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4.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어? (64/114)



〈 64화 〉64.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어?

“가장 먼저… 나 역시도 같은 숙소에머물도록 하겠다. 어차피 내 소유이니 문제는 없겠지?”

“……그리고?”

고작 저런 걸로 숙식제공을 할 리가 없는데.


“그리고…… 나와 몇 번 대련을  줬으면 한다.”

“……?”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뜬금없이 대련이라니.

그러나 나를 더 당황시킨 건, 이어진 그의 행동이었다.


그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부탁해  것이다.

“이렇게 부탁한다. 나는…… 더 강해지고 싶다.”

“……”


뭔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예전보다 확연히 달라진 듯하면서도 여전한 듯한 모습.

‘앞전에는 쓸데 없이 올곧기만  모습이라면…… 조금은  중심이 생긴 듯한 모습이려나.’


강해지고 싶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그 열망에 따른 행동력 하나만은 칭찬해 줄만했다.

“그런데, 넌 어디 가던거 아니었냐? 그쪽 일은어쩌고?”

“아아, 상관없다. 일 주일 정도는 시간이 있기도 하고…… 어차피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


“이번 학기부터 월영으로 편입한다. 때문에 한국으로 가던 길이었거든. 하지만여기서 당사자를 만났으니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

“뭐……?”


우리는 일제히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골든 헬리오스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헌터 기사단 아닌가요? 굳이 월영으로 왜……”

그에 세바스찬은 단호하게 대답을 내어놓았다.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지.”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움직인 말이기도 했다.


‘물론, 여러가지로 써먹을 방법도 있을 거고.’


*

“우와……”

“이건 상당한데?”


한아름과 현화 쌤이 감탄을 흘렸다.

무리도 아니다.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아카데미의 A급에 준하는 훈련장 시설.

깔끔하게 정리된샤워실과, 최고급 호텔 부럽지 않은 방.


“이런 걸 개인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니……”

일행 중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현진이 유일했다.


“오오, 이런 식으로도 리모델링할 수 있구나…… 인테리어는 플루토  느낌이 물씬 나네.”

“정확히 봤다. 플루토 인테리어의 작품이니까.”

“확실히 괜찮다니까? 하와이 별장도 인테리어 번 갈아엎을까……”

“하와이라면 차라리 다른 사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겠지? 분위기라던가……”


아니, 평정은 아닌가?

신나서 떠들어 제끼는 둘을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같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부르주아 아니랄까봐……”

“꼴값들을 떠네, 진짜.”


하기야, 아들내미 과외비로 1억을 선뜻 내어주는 집안인데 어련하겠냐만은.

*

어느정도 짐을 풀고 샤워까지 끝마친 우리는 식당에서 또 한번 경악했다.

미리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최고급 요리사들이 몰려 와서 저녁을 준비해 뒀기 때문이다.

“뭐 해요? 빨리  먹어요.”

“……그래.”

당연한 듯이 식탁에 앉는 이현진.

그에 떠밀리듯 우리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시칠리아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서양식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문득 세바스찬이 그렇게 물어왔다.

“음……?”

“지난 번에는학회 관련으로 영국에 있었지. 견학차 우리 기사단을 들렸다고 들었고.”

“뭐 그렇지.”

“이번에도 새로운 이론이 발표되는 건가?”

나는 살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번에는 다른 일이지.”

“다른 일?”

“있어. 개인적인 사정이. 알면 다친다.”

“……”

그렇게 나는 그의 질문을 일축했다.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엄한 사람에게 정보를 흘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잠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심하는게 좋다.”

“뭐?”

“네가 강한 건 알고 있지만…… 요즘 이 근방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까.”


“분위기라니……그건 무슨 말이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화 쌤이 질문을 건냈다.

우리들의 시선은 어느새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괜찮아, 수틀리면 다 때려 죽이지 뭐.”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한주희는 제외하자.

세바스찬은 자신의 접시에 올려진 고기를 썰며 설명을 이었다.


“최근 헌터들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다.”

“뭐……? 미확인 게이트라던가……?”

“아니, 그런  아냐. 단순한 실종이다. 더군다나 실종되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C급 이상의 헌터들이지.”


“……?”

우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인, 아니 하다못해 아카데미 학생이 실종이라면 모를까.

현직 헌터가 실종된다는 사례는 꽤나 드물었다.

C급이라고 해도, 엄연한 헌터.
그런 사람들이 실종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골든 헬리오스의 기사 중에서도 실종자가 발생했다.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

“……”

식당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분명 코사 노스트라의 짓거리일 가능성이 높은데…….’

품평회에 어떤 물건들이 나올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만약 그게 ‘마인’에 대한 기술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헌터들을 납치해서 실험의재료로 사용하고 있을 테니까.

나는 내려뒀던 식기를 다시 집어들었다.

“딱히 걱정할 것 까지는 없네. 뭐야, 난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어차피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이잖아? 내가 실종되면 그 때 가서 걱정하지 뭐. 일단은 밥이나먹자고.”


“……”

그는 납득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식사를 재개했다.

“그건 그렇고, 밥 먹고 나서 간단하게 붙을까?”

“뭐? 갑자기……?”

“갑자기라니? 네가 원했던 거잖아? 받은 대로 돌려줘야 적성에 맞아서.”

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물론, 그게 좋은 의미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



후웅- 카가강!


하나의 장검이 두 개의 단도와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일 초에도 수 번씩 맞부딪히는 두 개의 금속.


‘많이 달라졌네……?’

은가람은 속으로 나지막히 감탄을 내뱉었다.

지난 번에 그를 상대했을 때는 꽤나 중후한 느낌이 강했었다.

고집과도 같은 무게.

지금도  중후함은 그대로였지만, 그러면서도동시에 날렵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역시 괜히 소질 있다는 소리를 듣는게 아니네.’

세바스찬의 검을 한쪽으로 흘리며, 그는 다시금 공격을 내질러 갔다.

보다 무거운 검으로 그를 재빠르게 막아내는 세바스찬.

그의 반격이 이어지기 전에, 은가람의 좌수가 공간을 갈랐다.

카가강!


연속적으로 울려퍼지는 금속성.

은가람의 공격을 전부 받아친 세바스찬은, 곧바로 자세를 낮추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투확!

스릉!


“……와우.”

“후우우……”


은가람의 목 바로 옆에서 멈춘 그의 검.

담담하게감탄을 내뱉는 상대를 바라보며, 세바스찬은 다시 거리를 벌렸다.


“왜 막지 않은 거지? 내가 조금 전 베었으면 어쩌려고?”

“응? 베었으면 벤 거지 뭐가?”

“……”


세바스찬은 입을 다물었다.

여유롭기만 한 은가람의 태도.

그것이 그가 죽음에 초연해서가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빈틈이 아니었나……’

조금 전 자신이 공격을 끝까지 밀어넣었더라도, 은가람은 죽지 않았으리라.

미간을 좁히는 그에게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의 공격은 꽤 괜찮았어. 이전에비해 확실히 날카로워졌는데?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

“……왜 스킬을 쓰지 않는 거지?”

세바스찬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그.

이윽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면 게임이 안 되잖아?”

“진지하게 상대해라. 그런 식으로  주다가는 실력이……”

그랬다가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곧바로 이어진 은가람의 행동에 차마 말을 끝맺지는 못했지만.


“그래? 알았어. 인페르노 스피어_Inferno Spear.”


화르르륵!


슈아아앗-!



“잠까……!”

콰아아앙-!!

이전에도 상대해  적 있었던 기술.

그러나 그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가공할 위력과 속도에 세바스찬은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이야, 화끈한데?!  녀석 기절한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나랑……”

“안 해.”


한주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은가람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씨발, 진짜 왜?!”

“몰라서 묻냐?!”

“언니! 좀!”

“……쳇.”

입을 삐쭉 내미는 한주희.

그런 그녀를바라보며 둘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저 천상 싸움꾼 기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번 생에서 엮이고 싶지 않았던 1순위.

그러나 이미 너무 깊은 곳까지 발을 들여 놓은 상황이었다.

앞으로도 끈질기게 따라다닐 그녀를 생각하면 앞길이 막막하기만  은가람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현화가 정신을 잃은 세바스찬을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야야, 근데 너무 지나친  아니냐? 이러다 나중에 얘네 집에서 해꼬지하면 어쩌려고?”


“괜찮을 거에요. 뭐, 이제 와서 누굴 적으로 돌리냐를 무서워하면 섭하죠.”

“에휴……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냅다 그렇게 고위마법을 때려박아 버리냐? 진짜 얄짤 없네.”

은가람은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이건 판타지소설이나 영화의 장면이 아니잖아요? 굳이 쎈 기술 아낄 필요는 없죠. 준비할 때 까지 기다려 줄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본인이 직접 부탁한거니까 전 잘못 없어요?”

뻔뻔한 표정으로 ‘나 잘못 없소’라고 말하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현화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악마 녀석.”


조용히 중얼거리는 현화의 말에,  한아름과 이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아랑곳 않은 채로, 은가람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녀석이 뻗어야 저희가 이야기하기 편하니까요.”



*


“일단은 건물의 도면을 따왔어. 자.”

마법 실력 만큼이나 기술에 대한 이해 역시도 뛰어난 그녀였기에 건물의 도면을 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현화는 앞쪽으로 한 손을 뻗었다.
평평한 테이블 위로 한 건물의 형상이 띄워졌다.

총 3층 규모의 건물.

“그런데 정작 품평회가 열리는 건 지상이 아닌 것 같아.”

“지하에 따로 공간이 있는 건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하 공간이 있는 것 같아. 이상하게 제대로 감지되지는 않는데…… 그거야 이미 예상했던 거고. 대략적으로 알  있던  어느정도 큰 규모의 홀이 있다는 것 뿐이야.”

“그거면 충분해요.”

 공간에 외부로부터의 감지를 차단하는 장치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 의심할 게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잠입하느냐인데……”

아직 제대로 된 통로나 지하 공간의 구조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게 없었다.


미간을 좁히는 그녀를 향해, 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갔다 올게.”

“뭐?”

“그러고 보니……”

은가람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끄덕였다.


“그럼,서현이가 먼저 정찰을 갔다 와 주면 좋겠네.”

“뭐? 그건 무슨 소리야?”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현화.

은가람은걱정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걱정 안해도 돼요. 이 녀석만큼 정찰에 적합한 녀석도 없을 테니까…… 바로 지금 처럼요.”

“어……?”

그의 말에 현화는 뒤늦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옆에 있을 것이 확실한 서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자리에 있는 듯했다.

“……서현아…?”


“이제 됐지?”

“허……”


대답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서현을 보며, 일행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은가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같이 갈까?”

“아냐. 됐어.”

“그렇다면 말고.”

조금은 서현을 믿어볼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일단 정찰을 서현이 맡도록 하고, 우리는……”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

“좀 살만하냐?”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다.”

다음 날 아침.
내 질문에 세바스찬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어나면 곧바로따지고  줄 알았는데, 꽤 의외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부드러운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부자들의 식단은 다르구나.
식감부터가 달라.

뛰어난 음식 맛에 새삼 감탄하고 있는데, 세바스찬이 입을 열었다.


“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대련하도록 하지.”

이것도 정상이 아닐세.

어제 그렇게 깨진 주제에 또 덤비냐?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담담하게 식사를 계속하며 말을 이었다.

“실패가 없는 사람은 위로 올라갈 수 없지. 오늘도 이기진 못하겠지만……”


“……”


돌아버리겠네.

물론, 처음 조건이 ‘몇 번 대련’이기는 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이렇게 대련신청을 할 줄이야……


‘사실 그러지 말라고 어제 그렇게 조져놓은 건데…’

왠지 이 녀석도 한주희 마냥 계속해서 덤벼들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그야말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있었다.


“오늘은 나 말고 한주희랑 해.”

“음……?”

“앙? 나랑? 나야 일단 싸울 수 있으면 좋은데. 한 번 붙어보고 싶기도 했고.”

입 안에 음식을 우겨넣는 한주희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했을 텐데? 여자랑은……”

“정신 못 차렸네.”

“……?”

“실전에서 여자 남자 가리고 상대할 같냐? 여자가 너 죽이려고 들면 그냥 두  놓고 죽을래?”

 말에 그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고심에빠져들었다.

나는 속으로 열심히 빌었다.


‘제발 걸려라…… 제발 걸려들어라…!’

그렇게 간절하게 빌며,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넌 한주희한테 못 이겨.”

그것이 제대로 먹혀든 것일까.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말이군.”


나이쓰!
책임전가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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