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70. 아카데미 대항전 (70/114)



〈 70화 〉70. 아카데미 대항전

“이번 년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군요.”


그렇게 말하며 월영의 교장, 김경원은 웃음을 흘렸다.

그의 앞에는 두 학생과 네 명의 교사가  있었다.


한쪽은 세 명의 교사를 대동한 남학생.

훤칠한 키와 장골한 체격, 그리고 절도 있는 태도를 가진 독일인이었다.

“흐음……”

그리고 반대쪽은  명의 교사만을 대동한 한국인 남학생.

아카데미의 평균적인 나이에서 살짝 벗어난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이미 2학기가 시작된 지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시점.

학기중에 아카데미에 들어오려는 학생은 잘 없었다.

그는 먼저 짧은 금발을 가진 학생에게 시선을 던졌다.

“세바스찬 학생은 이미 입학서류를 전부 제시한 상태죠?”

그의 말에 뒤쪽에 서 있던 교사 한명이 깎듯하게 대답했다.


“네. 이미 서류는 통과된 상태이고, 수속 절차도 끝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의아하군요. 골든 헬리오스의 기사가 다른 아카데미로 전학을 가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그것이……”


칼같이 대답하던 교사는 시선을 피했다.

다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리 준비를 해 뒀지만, 그런 사적인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자연스레 질문은 세바스찬에게로 향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물  개구리로 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줄 수 있을까요?”

그는 눈을 날카롭게 세웠다.

추상적인 답변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럴듯한 명언만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이는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골든 헬리오스라는 엄청난 곳에서 전학을 온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그는 더 예의주시하는 편이었다.


대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이 다른 아카데미로 전학을 생각했으니까.


그에 세바스찬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월영의 학생이기에, 곁에서 배우고 싶어 전학을 결정했습니다.”


선생도 아니고 학생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경원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골든 헬리오스 기사단의 명예마저 저버리고 말인가요?”

“제 행동이 명예를 저버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지 더 묻겠습니다. 혹시 그 사람의 이름…… 말씀해 주실  있나요?”


이번에도, 세바스찬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만큼 그의 의지는확고했다.

“은가람입니다.”

“……”

잠시 그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경원.

말 없이 책상 위의 서류에 서명한 그는, 네 명을 돌려보냈다.


“세바스찬 학생의 입학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A클래스 2반으로 배정하겠어요.”

“2반 말입니까……?”


세바스찬의 곁에서 듣고 있던 교사 한명이 그렇게 물었다.

골든 헬리오스의 기사단장, 갓프리드에게서 직접 연락을 받은 그.

중급기사라는 말까지 들었기에 당연히 S클래스, 혹은 A클래스의 1반 정도의 위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경원이 입을 열었다.

“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1학년 2반입니다. 착오 없도록 하세요.”

“하,하지만……”

“아무리 기사단에서 뛰어났다고는 하나, 헬리오스의 기사단적인 성격과 ‘아카데미’는 다릅니다.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역시도 헌터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죠.”

그는 쐐기를 박으며 네 명을 돌려보냈다.

그 때 까지도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


경원은 먼저 교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건…… 정말로 의외네요.”

“그,그렇쥬…?”


“설마하니 한진우 선생님이 제자를 데려오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잠시 말을 끊은 그.

이번에는 학생 쪽을 향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해요, 헌권 학생.”

“……예?”


앞서 골든 헬리오스 출신이라는 엄청난 학생을 봤기 때문일까, 긴장하고 있던 헌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헌권 학생도 1학년 A-2반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월영에서 할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저는…… 입학한 겁니까?”

“네.”


그는 망설임 없이 서류에 서명했다.

앞서 세바스찬의 경우와는판이하게 다른 그의 태도에 헌권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일부터 수업들어오시면 됩니다.”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그는 둘을 돌려보냈다.


이미 그는 한진우를 통해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상태였다.



그것은 단순히 그가 한진우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인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른 교사라면 이야기가 달랐으리라.

‘진우 선생님이 눈독을 들일 정도라면…… 분명 우수한 학생일 터.’


더군다나 한진우의 설명에따르면,  역시도 은가람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의자에 기대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엄청난 괴물이 아카데미에 살고 있구나……”


최근 있었던 여러가지 일에 그가 연관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현화가 출제한 필기시험의 만점을 최초로 받아낸 것도.

진명그룹의 입김에 당당하게맞선 것도.

케히빈학회에서 케히빈의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한 것도.

성백의 수석 학생을 열등감에 젖게 한 것이나, 골든 헬리오스의 중급 기사의 눈을 띄워준 것.

그리고 한진우 교사의 눈에 맞는 학생의 잠재력을 일깨워  것 까지.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그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나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그릇일지 조차 모르겠어.”


한 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을 안고, 그는 중얼거렸다.


*

[대한민국 최초~! 한국을 대표하는 세 아카데미간의 대항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서울 잠실에 위치한 종합 운동장.


 10만명의 인파가 가득 들어찬 곳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세 영역으로 나뉘어져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자리한 관객석과, 투명한 방벽으로 나뉘어진 경기장 내부.

그리고 전 방향에서 보이는 거대한 스크린에는 사회자와 함께  남자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역사적인 대항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 한성 그룹의 회장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외치자, 카메라가 옆쪽에 서 있던 남자를클로즈업했다.

약간 중후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이곳에 모인…… 헌터를 꿈꾸는 학생 분들. 고작해야 한 명의 기업가로서, 저는 모든 학생들에게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소란스러웠던 경기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단순히 그의 목소리가 굵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을찾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그룹인 한성그룹.

그 한성의 회장이 자신들을 존경한다는 말에 저마다 벅찬 가슴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인류를 위하는 영웅이라 불려 마땅할 것입니다.여러분들이 가는 길에는 분명, 힘든 고난도 많을 것이고…… 졸업을 한 이후에도 죽음의 위기가 매 순간 순간마다 앞을 가로막을겁니다.]


비장한 어조와 그에 걸맞는 목소리.

학생들, 심지어 교사들마저 점차 그의 연설에 빠져들어 갔다.


울컥하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고난이, 현실이! 당신들을 가로막을 지라도…… 결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분명…… 빛나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그리고 분명, 누군가는 그 빛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그는 덧붙였다.


10만명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끈 그.


[마지막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이들을 사로잡은 한성그룹의 회장은, 마이크를 놓기 전, 성백 아카데미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앞전의 그 굵은 목소리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외쳤다.

[우리딸 화이팅!!! 아빠는 너만 믿는다!]

“……”

“……”


어쩌면 저 말만이 진심이 아니었을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경기장은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을 뚫고,  여성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나도 사랑해!! 울 아빠 짱!”

“……”

마이크를 사용하지않았음에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여기저기서 한숨을 쉬는 소리마저도 들려왔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회자는, 뒤늦게 경기를 진행시켰다.

[자,그,그럼! 제 1회! 아카데미 대항전!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과 함께~~! 시자아아악~! 하겠습니다아!!]


*



“내 이럴 줄 알았지.”


경기장 밖의 카페테리아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은가람.

그를 발견한 현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도 그래! 어떻게 나가잔다고 쪼르르  따라나오니?”

그의 곁에는 한주희와 한아름, 은서현, 그리고 이현진이 저마다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경기장 안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 전혀 상관없다는 듯, 그들은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굳이 안에서 부대끼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턱으로 한쪽을 가리키는 은가람.


바로 근처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장 내부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게 한숨을 내쉰 현화는 옆의 빈 의자를 끌며 입을 열었다.

“에휴…… 그건 맞지만, 그래도 경기장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게 있잖아?  알 거 아냐?”


화면으로 관전하는 것과, 직접 전투를 관람하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전투에서 느껴지는 투기와 살기, 그리고 긴박함과 짧은 순간순간 바뀌는 공기.

특히나 헌터들의 전투는 그 차이가 더 심했으니까.


그러나 은가람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어차피 저한테 짜달시리 도움 될만한 건 없어요. 잘 아시잖아요?”

“……”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은가람이나 여기 모인 학생들 정도면, 왠만한 전투는 그저 즐기는 것 이외에 크게 얻어갈 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현화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재수없어.”

“칭찬 고마워요.”


그녀는 이 사랑스러운 돌대가리 제자를 한 번 노려본 후, 자신의 음료를 주문했다.

잠시 후, 시원한 자몽에이드를 들고 온 그녀.

다시 자리에 앉는 그녀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들려왔다.

“욥! 여기 있었네?”

“엉……?”

“……?”


일행들의 이목이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대략 30대 초반의 외모를 가진 여성.

살짝 쳐진 눈매를 가진 그녀는 현화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되게 오랜만이다, 현화야?”

“엉. 간만~.”

건성으로 대답하는 현화.

그에 여성은 한쪽에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가람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씨익- 웃었다.

“이 녀석이구만? 그 유명하신 천재가.”

“아? 아, 맞아. 본인은 극구 부정하지만 말야.”

“그 이론을 발표해 놓고도 부정한단 말야? 이야~ 양심이 없는 건지, 겸손한 건지.”

“양심이 없는 거야.”

“이왕이면 겸손한 걸로 할게요.”


자연스레 끼어드는은가람.

옆에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현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누구신지…?”


그제서야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한 여성.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의 이름을댔다.

“아, 미안 미안. 난 현화의 친한 언니야. 설하라고 해.  부탁해~?”

“네, 잘 부탁……네?”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낀 그들.

설마 하는 심정으로 한아름이 물었다.

“설마…… 그, 혹시…… 성씨가…?”

“백씨야. 백 설하. 성백 아카데미의 교장이고.”

“……”

일행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단순히 그녀가 현화의 친구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이 현화가 직접 말하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그 나이였다.

성백 아카데미의 교장- 백설하는 올해로 42세.

도저히 나잇대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을 두고, 현화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고, 언니! 학생 관리좀 잘 해~! 매일같이 우리 아카데미 찾아와서 온갖 진상이란 진상은 다 부리더라?”

“야야, 진상이라니? 그 열정적인 태도! 얼마나 보기 좋니? 사랑이란 자기 마음대로 되지않는 법이란다.”

“쿨럭!!”

콰직-


‘사랑’이라는 단어에 먹던 음료가 사레가 들린 은가람.

그리고 한쪽에서 웃으며 조용히 컵을 찌그러뜨리는 한주희.

그런 둘을 아랑곳않고, 현화는 입을 열었다.

“사랑이고 자시고! 이것도 봐! 이게 뭔 주책이야? 아카데미 대항전이라니?”

“왜? 아카데미 대항전 좋구만.”

“이제까지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없었으니까, 지금이라도 개혁을 하는 거지~! 왜, 혹시 쫄리시나……?”

건성으로 대답하던 현화의 표정에 힘이 들어갔다.

“하하……뭐, 언니? 쫄려?”

“뭐, 그럴 수도 있지? 상대가 성백이면……”

“하! 그런 성백의 잘나신 수석이 월영에서  번이나 깨졌을까~?”

“지금 학교폭력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한 거니?”

“폭력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은데? 언제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파지지직!

분명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서로 마주한 둘의 시선 끝에서 스파크라도 튀어오르는 듯한 기세였다.

‘있는 힘껏 발라버리란 건 그래서였구만……’

은가람과 한아름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의 앞에서 어른들이란 사람들이…… 그것도 한 아카데미의 교사와 교장, 그리고 ‘마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저런 유치한 기싸움을 하고 있다니.

전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진지하게 걱정이 되는 그들이었다.

“……음?”


그렇게 둘의 기싸움을 관전하던 은가람은 경기장 안쪽을 비추는 스크린을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자,잠깐만요! 조용히  봐요!”


“……?”

가장 첫 번째 종목으로 진행되고 있던 가벼운 친선 대련.

이런 곳에서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의 얼굴이 비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대체 어째서……?’

그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지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

“선생님! 저 안에 들어갔다 올게요!”

“뭐…? 갑자기 뭔데? 왜 그래?”

의아함이 가득 담긴 현화의말을 뒤로 하고, 그는 다급하게 경기장 안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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