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59. 복수
“어……?”
이런 곳에서 볼 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하얗게샌 머리카락과 인자한 미소를 가진 중년.
“설마 아발론의 교장께서 이런 곳까지 행차하실 줄은 몰랐네요?”
알렉시스 몬테규.
아발론의 교장이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던 곳에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흘렸다.
“허허…… 또 만나게 되는군. 은가람 학생…… 그리고 연.”
“……”
“반갑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나야 항상잘 지내지. 둘은 아주 팔팔해 보이는구만?”
나와 연을 번갈아 보던 그.
이내 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천하의 흑사회가 어쩐 일로 실수를 다 할까? 많이 다급했던 모양이군.”
“무슨…… 말씀이시죠?”
살짝 미간을 좁히는 연.
알렉시스는 나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친구가 그만큼 특이한 녀석이니 이해는 하네. 어쩌면 흑사회에서 없애야 할 최우선 순위일테지.”
“그가 현재 가진 힘과 잠재력을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코사 노스트라와 관계가 있다면, 지금이 아니고서는……”
“걱정하지 말게.”
“……예?”
처음으로 연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이 녀석은 흑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 녀석은 아니니까.”
“……”
“이녀석은 코사 노스트라가 아니야. 내가 보증하지.”
연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잠시간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옅게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음~ 뭐,알렉시스 님이라면 신용이 가는 분이니 믿어도 되겠네요.”
“화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만.”
“아니, 잠깐만요! 화해라뇨? 알렉시스님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전 죽었을 거라구요!”
황당한 표정으로 그렇게 따지자, 연이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결과적으로 오해는 풀렸구요.”
“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굳이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답니다.”
‘미친 연인가?’
그것 참 당당한 연일세.
당연히 이건 욕이 아니다.
중의적 의미라는건 부정할 수없지만.
나는 여전히 웃음으로일관하는 알렉시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오신 거에요? 한국에는 무슨 일로……”
“말하지 않았나? 필요할 때가 되면 찾아오겠다고.”
확실히 그렇게 말했긴 했지.
얼마 전 들었던 그의 말을 상기시키며 나는 물었다.
“그래서, 그 먼 거리를 오신 거라구요? 이 순간을 예측하고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방금 도착했지. 이 상황을 본 건 약 8분…… 아니, 이제는 9분 전이구만.”
“……?”
9분 전에 이 상황을 미리 봤다는 건,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이라도 이용했다는 건가?
의문을 품는 나를 두고,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난 이쯤에서 빠져 줘야겠구만. 허허…… 이 이상은 내가 개입할 수 없으니 말이야.”
의미를 알기 힘든 말을 남기고,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공간이 갈라지며 그 너머로 사라졌다.
‘역시 아발론의 교장은 다르다는 건가……’
속으로 감탄하는 내게 연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우선은 사과를 먼저 드려야겠네요.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몰랐는데 참 뻔뻔한 면이 있으시네요?”
“그거야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요. 모르시는게 당연하죠.”
“방금 전 까지 살벌하게 살수를 쓰시던 주제에 소름이 돋네.”
대놓고비꼬는 내 말에 그녀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어머, 조금 전 가지 제 심장에 칼을 꽂으시려던 분은 그쪽이랍니다?”
‘그거야 니가 먼저 죽이려 들었잖아!’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결국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었다.
체념하는게 맘 편하지.
괜히 내 입만 아파질 게 뻔했다.
“어쨌건 아닌 걸 알았으니,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볼까 하네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떠나려는 연을 붙잡았다.
“잠깐만.”
“용건이 남아 계신가요?”
“그렇다는 건…… 현성의 죽음은 그쪽과는 관련 없다는 건가?”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랑 관련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누군지도 잘 알고 있죠.”
“뭐? 그게 누구지……?”
“……”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나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정보를 사도록 하지. 얼마면 돼?”
흑사회는 코사 노스트라에 버금가는 규모를 가진 세력이었다.
오히려 코사 놈들보다 더 어둠속에 녹아든 그들은 정보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여겼고.
당연히 그만큼 가진 정보도 많았다.
“그거야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값은 돈이 아닌걸요?”
“그럼?”
순결, 이딴 소리 하기만 해 봐라.
속으로 그런 생각을 곱씹는 내게 그녀는 대답했다.
“호주에서 얻은 재료들이 있죠? 꽤나 많은 양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아는데…… 그걸 좀 받아가고 싶네요.”
“삼각수의 뿔을 말하는 건가?”
“오각수의 뿔은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요?”
“……”
당시 백여 마리에 달하는 삼각수를 쓸어버린 나였다.
자연스레 그만한 수의 뿔도 가지고 있었고.
‘어차피 짜달시리 쓸 일도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왕 사는 김에 코사 노스트라에 관한 정보를 조금 더 사려고 하는데.”
“고객은 언제나 환영이죠.”
*
[여어, 중고 신인.]
“……”
새하얀 공간 속.
은가람은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지? 초월자씩이나 되시는 분이 두 번이나 친히 행차하시고?”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래? 다른 녀석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런게 좋더라고.]
“……”
은가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선택자들이야 초월자라고 한다면껌뻑 죽을 녀석도 많겠지만, 적어도 그는 전적으로 초월자를 신뢰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 녀석은 더 그렇고 말이지.’
그런 생각을 삼키는 그를 바라보며 초월자는 웃음을 흘렸다.
[역시 만만치 않네. 보통 직접 대면하면 더 가지고 놀기 쉬워지는데 말이야.]
“그래서 용건은?”
[아아, 우선은 솔직한 감상이 먼저겠지? 이렇게나 빨리 제약이 풀릴 줄은 몰랐거든. 역시 회귀자라 그런가, 성장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진 말라고, 친구. 그런 네게 있어서 귀가 솔깃할 만한 제안이 하나 있으니까 말야.]
이죽거리며 말하는 초월자의 목소리.
그는 흔들리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조심해야 해. 자칫 잘못하다가는 눈 뜨고 코 베이는 수가 있으니까.’
그런 그에게, 초월자가 말을 건냈다.
은가람으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던 S급 스킬, 그림자 검날. 돌려받고 싶지 않아?]
“……!”
은가람의 표정이삽시간에 굳어졌다.
[역시, 너라면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았어.]
“……그래서, 그 댓가는?”
[간단해. 네가 지금 하려고 하는…… 네게 있어서 하등 도움은 되지 않는 순수 이타적인 행동을 관두라는 것 뿐이야.]
“……”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은가람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네가 그 녀석을 직접 죽이기까지 한다면 다른 S급 스킬들에 걸린 봉인을 푸는 것도 가능할 거야. 뭐…… 내가 힘 닿는 대로 추가적인 제약 해제도 해 줄수 있겠지, 후후……]
낮은 웃음을 흘리는 그.
은가람은 이를 악물었다.
‘냉정해 져야 해. 지금 내가 아무리 강해져 봐야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야. 결국에 혼자서는……’
그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할 때.
주변의 풍경이 다시금 바뀌었다.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로.
이내 그의 머릿속으로 초월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뭐, 하든 안 하든 선택은 전적으로 네 몫이니까…… 잘 생각해보라구. 시간은 많으니……]
*
다음날, 여지 없이 은가람은 정문 앞에서 한송희와 마주칠 수 있었다.
“이봐! 다시 한 번……”
“……”
그러나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에 한송희는 입을 닫았다.
아무런 대꾸없이 그녀를 지나치는 은가람.
그에게서는 옅은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있었다.
“뭐,뭐야? 저 녀석…… 집사?”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가씨.”
“흠……”
잠시 서운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이내 집사에게입을 열었다.
“뭐, 오늘은 한 번 봐 주자고. 돌아가자.”
“예! 아가씨.”
그녀가 월영의 정문 앞에 상주하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일이었다.
*
“현진아.”
“……”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현진.
은가람의 부름에 그는 조용히 그를 돌아보았다.
“따라와. 같이 갈 데가 있어.”
“네.”
평소라면 어딜 가냐고 되물었을 그였지만, 그는 군말 없이 은가람의 지시에 따랐다.
“서현이너도 따라와.”
“뭐? 난 왜?”
“지금 장난 할 기분 아냐.”
그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흔들리려는 자기 자신을 애써 다잡기 위해.
“……쳇.”
잠시 투덜거리던 은서현도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현성이 죽었다고 하던데…… 그거랑 관련있지 않을까?”
하루 아침에 변한 분위기에 반 학생들은 수군거리며 그들의 뒷모습 바라봤다.
평소처럼 질문을 건내거나 가볍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없었다.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며 현진이 물었다.
“……죽이러 가는 건가요?”
“그래.”
“……”
짤막한 대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
늦은 밤까지 환한 불이 주변을밝히는 한 골목의 건물 안에서는 여러가지 퇴폐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장소.
오늘도 여지 없이 욕망에 굶주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를 이용해 돈을 챙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 건물의 가장 안쪽, VVIP룸에서는 세 명의 남성들이 열댓 명의 여자들 사이에서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흐흐…… 역시 이런일이 내 체질에 맞는다니까?”
“동감이야. 돈도 짭짤하고, 이렇게 좋은 장소도 있고 말이지.”
“크흐흐흐.”
반쯤 취기가 올라온 얼굴로 그들은 웃음을흘렸다.
“그나저나 그 놈도 참 불쌍하군. 동생 한 번 잘못 뒀다가 그렇게 뒤져버렸으니까 말야.”
“꽤 소질은 있어 보이던데……”
“흐끅! 그러면 뭐하냐? 지금 나약하면 뒤지는 건 어쩔 수없지.”
그렇게 대꾸하며 남자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현성이라는 어린 놈의 목을 직접 그었을 때의 쾌감이 여전히 그의 손에 잔류하고 있었다.
“마음같아선 그 동생놈도 똑같이 보내주고 싶은데……”
“카하핫! 아서라. 코사 놈들이 찍어놓은 새끼라고. 괜히 설레발치다가 너도 어디 뒷산가서 뒤질 수도 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새끼야.”
“크헤헤헷! 확실히 그러면 손맛은 끝내주겠어? 거기에 은가람인지 뭔지 하는 꼬맹이도 죽여버리면 그만한 일도 없을 건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독한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방 안의 여성들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곳의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그나저나 그 마피아 놈들…… 계속 거래해 줘도 되나 모르것네.”
“뭔 개소리를 하냐?”
“그쪽에서 일을 주면 절하고 받아야지. 금액이 얼만데.”
“하기야…… 사람 목 하나 땄다고 억대를 주는 곳은 많지 않지?”
“또 모르잖아? 이번 일로 잘 보여서 그놈들이 동생까지 죽이라고 시킬지……”
그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문득 바깥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뭐지……? 밖에 무슨 일이…”
“아아, 냅둬. 이런 곳에 애새끼들 싸움 한두번이냐?”
“그건 맞아. 여기서 객기부리다 뒤진 놈들이 몇 놈인데.”
“야야, 알고보면 대장 아니냐? 어떤 병신이 대장한테 시비 건 것일수도……”
“푸하핫! 그건 참 볼만하겠는데? 슬슬 들어오실 때도 됐는데 아닌걸 보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 말과 함께 웃음을터뜨리는 둘.
처음 미간을 좁혔던 남성도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양 쪽에 앉은여자들의 몸을 탐닉하며 그는 다시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그래, 아무렴 어때. 어차피 사람 몇 놈 죽어나가도 전혀 모르는 곳인데……”
그리고 그 때, 굳건하게 잠겨 있던 문이 부서져 나갔다.
콰아앙!
“꺄아악!”
“?!”
“씨발, 뭐여?!”
두껍게 강화 처리된 VVIP룸.
그런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셔버리며,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향락을 즐기고 있던 셋은 언제 그랬냐는 듯, 취기를 몰아냈다.
그들의 귀에 누군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사람 몇 놈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지.”
“……!”
은가람이었다.
“너는……!”
“대체 어떻게 여기를 안 거지?!”
“그건 알 거 없고.”
은가람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
“현진아, 도와줘?”
나지막히 고개를 젓는 현진.
인벤토리에서 조용히 자신의 애도(愛刀)를 꺼내든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깟 피래미들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의 몸에서 폭사되어 나온 살기.
입학 시험날 은가람에게 향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양은 훨씬 많고 진득했지만, 한 편으로는 예리함마저 갖춘 살기가 세 명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애송이 자식이……!”
챠앙!
창!
자신의 무기를 빼들기 시작하는 세 남자.
고조되어 가는 분위기 속에 패닉한 여자들은 황급히 도망쳐 나갔다.
아예 기절한 이도 있었다.
“어린 놈들이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군……!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 될 거다!”
진부한 말을 내뱉으며, 셋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