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7. 죽음
벌컥!
엄청난 기세로 열리는 병실의 문.
그 너머로 키가 2미터에 가까운 건장한 남성이 들어섰다.
“아……아빠…”
침상에 누워 있던 현진의 눈에 두려움이 서렸다.
언제나 올곧게, 그리고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라던 이진명이었다.
최근에야 조금씩 나아진다고 생각하고는있었지만, 자신이 아버지의 기준에 전혀 맞지 않다는 사실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은 스스로의 약함을 내비치는 것일 뿐.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버지…… 아니, S급 헌터의 모습에 현진은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붙들어야만 했다.
“죄…죄송해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먼저 말이 뱉어졌다.
그의 시선은 병실 한쪽의 타일 바닥만을 응시했다.
“이현진. 내가 당당하게 살라고말했을 텐데.”
“……”
“시선을 피하지 마라.”
차갑게만 느껴지는 이진명의 말투.
현진은 조심스레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어…”
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언제나 무심하고 차갑게…… 그리고 무섭게만 있을 줄 알았던 이진명 헌터가.
자신의 아버지가.
두 눈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으니까.
와락!
“아…빠…?”
이진명은 아들의 등을 어색하게, 그러나 한 없이조심스레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고맙다…… 살아 있어 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이런…… 부족한 아버지라.”
묘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
“형님, 또 왔는데요?”
“벌써 이 주째…… 역시 인기가 장난이 아니십니다?”
“천하의 성백 수석이 구애를 해 올 정도라니……”
구애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점점 아파오는 머리를 한 손으로 꾹꾹 누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제발.”
물론, 그런 내 말이 씨알도 먹힐 리 없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동안 잠잠했던 2학년의 A클래스 2반 삼인방은 뭐가 그리 신난지 매일같이 우리 반으로 찾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말대로, 성백 아카데미의한송희도 매일같이 나를 찾아들었다.
‘질리지도 않나?’
대체 그놈의 자존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저렇게 틈만 나면 찾아드는지.
이제는 아예 정문 앞에 간이 텐트를 만들고 거기서 티타임까지 즐기고 있단다.
‘돈지랄도 저런 돈지랄이 없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디 가시게요?”
“저 진상 내쫓으러 간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한쪽에서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은서현이 입을 열었다.
“냅둬. 뭐하러 쓸데없이 관심을 줘?”
녀석의 얼굴에는 피로가 한가득이었다.
최근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도망다니고 있었기에, 그 대신 녀석이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 C클래스의 한아름 역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치면 어련히 알아서 가겠지.”
“그걸 기다리다 내가 먼저 갈 것 같아서 그런다.”
내 말에 녀석은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다시금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알아서 해라.”
*
“이제서야 제대로 사과를 할 마음이 들었어? 내가 특별히……”
“헛소리 집어치우고. 대체 용건이 뭐야?”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
“사람같은 말을 해야 듣든 말든 하지.”
앙칼지게 소리치는 한송희의 말에, 은가람은 한쪽 귀를 파며 그렇게 대꾸했다.
“2주동안 내내 그렇게 찾아오면 질리지도 않냐? 시간이 아주 남아 도시나봐?”
“흥! 이런 걸 승자의 ‘여유’라고 하는 거야. 나는 이미 3학년, 그것도 수.석. 이라서 네가 걱정할 수준이 아니거든?”
“……”
그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은가람.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래, 그러면 여유를 즐겨. 용건도 없는 것 같은데, 난 간다.”
“자,잠깐만!!”
“왜? 용건 없는 거 아냐?”
시큰둥하게 되묻는 은가람.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송희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여유롭게 한 모금을 들이킨후, 당당하게 말을 내뱉는다!
-는게 그녀의 계획이었다.
비록 그녀가 차를 마시자마자 은가람은 다시 그녀를 무시했지만.
“차 잘마셔라.”
“켁…!켈룩…! 어,어딜 가는 거야?!”
“아니, 사람 불러 놓고 차 마시길래. 뭐, 혼자 꽁트 하냐?”
“이이익……!”
나름 우아한 모습으로 선전포고를 하려던 그녀는 얼굴을새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너! 결투를 신청하겠어! 마법으로 내가 한참이나 우위라는 걸 증명해 주지!”
“그래. 뭐, 원한다면.”
“거절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 어? 뭐라고?”
은가람의 흔쾌한 대답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가람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녀는 그 사실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헬 플레어_Hell Flare”
“잠……!”
콰아아아앙!!
엄청난 열기가 월영 아카데미의 정문 근처를 가득 메웠다.
*
“야, 이, 미친 자식아.”
“네. 미친 자식, 잘 듣고 있습니다.”
“제발 좀! 하루라도 좀!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냐?”
답답한 표정을 지은 채로 묻는 운성 쌤.
나는 괜히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그게 제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거기다가 그만한 마법을 때려박는 미친놈이 어디있냐?!”
“여기 있네요. 네, 미친 자식입니다.”
“아오!!”
내 대답에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장렬한 헬 플레어의 장면이 다양한 각도의 CCTV에 찍힌 채로 재생되고 있었다.
“……어?”
그러던 중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화면을 가리켰다.
“왜?또 뭐?”
“쌤 잠시만요. 저 27번 카메라, 조금만 돌려 봐요.”
“……? 왜, 뭐가 있어?”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는27번 카메라를 천천히 되감았다.
아카데미 안쪽에서 정문 방향으로 찍힌 영상.
거기에는 내가 폭발을 등지고 걸어오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좀만……좀만 더…… 스톱! 바로 여기요!”
“뭐야? 왜?!”
“이 장면, 영화 한 장면 같지 않아요? 남자는 폭발을 뒤돌아 보지 않는다! 여기 프린트해 주세……”
따악!
“아얏.”
눈앞에서 별이 울렸다.
“제발 좀 진짜! 아카데미 생활 좀조용히 하면 안되겠냐?”
“왜요?! 솔직히 쌤도 좀 즐겼잖아요!”
“……그건 맞긴 하지만.”
“거 봐요!”
정문 앞에서 저런 식으로 진상을 피우는게 그리 좋아 보일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제지할 만한 법도 없었기에 교사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을 거다.
한송희가 물리적인 전투방식을 무시하는 만큼, 근접 전투 과목 담당인 운성 쌤은 더 그랬을 것이고.
“저렇게 터졌으니까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또 안 오겠죠.”
“하아…… 돌이켜 보면 니 주변에는 정상인이 없던데.”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그러면 다음번에는 더 성대하게 패 줘야 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에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도 설마 또 오겠어요?”
*
다음 날, 내가 설마 하고 우려했던 일은 짜잔!하고 현실로 다가왔다.
‘염병할, 진짜.’
‘설마 또 올까’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 내가 바보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입을 열었다.
“……너 평소에 생각 안 하고 살지.”
“뭣…?! 무슨 그런 실례되는 말을! 그리고 말이야, 어떻게 사람이 그러니? 갑자기 그렇게 기습하는게 어디있어!”
“그럼 실전에서 누가예고하고 때리냐? 너 바보야?”
“실전이 아니잖아! 결투라고, 결투! 1대 1의 공정한 승부!”
“하아……”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의 중급 기사가 떠오르는데.
‘그나마 그쪽은 제대로 된 명분이라도 있었지.’
결국 나는 다시 한 번 수고를 들여야만 했다.
“그래, 정 원하면 해 줄게. 따라와.”
그렇게 나는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는 A클래스 훈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 시작한다.]
삐이익!
“후훗! 나의 우수한 마법실력에 무릎을………”
“헬 플레어.”
“야!시작부터…!!”
콰아아아앙!!
나이스.
또 이겼다.
*
[무슨 소리야. 이래봬도 나, A급 학생이라고? 고작 이정도에 쓰러질 리가 없잖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현성은 옅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몸 관리좀잘 해. 강해지는 건 둘째 쳐도, 크게 다쳐서 불구가 되면 오히려 손해니까.”
[알았어. 아마 내일이나 모레면 퇴원할 것 같대.]
“그래.”
[그……]
“음…?”
현진은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형도.]
“……알면 됐어. 앞으로는 조심해.”
[……헤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현진의 목소리에는 묘한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낯간지러운 대화에 현진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그나저나 아카데미에는 별 일 없어? 가람이 형은?]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죽일듯 달려들더니, 어느새 ‘형’이라는 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붙이는 현진.
은가람을 만난 후로 꽤나 곧게 변한 그의 모습이 조금은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 녀석은 요즘 좀 바쁘더라.”
[응? 아아, 그러고 보니 난리도 아니겠네.]
“하루에도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건 물론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은 기자들도 오더라. 거기다가 요즘에는 성백의 수석이니 뭐니 하는 여자가 매일같이 찾아오고 말야.”
그의 말에 현진은 누군지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아, 그…… 한송희였던가?]
“어, 알아?”
[학회에서 마주쳤었거든. 아주 그냥 싸가지가, 어우……]
질색하는 현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성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만 하더라. 아무튼…… 몸조리 잘하고. 내일 퇴원 못하면 한 번 찾아갈 테니까.”
[에이,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면 돼, 자식아.”
그의 말에 현진은 쑥쓰러운 듯,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알았어…… 고마워.]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후, 현성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은별이 보이네……”
빛을 잃은지 오래인 별들.
날이 맑아서일까, 오늘은 새까만 밤하늘에 두 개의 빛이 빛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궁상인지……”
벌써 늙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피식- 웃음을흘렸다.
그리고 그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
그는주변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얼굴을 굳혔다.
‘둘…… 아니, 셋인가…?’
그 수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할 만큼 옅은 기운.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창을 꺼내들었다.
“흐흠…… 꽤나 우등생이로구만. 역시 A클래스라는 건가?”
“……?!”
그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그러나 그가 뒤돌아 봤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의귀에,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조용하면서도 속삭이는 듯 낮은 목소리.
위치를 가늠하기도 힘들 만한음성이었지만, 묘하게도 그 내용은 명확하게 전달되어 왔다.
“안됐지만, 넌 여기서 죽어 줘야겠다.”
*
“혀…현진아!”
“……”
월영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장례식장.
엄청난 인파가 모인 그 곳에서 나는 현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을 녀석은 환자복이 아닌 새까만 색의 상복을 입고 있었다.
“너 괜찮……아니, 됐어. 대답하지 마.”
“……”
내 말에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리가 없다.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고작 말 몇마디로 위로가 될 것이 아니었다.
‘젠장……! 설마 벌써 움직인 건가……?’
처음 이진명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도 그것은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들어선 빈소에는 현진의 친형인 현성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갑작스런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게 된 그.
그러나 이렇다 할 동기도,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몸도 성치 않은데……’
얼마 전 에이전트에게 몸을 빼앗겨 받은 정신적인 충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전화한 직후 그런 일을 당했으니, 현진은 분명 자책할 것이다.
낮게 한숨을 내쉰 나는 녀석에게 입을 열었다.
“괜히 자책하지는 마. 슬픈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괜히 놈들이 원하는대로 될 뿐이야.”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 마음…… 잘 추스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랄 뿐.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가람이 형.”
“……?”
그런 나를, 녀석이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교육 재개하죠.”
녀석의 얼굴에 자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격렬하게 가라앉은 분노가 그 눈동자 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
현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부터 3일.
오늘도 여지없이, 현진은 실신할 때까지 자신을 몰아세웠다.
이전과 달리 불평 한 마디도 없이,그저 묵묵하게 자신을 단련했다.
“하아……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녀석이 철이 드는거야 좋은 일일 것이다.
시작이야 조금 삐걱거렸어도, 그간 나름의 정이 들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같은 문맥에서,현성의 죽음은 절대로 좋지 않았다.
조용한 밤 하늘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기를 십수 분.
나는 어느 한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였지……”
지금은 핏자국 하나 남기지않고 깨끗하게 정리된 주변.
시신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어느정도 상대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은 탁 트인 장소. 그리고 반대쪽은쉽게 몸을 숨겨 암살을 시도할 만 하겠네. 벽이나 바닥에 흠집은 거의 없는 걸 보면 전투가 그리 길지는 않았을 거고.’
내 기억이 맞다면 현성의 주무기는 긴 창이었다.
그런 창으로 주변에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라면, 제대로 공격을 내지를 틈도 없었다는 소리.
‘분명 코사 노스트라…… 그게 아니면 헌터 협회겠는데. 어쩌면 둘 다일 가능성도 있고.’
문제가 있다면 이렇다할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정보를 알 수없다는 점이었다.
‘이진명 회장도 별달리 알아낸 게 없어 보이………음…?’
그 순간, 나는 미간을 좁혔다.