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63. 재회 (63/114)



〈 63화 〉63. 재회

“하아……”


낮게 한숨을 쉬었다.


“또 왜 이 지랄이실까…?”

아카데미의 훈련장.

 훈련을 끝마친 나는 시간이 정지한 주변을 둘러보며 짜증을 부렸다.


그에 답하듯, 초월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울려왔다.

[지랄이라니,  심하게 하네. 그런 말은 마음에 상처가 된다구?]

“지랄하네.”

[……정말이지남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녀석이구만. 아주 마음에 들어?]

욕을 박아도 실실 웃기 바쁜변태적인 초월자의 취향에 나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는 정말아쉽게 됐어? 설마 그렇게까지 흔들릴 줄은 몰랐지만 말야. 킥킥……]

“흔들리다니? 뭘 잘못 먹은 거냐, 눈이  거냐?”

[초월자는 뭘 먹지 않아도 되고, 눈이 삐지도 않아. 그래서 말인데, 제안 하나  하지.]


 되지도 않는 거래를 가져왔겠지.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염병하지 말고.”

지난 번에야 혹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도 바보는 아냐.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이라고. 오히려 반대라고 해야 할까?]

“……?”

[네가 힘에 취해 미쳐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네가 강해질 수록 결국 나도 좋은 거니까말야.]

“내가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지.”


[풋…! 그것도 맞긴 하지만 말야.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야. 이번에 혼자 떠나려고 생각하는 여행…… 그 녀석들과 함께 가라고. 이건 그리 어렵지 않지?]


“뭐라고……?”


물론 동료가 같이 있으면 편하기는 했다.
여차했을  제약을 해제할 껀덕지가 생기기도 했고.

그러나 놈의 말에는 뭔가 다른 뜻이 숨어있을 것 같았다.

[코사 노스트라의 품평회라…… 재미있을 거야? 만약 ‘혹시라도  실력이 부족해서’ 동료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쩔 없이’나도 너를 강하게 해 줘야할 거고.  그래?]

“개같은 자식!”

결국그게 목적이었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동료를죽게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는 옅은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시간을 돌렸다.

지난 번에 그랬던 것 처럼.

[후후…… 이번에는 잘 해 보라구, 우리의 선택자씨.]


능구렁이 같은자식.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내 귀에, 누군가의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뭔 생각하는지 얼굴에 다 쓰여 있구만?”


한주희였다.


“딱 봐도 답 나오네. 너, 코사 노스트라인지 뭔지에 혼자 갈 생각 아니냐?”

“뭐……?”


단번에 자신의 심중을 파악한 한주희.

순간, 그녀의 모습이 회귀 이전의 한주희와 겹쳐 보였다.



*


“이상하게 넌 낯설지가 않단 말이지…… 단순히 기분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멍한 표정을 짓는 은가람.

낮게 웃음을 흘리며 한주희는 말을 이었다.

“하나 충고 해 줄까? 혼자  짊어지려 하는건 멍청한 짓이야. 그런 놈들 치고 괜찮게 끝나는 놈을 적 없거든.”

“무슨 상관이야?”

“네 딴에는 생각해 준다고 하는 그거, 상대 입장에서 기분 나쁠지도모른다고생각해 본 적 없냐, 이 말이지.”


“……?”

은가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못 믿는다는거잖아?”

“그건……”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런 말  처지는 아니긴 한데…… 조금은 주변 사람들한테 의지하는게 좋지 않겠냐?”

그런 말을 내뱉는 한주희.

은가람은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회귀 이전의한주희가 비치고 있었으니까.


조금  그녀의 말은, 그가 회귀 이전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럼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의미에서, 한  붙을……”

“붙겠냐?”

“……쳇.”

*


[후우……]

샤워를 끝내고 간단하게 옷을 챙겨입었다.

거실 한쪽을 차지한 창문너머에서는 새파란 아침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조금은 차가운 공기와, 몽환적인 분위기.


[이런 건 좋네…]


타워 밖에서는 보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

그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타워를 공략한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고층 건물로 가득한 현대의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그리움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간단하게 옷을 챙겨입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섰다.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자고 있을 때는 세상 예쁜데 말이지……]


어떻게 된 게 잠에서 깨어나면 그렇게 포악해지는 건지.

그나마 오후에라면 또 모를까.

잠들기 직전의 그녀는 어떤 의미로는 공포와도 같았다.


[그럼 가 볼까……]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가 내 옷을 틀어쥐었다.

“……”

시선을 돌려 보니,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내 옷깃을 꽉 틀어쥔 채로.


[……나 이제 나가봐야 해.]

[어차피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루 정도는 늦어도 괜찮아.]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그런 나를, 그녀는우악스런 악력으로 끌어 침대에 매다꽂았다.


그리고는 그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자,잠깐만…… 나도 체력적으로…]

[S급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주제에?]

[그,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당연하게도 씨알도 먹히지않았다.


[닥쳐, 씨발. 내가 하자면 하는 거지.]

젠장.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끝내 거절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사람 살려……]
[지도 좋은 주제에 엄살은.]

이런 저런 일은 많지만, 그래도 나름은 평화로운 일상.

어쩌면, 그런 시간 속에서 남아있는다는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검을 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일상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

오히려 지금의 안락에서 벗어나야만 결국 안심할 수 있었기에.



*



S급 헌터, 켈벤 스트라이커의 죽음은 여전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고위급의 헌터라면 언론에서 위치를 쉽게 특정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특히나 그의 경우 ‘추격자’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신출귀몰한 사람이었으니까.

“시간이랑 위치만 안다고 다 되는 건 아냐.”

실험실에 모인 우리에게, 현화 쌤은 그렇게 말했다.

현진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위장 신분같은 걸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 정도라면……”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에서도 우리의 정보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런 어설픈 수작은 통하지 않겠지.”

“오히려 정공법이 더 좋지 않을까?”


담담하게 내뱉는 서현의 말.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와 현화 쌤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어줍짢은 수법으로 어떻게 해 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옆쪽에서 같이 듣고 있던 한아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도 가려고?”

“응. 왜? 나는 가면 안돼?”

“그건 아닌데……”


한주희야 워낙에 제멋대로인 녀석이니까 논외로 치고.

코사 노스트라에 부모님을 잃은 은서현과, 형을 잃은 이현진.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짓을 막으려는 나와 현화 쌤.


한아름의 경우는 굳이 따지고 보면 위험 부담을 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재미 있을 것 같으니까!”

“그……우리 놀러 가는 게 아닌데…?”

“근데 왜 언니는 되고 나는 안돼?”

“……”

맞다.

그랬었지.

이 둘은 자매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하는 우리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현진이 아버님 전용기를 타고 갈 생각이야?”

“그건 문제 없어요.”

자신있게 대답하는 현진.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공항을 이용하자.”

“왜?”


“지난 번에도 녀석을 이용했잖아요? 그 때야 저 쪽에서 가진 정보가 없었으니 그렇다고 쳐도,이번에는 너무 위험해요.”

“하긴……”

현화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용기를 타고 간다는 건, 다시 말해 우리가 찾아가고 있음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공항을 이용해도 마찬가지 아냐?”

서현이 그렇게 물어왔다.

한아름도동의했다.

“맞아. 그 정도 힘을 가진 세력이라면 우리가 입국했다는 사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있을 텐데.”

그에 나는 미리 받은 정보를 그들에게 보냈다.

연을 통해 받은 위장 신분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위장신분을 쓰는 거지. 품평회 잠입용이 아니라.”

“아하……”

“도착하게 되면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다시 귀국하려면 필요할 테니까 잘 보관해 둬.”


각자의 스마트폰에 위장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서와 여권을 보냈다.


“출발은 4일 후야.”




*


“그래. 그게 네 결단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세바스찬 폰 벨프.

골든 헬리오스의 중급 기사로서 꽤나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학생이었다.

“허나.”

“……?”

“그에 대한 지원을 따로 할 생각은 없다. 너 역시도 이미 가지고 있는 재력이 있겠지?”

그의 말에 세바스찬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그러면 출국은……”

“그런 것 조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냥 골든 헬리오스에 남아 있도록 해라.”

“……”

물론, 그에게는 돈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날아갈 비행기가 필요했다.

자신이 종종 이용해 오던 아버지의 전용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그런 것 쯤은 해 봐야지? 뛰어난 기사도 좋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는 말도록 해라.”



그는 그렇게 아버지의방을 나섰다.

그것이 약 한 달 전.

현재 그는 시칠리아의  공항에 와 있었다.

“후우…… 일단은경유지까지는 무사히 도착한 것 같군……”


마냥 낯설기만 한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직 경유와 직항에대한 차이조차 알지 못했기에, 경유되는 항공기로 표를 구매해 버린 것이다.


한쪽에서 찾은 짐을 끌며 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여유롭게 시간을 잡아서 다행이군. 편입 서류는  보내 뒀으니……”


일부러 넉넉잡아 시간을 조율했기에 앞으로  주일 안에만 도착한다면 문제는 없었다.

물론 곧바로 숙소를 잡아야 하기도 했지만, 이미가진 재력이 있는 만큼 그런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어디 보자…… 다음 비행기는 앞으로 5시간 후에……”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였다.


문득 들어 본 그의 시선 끝에, 낯익은 누군가의 얼굴이 비쳤다.


*



“에휴, 가지가지 한다 진짜.”

“아……아니…… 원래는 안 이런데……”

“이래서 부르주아 들이란……”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현진을 바라봤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그.

평소 같았으면 걱정이라도 해 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몸이 아파서 그런 것도, 고된 훈련으로 다친 것도 아니었으니까.


“전용기 안 탔다고 냅다 멀미냐?”

“형…… 그게 아니라요…”

“됐어, 걷기나 해.”


다른 일행들 또한 한숨을 내쉬며 현진의 짐을 들어주었다.


“한심하긴.”

“……알아서 떠들어라…”


서현이 그런 식으로 비꼬아도 답할 여력조차 없었는지, 녀석은한 손을 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럼 일단은 근처에 숙소를 잡자고. 미리 알아둔 곳이 몇 군데 있으니까.”

“어…얼마나 먼데요…?”

“버스 타면 한 시간 정도?”

“으으……”


현화 쌤의 말에 녀석은 죽을 상을지었다.

그에 우리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옆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혹시 숙소가 필요하다면,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응……?”
“……?”


“……”


약간은 큰 키와 짧은 금발을 가진 사내.

우리는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뉘신지…?”

아니, 그 이전에 ‘숙소 제공’이라니.

딱 봐도 자신도 여행  것처럼 보이는데 뭔 놈의 숙소 제공이란 말인가?

수상하기만 그의 말에 우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되물어왔다.

“설마…… 기억 못 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나를 정확히 직시하며, 그렇게 묻는다.

아니, 그러니까 누구냐고.

알았으면 물어 봤겠냐?

“기억  하겠는데. 진짜로 누구세요?”

“큿……!”

내 말에 그는 미간을 팍- 좁혔다.

‘잠깐만…… 저 분에 찬 표정……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을 내가 몇 명을 봐 왔는데.

회귀 전까지 합한다면 세 자릿수는 족히 나올 거다.

결국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게, 그는 친절하게 입을 열었다.

“세바스찬이다! 골든 헬리오스의 중급 기사!”

“아아!”


옆에서 한주희가 먼저 탄성을 터뜨렸다.

“그 겁쟁이?”

“겁쟁이가 아니라, 기사겠지.”


그 옆에서 현화 쌤도 조그맣게 거들었다.

“얼어 뒤질 놈의 기사도 같은 소리 하네. 시대가 어느 땐데……”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떠올릴  있었다.

“아아, 이제야 기억난다.”

“……”


잠시간 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이내 크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말을 이어 왔다.

“후우…… 그래, 지난 번의 일이야 넘어가지. 아무튼, 숙소가 필요하다면 우리 개인 별장을 빌려줄 수도 있다.”

“……”


니가 왜요.
아니, 우리가  그걸 써요.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물론, 그냥 내어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됐어. 우리  많아.”

조건을 듣지도 않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입을 열었다.


“최고급 레벨의 훈련장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꺼림찍해. 내 본능이 거절하고 있거든.”

“지내는 동안 무료. 그리고 엄선된 재료로 만든 식사까지 주어지지.”

“……”

일단 조건은 들어나 볼까……?

손해 볼 건 없을  같은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거절해도 상관은 없을 거고.


그런 고민을 하는 내게 그는 쐐기를 박았다.

……아니, 정확히는 현진에게 냅다 꽂은 거겠지만.


“기사를 부른다면 리무진 타고15분 이내에 도착 가능한 거리다.”


“가요!!”

“……”


에라이, 미친 친구야.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조건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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