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62. 정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리는 살바토리오.
그 속도는 사람의 안력을 넘어선 정도였다.
웬만한 A급의 헌터는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속도.
슈아아악!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 어떻게……?!”
긴 잔상을 남기며 알론조의 뒤쪽으로 이동한 켈벤.
라우라의 속박을 이토록 쉽게 벗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그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자리잡았다.
“힘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여기서 죽여버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겠어.”
켈벤의 한쪽 손 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내 거대한 낫으로 변형되는 연기.
알론조의 목을 향해, 그는 망설임 없이 낫을 휘둘렀다.
스아악!
그러나, 그의 공격은 알론조에게 닿지 못했다.
푸확-!
“……!?”
“……”
잠시간의 정적 후에, 켈벤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쿨럭…!”
간신히 아래쪽으로 시선을 떨군 켈벤.
그의 눈에, 가슴을뚫고 나온 자신의 심장이 보였다.
“성가시군.”
팍!
털썩…!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심장이 터졌다.
그가 쓰러지며 그 뒤쪽에서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뭐…… 어쩔 수 없나? 아직까지 S급은 너희에겐 무리군.”
“베…베르톨도님…?!”
“여긴 무슨 일로……”
코사 노스트라의 리더- 베르톨도 프로벤차노.
평소라면 본명의 언급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당사자가 있는 곳에서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가 있다는 것은, 곧주변에 감시하는 눈이나 귀가 없다는 반증과도 같았으니까.
“……”
그는 살짝 미간을 좁히고는 쓰러진 켈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가슴높이로 손을 들어올린 그.
이내 아래쪽으로 향햔 그의 손바닥에서 은색의 칼날이 튀어나와 켈벤의 시체를 뚫었다.
‘역시……’
손 끝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감각.
자그마한 기기가 부서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방금 그건 대체……”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
방금 그가 파괴한 것은 도청장치.
그러나 그는그에 대한 언급을 굳이 꺼내지않았다.
“이걸로 헌터 협회의 S급 전력은 4명이군.”
“그 중 3명은 이미 저희와 손을 잡은 상태입니다.”
라우라의 대답에 그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하나는?”
“한국의 이진명 헌터. 아직 명확한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에 대한 정보는 전달되었나?”
만약 정보를 전달했음에도 꾸물거리고 있다면 직접 찾아가서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라우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아직 제대로 전달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본인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피했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지금 당장 죽일 필요는 없었다.
이미 헌터 협회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한 상황.
무리했다가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더 컸다.
“앞으로도 어떻게 되어가는지 지켜보겠다.”
“무,문제 없습니다, 베르톨도님.”
“이번에는 고객도……”
두 남자의 말을, 베르톨도는 간단하게 잘라냈다.
“지켜보겠다고 했다. 문제가 정말 없을지, 그리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걸 어떻게 대처할지 말야.”
도청장치가 누구에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주인이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그에 이들은 어떻게 대처할지가 기대되는 그였다.
*
A클래스의 강의실.
정운성이 앞에서 버젓이 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학생들……특히나 남학생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으로쏠려 있었다.
아직 어린 혈기를 주체하기 힘든 녀석은 한아름에게 잡담을 건내거나,장난을 거는 등 대놓고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아름아, 혹시 주말에 뭐해?”
“수업 끝나고 혹시 약속 있어?”
“그,그게……”
그녀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자신에게 있어서 과분한 관심.
예전부터, 이런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C클래스에 있었을 때는 다들 신입이라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는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부터, 자신은 쉽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먼저 다가서는 것이 쉽지 않아, 늘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만을 기다렸던 그녀.
아카데미에입학한 이후, 그녀는 처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 봤다.
[저기요……조금 전의 문제, 다시 한 번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반 뒤쪽에서 수업 내내 잠만 자던 학생.
간신히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던 그녀.
그리고 그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선배들의 부름에 반을 나가버렸다.
‘결국 난 아직도 변하지 않는구나……’
이제는 먼저 다가와 주는 친구들도 부담스러워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 거기.”
그녀의 귀에 정운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당히들 하고 수업에 집중해라. 부담스러워 하잖아.”
“에이…… 부담이라뇨~?”
“선생님은 여자 맘을 한참 모르시네!”
“나이차도 별로 안 나는데 세대 차이는……”
슈앗-
따악!
“악!”
유성 마커가 잉크를 뿌리며 학생의 이마를 강타했다.
“까불지 말고 수업이나 들어, 이것들아.”
그를 바라보며 한아름은 한층 부담이 덜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옅게 미소짓는 그녀.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 있었던 그와의 개인 상담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아.]
[네……?]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좋기는 한데…… 참는게 능사는 아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해 왔던 정운성.
[주변 시선을 너무 의식하다가 병 생긴다.]
그의 말이, 한아름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1교시가 끝난 후 쉬는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몇몇의 남학생들이 한아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중 한 명이 어깨를 으스대며 말을 걸어왔다.
“아름아, 혹시 음악 좋아해?”
“응……? 아, 응. 좋아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뭔가 되게 클래식 음악이나 발라드를 좋아할 것 같았거든!”
“……”
또 다시 판에 박힌 이미지.
입을 다무는 한아름에게, 그는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
“내가 클래식 기타를 좀 쳤거든. 한 4년? 혹시 듣고 싶은 노래 있어? 좋아하는 밴드나 가수는?”
이전이었다면, 사실을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끝까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들이 가진 ‘조용하고 착한 모범생’의 이미지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사실이 아닌 대답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자신이 아닌, 거짓의 스스로를 만들어내며.
그러나,이번에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밴드…… 슬랩 넉.”
“……어……?”
“뭐……?”
목을 찢는 듯한 스크리밍과 소울 넘치는 데스메탈의 대명사.
한 번쯤은들어본 그 이름에, 강의실에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
“자, 조금만 더 마력을 조절해! 끝에서 더 미세하게!”
후우우우웅-
화아아악!
현화의 말을 들은 그의 손 끝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공전을 더해 갔다.
계속해서 모여드는 마력을 응축시키고 움직임을 더하며, 동시에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세심한 작업.
잠시 후, 그의 두 손에서 시뻘건 색의 염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아직…! 지금!!”
“흣……!”
복잡하게 그의 손 주위를 떠돌던 불꽃은 현화의 신호에 맞춰 길다란 창의 형태로 변해 갔다.
이전에 은가람이 사용했던 것 보다 크기는 더 크면서, 훨씬 압축된 모습이었다.
“으아아앗!”
쿠르르릉……!
그의 손이 내질러지며, 훈련장에는 공기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손을 떠난 두 개의 창.
빠르게 앞쪽으로 날아간 그것은, 타겟에 명중하며 엄청난 크기의 폭발을 가져왔다.
콰아아아아앙!!
“허억……!헉…!”
“휘유~! 화끈한데?!”
“음음! 이 정도면 나름은 합격점! 61점 줄게.”
오늘 하룻동안 사용한 마력만 해도 그의 한계치에 달할 정도.
탈진이라도 할 것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은가람에게 현화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은가람의 눈 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스킬_인페르노스피어 의 등급이 A+로 상향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속성으로 배웠던 고위마법중 하나.
골든 헬리오스에서 한 번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위력이 그의 손에서 피어올랐다.
‘이 정도도…… 고작해야 합격점 점수라니……?’
새삼 ‘차현화’라는 인물이 얼마나미친, 그러면서도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는 은가람이었다.
짝짝짝!
“이야, 아주 멋지구만?”
세 명의 귀에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장의 입구에 서서 박수를 거내는 남자.
근육질의 큰 덩치와 구릿빛 피부가 눈에 띄는 낑깡이었다.
현화가 반갑다는듯이 인사를 건냈다.
“낑깡! 여긴 어쩐 일이래?”
“어쩐 일이긴? 저 고얀 놈이랑 한 약속을 지키러 왔지.”
쿠웅……!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는 등에 맨 자루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옛다, 부탁한 무기들!”
“이 많은 걸…… 인벤토리에 안넣어두고 왜?”
“아아, 인벤토리에 들어갈 공간이 없어.”
“그러니까 평소에는 재료 좀 놔두고 다니라니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차현화.
낑깡은 말도 안된다는 어조로 받아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러다가 도난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게 다 얼마짜리들인데…… 아니, 그것보다 재료가 없으면 난 일을 못 한다고!”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래봐야 재료 몇 개 없어진다고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
그놈의 재료 집착에 현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드디어 기다리던 게 왔군요……!”
간신히 몸을 추스른 은가람이그를 반갑게 맞았다.
은가람을 바라보던 낑깡의 표정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은가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단 네가 원했던 대로 만들어 오긴 했는데 말이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냐?”
“네. 뭔데요?”
“넌…… 오각수의 뿔을 이전에도 다뤄 본 적이 있냐?”
“……”
입을 다무는 은가람.
잠시 후, 그는 옅은 미소와함께 대답을 얼버무렸다.
“으음…… 글쎄요?”
“그러면 질문을 바꿔 보마. 이건 대체 무엇을위한 무기지?”
그의 질문에 은가람은 자신의 것이 분명한 두 개의 단도를 집어들었다.
새까만 색으로 점철된 두 개의 단도에서는 꺼림찍한 기운이 풀풀 흘러내렸다.
은가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단도를 집어넣으며 단순한 대답을 내놓았다.
“뭐긴요. 제가 강해지기 위한 무기죠.”
*
“자, 받아라.”
“오오…… 드디어온 겁니까?!”
“드디어 왔네!”
푸른 빛을 머금은 말끔한 도와 어두운 회색빛을 띠는 단도.
자신의 무기를 받아들며 둘은 두 눈을 빛냈다.
“잘들 써. 비싸고 귀한 물건이니까 함부로 잃어버리지 말고.”
“내가 너냐?!”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각수의 뿔로 만든 무기는 꽤나 귀했다.
사실 무기의 질만을 따지자면 일각수나 이각수의 뿔은 조금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기에 무기 애호가들의 수집용으로 전락했지만, 삼각수의 뿔 부터는 내포된 마력의 순도나 양이 짙었기에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더군다나 세계 제일의 대장장이, 낑깡이 만든 무기라면?
부르는게 값일 정도.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며, 은가람은 덧붙였다.
“공짜로 주는 거 아니다. 너희들 나중에 착실히 일해서 갚으라고 빌려 주는거야.”
“쳇…… 쪼잔하기는.”
“갚는다는 건 어떻게……”
“그건 때가 되면 알아서설명해 줄게. 어쨌든 공짜는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라고.”
물론,차후에 받을만한빚이 있기도했다.
당연히 받은 무기에 합당한 정도였고.
“그리고 일단은…… 그것보다는 조만간 있을 일에나 집중하는게 좋을 거야.”
“……”
굳이 어떤 일인지 지적하지 않더라도, 둘은 그의 말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코사 노스트라와의 일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만큼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언제 수작을 벌이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부모님의복수와, 형의 죽음에 대한 복수.
둘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꽤나 힘이 들어갔네요? 보기 좋아요?”
“……!!”
“뭣…?!”
그런 그들의 뒤편에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묘하게 콧소리를 섞은 여성.
기척을 채 느끼지도 못했기에, 은서현과 이현진은 단번에 긴장을 끌어올렸다.
“아아, 긴장할 거 없어. 나랑 구면인 사람이니까.”
“네……?”
“그렇다고 해도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야?!”
그들이 있는 곳은 월영의 빈 교실.
헌터 아카데미의 내부시설인 만큼 그에 대한 보안은 철저하게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날카롭게 반응하는 서현의 말에 여성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후훗…… 일단은 정보를 조금 가져왔는데요. 흥미가 있으실까 싶어서요.”
“정보라… 코사 노스트라에 관한 건가?”
“그러니까 가져왔겠죠?”
“댓가는?”
“……”
은가람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건… 일이 끝난 후에 차차 설명드리도록 할까요?”
“……”
알고 싶으면 도박을 걸라는 소리.
돌려 말하자면, 그 정도의 절박함이 없다면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후회하지는 않으실 거에요.”
“야, 누가봐도 수상한 거래잖아!”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굳이 저런 위험부담이큰 거래를 떠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둘의 만류에도, 은가람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하지.”
“현명한 선택이셨어요.”
낮게 웃음을 흘리는 연.
“헌터 협회 소속 S급 헌터, 켈벤 스트라이커가 죽었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수집한 정보를 풀어나갔다.
*
“그래…? 그렇단 말이지……”
소녀의 말에, 남성은 묘한 미소를 흘렸다.
오랜 기간 소녀를 봐 온 그였지만, 지금의 모습은 꽤나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그리 싫지 않았다.
“괜찮겠어요…?”
조심스레 묻는 소녀의 질문에 남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될것 없지. 네가원한다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는 곧바로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수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김경원 교장? 나 한성 회장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