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5. 깽판치러 갈 시간
“크으~~! 간만이구만!! 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잘 됐어!”
좌우로스트레칭을 하며 한주희는 연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은가람이 옆에서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렇게 신나냐?”
“당연하지! 피가 끓어오른다고! 피가!”
“……하아…”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은가람이었다.
“근데 웬일이래? 나한테 이런 자리까지 마련해 주고.”
“별 뜻 없어.”
“흐음…… 뭐, 상관없어. 나야 즐기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씨익 웃어 보였다.
괜히 불길한 마음을 떨칠수 없었던 은가람은 나지막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죽이지‘는’ 마라.”
그리고, 그의 말 뜻을 정확하게 이해한 한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두라고! 짜식아.”
그렇게, 세바스찬과 한주희의 대련이이른 아침부터 막을 열었다.
“너희들도 잘 봐 둬.”
“네!”
“알았어.”
내 말에 현진과 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쳇…… 그래봐야 저런 녀석……”
서현은 혀를 찼지만.
“어쨌건 한주희는 S클래스니까. 봐 두면 배울게 많을 거야.”
아니, 오히려 지금의 대련에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건 서현이 유일하지 않을까.
정확하게는 몰라도 현재 한주희의 전투력은 나와 비등하거나 조금 웃도는 수준일 것이다.
내가 계속 싸움을 피해 왔던 것 역시 그래서였고.
‘어쩌면 제대로 볼 수도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안고 있는데, 어느덧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탓!
투콰앙!!
“?!”
“저,저게 무슨……?!”
시작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나가는 한주희.
분명 제자리에서 도약했을 뿐인데, 그녀가 서 있던 바닥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아앙!
“크읏……!”
바로 다음 순간 격돌하는 세바스찬과 한주희.
‘한주희야 뭐 원래 저런 녀석이지만…… 그새 그걸 반응한 것도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비록 간신히 몸을 튼 것에 불과했지만, 세바스찬은가까스로 한주희의 발차기를 막아낼 수 있었다.
이를 악물고 반격을 가하는 그.
예리한 그의 검이 한주희의 목을향해 내질러졌다.
슈아악!
제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예기.
그러나 한주희는 가소롭다는 듯이 자신의 공격을 감행했다.
방어가 아닌 공격-
더 늦게 출발했음에도 그녀의 공격이 먼저 상대에게 닿았다.
“느려!”
퍼컥!
회전력을 실은 강력한 발차기가 세바스찬의 얼굴에 고스란히작렬했다.
마치 바람개비처럼 허공에서 회전하는 세바스찬의 몸.
네 바퀴를 그렇게 돌고난 후에야 그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털썩.
“하아…… 언니…”
“……저……그………아니……”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는 한아름과, 말을 잇지 못하는 이현진.
월영에서 꽤나 유명인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위용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일 테니까.
서현만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주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시시하게……”
그대로 정신을 잃은세바스찬을 툭툭 쳐 보던 한주희는 쳇- 하고 짧게 혀를 차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가 채 입을 떼기도전에 먼저 선수를 쳤고.
“안 해. 안한다고. 꺼져, 안 싸워줘.”
“……눈치 빠른 녀석.”
“헛소리 하지 말고 저 녀석이나 챙겨. 말했지? 죽이진 말라고.”
“안 죽였어. 제대로 힘조절 했다고. 잔소리하긴……”
그의 말에 현진은 다시 한 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힘조절을 한 거라니……”
그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잔말 말고 회의나 준비하자. 저 녀석 적당히 눕혀 놓고. 내일 당장 출발해야 하니까, 서둘러야지.”
*
“으음……여긴……”
약간은 낯익은 천장.
그것이 자신의 별장이라는 것을 깨달은 세바스찬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창 밖으로 비추는 햇살은 어느덧 새빨갛게 변해 저녁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약하구만, 나는.”
이제껏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갓프리드 단장에 비교하자면 아직 어린 애송이에 불과하겠지만 적어도같은 또래에게 밀린 적은 단 한 번도없었다.
뛰어난 체격과 더불어 검술에 대한 재능.
거기에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까지 있었기에 그는 빠르게 중급기사의 위치에오를 수 있었다.
그런 그의 과거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이대로 헬리오스를 졸업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확실히S급 헌터가 될 것이라고, 같은 세대 중에서라면 그 어떤 헌터라도 당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 믿음이 벌써 두 번이나 깨졌다.
처참하게.
“하지만…… 어쩐지 나쁜 기분만은 아니네.”
오히려 후련했다.
이정도로 압도적으로 지고 나니, 시야가 밝아진 느낌이었다.
안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속도와 짧은 순간 변수를 만들어내는변칙적인 전투.
아직 자신이 가야 할 길은 멀었다.
“그런데 다들 어디……”
그는 어두운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이 쑤시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움직이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달칵-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자연스레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던그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놈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에요.”
“하긴, 코사 노스트라가 만만한 놈들은 아니니까. 거기다가 마인이라면……”
‘마인……? 아니, 그 이전에 코사 노스트라?!’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
“……”
약속이라도 한 듯, 그에게로 모여드는 눈동자.
그에 아랑곳 않고 세바스찬은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아니지? 코사 노스트라라니…… 너희들 미친 건가?! 다른 세력도 아니고, 코사 노스트라라고?!”
서유럽 쪽에선 헌터보다 무서운게 마피아라고 할 정도로, 그들의 세력이 두드러져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웬만큼뒤쪽의 사정을 아는 이들은 허수아비같은 헌터보다 그들의 힘을 더 두려워했다.
“하아…… 뭐야, 벌써 일어났어? 왜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그래?”
은가람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만 하는게 좋다! 너희들 그러다가 다……”
“시끄럽네.”
“……!!”
은가람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코사 노스트라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면, 그들을 상대하는 우리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지 않아?”
“……”
세바스찬은 긴장한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은가람의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정보가 새어나간 이상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위험하다.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이다……’
살면서 이토록 진득한 살기를 느껴 본 적이 없는 세바스찬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자신에게 달려들 수 있는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귀에, 현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는 것 보다, 같이 데려가는게 어때?”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괜히 죽여서 적을 더 만드느니, 바로 옆에서 감시하는게 더 편하지 않을까? 도청장치나 기타 추적장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거고 말이지.”
“흐음……”
고심에 빠져드는 은가람.
세바스찬이 입을 여는 것과, 그가 결정을 내린 것은 거의 같은시간이었다.
“잠깐, 나는 간다고……”
“좋아! 데려가 주지.”
“……”
“설마 여기까지 와서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나를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뭐야, 기사도니 뭐니 하는 건 다 어디 간 거야? 도망치겠다고?”
“……!”
‘도망’이라는 말 한 마디가 그를 자극했다.
“아니다. 따라가도록 하지.”
“그래, 잘 결정했어.”
“갓프리드가 인정한녀석이니까 뭐…… 믿을 만은 하겠지.”
“수틀리면 죽여버리기도 편하구요.”
현화의 말에 그렇게 덧붙이며, 은가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계획대로!’
같은 지붕 아래에 살면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으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던 그였다.
더군다나 세바스찬이 조금 재수없기는 해도, 엄연히 능력만큼은괜찮은 녀석이었기에 언제가 되었든 도움이 될 터.
처음부터 은가람은 그를 끌어들일 궁리를 하고 있던 것이다.
현화와 함께.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은가람의 속을전혀 알 리 없는 세바스찬은 홀로 투지를 불태웠다.
*
다음 날 밤.
그들은 앞서 계획한 대로 품평회가 열리는 건물 근처로 잠입했다.
품평회가 시작되는 시간은 자정.
그게 한창 진행되고 있을 시각에 그들을 덥치기로 한 것이다.
은가람은 한쪽에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바스찬에게 입을 열었다.
“전투가 벌어져도 최대한 숨어 있어. 지금은 만용이랑 용기를 헷갈릴 때가 아니니까.”
“하지만, 전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편이 좋지 않나…?”
“괜히 끼어들었다가 우리들끼리 맞춘 합이 틀어지면? 잘 판단해서 행동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세바스찬이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기사도 정신을 자극하기 위한 말이었으니까.
내심 비장한 마음을 안는 그를 두고, 은가람은 서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부탁할게, 서현아.”
*
‘이번에도 꽤나 몰려오는군……’
또 한 팀의 침입자를 여유롭게 막아낸 소녀.
무감정한 표정으로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중앙에서는 한창 메인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와 전혀상관없는 사람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할 뿐…… 그거면 된 거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냄새를 맡고 찾아드는 벌레를 잡는 일.
그러면 그 일에 충실하면 되었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 처럼, 완벽하게.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의 감각에, 묘한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음……? 이…건 뭐지…?’
너무나도 이상한 감각.
거리는 약 10m 정도 될까.
아니, 그것조차도 확실치 않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금속의 움직임이 느껴졌던 것이다.
‘착각은 아닐텐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미약한 존재감을 발하는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벽에 박힌 금속조각 따위와 혼동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능력을 개방한다.
그것이 그녀가 택한 선택지였다.
자신의고유 권능을 이용해, 그녀는 근방에서 느껴지는 ‘금속’의 이질감을 제어했다.
그리고-
카앙! 캉……
“……?”
분명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허공에서, 자그마한 나이프가 떨어져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니, 흘러내렸다기보다, ‘자라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아주 미미한 존재감만을 가지고 있던 단검이, 지금은 확연한 금속의 질감을 풍겨내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였으나, 이 이상 지체하고있을 시간이 없었다.
바로 다음 순간 반대편에서 느껴진 침입자의 기척에 발걸음을 옮겨야 했으니까.
‘분명…… 무언가가 있다.’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으며 그녀는 몸을 날렸다.
*
“총 입구는 네 개. 그 중 두 개는 폐쇄되어 있었고, 나머지 둘은 경비가 삼엄했어. 양쪽 모두 같은 수준의 보안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며 서현은 현화 쌤이 가져온 마력 설계도의 빈 공간을 채워 나갔다.
“하지만, 상대하지 못 할 것도 없어. 조금…… 신경쓰이는 꼬맹이가 있기는 했지만.”
“꼬맹이? 너도 꼬맹이잖아.”
“뒤질래?!”
곧바로 성질을 부리는 녀석을 무시하며 나는 현화 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저희들끼리 들어가도 괜찮으려나요?”
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도 안 좋은 내가 들어갔다가는 문제가 더 커지기만 할 거야. 최대한밖에서 지원해 줄 테니까…… 조심해.”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깽판치러 갈 시간이다.
*
한창 품평회가 진행되고 있는 지하 홀.
자신의 두 동료를 바라보며 죠마르가 입을 열었다.
“결국 협회 놈들은 안 온건가?”
그에 알론조, 그리고 살바토리오가 대꾸했다.
“내버려 둬.”
“이진명 그 자식이 붙들고 있다고 하니까…… 그 쪽도 속이 말이 아니겠지.”
“그냥 협회고 자시고 죽여버리면 안 되나?”
죠마르의 말에 살바토리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말했을 텐데? 그런 식으로 건방 떨다가 가장 먼저 죽게 될 거라고.”
“뭐 어때? 그러면 그럴 운명인 갑지.”
“……”
입을 다무는 살바토리오를 향해 알론조가 물었다.
“잡은 놈들은?”
“아아. 아주 세계 각지에서 왔더구만? 그래 봐야 꼬맹이의 망 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 꼬맹이 자식, 재수는 없어도 능력 하나는 출중하네. 정말로 한 번쯤 죽여보고 싶은데……”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는 죠마르.
그를 애써 무시하며, 둘은 한창 진행중인 품평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알론조의 작품이 나올 차례였다.
“이번에는 여러분들이 그토록 고대하시던 ‘마인’입니다! 수많은 실험을 통해 검증된 베타 타입!”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무대 뒤쪽에서 사람 한 명이 걸어나왔다.
전체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기는 했으나, 평범한 이들에 비해 꽤나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피부가 선명한 자색을 띠고 있었기에 미간을 좁히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고객’들은감탄을 흘렸다.
“오오……!”
“이게 그 마인의 완성체인가?”
“똑바로 보셨습니다~! 이 마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달 받은 대로 장점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하는 사회자.
물론, 그가 소개하는 것은 ‘마인’자체가 아니었다.
마인이 되기 위한 유전자.
더 강한 힘을 가지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야말로 단향이 짙은꿀과도 같았다.
폭발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살바토리오가 나지막히 내뱉었다.
“보아하니, 제어장치는 제대로 작동중인 것 같네.”
“꽤나 힘 좀 썼지. 물론, 어느 정도 지능을 떨어뜨려야 한다는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역시도 차후에는 나아질 거고.”
“물론.”
그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홀의 한쪽에서, 누군가가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정말 대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