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61. 잠입 (61/114)



〈 61화 〉61. 잠입

교사 권한으로 줄 수 있는 개인 지명수업.

합법적으로(?) 수업을 뺄 수 있는 수단이면서도높은 퀄리티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웬만해서는 교사가 부족한 개인 시간을 들일 정도로 눈에 차는 학생이 없었기에,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누구나 개인 수업을 바랐다.


그러나 은가람은 아니었다.

“에이……아,아니죠?”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은가람.

정운성은 쐐기를 박았다.

“니가 생각하는 그거, 맞을 거다.”

“이런 게 어딨어요?! 저 그냥 여기있으면 안됩니까?”

“여기 남아도 결과는 똑같다는 거, 너도 잘 알지 않나?”

“……”


은가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월영에서 유일하게 개인 시간이넘쳐나는 교사.

그러면서도 S급을 가르칠 만한 역량이 넘쳐나는 사람.

무엇보다 자신을 마법사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교사.

 사람 밖에는 없었다.

‘현화 쌤…… 꼭 이래야만 했나요…?’

차현화였다.


*



은가람이 차현화의 손에 끌려 가고 있을 때, 월영의정문에서는 또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은가람을 실력으로 이겨 보이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가진 여자.

한송희는 오늘도 아카데미의 정문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던 중, 수상한 사람이 아카데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잠깐! 당신 뭐야?”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을 막았다.

“으음? 난 신경쓰지 말고 차나 마시게.”

잠시 그녀를 바라본 후, 그렇게 말을 던지는 남자.

그러나 한송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지!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이잖아?”

“내 어디가 수상하다는 건가?”

“그 덩치! 흉악한 얼굴! 온 몸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열기까지! 하나같이 수상한 것들 뿐이잖아!”


“……”

그에 남자는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차마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알  없다는 표정으로.


“내가 알기로 월영의 교사 중 당신같은 사람은 없어.”

“하,학생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나이로 학생이라고?! 말이 되는 헛소리를 해야지!”


검지를 들어 당당하게 남자를 가리키는 한송희.

앞서와 달리, 남자는 잔뜩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내…내 나이가 어때서?!”

“딱 봐도 5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학생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학생 아니지?”

“……그,그건……”

“그리고 결정적으로, 등에 맨 그건 뭐야? 대체 월영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고?”


당돌하게 따지고 드는 그녀.


“……”


남자는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는  쪽도 월영과는 상관없지 않나? 성백의 학생이 어째서 월영의 일에 참견하는 거지?”

자신을  아는 듯한 말투.

한송희는미간을 좁히며 받아쳤다.


“참견이 아니지. 나도 월영에 볼 일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명의 남자에게 손짓했다.


각각의 키가 180은 넘는 정장의 사내들.

한성그룹에서 그녀의 ‘집사’로서 붙여 준 헌터들이었다.

“일단 제압하세요!  숨기고 있는지는 직접 캐내면 되니까!”

“예, 아가씨!”


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땅을 박차는 둘.

한성그룹 회장의 딸을 호위하는 만큼, 그들의 실력 역시도 꽤나 발군의 것이었다.


한송희는 남자가 어렵지 않게 제압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텅!
퍼억, 퍽!

털썩.

“…이,이럴 수가……!”

수상한 남자는 가볍게 둘을 제압하고는 손을 툭툭 털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그의 몸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쪽 아가씨 일부터 해결해야 하려나?”


*

“여어, 왔냐?”

“……”

현화 쌤의 손에 끌려  S클래스의 강의실.

차원이 다른 고급 시설에 감탄하기도 잠시, 나는 달갑지 않은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니가 왜 여기 있냐?”

“왜? 내가 여기 있는게 잘못됐냐? S클래스 강의실에 S클래스 학생이 있는게 왜?”

“그러니까…… 넌 애초부터 잘 안나오지 않았어?”


“그거야  맘이지.”


할 말 없네.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아니었지만.

떫떠름한 내 표정을 바라보며, 그녀- 한주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자, 일단은 둘  집중! 수업은 되게 오랜만이지?”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뇨. 저는 계속 A클래스에 있었……”

“그래, 그래, 나도 오랜만이야. 되게 감회가 새롭다?”


들을 마음이 없으시구만.

“물론,  전공 과목은 마법이니까 당연히 마법 위주로 수업하게될 거야.”


나는 손을 들었다.


“질문 있는데요.”

“꼭 해야 하니?”

“아니, 수업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 뭔데?”

뭔가 쓸 데 없는 질문 하지 말라는  같은데.

상관없겠지?
나한테는 필요한 질문이니까.


“저는 마법사가 아닌데요. 그 쪽으로 갈 생각도 없……아니, 잠깐만요! 그거-”

퍼어어엉!!


“……”

간발의 차로 방벽을 전개해 불덩이를 막았다.

마력이 순간 급감하는게 느껴졌다.

“푸하핫! 야, 재밌다! 한 번  맞아봐!”

“학생을 죽일 생각입니까?!”

“잘 막았으면서 뭐래?”


“……”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속으로 외치는 나였지만, 간신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딴지 걸었다가  불덩이가 날아들 것 같았으니까.

“일단 수업이야 크게 특별할 건 없고…… 지난번에 내가 가르쳐 준 고위마법 있지? 일단 그에 관한 숙련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갈 거야.”

“잠깐만요, 그러면 한주희는요?”

한주희는 이제까지 마법을 단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이번 뿐만이 아니다.

회귀 이전에도 그녀는 확실한 무투가 계열로, 발과 주먹으로 다 때려 부수는게 특기였지 마법이랑은 거리가있었던 것이다.


현화 쌤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아, 주희는 신경 쓸  없어.”

“네……?”

“내가 맡는 수업은  뿐이니까. 얘는 그냥 심심하다고 따라 온 건데?”

“……”


아니, 미친 건가?

그런 눈으로 나는 한주희와 현화를 바라보았다.

개인 과외를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따라온 학생이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 두는 교사나……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어차피 실전 위주로 할 거니까, 주희가 연습상대라도 되어 주면 좋겠네.”

“자,잠깐 그건……”

“난 찬성! 나야 좋지!”

내 저럴 줄 알았지.


‘결국 저게 목적이었구만.’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체념하면 편해……

*


“지……지금 뭐하려는 거야?!”


자신의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는 남자.

한 걸음씩 다가서는 그를 보며 한송희는 얼굴을 굳혔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두 집사를 단번에 제압한  보면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성백 최고 수석의 힘을 보여……!’

그녀가 손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던 순간.

가까이 다가선 남자가 척- 하고 한 손으로 무언가를내밀었다.


“꺄악?!”

“음……? 왜 그러나?”

“뭐……뭐야, 이건…?”


투박한 그의손 위에 올려져 있던  자그마한 팔찌였다.


“이런 거라도 괜찮으면 받게나. 맘에 안 들면 팔아도 가격이 쏠쏠할 테니.”

순간 혹했던 그녀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내뱉었다.

“흐…흥! 이런 것 따위, 우리 집 돈이면 얼마든지 구할  있거든?!”

“으잉? 그럴 리 없는데? 난 이런  쉽게 안 주거든.”


“……?”


묘하게 당당한 남자의 태도에 한송희는 조심스레 물건을 받았다.

어릴 때 부터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가지고 있던 그녀.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세공된 면이나 질이상당할 정도였다.


“응? 뒤에 뭐가 쓰여 있는데……메이드 바이……낑깡…?”

“허허. 내가 직접 만들었지.”

“낑깡이라니 그게 무슨 우스운……어…?”


그녀는그제서야 뭔가를 떠올리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다,다,당신이 낑깡이라고?! 대장장이, 낑깡?!”

“쉿!쉿! 제발 목소리좀 낮추게나!”

“아……! 미안……합니다…?”

주변의 시선을 한껏 의식하는 낑깡.

떫떠름한 표정으로 한송희는 사과를 건냈다.

그녀의 말투는 어느새 존대로 바뀌어 있었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모를 수도 있지만, 한성그룹의 딸이라는 직위와 성백의수석이라는 위치 덕에 그녀 역시도 낑깡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그런데 그 낑깡이 누굴 찾아온 거죠…?”

“아아, 고객이 있어서.”

“고객?”

“있어, 조금 재수없는 꼬맹이가. 겸사겸사 친구 얼굴도 좀 보고 말이지.”

재수 없는 꼬맹이.

그 한마디에 한송희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설마 은가람…?”

“오? 아는 사인가?”

“그……렇죠?! 제 일생일대의 라이벌이니까요!”

낑깡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핫! 그래, 성백의 수석 정도라면 라이벌이라고 할 만하네!”

“……”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이제는 내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상관없겠지?”

“네에……뭐……”


조금 찝찝한 표정을 짓는 한송희.

그런 그녀를 두고 낑깡은 정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은 라이벌…… 아닌데…”


고작 자신 따위가 그의 라이벌이 될  있을까.

처음에야 오기로 덤벼들었던 그녀였으나, 스스로도 그에게 안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이제껏 누군가에게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였지만, 은가람만큼은 도저히 자신이 따라잡지못할 것 같았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잡 생각을 떨쳐버렸다.

“치이……! 내가 여기서 물러설 줄 알고?! 두고 봐, 반드시 따라잡아 볼 테니까!”

오기를 불태우는 한송희였다.



*

“이제 어느정도 구실을 하는  하군.”

“네. 얼마 후 있을 품평회에도 무리 없이 내 놓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샘플을 바라보며, 남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이름은 살바토리오  피콜로.
실험을 맡은 알론조의 원조 하에 품평회를 주최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곁에서 백발의 작은 소녀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협회 쪽에서도 연락이 있었어. 언제쯤 완성되냐고 닥달하더군.”


“하여간, 마음도 급하셔라.”

낮게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옆에서, 덩치 큰 사내가 불만을 표출했다.

마인 실험을 담당하는 알론조였다.


“죠마르 그 새끼가 훼방만 놓지 않았어도 지금쯤 완성품이 나왔을 거다. 망할 놈의 자식……!”

“너무 화내지 말라고, 친구. 그 녀석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유용……? 대체 베르……아니, B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알론조.

같은 코사 노스트라의 일원인 죠마르는 아무리 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 죽이는 것에 굶주려 있었기에, 틈만 나면 계획에 차질을 만들기 일쑤였으니까.


살바토리오는 그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 녀석이라도 쓰일 곳이 있지. 아주 적당하게 말이야.”

“적당하게? 잠깐……설마…?”

“그래. 아마 그자식이최초의 ‘완성품’이 될 테니까.”

순간 알론조는 B가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마인은 지금의실험체와 달리 엄연한 인격을 지니게 된다.

제대로 사고할 줄도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의미.


죠마르 같은 녀석을 마인으로 만들었다가는 헌터 협회는 고사하고 코사 노스트라조차도 무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살바토리오가 설명을 이었다.


“물론,그 ‘완성품’에는 제대로 된 제어 체계가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네가 조금 더 분발해 줘야 한다는 말이지.”

“역시 그런 거였나. B도 참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군.”

“그래도자네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텐데? 재료야 내가 넉넉하게 보내 줄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해도 되고 말이지.”

그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더군다나 이번 품평회 때에도 꽤나 많은 재료들이 들어올 것 같으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말라고.”

“설마 고객들을 실험으로 사용하라는 이야긴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신뢰가 가장 중요한 이 바닥에서 그런 일을 하겠어? 하지만 판이 크면 클 수록 꼬이는 벌레도 많은 법이라서.”

그제서야 알론조가 미소지었다.


“그건 그렇지. 기대되는군…… 이번에는  어떤 놈들이들어올 지.”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입을 다물고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마리 꼬였는걸?”

“…음……?”
“뭐라고?”


분명 주변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는 단호했다.


“아무리 기척을 죽여도, 몸에 지닌 물건까지  가릴 수는 없는 법이지.”


한쪽을 응시하는 소녀.

그늘진 곳에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군. 정도로 예리한 기감을 가졌다니.”

“기감과는 조금 달라서.”


담담하게 대답하는 소녀.

그러나 살바토리오와 알론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대체 언제부터?!”

“네놈 대체 정체가…….”


그렇게 묻던 알론조의  눈이 있는대로 크게 떠졌다.

 키에 다부진 몸.
금발을 짧게 자른 남성.

그리고 푸른 색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


“서,설마……켈벤?!”

“잘 아는군.”


부정하지 않는 남자.

알론조와 살바토리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웬만한 헌터는 몇 명이 와도 그들이상대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는 라우라까지 있었고.

그러나  앞의 남자는 아니었다.

헌터 협회 소속의 S클래스.

『추격자』 켈벤이었으니까.


‘하지만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우리 셋 정도면……’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생포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재료가 들어오게 되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그들은 생각했다.


“흐흐…… 이 곳까지 들어온 것은 칭찬한다만,  능력 때문에 너는여기서 죽게 될 거다!”

살바토리오는 양 끝을 길게 늘여 칼날로 변화시켰다.

신체 강화의 파생스킬, 신체 변이였다.


“라우라, 놈의 움직임을 봉쇄해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한 손을 앞으로 내미는 라우라.

순간 켈벤의 움직임이 거미줄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섰다.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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