태는 큰 덩치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
*
크게 세 가지로 이뤄져 있는 대항전.
처음은 개인 대 개인의 대결구도였으며, 그 다음은 스스로 정한 마물을 상대하고, 그를 통해 점수를 합산하는 종목.
마지막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스킬을 조합하여 그 위력과 화려함, 그리고 섬세함 등의 평가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전체적으로 스킬과 마법의 사용은 자유로웠지만, 종목의 성격상 첫 번째 결투는 무투 중심인 백골에게 유리했으며, 세 번째는 반대로 성백에게유리한 종목이었다.
어느 것에 참여하든, 몇 가지를 참여하든 그것은 학생의 자유.
워낙에인원이 많았던지라 대항전은 하루에 3종목씩, 총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다만, 한 종목 이상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했기에 각 종목마다 참가 인원이 치중되어있는 편이었다.
“응? 뭐야, 월영이야?”
단 위로 올라선 은가람을 바라보며 상대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부탁할게. 지더라도 너무 상심 가지진 말고. 한번 잘 해보자.”
“그럴 생각이야.”
은가람의 짧은 대답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탓- 콰아앙!
“……?!”
시작과 동시에, 은가람의 주먹을 허용한 상대는 관객석 쪽의 방벽으로 날아가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겨…경기 종료! 승자, 은가람!]
순간 조용해 진 경기장의 분위기를무시하며, 그는 경기장을 나섰다.
그 이후로도 계속된 경기.
당연하게도, 한주희 역시 참가 신청을한 상태였다.
“오오, 여성분이시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 상대는백골의강 현.
앞선 백승태와마찬가지로, 백골단에서 최상위 성적을 가진 이 중 하나였다.
“아아, 나도 잘 부탁해. 부디 즐겁게 해 달라고.”
“하하, 유쾌하신 분이네요.”
즐겁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말하는 한주희에게, 강현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보나마나 미인계로 이겨 왔겠지? 월영 놈들은 하나같이 비겁한 놈들밖에 없다니까.’
내심 한숨을 내쉬는 강현.
그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쏘아져 나가는 한주희를 멈춰세웠다.
“자,잠시만요!”
“앙……? 뭐야?”
“저, 저기……”
“엉……?”
자신의 뒤쪽을 가리키며 두 눈을 크게 부릅뜨는 강현.
그에 한주희는 의아한 표정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그 빈틈을 파고든 강현.
순식간에 코 앞까지 접근한 그는 있는 힘껏 진각을 밟으며 한쪽 다리를 내질렀다.
정확히한주희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그의 정강이.
이미 막아내기는 늦은 시간이었다.
퍼어어억!
그의 예상대로, 한주희는 그의 공격에 정확하게 직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
한 발짝도 꿈쩍하지 않는 한주희.
오히려 자신의 다리가 아픈 것이, 마치 돌덩이를 발로 찬 느낌이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강현을 돌아본 그녀가 물었다.
“뭐하냐?”
“어…어떻게……?”
퍼컥!
강현의 몸이 그 자리에서 바람개비처럼 회전했다.
[승자! 한주희!]
“뭐야? 싱겁게.”
*
“으음……”
겨우 눈을 뜬 강헌권.
옆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형, 괜찮아요?!”
“어……? 가람아. 나 기절했나 보네.”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했어요……? 조금 사리셔도 괜찮았을 텐데.”
걱정하는 그의 말에 헌권은 퉁퉁 부은 얼굴로 옅게 미소지었다.
“왠지 지고 싶지가 않더라고. 그래도 한 대 제대로 먹여줬으니 만족한다.”
“만족은 무슨……”
“비록 내가 실력이 없어서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어.”
“……?”
그의 눈동자는 패배에 젖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어느정도 길이 보인 것 같거든.”
아마 그가 일찍 포기했다면 기절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심하게 망가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저 좋은 경험 한 번 했다고 넘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나약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이겨내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오히려 난 속이후련해. 살면서 처음으로…… 그렇게 부딪혀 본 거니까.”
“형……”
이제껏 안정된 삶만을 추구했던 그였다.
도전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조금 전의 경기는 큰 전환점과도 같았다.
“아, 그래도…… 조금 짜증나기는 하네. 그 자식…… 말하는게 영 마음에 안 들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아하하……아야, 아이고…… 죽겄다.”
그러다 부러진 갈비뼈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지만.
은가람은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건냈다.
“뭐, 진상 손님 하나 봤다고 생각해요. 항상 그랬듯이……”
“그래. 사람이 아닌게 무슨 예의를 알겠냐? 말하고 두 발로 걷는 것을 기특하다 해야지.”
“그러니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헌권을 보며, 은가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저도 갔다 올게요. 슬슬 제 차례거든요.”
“그래. 잘 하고 와.”
그의 인사를 뒤로 하고, 은가람은 병실을 나섰다.
돌아선그의 눈에는 서늘한 살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
“뭐?! 야, 이 미친 새끼야!!”
은가람의 말에 한주희는 곧바로 역정을 질렀다.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걸 왜 망쳐놔?!”
“에이,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씨발!”
그녀는 은가람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러나 은가람은 전혀 아랑곳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나중에 내가 갚아준다니까?”
“그래봤자 시덥잖은 거잖아! 염병할! 왜 니 멋대로 나를 기권시키는건데?!”
점수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문제는 이미 교사인 현화, 그리고 교장인 김경원과도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때문에 기권을 했다고 해서 한주희에게 피해가 될사항은 전혀 없었다.
‘본인도 동의했다고 거짓말하기는 했지만 말이지.’
다들 사람도 아니고, 천상 싸움광인 한주희의 입장에서 그것은 흥을 깨는 행위나 다를 바없었다.
[한주희가 분노했습니다.]
[한주희의 즐거움을 빼앗았습니다.]
때문에 한정적이게도, 그것은 ‘이기적인’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감정 해소를 위해 그녀의 즐거움을 없애버린 거니까.
“너도 꽤 좋아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화내지 말라고.”
“화를 안 내게 생겼냐, 지금?! 백승탠지 뭔지 하는 그 놈, 꽤나 재미있어 보였는데……!”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에게, 은가람은 승부수를 뒀다.
“그 놈이랑 나랑 싸우면 그래도 내가 이기지 않겠냐?”
“그거야 그렇겠지! 씨발, 그래서? 어차피 이길 싸움이라 붙어보고 싶었다, 이거야?”
“그럼 나랑 싸우는 걸로 퉁치면 안되냐?”
“……어?”
그녀의 표정이 눈에띄게 바뀌었다.
잡고 있던 멱살을 슬그머니 놓으며,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그것도 그렇긴 한데…… 아니, 잠깐만! 어차피 내가 이기면 결승에서 너랑 붙을 거였잖아!”
그녀의 눈 앞에 은가람은 한 손을 펼쳐 보였다.
“그 한 판이랑, 이번 댓가로 다섯 판. 어느 쪽?”
“……”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
은가람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짜 머릿속에 싸움밖에 안 들어있어서 다행이다.’
잠시 후, 그녀는 눈에 띄게 밝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약속 지켜라?! 다섯 번이야! 제대로 안 하면 부숴버린다?”
“그래, 알았다니까?”
‘물론…… 그게 ‘언제’인지는 정해두지 않았지만 말이지.’
싸움과 전투를 제외하면 한 없이 취약한 그녀의 단순함에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은가람이었다.
*
대망의 첫째 날 결승전.
경기장 위로 올라선은가람을바라보며, 백승태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박수까지 치며 감탄을보냈다.
“이야, 대단한데? 월영의 학생이 결승까지도 올라오고 말야. 넌 월영의 다른 쓰레기들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칭찬 고맙네. 그러는 너도 뭐…… 축하한다. 꼴에 올라오긴 했네?”
백승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표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한쪽 입술을 말아올리며 도발했다.
“특히 아까 전에…… 니 남자친구는진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쓰레기였지?”
“……”
“그런 쓰레기는 헌터가 돼 봤자 금방 뒤질걸? 약골은 뒤지는게 어울리긴 하지, 푸하하핫!”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그.
“야, 좁밥.”
은가람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아가리 꽉 닫고 하자. 이빨 다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