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58. 그림자
주변에서 세 명의 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단도를 꺼내들었다.
“암습은 실패한 것 같은데, 슬슬 나오시지?”
“후후후……”
“꽤나 좋은 기감을 가졌어…?”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세 명.
얼굴의전면을 감싸는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감지.’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나는 그들의 전력을 파악했다.
셋 다 수준급의 능력자들.
각자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암습이나 세 명의 합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헌터로서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어디 실력도 기감만큼 뛰어나나 보자고!”
동시에 몸을 날리는 세 명.
그러나……
‘내가 이겨!’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
“으으윽…으아……끄아아아악!”
폐부를 찢는 듯한 처절한 비명소리.
그러나 그의 비명을 듣고 도우러 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방이 꽉 막힌 지하실에는 그와 같은 처지로 잡혀 온 사람들과, 그들을 잡아 온 이들만이 있을 뿐.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끈적한 기운에 남자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몸 곳곳이 울룩불룩 솟아오르고, 혈관이 터지며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이들은 낮게 혀를 차며 고개를저었다.
“쯧…… 이것도 글렀군.”
“수치를 다시 한 번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몸은 퍽!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그 몸의 잔해는 마치 투명한 벽에 막힌 것 처럼, 일정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
“젠장, 이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이틀 전의 그릇은 꽤 오래 버텼는데……”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잡혀 온 이들은 몸을 떨었다.
사람이 그 자리에서 터져버리거나, 혹은 거대한 압착기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 처럼 쪼그라드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본 그들.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었다.
“왜……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한 여성이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은 좋지 않은 판단이었다.
“아, 시끄러.”
“전혀 다른 존재로 태어나게 해 준다니까 뭐 이렇게 불만들이 많은 거야?”
“저건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 죽여버려.”
여성의 얼굴에 두려움이 자리잡았다.
“제,제발요! 이제 아무 말 안 할게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
콰직!
천정에서 거대한 기둥이 내려오며 여성의 몸을 그대로 찍어눌렀다.
“이제 좀 조용하네.”
주변으로 튄 흥건한 피는 곧바로 바닥으로 스며들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한 바닥이드러났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아랫 입술을 악문 자신의 턱에 힘이 빠지는 순간, 자신 역시도 같은 꼴을 면치 못할 테니까.
“자, 그러면 다음 실험체로 옮겨 보자고.”
그들이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험을 진행하던 남자들은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오셨습니까!”
“그래. 성공한 실험체는 있나?”
당연한 듯 그들에게 하대하는 남자.
불룩 튀어나온 배와 큰 덩치, 그리고 턱을 전부 덮는 수염을 가진 그에게 실험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하오나……아직은 없습니다.”
“역시 아직은 이른 건가……”
“하,하지만 이틀 전에는 다섯 시간까지 버틴 실험체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만간 성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 생각보다 진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알론조 님.”
“그나저나…… 남은 실험체가 벌써 다 떨어져 가는 건가?”
그의 말에 실험자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한 명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얼마 전에……”
“설마 죠마르 그 새끼가……?”
“……예.”
쾅!!
알론조는 한 손으로 석벽을 내리쳤다.
어지간한 폭발에도 끄떡 없던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며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에 옆에 있던 실험자가 다급하게 벽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부서졌던 벽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죠마르 그 개새끼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염병할……!”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떻게 할 수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하는 실험자를 향해 알론조는 입을 열었다.
“됐어. 어차피 너희들이 그 놈을 막을 수 있을 리도 없고.”
아니, 오히려 자기 기분 좋다고 실험자를 끌고가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미친 개새끼한테는 매가 약인데……’
B가 그를 살려두기로 한 것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그였다.
“쯧…… 다음에 또 놈이오면 바로 연락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긴 후, 알론조는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출구도 입구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러면 실험을 재개하자고.”
잠시나마 생을 연장했던 또 한명의 실종자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
세 명이서 몰아치는 공격은 상당히 예리했다.
개개인의 실력만을 따지자면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를 보완할 정도로 그들의 합은 뛰어났던 것이다.
‘이 정도면 현성은 오래 버티지 못했겠어…!’
대놓고 살수를 시전해 오는 그들.
얼굴을 가린 것을 보면 코사 노스트라에서 고용한 암살자가 분명했다.
순전히 직접적인 공격만을 가해 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회피할 방향을 점하고 들어오는 공격에 은가람은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속임수 스킬과 공포잔상을 사용해 빈틈을 만들어 낸 후, 한 명의 뒤를 점했다.
“…?!”
스거거걱!
“끄윽……!”
그의 등에 깊은 상처를 남긴 후, 곧바로 몸을 날리는 은가람.
간발의 차로 죽이지 못했기에 그는 낮게 혀를 찼다.
그러나 이미 한 쪽으로 기운 형세.
그는 남은 두 명에게도 조금씩 피해를 쌓아 갔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후욱-
덥썩!
“큿?!”
그는 가장 근방에 있던 녀석의 팔을 잡아 그대로 바닥으로 매다 꽂았다.
쿠웅!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의 팔을 꺾었다.
우드득!
“크으읏……!”
‘독한 새끼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는 암살자들을 보며, 은가람은 혀를 찼다.
칼을 빼들어 한 명의 목에 가져다 댄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 코사 노스트라지?”
“……”
“그래, 끝까지 대답하지 마라?!”
그는 칼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회귀 이전부터 주변의 암살 위협에는 이골이 난 그였다.
정보를 뜯어내는 것 정도는 그에게 있어서 일도 아니었다.
‘일단은 한 놈 죽이고……!’
그렇게 그가 단도를 내리치려는 순간, 그의 몸이 그 자리에 굳었다.
“……?!”
마치 무형의 힘이 그의 온 몸을 잡고 있는 듯한 감각.
은가람은 미간을 좁혔다.
억지로 힘을 줘서 움직이려고 했지만, 순간 느껴지는 격통에 그는 그만뒀다.
“……이건……”
힘을 줬던 팔에 깊은 상처가 생겨나며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방울져 흘러내린 피가 허공으로 조금씩 타고 내렸다.
“은사……?”
회귀 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주 잘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굵기의 가느다란 실.
마력공정이 들어간 그 실은 지금처럼 누군가를 속박하거나, 여차하면 그대로 절단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의 귀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사를 알고 계시다니…… 역시 평범한 학생은 아니시군요?”
“……”
“물러나세요. 이만하면 됐습니다.”
그녀의 말에 은가람에게 접근하던 두 명이 깍듯한 태도로 거리를 벌렸다.
제압되어 있던 남자 역시도 몸을 일으켜 그들의 곁에 섰다.
손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은가람의 앞에,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170이 조금 안 되는 키에, 흰 색의 비즈니스 셔츠와 검은 스커트를 빼 입은 여성.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흑발을 땋아 앞쪽으로 내린 그녀는 한 손으로 은가람의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흐음…… 그렇게 무서운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역시 사람 속은 모르는 거군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살기를 머금은 은가람의 질문에, 그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누군지보다, 그 쪽이 더 중요한가 보네요?”
“그런 거야 뻔하지. 어차피 코사 노스트라의 어느 일원 정도일 테니까.”
“흐음……”
그녀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면 연기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헛소리!”
“일단 아실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코사 노스트라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죠.”
“……?”
“저는 흑사회를 이끄는 자. ‘연’이라고 해요. 정체 모를 은가람씨.”
“흑사회……?”
은가람의 표정에 의아함이 물들었다.
중국계 암살 조직인 흑사회.
꽤나 거대한 규모를 가진 조직이면서도, 그들은 코사 노스트라와 대적하는 관계였다.
그 중에서도 ‘연’이라는 인물은 A급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은가람이 기억하기로 그 실력은 S급에 준하는 위험인물이었다.
“그런 흑사회가 대체왜 나를 죽이려 드는 거지?”
“그야 당신이 의심스러우니까 그렇죠.”
단호한 어조로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얼마 전,당신은 유럽으로 잠시 갔다왔었죠. 그 직후에 헌터 협회를 방문하기도 했고…… 마인화 실험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을 학회에서 보란 듯이 발표해 냈어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상식적으로 일반적인 학생이, 그런 이론을 스스로 생각해 냈다고는 받아들이기 힘들죠. 더군다나 얼마 전 헌터 협회 소속의 강기호 헌터가 느닷없이 타워를 오르겠다고 발표했고……”
말 끝을 흐리던 그녀는 은가람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결정적으로 당신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진성 헌터의 첫째 아들이 죽었죠. 우연 치고는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확신하는 어조로 그렇게 쏘아붙이는 연.
그에 은가람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넌 대가리가 장식이냐?”
“뭐라고요?”
“내 친구이자 제자인 녀석이 죽을 뻔했어. 그 녀석의 형은 벌써 죽은 판국이고. 너라면 가만히 있겠냐?”
“글쎄요. 과연 그게 진심일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사전작업일지는 모르지만요.”
“미친 소리……!”
은가람은 자신의 손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엄청난 경도를 자랑하는 은사.
그러나 파훼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헬……플레어……!”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올린 그는 마법의 모든 위력을 손 끝으로 집중했다.
뜨거운 염화가 집중되며 그의 손을 새빨갛게 물들여 갔다.
그리고는 서서히 팔을 감싼실을 녹여 갔다.
치이이익……!
“어머……”
투투툭-
뚜둑!
“후우우……!”
크게 숨을 몰아쉬며 은사를 걷어내는 은가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연은 남은 은사를 다시 회수했다.
“은사에서 벗어나기까지 할 줄이야……”
“아아, 몇 번 당해 본 적이 있어서 말이지…!”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네요.”
“멋대로 생각해라!”
그렇게 내뱉은 그는 다시금 단도를 꺼내들었다.
곧바로 그를 향해 날아드는 여섯 개의 비수.
그 중 절반을 쳐낸 은가람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나머지를 피해냈다.
뒤로 몸을 물리는 연을 향해 도약한 그는, 그녀의 코앞에서 속임수 스킬을 사용하여 뒤를 점했다.
슈아아악!
까아앙!
그러나 그녀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곧바로 몸을 틀어 은가람의 공격을 막아내는 연.
그녀는 은가람의 공포 잔상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은가람은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쯧……! 역시 아직은 상대하기 벅찬가……!’
그녀가 정말 흑사회의 연이 맞다면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그것조차도 상대가 상대인 만큼 가능성이희박했다.
결국 사실의 입증보다, 죽지 않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중간한수로는 안돼……! 아슬아슬하게 살을 내어주고 뼈를 깎아내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내 왼 손에 쥐고있던 단도를 투척하는 그.
후우웅-!
무거운 파공성을 흘리며 그의 단도가 앞쪽으로 뻗어 나갔다.
그 뒤를, 은가람은 바짝 뒤쫓았다.
상대의 반격을 고스란히 맞을 것을 감안한 도약.
연의움직임을 점한 후, 그가 우수를 휘둘렀다.
그에 맞춰, 연 역시도 자신의 손 끝을 움직여 은가람을 찔러갔다.
두 공격이 서로에게 적중하려는 순간-
“어머?”
“……?!”
돌연, 공격을 해 나가던 연이 재빠르게 몸을 물렸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두 개의 공격을 쳐낸 그녀는 거리를 둔 채로 옅게 웃음을 흘렸다.
“후훗…… 높으신 분이 이런 곳까지 어인 일이실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