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68. 붕괴
“젠장……!”
타앗-
콰앙!
육중한 메이스를 휘두르는 알론조.
메이스에 맞은 벽이 크게 부서져 나갔다.
“좋아,좋다고!! 더 빨리 해 봐! 그래야 할 맛이 날 거 아냐?!”
아슬아슬하게 그의 공격을 피해낸 한주희는 벽을 타고 알론조에게로 도약해 주먹을 날렸다.
“쯧…!”
콰앙!!
메이스로 간신히 막아내는 그.
분명 강철로 만들어졌을 메이스를 통해 무거운 압력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어디서 이런 녀석이……?!’
나이를 감안한다면 절대로 우습게 볼 수 없을 실력자.
조금만 방심한다면 자신은 그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리라.
그가 전투요원이 아닌 ‘실험자’에 더 가까운 것을 감안해도 그녀의 힘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제기랄……!’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살바토리오가 도와준다면 문제는 없을 텐데.
공교롭게도 그는 다른녀석을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슈아악!
콰가가각!!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양 팔을 휘두르는 살바토리오.
그의 양 팔은 이미 사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길게 뻗어나온 손톱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상대의 검과 맞부딪힌 곳에서는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인은 기함을 토할 정도.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이 녀석……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을 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순히 속도와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검은색의 단도…… 아니면 스킬인가?’
붉게 변이한 자신의 손톱으로는 강철도 쉽게 자를 수 있었다.
제대로 막아낸다고 한들, 검 째로 잘려나가야 정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 앞의 애송이가 들고 있는 단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멀쩡했다.
아니,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손에 타격을 입힐 정도라니?
‘상황이 좋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게될 상황.
이제는 뒤를 생각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빈틈을 만든다면…… 상황을 뒤집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아직 미완성 기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몸에는 소량의 강화물질이 투여되어 있었다.
완전히 몸에 정착하려면 아직 이른 시점.
상당히 불안정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그렇게 빈틈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순간, 상대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코앞으로 접근한 것처럼 보였다.
앞전과는 상당히 다른 기도.
진득하게 베어나오는 살기와 길게 찢어져 기괴함마저 옅보이는 얼굴.
‘대…대체 이 녀석은……?’
한순간 그의 두 눈에 공포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
이를 악문 그는 재빨리손을 휘둘러 눈 앞의 상대를 베어냈다.
스아악!
“……?!”
그리고 마치 신기루를 베어내기라도 하듯, 사신의 형상을 하고 있던 상대가 그 자리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어리둥절한 그가 주변을 둘러봤을 때,놈은 알론조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한 명을 먼저 제압하고 수적 우세를 보겠다는 건가?!’
잠시 미간을 좁히는 살바토리오.
그러나 이내 그의 입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빈틈’이 바로 눈 앞에 있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알론조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변이체를 각성시키기로 한 것이다.
‘후회하게 해주마!’
살바토리오를 뒤로 하고 몸을 날린 은가람은 낮게 혀를 찼다.
‘쯧…! 역시 오래는 못 붙잡아두고 있네.’
공포 잔상의 효과가 그리오래 가지는 못했다.
상대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
지금 상태에서 그가 변이마저 끝낸다면 가망은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길이 없는 것도 아니지.
자신 역시도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한창 혈투를 벌이고 있는 알론조와 한주희 사이로 끼어들었다.
“……?!”
“뭐야?! 너 뭐 하는……?!”
당황하는 한주희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는가차없이 알론조의 목을 그었다.
촤아악!
“야! 이 개새끼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것은 ‘도움’이었을 것이다.
한아름이나 이현진이었다면, 은가람의 행동은 자신의 체력을 아끼게 해줄 ‘배려’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주희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조금 전 은가람의 행동은 단순히 자신의 사냥감…… 아니, 장난감을 뺏아가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낮게한 마디를 던진 후, 은가람은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본래 자신이 상대하고 있던 살바토리오를향해서였다.
“저 개색……! 진짜, 나가면 봐라, 씨발?!”
한주희는 알지 못했다.
회귀 전, 은가람이 그녀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지.
그녀를 화나게 만드는 방법을 얼마나 잘 아는지.
“……짜증나!”
쾅!
홧김에 벽을 한 대 후려친 그녀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은가람을 뒤따랐다.
어쨌건 그의 말대로 이 곳을 빠져나가는게 급선무기는 했으니까.
*
“크흐흐……이거야…! 아직 조금 불안정하지만,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군!!”
붉게 물든 피부색과 울룩불룩 부풀어 오른 턱 주변의 혈관.
새까맣게 변해 버린 두 눈에서는 짙은 살광이 흩어져 나왔다.
“너희들은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거다!”
그의 목소리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마치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 번에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훼방을 놓은 두 남녀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이전보다 길이는 조금 짧지만, 훨씬 더 빠른 속도.
웬만한 S급의 헌터조차도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다행이 문제는 없어…… 이거면… 이거면 된 거다! 굳이 다음 달까지 기다릴 필요도……!’
그런 자신의 생각이 안일했다는것을, 그는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분명 으스러져 사라졌어야 할 은가람이, 그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쯧…! 죽어버려라!!”
이번에는 왼손을 휘둘러 허공을 쓸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지는 은가람의 몸.
살바토리오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망설임 없이 양손을 휘둘렀다.
“그림자 검날.”
회귀 이전 그를 존재하게 해 준 S급 스킬.
두 개의 단도에서 검은 색의 그림자가 뻗어져 나와 살바토리오를 베어갔다.
그의 도신마저 칠흑같은 검정색이었기에 마치 단도의 날이 길게 뻗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슥-
일체의 소음도 없이 상대의 몸을 가르는 그림자.
“이……이러…크르르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살바토리오는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쿠웅……!
네 조각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흩어진 살바토리오를 바라보며, 은가람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슬아슬했네…’
한주희에게 훼방을 놓으며 얻어낸 일시적인 스킬의 해제.
그림자 검날의 해제 시간이, 3초 전 막 끝난 참이었다.
그는 마인들의 피를 머금은 두 개의 단도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이내 한쪽에서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을짓고 있는 한주희에게 입을 열었다.
“나가자.”
“……재수없는 새끼.”
“아, 나중에 원 없이 날뛰게 해 줄게.”
“……정말이지?”
‘단순한 녀석.’
*
“이쪽이야. 쭉 걸어 나와.”
“……?”
은가람과 떨어져 밖으로 나온 일행들.
한아름과 은서현, 이현진, 그리고 세바스찬은 한쪽에서 결계를 치고 있던 현화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겼다.
의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자, 어느 순간 현화의 모습이 드러났다.
“쌤!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나? 너희들이 들어가고 나서부터 쭉 여기 있었지. 결계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거대한 건물 전체를 둘러싼 결계.
어지간한 마법사 세 명이 모여도 쉽게 해내기 힘든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현화를 바라보며, 일행들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녀석은 뭔데?”
그녀는 서현의 등에 업혀 있는 꼬마를 턱으로 가리켰다.
“으음…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요…”
“좀 치료해 줘. 많이 다쳤어.”
나름 변명을 찾아 보려던 한아름.
그에 반해 서현은 당당하게 치료를 요구했다.
현화는 잠시 의아한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뭐, 다 사정이 있겠지. 때 되면 말해 줘.”
“알았다.”
평소와 달리 담담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나머지 일행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지하에서 마인을 베어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서현이 맞았으니까.
‘아까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대체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던 한아름은 현화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가람이랑 주희는 어디 갔어?”
“아… 둘은 도망친 녀석들을 쫓아갔는데…… 그보다 사람들이 나오지는 않았어요? 품평회 참석했던……”
그녀의 말에 현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음……? 글쎄? 너희가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 건물에서 나온 사람은 없었어. 제대로 결계를 치고 있었으니 빠져나갔을 리도 없고.”
“네……? 그러면 이상한데……”
분명 홀 안에서 많은 사람이 죽기는 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참석자가 살바토리오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했던 것이다.
“호,혹시 지하도가 따로 있다거나……”
“아니. 혹시 그럴지도 몰라서 내가 몇 번이고 체크해 봤는데, 비밀통로는 있어도 다른 곳으로 나가는 지하도는 없었어.”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이었다.
쿠웅………
쿠르르륵…콰르르르르르!!
“…!!”
“가람아!”
“언니?! 가람아!”
그들이 있던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파편들과 먼지에 현화는 방벽을 전개해 몸을 보호했다.
“혀,형님?! 가람이 형님은 괜찮은 거겠죠?!”
“그 녀석이라면 괜찮을 거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놈이 아니야!”
“언니이!!”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 세바스찬과, 눈을 붉게 물들이며 절규하는 한아름.
그런 그들의 귀에, 은가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쿨럭…!어우, 먼지야. 귀청 떨어지겠다.”
“가람아!”
“어…언니……언니이!!흐어어엉!!”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했던 한아름은 그녀에게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 씨…… 왜 울고 지랄이야, 쪽팔리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주희는 동생의 등을 토닥거렸다.
꽤나 의외의 광경을 바라보던 은가람은 주변을 가득 메운 흙먼지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콜록! 나온 사람 없죠?”
“응. 너희가 마지막이야. 그 이전에도 나온 사람은 없고.”
그럴 줄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은가람.
옆에서 듣고 있던 세바스찬이 물었다.
“그러면…… 도망친 자들은 어떻게 된 거지?”
“뭐? 누가 도망쳤는데?”
“……?”
“아아, 그 품평회 고객들? 뭐 있겠냐? 다 죽었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는 은가람.
일행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와…… 너도 참 대단하다.”
“왜요? 어차피 놈들도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쓰레기들인데, 잘 죽었지.”
“그건 맞지.”
옆에서 듣고 있던 한주희가 동의했다.
“조용히 해! 흐윽…… 무슨, 사람을 그렇게……흑… 언니 내가 그러지 말라고……흐윽… 했자나…”
“……그래, 내가 미안하다…”
비록 이어진 한아름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글쎄…… 처음부터 적이었고, 살려놔도 적이었을 놈들인데. 굳이 동정해야 할 이유라도?”
뭐가 문제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는 은가람.
그를 향해 현화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너도 참 이기적이다, 야.”
“어이구, 칭찬 감사합니다.”
그의 근력이 2 증가했다는 사실을 현화는 알지 못했다.
*
수 분 전.
콰앙!
“헉…! 사,사람이다!”
“살려주세요!”
벽을 뚫고 들어 온 두 사람의 그림자.
지옥 끝에서 발견한 희망의 편린에 사람들은 절규했다.
살바토리오의 말에 따라 비상 통로를 이용하던 그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실험을 위해 사람들을 모아두는 감옥이었다.
제대로 빛도 들어오지 않고, 출구도 존재하지 않으며 간신히 서 있을 공간밖에 없는 좁은 방.
첫 실험체의 실패를 목격한 이들이었기에, 살바토리오는 그들을 실험체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신이시여……”
절망 속에서 비친 실낱같은 희망에 그들이 화색을 띠고 있을 때였다.
“여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빨리 움직이자.”
“어……?”
“자,잠시만요! 제발!! 사람 살려주세요!”
절박하게 외치는 그들.
조금전 까지 자신들이 죽이려 했던 이들에게 그들은 목숨을 구걸하고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한 없이 차갑기만 했다.
“내가 왜?”
“제발……제발요, 뭐든지 할 테니까…!”
흐느끼며 울부짖어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싫어. 이래봬도 바쁜 몸이라.”
“잠깐만……잠깐만, 이 개자식아!”
“이 씨발! 거기 안 서?! 개새끼들아!!”
“돌아와!돌아오라고!”
목이 터질 듯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
그들의 절규는 건물이 무너질 때 까지 계속되었다.
[절망을 감지했습니다.]
[혐오를 감지했습니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저버렸습니다.]
[초월자가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